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아요” 늪에 빠진 충무로

입력 2017.07.09 (22:55) 수정 2017.07.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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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민(영화 평론가) : "너무나 쏠림 현상이 있고 안일한 기획들이 많고 천편일률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해(팬들이) 조금씩 외면해가는 것 같아요."

<인터뷰> 이미선(영화 관람객) : "일본인인데도 일본 법정에서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 참 감명을 받았고요./영화를 보고/ 여기 무덤에 와서 보니 죽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녹취> "눈에 띄는 대로 조선인들을 죽이고 있잖아!"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6천여 명의 조선인이 무고하게 살해됩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항일 운동을 하던 박열이라는 인물을 희생양으로 지목합니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스스로 자백하고,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도쿄 법정에 서기로 계획합니다.

<녹취> "이 재판이 조선에서 화제가 되게 해줄 수 있겠어?"

<인터뷰> 이준익(영화 '박열' 감독) : "일제 강점기 같은 경우는 이 땅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이것은 세계사적인 흐름 안에서 발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의 제국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식민지 시대를 보냈던 우리의 역사적 관점은 어느 지점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나키스트이자 항일 운동가를 조명했습니다.

극 중 등장인물을 모두 실존인물로 구성해, 철저한 고증 끝에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이준익(감독) : "일본 관객들이 어? 정말 이랬어? 지금 일본 교과서에선 많이 배제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에 고증이 부실하면 이야기의 본질 자체를 부정할까 봐 의도적으로 좀 고증에 충실하려고..."

배우 이제훈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일본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신예 최희서가,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일본 여성 후미코를 맡아 열연했습니다.

<녹취> "가네코 후미코. 나도 아나키스트야!"

<인터뷰> 최희서(주연 배우) : "20대 초반의 이 두 여자와 남자가 얼마나 국경을 넘고 성별을 넘어서 동지로서 서로를 믿었고 본인들이 갖고 있었던 의지를 그대로 따라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그 열정 그리고 패기 이런 것들이..."

화려한 볼거리나 톱스타 없이도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흥행수익 1위를 질주하며 2주차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습니다.

<인터뷰> 김지연(관객) : "저희가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이랑 좀 다른 분이고 그 당시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좀 놀라웠고 또 일본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새로운 소재와 색다른 연출에 목말라 있던 영화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영대(관객) : "다른 일본강점기의 영화들 보면 좀 비슷하잖아요. 되게 억압받고 있고 누군가 저항하고... 그런데 아주 속 시원하게 할 말 다하고 그런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박열의 관객 몰이로 여름 극장가는 막을 올렸지만, 올 상반기 한국 영화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상반기 한국 영화 점유율은 43%.

1, 2월을 제외하곤 30%대로 외화에 줄곧 밀렸습니다

연초부터 현빈, 조인성,정우성 등 초호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했지만 두 편 만이 5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후엔 300만 명을 넘기는 영화가 없었습니다.

대통령 탄핵과 대선 등 외적인 요인도 작용했다지만 무엇보다 작품성을 지닌 화제작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현민(영화평론가) : "영화는 기획 개발 단계부터 개봉까지 거의 평균 2년 가까이가 소요되는데 어떻게 보면 끝물인 작품들이 올해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을 해요./전혀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영화적인 성취가 있다든가 미학적인 도전이 있는 작품들도 있지 않았거든요."

몇 년 째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시피 한 범죄 액션 스릴러의 변주가 이어졌습니다.

장르 쏠림 속에 관객들은 조직폭력배나 검사와 형사, 대기업이나 언론의 권력자 등이 나오는 비슷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계속 봐야 했습니다.

<인터뷰> 양민규(영화 관객) : "액션이거나 아니면 누아르 물... 내부자들 엄청나게 흥행했잖아요. 그거 흥행하고 나니까 그 뒤에 계속 비슷한 거 계속 찍어내고...몇몇 개 빼고는 거의 똑같다고... 거의 판박이죠."

이렇게 소재 빈곤에 허덕이던 영화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근대사의 비극인 일제 강점기가 새로운 소재로 떠오르고 있는겁니다.

일본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한동안 충무로에서 금기시됐습니다.

<인터뷰> 하재근(문화 평론가) : "(근대는) 전통과 현대요소가 뒤섞여 있는 매우 매력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보통 서양에서는 영화에서 많이 다룹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근대가 식민지 시절이라는 암울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좀 관객들이 꺼렸고 영화계에서 다루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2015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암살'이 그 흐름을 바꿨습니다.

친일파 암살 작전에 투입된 독립군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는 활극의 호흡으로 담아내 천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인터뷰> 최동훈('암살' 감독) : "일제강점기 시대는 좀 암울한 시대? 그런 선입견들이 있었죠. 그래서 쉽게 영화로 접근할 수 없는 시대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 그런 편견이 있을수록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던 그런 독립운동의 조그마한 실체라도 찍어서 보여주면…."

이후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과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그린 '밀정'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베테랑'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류승완 감독도 일제 강점기를 새 작품의 시대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군함도라 불린 하시마 섬에 강제 징용된 뒤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사투를 담았습니다.

<인터뷰> 류승완('군함도' 감독)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어떤 작가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펼칠 수 있는 시간이고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배경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고, 과연 이들(일본)이 지금 숨기고 있는 진실을 이대로 둬도 되느냐는 것에 대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만큼 배우들의 책임감과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인터뷰> 송중기(주연 배우) : "저희는 최대한 진정성 있게 (실제 있었던) 고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 그걸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한류 스타 김수현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화제를 낳았던 영화입니다.

순 제작비만 110억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작품성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주연 배우가 악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시사회에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헌식(영화평론가) : "많은 제작비를 들인다 해서 반드시 이익을 많이 얻느냐. 이건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 깨지고 있거든요."

지난해 한국 영화의 한편 당 평균 총 제작비는 24억 원.

지난 10년간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0억 원 이상 들어간 영화의 편수는 14편으로, 전년도 6편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큰 수익이 나는, 소위 천만을 노린 블록버스터의 제작을 계속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고 예산 고수익의 셈법에 빠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중소규모 영화는 스크린에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현민(영화 평론가) : "언젠가부터는 한국 영화에서 로맨스를 만나기 어려워진 것도 있고. 예전에는 코미디물도 많았잖아요. 요즘에는 코미디 거의 볼 수가 없죠. 2000년대 초반 중반만 해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거든요. 박찬욱, 봉준호 이런 감독들이 쏟아져 나왔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 세대를 이을 만한 정말 작품성도 좋고 대중적으로도 이바지하는 그런 감독의 출현을 만나고 있지 않거든요."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굿바이 싱글'.

순제작비 30억. 충무로의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여성 주인공의 코미디 영화로 천만보다 소중한 2백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올 초 개봉한 이 영화도 적은 제작비를 들였지만 상반기 한국 영화 흥행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엇비슷한 대작 영화들에 지친 팬들이 이제는 작품성을 갖춘 작은 영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과 5억 원을 가지고도 성공적인 상업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독은, 한국 영화가 이야기에 맞게 장르와 제작비를 적절하게 조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준익(영화 감독) : "일제 암흑기의 한 젊은이의 초상을 따라가는데 그렇게 큰돈을 쓴다고 그 가치가 그 돈만큼 빛을 발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절대. 이야기의 크기만큼 예산이 적용돼야 하는데 윤동주의 이야기는 큰 예산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매년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고는 있지만 한국 영화의 수익성은 최근 떨어지고 있습니다.

흥행 공식을 따른 도식화된 영화에 대한 팬들의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작품성을 높이고 장르 다양화를 통한 '외화 내빈'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영화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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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09 23:02:31
    • 수정2017-07-10 08:3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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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김현민(영화 평론가) : "너무나 쏠림 현상이 있고 안일한 기획들이 많고 천편일률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에 대해(팬들이) 조금씩 외면해가는 것 같아요."

<인터뷰> 이미선(영화 관람객) : "일본인인데도 일본 법정에서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는 점에 참 감명을 받았고요./영화를 보고/ 여기 무덤에 와서 보니 죽어서까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참 안타까움을 느꼈습니다."

<녹취> "눈에 띄는 대로 조선인들을 죽이고 있잖아!"

1923년 관동 대지진 이후 6천여 명의 조선인이 무고하게 살해됩니다.

일본은 이 사건을 덮기 위해 항일 운동을 하던 박열이라는 인물을 희생양으로 지목합니다.

일본의 계략을 눈치챈 '박열'은 일본 황태자 폭탄 암살 계획을 스스로 자백하고,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도쿄 법정에 서기로 계획합니다.

<녹취> "이 재판이 조선에서 화제가 되게 해줄 수 있겠어?"

<인터뷰> 이준익(영화 '박열' 감독) : "일제 강점기 같은 경우는 이 땅에서만 벌어진 게 아니라 이것은 세계사적인 흐름 안에서 발생했다는 거예요. 그래서 일본의 제국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그 식민지 시대를 보냈던 우리의 역사적 관점은 어느 지점을 바라봐야 하는가에 대한.."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아나키스트이자 항일 운동가를 조명했습니다.

극 중 등장인물을 모두 실존인물로 구성해, 철저한 고증 끝에 만들었습니다,

<인터뷰> 이준익(감독) : "일본 관객들이 어? 정말 이랬어? 지금 일본 교과서에선 많이 배제된 사건이기 때문에 더욱 고증에 충실해야 한다. 만약에 고증이 부실하면 이야기의 본질 자체를 부정할까 봐 의도적으로 좀 고증에 충실하려고..."

배우 이제훈이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고 일본어를 완벽히 구사하는 신예 최희서가, 박열의 연인이자 동지였던 일본 여성 후미코를 맡아 열연했습니다.

<녹취> "가네코 후미코. 나도 아나키스트야!"

<인터뷰> 최희서(주연 배우) : "20대 초반의 이 두 여자와 남자가 얼마나 국경을 넘고 성별을 넘어서 동지로서 서로를 믿었고 본인들이 갖고 있었던 의지를 그대로 따라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던 그 열정 그리고 패기 이런 것들이..."

화려한 볼거리나 톱스타 없이도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흥행수익 1위를 질주하며 2주차에 손익분기점을 넘어섰습니다.

<인터뷰> 김지연(관객) : "저희가 알고 있던 독립운동가들이랑 좀 다른 분이고 그 당시에도 저런 사람이 있었다는 게 좀 놀라웠고 또 일본인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는 게 신기했습니다."

새로운 소재와 색다른 연출에 목말라 있던 영화팬들의 갈증을 해소해주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인터뷰> 조영대(관객) : "다른 일본강점기의 영화들 보면 좀 비슷하잖아요. 되게 억압받고 있고 누군가 저항하고... 그런데 아주 속 시원하게 할 말 다하고 그런 것들이 좋았던 것 같아요."

박열의 관객 몰이로 여름 극장가는 막을 올렸지만, 올 상반기 한국 영화는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습니다.

상반기 한국 영화 점유율은 43%.

1, 2월을 제외하곤 30%대로 외화에 줄곧 밀렸습니다

연초부터 현빈, 조인성,정우성 등 초호화 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들이 잇따라 개봉했지만 두 편 만이 500만 명을 넘었습니다.

이후엔 300만 명을 넘기는 영화가 없었습니다.

대통령 탄핵과 대선 등 외적인 요인도 작용했다지만 무엇보다 작품성을 지닌 화제작이 없었습니다.

<인터뷰> 김현민(영화평론가) : "영화는 기획 개발 단계부터 개봉까지 거의 평균 2년 가까이가 소요되는데 어떻게 보면 끝물인 작품들이 올해 쏟아져 나왔다고 생각을 해요./전혀 새로움을 느끼지 못하고 영화적인 성취가 있다든가 미학적인 도전이 있는 작품들도 있지 않았거든요."

몇 년 째 스크린을 장악하고 있다시피 한 범죄 액션 스릴러의 변주가 이어졌습니다.

장르 쏠림 속에 관객들은 조직폭력배나 검사와 형사, 대기업이나 언론의 권력자 등이 나오는 비슷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계속 봐야 했습니다.

<인터뷰> 양민규(영화 관객) : "액션이거나 아니면 누아르 물... 내부자들 엄청나게 흥행했잖아요. 그거 흥행하고 나니까 그 뒤에 계속 비슷한 거 계속 찍어내고...몇몇 개 빼고는 거의 똑같다고... 거의 판박이죠."

이렇게 소재 빈곤에 허덕이던 영화계에 변화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우리 근대사의 비극인 일제 강점기가 새로운 소재로 떠오르고 있는겁니다.

일본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는 흥행과는 거리가 멀어 한동안 충무로에서 금기시됐습니다.

<인터뷰> 하재근(문화 평론가) : "(근대는) 전통과 현대요소가 뒤섞여 있는 매우 매력적인 시기이기 때문에 보통 서양에서는 영화에서 많이 다룹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근대가 식민지 시절이라는 암울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그동안 좀 관객들이 꺼렸고 영화계에서 다루지 못했던 거죠."

그런데 2015년 여름에 개봉한 영화 '암살'이 그 흐름을 바꿨습니다.

친일파 암살 작전에 투입된 독립군의 활약을 박진감 넘치는 활극의 호흡으로 담아내 천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인터뷰> 최동훈('암살' 감독) : "일제강점기 시대는 좀 암울한 시대? 그런 선입견들이 있었죠. 그래서 쉽게 영화로 접근할 수 없는 시대처럼 느껴졌었는데 이제 그런 편견이 있을수록 우리가 막연히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확인하지 못했던 그런 독립운동의 조그마한 실체라도 찍어서 보여주면…."

이후 위안부 문제를 다룬 '귀향'과 독립운동단체 의열단을 그린 '밀정' 등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베테랑'으로 천만 감독 대열에 오른 류승완 감독도 일제 강점기를 새 작품의 시대 배경으로 선택했습니다.

군함도라 불린 하시마 섬에 강제 징용된 뒤 목숨을 걸고 탈출을 시도하는 조선인들의 사투를 담았습니다.

<인터뷰> 류승완('군함도' 감독)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서 어떤 작가의 상상력을 풍부하게 펼칠 수 있는 시간이고 공간을 가지고 있는 배경이라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었고, 과연 이들(일본)이 지금 숨기고 있는 진실을 이대로 둬도 되느냐는 것에 대한 어떤 질문을 던질 수 있다는 것이..."

비극적인 역사를 다룬만큼 배우들의 책임감과 부담감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인터뷰> 송중기(주연 배우) : "저희는 최대한 진정성 있게 (실제 있었던) 고통을 담아내려고 노력했는데 그걸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고…."

한류 스타 김수현의 스크린 복귀작으로 화제를 낳았던 영화입니다.

순 제작비만 110억 원을 넘게 쏟아부었지만 작품성과 완성도가 떨어진다는 평가 속에 흥행에 실패했습니다.

주연 배우가 악평에 대한 부담감 때문에 시사회에서 눈물을 흘린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습니다.

<인터뷰> 김헌식(영화평론가) : "많은 제작비를 들인다 해서 반드시 이익을 많이 얻느냐. 이건 이미 몇 년 전부터 계속 깨지고 있거든요."

지난해 한국 영화의 한편 당 평균 총 제작비는 24억 원.

지난 10년간 크게 오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100억 원 이상 들어간 영화의 편수는 14편으로, 전년도 6편에 비해 크게 늘었습니다.

영화의 제작과 배급을 좌지우지하는 주요 투자배급사들이 큰 수익이 나는, 소위 천만을 노린 블록버스터의 제작을 계속 늘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영화가 이렇게 고 예산 고수익의 셈법에 빠지면서, 다양한 장르의 중소규모 영화는 스크린에서 점점 보기가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인터뷰> 김현민(영화 평론가) : "언젠가부터는 한국 영화에서 로맨스를 만나기 어려워진 것도 있고. 예전에는 코미디물도 많았잖아요. 요즘에는 코미디 거의 볼 수가 없죠. 2000년대 초반 중반만 해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였거든요. 박찬욱, 봉준호 이런 감독들이 쏟아져 나왔었고. 하지만 지금은 그 세대를 이을 만한 정말 작품성도 좋고 대중적으로도 이바지하는 그런 감독의 출현을 만나고 있지 않거든요."

지난해 말 개봉한 영화 '굿바이 싱글'.

순제작비 30억. 충무로의 흥행 공식에서 벗어난 여성 주인공의 코미디 영화로 천만보다 소중한 2백만 관객을 모았습니다.

올 초 개봉한 이 영화도 적은 제작비를 들였지만 상반기 한국 영화 흥행 순위 6위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엇비슷한 대작 영화들에 지친 팬들이 이제는 작품성을 갖춘 작은 영화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불과 5억 원을 가지고도 성공적인 상업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감독은, 한국 영화가 이야기에 맞게 장르와 제작비를 적절하게 조율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인터뷰> 이준익(영화 감독) : "일제 암흑기의 한 젊은이의 초상을 따라가는데 그렇게 큰돈을 쓴다고 그 가치가 그 돈만큼 빛을 발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절대. 이야기의 크기만큼 예산이 적용돼야 하는데 윤동주의 이야기는 큰 예산을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매년 천만 관객 영화가 나오고는 있지만 한국 영화의 수익성은 최근 떨어지고 있습니다.

흥행 공식을 따른 도식화된 영화에 대한 팬들의 피로도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습니다.

그런만큼 작품성을 높이고 장르 다양화를 통한 '외화 내빈'을 극복하는 것이 한국 영화의 과제가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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