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최초의 독립선언 ‘무오 선언’

입력 2017.02.01 (21:30) 수정 2017.02.01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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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19년 3.1 운동이나 2.8 독립선언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앞선 2월 1일, 만주에서도 민족 대표 39명이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름하며 '무오 독립선언' 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중국 동북 3성 교민들의 노력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구려의 수도 졸본성이 있었던 중국 요녕성의 한 마을, 외롭게 서 있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세복 선생이 항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었던 배움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1919년 3.1 운동이 거행되기 한 달 전 윤세복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9명이 이곳 만주에서 대한독립을 선포했습니다.

<녹취> 무오독립선언서 낭독 : "이민족 전제의 학대와 억압을 해탈하고 대한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으로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전정혁(역사연구가) : "항일 인재를 배양하는 학교를 설립하고, 다시 39명이 길림시에서 무오 독립선언을 선포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무오독립선언을 기리기 위해, 중국 동북3성 지역의 후손들이 5년 전부터 기념식을 열고 있습니다.

조소앙, 김좌진, 안창호 등 해외에서 독립 투쟁을 벌이던 39인이 외쳤던 독립의 함성이 중국 동포들을 통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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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잊혀진 최초의 독립선언 ‘무오 선언’
    • 입력 2017-02-01 21:42:35
    • 수정2017-02-01 22: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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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1919년 3.1 운동이나 2.8 독립선언은 잘 알려져 있지만 이에 앞선 2월 1일, 만주에서도 민족 대표 39명이 독립을 선포한 역사적 사실이 있습니다.

이름하며 '무오 독립선언' 이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중국 동북 3성 교민들의 노력으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김도엽 특파원이 보도합니다.

<리포트>

고구려의 수도 졸본성이 있었던 중국 요녕성의 한 마을, 외롭게 서 있는 기념비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윤세복 선생이 항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해 만들었던 배움터가 있었던 곳입니다.

1919년 3.1 운동이 거행되기 한 달 전 윤세복 선생을 비롯한 민족대표 39명이 이곳 만주에서 대한독립을 선포했습니다.

<녹취> 무오독립선언서 낭독 : "이민족 전제의 학대와 억압을 해탈하고 대한민주의 자립을 선포하노라."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선언으로 2.8독립선언과 3.1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지금까지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전정혁(역사연구가) : "항일 인재를 배양하는 학교를 설립하고, 다시 39명이 길림시에서 무오 독립선언을 선포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가 깊습니다."

무오독립선언을 기리기 위해, 중국 동북3성 지역의 후손들이 5년 전부터 기념식을 열고 있습니다.

조소앙, 김좌진, 안창호 등 해외에서 독립 투쟁을 벌이던 39인이 외쳤던 독립의 함성이 중국 동포들을 통해 오늘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선양에서 KBS 뉴스 김도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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