[기캐열전]③ 시 쓰는 ‘뉴스9’ 기상캐스터, 이세라

입력 2017.01.28 (14:39) 수정 2017.01.28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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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곳곳에 미세먼지가 가라앉은 지난 18일 오후, KBS '뉴스9' 기상캐스터 이세라(30)를 KBS 신관 커피숍에서 만났다.

매일 밤 같은 시각, 오늘의 안녕을 묻고 내일의 날씨를 전해주는 기상캐스터를 만나면 던지고픈 질문이 있었다.

'오늘도 미세먼지때문에 힘들었어요. 언제쯤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나요?'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지만, 끝내 '미세먼지'에 대한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 외에 자연인 이세라, 기상캐스터에 대한 물음만으로도 제한된 인터뷰 시간이 가득 찼다.

이세라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기상캐스터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원래 꿈은 식민지문학 연구자였어요. 꿈이 바뀐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 때문이었죠."


유난히 날씨가 좋은 봄날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학내 식당으로 향하던 대학생 이세라의 시야에 멀찌감치 홀로 앉아 식사 중인 선배의 모습이 들어왔다. 선배는 이 좋은 날씨에 세상 고민을 다 안은 표정으로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었다.

불현듯 '1년 후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내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았던 이세라는 그 길로 휴학계를 제출, '대학원에 진학해 식민지문학 연구자가 되겠다'던 꿈을 잠시 보류했다.

당시 이세라는 시 '노을'(2007)로 동대문학상 가작을 수상하고, 2010년 소설 '오늘 밤 별이 아름답다'를 써내 장원을 받는 등 '인정받는 문학 소녀'였다.


"세상에 저를 증명해보이고 싶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제 노동력의 가치를 알고 싶어졌어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시와 소설 비평을 공부하던 이세라는 그 전까지만해도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없이 나의 만족을 위해 즐기며 글을 쓰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표정을 직면한 후 문득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익 시험은 졸업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두 차례 응시한 것이 고작이었고, 그 흔한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시험을 응시한 적 없는 대학생이었다. '어떤 직업이 좋을까' 이세라의 고민이 시작됐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언어'였어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글을 쓰듯이 말을 하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가 떠올랐어요."


진로를 정한 이세라의 담금질이 시작됐다.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채용 공고가 뜨면 부지런히 응시했다. 시험을 준비한지 4개월 째이던 2011년 6월, 덜컥 기상캐스터 시험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을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25살, '기상캐스터 이세라'의 삶이 시작됐다. 민간기상업체인 '케이웨더'에 입사한 이세라는 기상청으로 파견 나가 기상청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6개월 간 방송 경험을 쌓은 이세라는 같은해 보도전문채널인 연합뉴스TV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상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지만 '기상캐스터' 이세라의 꿈은 아직 미완이었다. 이세라는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의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었다.

"기상캐스터로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KBS 기상캐스터가 돼야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공중파가 아닌 KBS가 목표였죠. 우리나라 유일한 재난주관방송사잖아요. 타사 기상캐스터와 KBS 기상캐스터의 느낌이 달랐어요. KBS 기상캐스터가 기상캐스터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2012년 가을, KBS에서 기상캐스터 공개 채용을 실시했다. 응시 자격은 '방송 경력이 있는 자'.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둔 탓에 경쟁률이 타사들에 비해 낮았다. 1명을 뽑는 시험에 600명이 모였다. 서류심사와 카메라 테스트, 면접이 이어졌다. 매 전형 치열하게 몰두했던 이세라는 그해 공채에서 마지막까지 웃은 자가 됐다. 2012년 10월, 이세라는 KBS 기상캐스터가 됐다.


KBS 입사 후 이세라는 2년 동안 시사교양 프로그램 '굿모닝 대한민국'에서 날씨 정보를 전한 뒤 2015년 1월 '4시 뉴스집중'과 '오후7' 뉴스에 투입됐다. KBS 메인 뉴스인 '뉴스9'에 비하면 주목을 덜 받는 시간대였지만 이세라는 정확하고 차별화한 기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수십 명의 기상캐스터가 기상청에서 받는 정보와 수치는 다 똑같아요. 다른 캐스터들과 어떤 차별화를 줄 것인가 고민해봤어요. 결국 멘트 밖에 없더라고요. 의상으로 포인트를 줄 수 있겠지만, 그건 생명력이 짧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멘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세라에게 글쓰기는 자신있는 분야지만, 뉴스에 쓸 수 있는 단어와 표현들은 한정돼 있었다.

"제가 쓴 원고 그대로 나가는 날도 있지만, 데스킹을 받고 수정한 표현으로 방송하는 날도 많아요. '다행히 추위가 누그러지겠다'는 문장에서 '다행히'가 감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이 표현을 뺀 적이 있어요. 저에겐 다행일 수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모든 분들을 다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맞춰서 원고를 쓰는 게 저희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표현뿐 아니라 오디오(음성)와 비디오(화면), 방송 진행 능력 등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날씨 뉴스를 전하기 위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그날 그날 방송 일지를 쓰고 있어요. '오늘 첫 멘트 목소리가 너무 낮았다', '멘트와 그림 불일치', '오른쪽, 왼쪽 눈 모양이 달랐음. 내일 메이크업 분장팀에 얘기할 것' 등 아주 세세하게 써요. 방송은 휘발성이 강하잖아요. 이렇게 쓰지 않으면 금방 잊고 흘려 보내게 돼요."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까. 이세라는 입사 4년차이던 2015년 봄, KBS '뉴스9'의 기상캐스터로 발탁됐다.

"기상캐스터 일을 시작했을 때는 KBS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들어온 이후에는 조금 더 비중있고 큰 뉴스를 진행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 기회가 제게 주어졌어요."

당시 KBS는 김혜선 기상캐스터의 후임을 정하기 위해 사내 기상캐스터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다.

"건강하고 감사한 경쟁이었어요. 평소 선배들 방송을 보면서 '어떻게 저기서 저런 멘트를 쓸까' 배울 때가 정말 많아요. 그런 분들과 오디션을 봤다는 것이 영광이었죠. 운이 좋아서 제가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과 시험 당일에도 자극이 많이 됐던 건강한 경쟁이었어요."

2015년 4월, 이세라는 "기상캐스터로 설 수 있는 정점"이라고 생각한 KBS '뉴스9'에 입성했다. 마침 미술사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 남짓 되던 때였다.

"'뉴스9'에 승부수를 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에 입학한 지 한달 만에 휴학했어요. 일단 방송에 집중한 뒤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현재 KBS에는 총 8명의 기상캐스터가 있다. 이들은 각자 2개의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 중이다. 이세라는 '뉴스9'와 '뉴스5'에서 기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선후배들의 오전 방송을 모니터해요. 흡수할 것은 흡수하고 거를 것은 거르죠. 서로 배움과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예요. 오전, 오후 방송 시간 대가 달라서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같은 일을 하며 공유하는 고민의 지점이 비슷해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요."

이세라가 KBS에 입사한 지 5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이 잡히고, 저라는 인간에 대한 장단점을 명확하게 인식을 한 상태예요. 저 스스로에게 무리한 것은 요구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깊이있게 들어가는 중이에요."

2015년 4월부터 꼬박 1년 간 '뉴스9'에 몰두한 이세라는 차츰 여유를 찾았고, 지난해 봄 이화여대 미술사학 석사 과정에 복학했다.

"이제 2학기를 마쳤어요. 지난 학기는 정말 힘들었어요. 일반 대학원이기도 하고 과제가 너무 많아 소화하기 어려웠죠. 마지막 과제를 제출할 시기에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서는 잠을 자야 낫는다고 하는데, 방송과 공부를 병행하다보니 늘 잠이 부족했어요. 출근 전에 링거 맞으며 잠깐 눈을 붙이고, 퇴근 후 응급실에서 링거 맞으며 잠시 잔 뒤 집에 가서 과제 하는 생활을 일주일간 반복했어요. 과제를 넘기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방학이 오더라고요."


대학원에서 미술 비평을 공부 중인 이세라는 "요즘 관심사는 글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으로 마음을 굳혔어요. 미술 비평도 재밌고 최근에는 영화 비평 수업도 듣고 있어요. KBS '영화가 좋다'에 합류했는데, 영화를 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써준 원고를 읽고 오는 것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이세라는 지난해 12월부터 영화 프로그램 '영화가 좋다'에 출연해 매주 한 차례씩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가 뉴스를 오래하다보니까 확실히 건조하더라고요. 영화 나래이션은 뉴스와 달리 예민하고 섬세해야하고, 문장 하나하나 요구하는 감정이 다른 것 같아요. 영화에 표현된 감정을 전달하고, 보는 사람의 감정도 끌어내려면 뉴스와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영화 비평을 공부 중이에요."


이세라의 대외 활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뉴스9'를 진행하던 지난해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문체부의 한 서기관은 "한 주간 문화체육관광 소식을 기상 예보 형식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준비 중인데 맡아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세라에게도 반가운 제의였다. 그렇게 '문화 예보관'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방송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링거까지 맞는 투혼. 이세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막냇동생이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막내에게 좋은 모습,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요. 막내를 볼 때마다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1987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이세라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3살 위의 언니, 6살 차이나는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광주 용봉초등학교와 전남중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세라는 고등학교 진학 전 부모님께 폭탄 발언을 던졌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수학 점수 30~40점으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검정고시를 볼게요. 아니면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학창시절 이세라는 국어와 영어, 역사 등 좋아하는 과목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수학과 과학 성적은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몰두하고 싫은 건 쳐다보지도 않는 식이었어요. 특히 수학은 엉망이었어요. 그때 누가 저한테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훈련법 중 하나라고 말해줬더라면 수학에 조금 더 흥미를 가졌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어요. 저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 나름의 답이 구해졌을 때만 비로소 그걸 공부하는 편이에요."

딸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모님에게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당시 부모님은 "검정고시보다는 제도권 교육을 받는 게 낫겠다"는 결론과 함께 "안양예고 입학 시험에 붙으면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세라가 입학한 2003년 당시, 문예창작과가 있는 고등학교는 경기도에 위치한 안양예술고등학교가 유일했다. 35명 가량 뽑는 시험에서 수필을 써 낸 이세라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이세라는 가족을 떠나 비교적 이른 나이에 홀로 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순간이었고 가족과 떨어져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애틋함은 커져만 갔다.

이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남동생이 "누나들이 있는 서울로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고, 부모님은 막내까지 서울로 보냈다. 그렇게 삼남매의 서울 살이가 시작됐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언니, 남동생과 셋이 살았어요. 막내가 사춘기를 겪을 때였는데, 지금까지 미안한 게 동생이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예요. 많이 돌봐주지 못해서 기억이 안 나는거겠죠? 분명히 힘든 점이 많았을텐데 저와 언니가 그 시기를 놓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이세라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줄무늬 티셔츠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이세라는 사진과 함께 "요즘 부쩍 우리 막내가 너무 보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이세라는 "동생이 현재 고시생이라 예전처럼 많이 만나지 못하거든요. 요즘 동생 생각이 많이 나서 동생이 좋아하던 옷을 찍어서 올렸어요"라고 말했다.

이세라는 해당 게시물에서 "성탄이나 연초에는 얼마나 놀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고, 요즘처럼 추운 날엔 얼마나 학원 가는 길이 싫을까 안쓰럽고... 뉴스를 볼 때면 우리 막내가 취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는 더 공정한 세상이 되길, 그리하여 그 아이가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그것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고 적었다.

막내를 향한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이세라의 연애 스토리에도 관심이 가닿았다.

"당연히 저도 연애 경험이 있겠죠? 첫사랑은 딱히 기억이 나질 않아요. 사실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 사람들은 정말 자기 첫사랑이 누군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나 늘 궁금했어요. 정말 그런 게 있나요?(웃음). 얼마 전,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대학교 때 제가 짝사랑했던 사람을 마주쳤는데, 정말 씁쓸했어요. 도대체 내가 저 사람의 어디를 좋아했던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 봐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게 참 자랑스러운 시간으로, 따뜻하게 남게 되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요."


이세라는 사회생활을 할수록, 생각의 궤적이 넓어질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세라의 부모님인 이채승, 홍예리 씨는 광주에서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보다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자랄 때보다 더 양질의 교육을 시켜주셨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만큼만’ 살아도 성공이겠다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성실히 직장 생활 하고 돈을 모아 자식 셋을 다 대학 보내고, 원하는 걸 가르쳐 주고 하면서 사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딱 부모님만큼만, 그렇게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요."

인터뷰 당일 오후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서울 시내에 한밤중 폭설이 내려앉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이세라에게 날씨란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날씨를 전하면서 제가 배운 건 딱 하나예요.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내가 붙잡고 싶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떠나보내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이제 인간이 통제하지 못할 영역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자연 현상만큼은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날씨이고 자연인 것 같아요."

K스타 정혜정 kbs.spri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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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캐열전]③ 시 쓰는 ‘뉴스9’ 기상캐스터, 이세라
    • 입력 2017-01-28 14:39:13
    • 수정2017-01-28 14:49:50
    방송·연예
서울 시내 곳곳에 미세먼지가 가라앉은 지난 18일 오후, KBS '뉴스9' 기상캐스터 이세라(30)를 KBS 신관 커피숍에서 만났다.

매일 밤 같은 시각, 오늘의 안녕을 묻고 내일의 날씨를 전해주는 기상캐스터를 만나면 던지고픈 질문이 있었다.

'오늘도 미세먼지때문에 힘들었어요. 언제쯤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나요?'

인터뷰는 이틀에 걸쳐 진행됐지만, 끝내 '미세먼지'에 대한 질문은 꺼내지 못했다. 미세먼지에 대한 정보 외에 자연인 이세라, 기상캐스터에 대한 물음만으로도 제한된 인터뷰 시간이 가득 찼다.

이세라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기상캐스터를 꿈꾸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원래 꿈은 식민지문학 연구자였어요. 꿈이 바뀐 것은 아주 사소한 계기 때문이었죠."


유난히 날씨가 좋은 봄날이었다. 동기들과 함께 학내 식당으로 향하던 대학생 이세라의 시야에 멀찌감치 홀로 앉아 식사 중인 선배의 모습이 들어왔다. 선배는 이 좋은 날씨에 세상 고민을 다 안은 표정으로 혼자 꾸역꾸역 밥을 먹고 있었다.

불현듯 '1년 후 나도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닐까? 내 모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았던 이세라는 그 길로 휴학계를 제출, '대학원에 진학해 식민지문학 연구자가 되겠다'던 꿈을 잠시 보류했다.

당시 이세라는 시 '노을'(2007)로 동대문학상 가작을 수상하고, 2010년 소설 '오늘 밤 별이 아름답다'를 써내 장원을 받는 등 '인정받는 문학 소녀'였다.


"세상에 저를 증명해보이고 싶었어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보다 경제적으로 환산되는 제 노동력의 가치를 알고 싶어졌어요."

동국대 국어국문학과에서 시와 소설 비평을 공부하던 이세라는 그 전까지만해도 "누군가에게 나를 증명할 필요없이 나의 만족을 위해 즐기며 글을 쓰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선배의 표정을 직면한 후 문득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익 시험은 졸업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두 차례 응시한 것이 고작이었고, 그 흔한 대기업 직무적성검사 시험을 응시한 적 없는 대학생이었다. '어떤 직업이 좋을까' 이세라의 고민이 시작됐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놓고 싶지 않은 것이 '언어'였어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글을 쓰듯이 말을 하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가 떠올랐어요."


진로를 정한 이세라의 담금질이 시작됐다. 아나운서와 기상캐스터 채용 공고가 뜨면 부지런히 응시했다. 시험을 준비한지 4개월 째이던 2011년 6월, 덜컥 기상캐스터 시험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을 2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25살, '기상캐스터 이세라'의 삶이 시작됐다. 민간기상업체인 '케이웨더'에 입사한 이세라는 기상청으로 파견 나가 기상청 기상캐스터로 활동했다. 6개월 간 방송 경험을 쌓은 이세라는 같은해 보도전문채널인 연합뉴스TV로 자리를 옮겼다.

뉴스 프로그램에서 기상 소식을 전할 수 있게 됐지만 '기상캐스터' 이세라의 꿈은 아직 미완이었다. 이세라는 재난주관방송사인 KBS의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었다.

"기상캐스터로만 가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후 KBS 기상캐스터가 돼야겠다는 꿈이 생겼어요. 공중파가 아닌 KBS가 목표였죠. 우리나라 유일한 재난주관방송사잖아요. 타사 기상캐스터와 KBS 기상캐스터의 느낌이 달랐어요. KBS 기상캐스터가 기상캐스터로서 더 큰 의미를 가진다는 게 제 생각이었어요."

2012년 가을, KBS에서 기상캐스터 공개 채용을 실시했다. 응시 자격은 '방송 경력이 있는 자'. 지원 자격에 제한을 둔 탓에 경쟁률이 타사들에 비해 낮았다. 1명을 뽑는 시험에 600명이 모였다. 서류심사와 카메라 테스트, 면접이 이어졌다. 매 전형 치열하게 몰두했던 이세라는 그해 공채에서 마지막까지 웃은 자가 됐다. 2012년 10월, 이세라는 KBS 기상캐스터가 됐다.


KBS 입사 후 이세라는 2년 동안 시사교양 프로그램 '굿모닝 대한민국'에서 날씨 정보를 전한 뒤 2015년 1월 '4시 뉴스집중'과 '오후7' 뉴스에 투입됐다. KBS 메인 뉴스인 '뉴스9'에 비하면 주목을 덜 받는 시간대였지만 이세라는 정확하고 차별화한 기상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썼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수십 명의 기상캐스터가 기상청에서 받는 정보와 수치는 다 똑같아요. 다른 캐스터들과 어떤 차별화를 줄 것인가 고민해봤어요. 결국 멘트 밖에 없더라고요. 의상으로 포인트를 줄 수 있겠지만, 그건 생명력이 짧다고 생각해요. 결국에는 멘트, 표현이라고 생각했어요."

안양예고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뒤 문학특기생으로 대학에 입학한 이세라에게 글쓰기는 자신있는 분야지만, 뉴스에 쓸 수 있는 단어와 표현들은 한정돼 있었다.

"제가 쓴 원고 그대로 나가는 날도 있지만, 데스킹을 받고 수정한 표현으로 방송하는 날도 많아요. '다행히 추위가 누그러지겠다'는 문장에서 '다행히'가 감정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지적을 받고 이 표현을 뺀 적이 있어요. 저에겐 다행일 수 있지만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는 거잖아요. 모든 분들을 다 고려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최대한 맞춰서 원고를 쓰는 게 저희의 의무라고 생각해요."


표현뿐 아니라 오디오(음성)와 비디오(화면), 방송 진행 능력 등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의 날씨 뉴스를 전하기 위한 고민도 이어지고 있다.

"그날 그날 방송 일지를 쓰고 있어요. '오늘 첫 멘트 목소리가 너무 낮았다', '멘트와 그림 불일치', '오른쪽, 왼쪽 눈 모양이 달랐음. 내일 메이크업 분장팀에 얘기할 것' 등 아주 세세하게 써요. 방송은 휘발성이 강하잖아요. 이렇게 쓰지 않으면 금방 잊고 흘려 보내게 돼요."

부단한 노력의 결과일까. 이세라는 입사 4년차이던 2015년 봄, KBS '뉴스9'의 기상캐스터로 발탁됐다.

"기상캐스터 일을 시작했을 때는 KBS 기상캐스터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었고, 들어온 이후에는 조금 더 비중있고 큰 뉴스를 진행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는데 너무 감사하게도 그 기회가 제게 주어졌어요."

당시 KBS는 김혜선 기상캐스터의 후임을 정하기 위해 사내 기상캐스터를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했다.

"건강하고 감사한 경쟁이었어요. 평소 선배들 방송을 보면서 '어떻게 저기서 저런 멘트를 쓸까' 배울 때가 정말 많아요. 그런 분들과 오디션을 봤다는 것이 영광이었죠. 운이 좋아서 제가 9시 뉴스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과 시험 당일에도 자극이 많이 됐던 건강한 경쟁이었어요."

2015년 4월, 이세라는 "기상캐스터로 설 수 있는 정점"이라고 생각한 KBS '뉴스9'에 입성했다. 마침 미술사에 관심이 생겨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 한달 남짓 되던 때였다.

"'뉴스9'에 승부수를 둬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에 입학한 지 한달 만에 휴학했어요. 일단 방송에 집중한 뒤 생활에 안정을 찾으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현재 KBS에는 총 8명의 기상캐스터가 있다. 이들은 각자 2개의 프로그램을 맡아 진행 중이다. 이세라는 '뉴스9'와 '뉴스5'에서 기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출근하자마자 선후배들의 오전 방송을 모니터해요. 흡수할 것은 흡수하고 거를 것은 거르죠. 서로 배움과 도움을 주고 받는 관계예요. 오전, 오후 방송 시간 대가 달라서 자주 모이지는 못하지만 같은 일을 하며 공유하는 고민의 지점이 비슷해서 서로 이야기가 잘 통해요."

이세라가 KBS에 입사한 지 5년이 지났다.

"지금은 어디로 가야할 지 방향이 잡히고, 저라는 인간에 대한 장단점을 명확하게 인식을 한 상태예요. 저 스스로에게 무리한 것은 요구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에 깊이있게 들어가는 중이에요."

2015년 4월부터 꼬박 1년 간 '뉴스9'에 몰두한 이세라는 차츰 여유를 찾았고, 지난해 봄 이화여대 미술사학 석사 과정에 복학했다.

"이제 2학기를 마쳤어요. 지난 학기는 정말 힘들었어요. 일반 대학원이기도 하고 과제가 너무 많아 소화하기 어려웠죠. 마지막 과제를 제출할 시기에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서는 잠을 자야 낫는다고 하는데, 방송과 공부를 병행하다보니 늘 잠이 부족했어요. 출근 전에 링거 맞으며 잠깐 눈을 붙이고, 퇴근 후 응급실에서 링거 맞으며 잠시 잔 뒤 집에 가서 과제 하는 생활을 일주일간 반복했어요. 과제를 넘기고 정말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순간 방학이 오더라고요."


대학원에서 미술 비평을 공부 중인 이세라는 "요즘 관심사는 글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평으로 마음을 굳혔어요. 미술 비평도 재밌고 최근에는 영화 비평 수업도 듣고 있어요. KBS '영화가 좋다'에 합류했는데, 영화를 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써준 원고를 읽고 오는 것밖에 안 되겠더라고요."

이세라는 지난해 12월부터 영화 프로그램 '영화가 좋다'에 출연해 매주 한 차례씩 영화를 소개하고 있다.

"제가 뉴스를 오래하다보니까 확실히 건조하더라고요. 영화 나래이션은 뉴스와 달리 예민하고 섬세해야하고, 문장 하나하나 요구하는 감정이 다른 것 같아요. 영화에 표현된 감정을 전달하고, 보는 사람의 감정도 끌어내려면 뉴스와 다르게 접근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를 읽는 법을 배우기 위해 영화 비평을 공부 중이에요."


이세라의 대외 활동은 이 뿐만이 아니다. '뉴스9'를 진행하던 지난해 하반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문체부의 한 서기관은 "한 주간 문화체육관광 소식을 기상 예보 형식으로 소개하는 코너를 준비 중인데 맡아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문학을 전공하고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이세라에게도 반가운 제의였다. 그렇게 '문화 예보관'으로 활동한 지도 어느덧 반년이 지났다.

방송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링거까지 맞는 투혼. 이세라를 움직이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

"막냇동생이 제 삶의 원동력이에요. 막내에게 좋은 모습,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어요. 막내를 볼 때마다 '바르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1987년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난 이세라는 부모님의 보살핌 아래 3살 위의 언니, 6살 차이나는 남동생과 함께 자랐다.

광주 용봉초등학교와 전남중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이세라는 고등학교 진학 전 부모님께 폭탄 발언을 던졌다.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수학 점수 30~40점으로 살아남을 수 없어요. 검정고시를 볼게요. 아니면 안양예고 문예창작과에서 글쓰기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요."

학창시절 이세라는 국어와 영어, 역사 등 좋아하는 과목의 성적은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수학과 과학 성적은 그렇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몰두하고 싫은 건 쳐다보지도 않는 식이었어요. 특히 수학은 엉망이었어요. 그때 누가 저한테 수학은 논리적인 사고를 하기 위한 훈련법 중 하나라고 말해줬더라면 수학에 조금 더 흥미를 가졌을 것 같은데, 당시에는 그걸 몰랐어요. 저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제 나름의 답이 구해졌을 때만 비로소 그걸 공부하는 편이에요."

딸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부모님에게 두 개의 선택지가 주어졌다. 당시 부모님은 "검정고시보다는 제도권 교육을 받는 게 낫겠다"는 결론과 함께 "안양예고 입학 시험에 붙으면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이세라가 입학한 2003년 당시, 문예창작과가 있는 고등학교는 경기도에 위치한 안양예술고등학교가 유일했다. 35명 가량 뽑는 시험에서 수필을 써 낸 이세라는 당당히 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렇게 이세라는 가족을 떠나 비교적 이른 나이에 홀로 서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합격의 기쁨은 순간이었고 가족과 떨어져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 애틋함은 커져만 갔다.

이후 초등학교 과정을 마친 남동생이 "누나들이 있는 서울로 가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고, 부모님은 막내까지 서울로 보냈다. 그렇게 삼남매의 서울 살이가 시작됐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언니, 남동생과 셋이 살았어요. 막내가 사춘기를 겪을 때였는데, 지금까지 미안한 게 동생이 사춘기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는 거예요. 많이 돌봐주지 못해서 기억이 안 나는거겠죠? 분명히 힘든 점이 많았을텐데 저와 언니가 그 시기를 놓친 것 같아 너무 미안해요. 그래서 더 애틋한 것 같아요."


이세라는 최근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줄무늬 티셔츠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이세라는 사진과 함께 "요즘 부쩍 우리 막내가 너무 보고 싶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에 대해 이세라는 "동생이 현재 고시생이라 예전처럼 많이 만나지 못하거든요. 요즘 동생 생각이 많이 나서 동생이 좋아하던 옷을 찍어서 올렸어요"라고 말했다.

이세라는 해당 게시물에서 "성탄이나 연초에는 얼마나 놀고 싶었을까 하는 생각에 안타깝고, 요즘처럼 추운 날엔 얼마나 학원 가는 길이 싫을까 안쓰럽고... 뉴스를 볼 때면 우리 막내가 취업을 하고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는 더 공정한 세상이 되길, 그리하여 그 아이가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그것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길 간절히 바라게 된다"고 적었다.

막내를 향한 애정어린 이야기를 들으니, 자연스레 이세라의 연애 스토리에도 관심이 가닿았다.

"당연히 저도 연애 경험이 있겠죠? 첫사랑은 딱히 기억이 나질 않아요. 사실 큰 의미를 두지도 않고, 사람들은 정말 자기 첫사랑이 누군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나 늘 궁금했어요. 정말 그런 게 있나요?(웃음). 얼마 전, 우연히 길을 지나다가 대학교 때 제가 짝사랑했던 사람을 마주쳤는데, 정말 씁쓸했어요. 도대체 내가 저 사람의 어디를 좋아했던 건지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시간이 흐른 뒤에 생각해 봐도 내가 그 사람을 좋아했던 게 참 자랑스러운 시간으로, 따뜻하게 남게 되는 사람으로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겠다고요."


이세라는 사회생활을 할수록, 생각의 궤적이 넓어질수록, 부모님 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말했다. 이세라의 부모님인 이채승, 홍예리 씨는 광주에서 법무사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어렸을 때는 '부모님보다 더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부모님이 자랄 때보다 더 양질의 교육을 시켜주셨으니까,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부모님만큼만’ 살아도 성공이겠다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성실히 직장 생활 하고 돈을 모아 자식 셋을 다 대학 보내고, 원하는 걸 가르쳐 주고 하면서 사는 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딱 부모님만큼만, 그렇게 살고 싶어요. 다른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내면서요."

인터뷰 당일 오후 미세먼지가 가득했던 서울 시내에 한밤중 폭설이 내려앉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날씨. '이세라에게 날씨란 어떤 의미인지',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지금까지 7년 동안 날씨를 전하면서 제가 배운 건 딱 하나예요. 인생이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 계절이 오고 가는 것도 그런 거잖아요? 내가 붙잡고 싶다고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억지로 떠나보내고 싶다고 그럴 수 있는 것도 아니죠. 이제 인간이 통제하지 못할 영역은 없는 것처럼 보여도, 자연 현상만큼은 어쩔 수 없잖아요. 사람을 겸손하게 만드는 것, 그게 날씨이고 자연인 것 같아요."

K스타 정혜정 kbs.sprinter@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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