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일자리가 남아돈다…일본의 배부른 걱정?

입력 2017.02.05 (09:51) 수정 2017.02.0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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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구인배율'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작성하는 통계인데,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1사람당 일자리가 몇 개인지 나타내는 수치다.

1: 1이면 구직자 1사람당 일자리 1개, 즉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상태고, 1 이하로 떨어지면 일자리가 부족한, 1위로 올라가면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그럼 2016년도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몇 일까? 1.36이다.

구직자 1명당 1.36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1991년 1.40배 이후 25년 만의 최고치라고 한다.

아베 총리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현장 유세에 갈 때마다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이 '유효구인배율'이다. 침체된 일본 경제에 아베노믹스로 활기를 불어넣어 일자리가 그만큼 늘었다고 주장했다.


유효구인배율은 7년 연속 개선됐다. 아베 총리가 2012년 2기 내각을 시작했으니 사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실상 일본에서는 일자리 개선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일자리는 경기가 좋아져서 늘었을까?

도쿄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이타마 시의 한 상점가. 라면 체인점에 명물이 등장했다. 이른바 자동 배식 시스템이다.

들어가 자리에 앉아 스크린에서 주문할 음식을 골라 누르면, 주방 앞에서부터 라면이 자동으로 자리까지 전달된다. 회전 초밥집처럼 그릇을 사람 앞으로 가져다주는 장치인데, 조그마한 라면집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5천만엔, 우리 돈 5억 원이 쓰였다고 한다.

그럼 정말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억 원을 써가며 이 '명물'을 도입했을까? 아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해당 라면 체인의 니시오 전무는 "저희가 겪어보지 못한 인력 부족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해당 체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면 15만 엔(150만 원), 정사원을 소개하면 40만 엔(400만 원)을 준다는 당근까지 내걸고 사람을 구했지만, 어떻게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일하고 있는 사람의 친인척, 친구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근근히 영업을 이어가다 결국 '식당 자동화'라는 선택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연관 기사] ☞ 日 고령화 속 인력난…식당마저 ‘자동화’

여기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용어. 바로 '생산가능인구'이다. 15세에서 64세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활동 사람 수를 말하는데, 문제는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데 있다.


일본 총무성의 발표를 보면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지난 1995년 8,717만 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년 넘게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5년 7,828만 명으로 줄었으니 20년 사이에 1,089만 명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2030년에는 6,773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아베 총리가 내세우고 있는 유효구인배율 수치는 경기에 훈풍이 도는 덕도 있겠지만 결국은 너무도 급속하게 일 할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생산가능인구 추이를 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3천763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부터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65년에는 2천만 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해 한국 내 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일본이 20년 전 시작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결국 우리도 20년 뒤에는 심각한 구인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일본은 현재 정년이 64세로 우리보다 4년 정도 늦다. 이것도 모자라 고령의 개념을 75세로 바꿔 사회적으로 일할 사람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하는 방법 개혁위'를 둬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성을 육아에서 자유롭게 해 어떻게든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중이다.


미래 우리가 겪어야 할 현재 진행형이 현재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실업난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구인난을 논한다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뻔히 보이는 미래의 재앙을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 만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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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일자리가 남아돈다…일본의 배부른 걱정?
    • 입력 2017-02-05 09:51:14
    • 수정2017-02-05 10:32:16
    특파원 리포트
'유효구인배율'이라는 용어가 있다. 일본 후생노동성이 작성하는 통계인데,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1사람당 일자리가 몇 개인지 나타내는 수치다.

1: 1이면 구직자 1사람당 일자리 1개, 즉 마음만 먹으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상태고, 1 이하로 떨어지면 일자리가 부족한, 1위로 올라가면 일자리는 있는데 사람이 부족하다는 뜻이 된다.

그럼 2016년도 일본의 유효구인배율은 몇 일까? 1.36이다.

구직자 1명당 1.36개의 일자리가 있다는 뜻이다. 1991년 1.40배 이후 25년 만의 최고치라고 한다.

아베 총리가 지난 7월 참의원 선거에서 현장 유세에 갈 때마다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 것이 바로 이 '유효구인배율'이다. 침체된 일본 경제에 아베노믹스로 활기를 불어넣어 일자리가 그만큼 늘었다고 주장했다.


유효구인배율은 7년 연속 개선됐다. 아베 총리가 2012년 2기 내각을 시작했으니 사실 아베노믹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사실상 일본에서는 일자리 개선 상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일자리는 경기가 좋아져서 늘었을까?

도쿄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사이타마 시의 한 상점가. 라면 체인점에 명물이 등장했다. 이른바 자동 배식 시스템이다.

들어가 자리에 앉아 스크린에서 주문할 음식을 골라 누르면, 주방 앞에서부터 라면이 자동으로 자리까지 전달된다. 회전 초밥집처럼 그릇을 사람 앞으로 가져다주는 장치인데, 조그마한 라면집에 이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5천만엔, 우리 돈 5억 원이 쓰였다고 한다.

그럼 정말 사람을 끌어모으기 위해 수억 원을 써가며 이 '명물'을 도입했을까? 아니다. 일할 사람이 없어서다.

해당 라면 체인의 니시오 전무는 "저희가 겪어보지 못한 인력 부족 시대가 오고 있는 것 같다"며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해당 체인에서는 아르바이트를 소개하면 15만 엔(150만 원), 정사원을 소개하면 40만 엔(400만 원)을 준다는 당근까지 내걸고 사람을 구했지만, 어떻게도 빈자리는 채워지지 않았다. 일하고 있는 사람의 친인척, 친구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근근히 영업을 이어가다 결국 '식당 자동화'라는 선택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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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용어. 바로 '생산가능인구'이다. 15세에서 64세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경제활동 사람 수를 말하는데, 문제는 일본의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줄어든다는 데 있다.


일본 총무성의 발표를 보면 일본의 생산가능인구는 지난 1995년 8,717만 명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년 넘게 계속 감소하고 있다. 2015년 7,828만 명으로 줄었으니 20년 사이에 1,089만 명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2030년에는 6,773만 명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결국, 아베 총리가 내세우고 있는 유효구인배율 수치는 경기에 훈풍이 도는 덕도 있겠지만 결국은 너무도 급속하게 일 할 사람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오는 이유다.

한국도 2017년부터 ‘생산가능인구’ 감소

통계청이 지난해 말 발표한 생산가능인구 추이를 보면,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지난해 3천763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올해부터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65년에는 2천만 명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다.

경제가 어려움에 봉착해 한국 내 실업난이 심각한 상황이지만, 일본이 20년 전 시작한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이제 지금부터 우리가 겪는다고 생각하면 결국 우리도 20년 뒤에는 심각한 구인난에 빠져들 수 있다는 예상도 가능하다.

일본은 현재 정년이 64세로 우리보다 4년 정도 늦다. 이것도 모자라 고령의 개념을 75세로 바꿔 사회적으로 일할 사람을 확보하는 방안을 찾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하는 방법 개혁위'를 둬 근로시간을 줄이고, 여성을 육아에서 자유롭게 해 어떻게든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중이다.


미래 우리가 겪어야 할 현재 진행형이 현재 일본 사회의 모습이다. 실업난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구인난을 논한다는 것이 맞지 않을 수 있지만, 뻔히 보이는 미래의 재앙을 그냥 손 놓고 기다릴 수 만도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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