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따라잡기] “내 나이가 어때서”…83세 검정고시 합격기

입력 2017.05.15 (08:33) 수정 2017.05.1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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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오늘은 스승의 날이죠.

학창시절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해준 은사님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여기 여든이 넘어 처음만난 선생님 덕분에 배움의 즐거움에 푹 빠진 분이 계십니다.

올해 팔십삼 세의 이상연 할머니, 지난주 발표된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팔십 평생을 가족을 위해 바쳤고, 한글조차 제대로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찾아온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배움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할머니의 사연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남 양산시에 있는 '평생 열린학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한글 수업에 한창입니다.

<녹취> "천천히 하세요."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주름진 손으로 또박또박 글씨를 적어봅니다.

<인터뷰> 한순칠(경남 양산시/71세) : "내 이름자도 못 쓰고, 눈을 까막눈으로 다니다 이렇게 배우니까 진짜 좋더라고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맏언니는 이상연 할머니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이름은 이상연, 나이는 83살이고, 나만 참 늙은 학생입니다."

3년 전 이 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팔십 평생 처음 학교 문턱을 밟았고, 한글 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연필 하나만 가지고 가니까 선생님이 공책을 하나 주더라고요. 그것을 쓰고 집에 오니까 마음에 불이 환해지고, 저기 불 켜놓은 것처럼 환하게 세상이 내 것인 것처럼 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인터뷰> 김현실(양산 평생 열린학교 교장) : "(한글) 공부를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셨어요. (지금은) 우리 학교의 에이스입니다."

3년 간 노력의 결실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지난 달 응시한 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산교육청에서 실시한 이번 초졸 학력 검정고시에서 최고령 합격자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 합격했다. 내가 하는 건 열심히 했는데 시험 칠 때 어려웠는데 어떻게 (합격했는지) 실감이 안나요."

80대에 접어들어 처음 공부란 걸 시작한 지 3년 만에 받아든 합격증, 다른 학생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인터뷰> 정인규(경남 양산시/81세) : "누님 합격된 거 보면 너무 부럽지요. (나도) 한 번 더 쳐서 합격 꼭 하고 싶죠. 검정고시 합격하면 그래도 초등학교 졸업장이 나올 것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초등학교 졸업했다 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 거예요. 안 그래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해도, 검정고시에 합격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현실(양산 평생 열린학교 교장) : "막연하게 공부만 한다는 것은 자기만족도, 성취감이 없어요. 그래서 작년에 제가 좀 크게 검정고시에 도전을 해보자."

<인터뷰> 이상연(81/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한두 달 앞세워서는 검정고시 시험 친다고 공부하라 하는 거예요. 갑자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더라고요."

경험삼아 한번 도전해본 생애 첫 검정고시. 결과는 물론 불합격.

하지만 성과가 있었습니다.

6과목 평균 60점이 합격인데, 첫 시험에서 딱 1점 부족한 59점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틈만 나면 밥하다 들어와 가지고 참 (공부할 거) 보고, 시간 넘어가버리니 뭐 음식 하다 태우고. 솥을 맨날 태워먹었단다. (공부하다) 1시 돼서 잘 때도 있고, 2시 돼서 잘 때도 있고."

자식들에게도 어머니의 열정적인 모습은 낯설지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박금선(둘째 딸) : "한 번씩 어머니한테 올라가 보면 방에 시험지가 쫙 깔려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기가 잊어버린다, 까먹는다 하시면서도 진짜 열심히 잘 하셨구나."

날마다 어린 손녀들이 찾아와 할머니와 함께 숙제 하고, 공부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인터뷰> 박세인(초등학교 1학년/손녀) : "(할머니 공부하시는 것 보니까 어땠어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인터뷰> 박세영(초등학교 6학년/손녀) : "할머니 글 쓰다 보면 손 안 아파요? (손 안 아파~)"

<인터뷰> 박세영(초등학교 6학년/손녀) : "(할머니 공부하는 것 도와준 적도 있어요?) 네. 할머니가 모르시는 것 받아쓰기랑 수학 같은 것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 할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데 나도 더 노력해야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일제 강점기 7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난 이상연 할머니.

비슷한 시기를 보낸 어르신들처럼 전쟁과 가난 속에 학교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6남매를 키우면서 부턴 자기 자신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우리 클 때는 더 가난했지요. 소나무 껍질 벗겨가지고 밥을 해 먹고. 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으니까 (학교 가서) 부럽고 그런 것 몰랐어. 글도 모르고 시집와서 아이들 낳아서 공부시키다 보니까……."

80세가 넘어 우연히 찾아온 배움의 기회.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일인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공부가) 재미나서 했어요. 시험지 읽다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 있어요. 아이고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내가 바보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머리에 다 들어오니까 재미가 나서 자꾸 해져요."

<녹취> "합격증서. 성명 이상연. 위 사람은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음을 증명함."

초졸 검정고시 합격자 대표로 합격장을 받아든 어르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죽을 때까지 해야지 어떡해요. 공부하는데 뭐 나이가 있나요. 내가 정신 있을 때까지 끝까지 (공부) 할 생각 있어요.'

배움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83살 이상연 어르신.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과 도전이 훈훈한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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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스 따라잡기] “내 나이가 어때서”…83세 검정고시 합격기
    • 입력 2017-05-15 08:39:08
    • 수정2017-05-15 09: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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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멘트>

오늘은 스승의 날이죠.

학창시절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해준 은사님이 생각나는 날입니다.

여기 여든이 넘어 처음만난 선생님 덕분에 배움의 즐거움에 푹 빠진 분이 계십니다.

올해 팔십삼 세의 이상연 할머니, 지난주 발표된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팔십 평생을 가족을 위해 바쳤고, 한글조차 제대로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히 찾아온 배움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배움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할머니의 사연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리포트>

경남 양산시에 있는 '평생 열린학교'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한글 수업에 한창입니다.

<녹취> "천천히 하세요."

한 글자라도 놓칠세라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주름진 손으로 또박또박 글씨를 적어봅니다.

<인터뷰> 한순칠(경남 양산시/71세) : "내 이름자도 못 쓰고, 눈을 까막눈으로 다니다 이렇게 배우니까 진짜 좋더라고요."

배움의 기회를 놓친 어르신들이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이곳에서 나이가 가장 많은 맏언니는 이상연 할머니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이름은 이상연, 나이는 83살이고, 나만 참 늙은 학생입니다."

3년 전 이 학교가 문을 열었을 때, 팔십 평생 처음 학교 문턱을 밟았고, 한글 공부부터 시작했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연필 하나만 가지고 가니까 선생님이 공책을 하나 주더라고요. 그것을 쓰고 집에 오니까 마음에 불이 환해지고, 저기 불 켜놓은 것처럼 환하게 세상이 내 것인 것처럼 기분이 그렇게 좋아요."

<인터뷰> 김현실(양산 평생 열린학교 교장) : "(한글) 공부를 한 번도 해보신 적이 없다고 했는데요, 열정적으로 열심히 하셨어요. (지금은) 우리 학교의 에이스입니다."

3년 간 노력의 결실이 최근 전해졌습니다.

지난 달 응시한 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자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습니다.

부산교육청에서 실시한 이번 초졸 학력 검정고시에서 최고령 합격자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초등학교 검정고시 시험 합격했다. 내가 하는 건 열심히 했는데 시험 칠 때 어려웠는데 어떻게 (합격했는지) 실감이 안나요."

80대에 접어들어 처음 공부란 걸 시작한 지 3년 만에 받아든 합격증, 다른 학생들에게도 부러움의 대상입니다.

<인터뷰> 정인규(경남 양산시/81세) : "누님 합격된 거 보면 너무 부럽지요. (나도) 한 번 더 쳐서 합격 꼭 하고 싶죠. 검정고시 합격하면 그래도 초등학교 졸업장이 나올 것 아니에요. 그러면 내가 초등학교 졸업했다 할 수 있고 그것이 얼마나 좋은 거예요. 안 그래요?"

처음 공부를 시작할 때만해도, 검정고시에 합격할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김현실(양산 평생 열린학교 교장) : "막연하게 공부만 한다는 것은 자기만족도, 성취감이 없어요. 그래서 작년에 제가 좀 크게 검정고시에 도전을 해보자."

<인터뷰> 이상연(81/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한두 달 앞세워서는 검정고시 시험 친다고 공부하라 하는 거예요. 갑자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하나 그러니까 선생님이 많이 가르쳐 주더라고요."

경험삼아 한번 도전해본 생애 첫 검정고시. 결과는 물론 불합격.

하지만 성과가 있었습니다.

6과목 평균 60점이 합격인데, 첫 시험에서 딱 1점 부족한 59점이 나왔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틈만 나면 밥하다 들어와 가지고 참 (공부할 거) 보고, 시간 넘어가버리니 뭐 음식 하다 태우고. 솥을 맨날 태워먹었단다. (공부하다) 1시 돼서 잘 때도 있고, 2시 돼서 잘 때도 있고."

자식들에게도 어머니의 열정적인 모습은 낯설지만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인터뷰> 박금선(둘째 딸) : "한 번씩 어머니한테 올라가 보면 방에 시험지가 쫙 깔려있습니다. 연세가 많으셔서 자기가 잊어버린다, 까먹는다 하시면서도 진짜 열심히 잘 하셨구나."

날마다 어린 손녀들이 찾아와 할머니와 함께 숙제 하고, 공부하는 게 일상이 됐습니다.

<인터뷰> 박세인(초등학교 1학년/손녀) : "(할머니 공부하시는 것 보니까 어땠어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인터뷰> 박세영(초등학교 6학년/손녀) : "할머니 글 쓰다 보면 손 안 아파요? (손 안 아파~)"

<인터뷰> 박세영(초등학교 6학년/손녀) : "(할머니 공부하는 것 도와준 적도 있어요?) 네. 할머니가 모르시는 것 받아쓰기랑 수학 같은 것 간단하게 설명해 드리고. 할머니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시는데 나도 더 노력해야지 이렇게 생각했어요."

일제 강점기 7남매의 둘째 딸로 태어난 이상연 할머니.

비슷한 시기를 보낸 어르신들처럼 전쟁과 가난 속에 학교 갈 생각은 엄두도 못 냈습니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6남매를 키우면서 부턴 자기 자신은 늘 뒷전이었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우리 클 때는 더 가난했지요. 소나무 껍질 벗겨가지고 밥을 해 먹고. 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많으니까 (학교 가서) 부럽고 그런 것 몰랐어. 글도 모르고 시집와서 아이들 낳아서 공부시키다 보니까……."

80세가 넘어 우연히 찾아온 배움의 기회.

새로운 걸 배운다는 게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일인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어 알게 됐습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공부가) 재미나서 했어요. 시험지 읽다 보면 답이 나오는 것이 있어요. 아이고 내가 공부를 하니까 내가 바보는 아닌가 보다. 이렇게 머리에 다 들어오니까 재미가 나서 자꾸 해져요."

<녹취> "합격증서. 성명 이상연. 위 사람은 초등학교 졸업 검정고시에 합격하였음을 증명함."

초졸 검정고시 합격자 대표로 합격장을 받아든 어르신.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배움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인터뷰> 이상연(83/초졸 학력 검정고시 합격) : "죽을 때까지 해야지 어떡해요. 공부하는데 뭐 나이가 있나요. 내가 정신 있을 때까지 끝까지 (공부) 할 생각 있어요.'

배움에 있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몸소 보여준 83살 이상연 어르신.

젊은 사람 못지않은 열정과 도전이 훈훈한 감동으로 전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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