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고에 생이별까지”…사할린 동포의 ‘눈물’
입력 2017.08.15 (07:37)
수정 2017.08.15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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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시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들은 4만 3000여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일부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비자문제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준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징용자의 후손들로 지난 2009년에 영구 귀국했습니다.
<인터뷰> 오철암(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궁금했어요. 궁금하지 않겠어요. 가고싶고 그랬죠. 한국에 한 번도 안와보니까 어떤건가 하고 그것도 몰랐어요."
경남 김해로 돌아온 후손은 모두 90여 명.
그리웠던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왔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생계비로 받는 정부 지원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그나마 일을 해 돈을 벌면 지원금이 깎여 생활고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임학(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지금 물건 다 비싸게 됐잖아요. 올라가잖아요. 생활비는 그대로고. 그래서 모자라요."
생이별을 겪는 후손도 상당숩니다.
4세 후손부터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석달이상 머물 수 없는 방문객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박봐짐(고려인 4세) : "매번 90일마다 출입국 해야 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부담됩니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계속 같이 살고 싶습니다."
조국을 잃고, 먼 타지로 끌려가 통한의 세월을 보낸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들.
미비한 법과 제도에 그 후손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준원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들은 4만 3000여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일부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비자문제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준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징용자의 후손들로 지난 2009년에 영구 귀국했습니다.
<인터뷰> 오철암(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궁금했어요. 궁금하지 않겠어요. 가고싶고 그랬죠. 한국에 한 번도 안와보니까 어떤건가 하고 그것도 몰랐어요."
경남 김해로 돌아온 후손은 모두 90여 명.
그리웠던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왔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생계비로 받는 정부 지원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그나마 일을 해 돈을 벌면 지원금이 깎여 생활고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임학(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지금 물건 다 비싸게 됐잖아요. 올라가잖아요. 생활비는 그대로고. 그래서 모자라요."
생이별을 겪는 후손도 상당숩니다.
4세 후손부터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석달이상 머물 수 없는 방문객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박봐짐(고려인 4세) : "매번 90일마다 출입국 해야 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부담됩니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계속 같이 살고 싶습니다."
조국을 잃고, 먼 타지로 끌려가 통한의 세월을 보낸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들.
미비한 법과 제도에 그 후손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준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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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고에 생이별까지”…사할린 동포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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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17-08-15 07:39:09
- 수정2017-08-15 08:05:12
<앵커 멘트>
일제 강점기 시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들은 4만 3000여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일부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비자문제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준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징용자의 후손들로 지난 2009년에 영구 귀국했습니다.
<인터뷰> 오철암(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궁금했어요. 궁금하지 않겠어요. 가고싶고 그랬죠. 한국에 한 번도 안와보니까 어떤건가 하고 그것도 몰랐어요."
경남 김해로 돌아온 후손은 모두 90여 명.
그리웠던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왔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생계비로 받는 정부 지원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그나마 일을 해 돈을 벌면 지원금이 깎여 생활고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임학(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지금 물건 다 비싸게 됐잖아요. 올라가잖아요. 생활비는 그대로고. 그래서 모자라요."
생이별을 겪는 후손도 상당숩니다.
4세 후손부터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석달이상 머물 수 없는 방문객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박봐짐(고려인 4세) : "매번 90일마다 출입국 해야 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부담됩니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계속 같이 살고 싶습니다."
조국을 잃고, 먼 타지로 끌려가 통한의 세월을 보낸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들.
미비한 법과 제도에 그 후손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준원입니다.
일제 강점기 시대, 강제징용으로 러시아 사할린으로 끌려간 한인들은 4만 3000여 명으로 추정되는데요,
일부 후손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살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비자문제로 힘든 삶을 살고 있습니다.
김준원 기자의 보도입니다.
<리포트>
머리가 희끗한 노인들이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습니다.
일제 강점기 러시아 사할린 탄광으로 끌려간 강제징용자의 후손들로 지난 2009년에 영구 귀국했습니다.
<인터뷰> 오철암(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궁금했어요. 궁금하지 않겠어요. 가고싶고 그랬죠. 한국에 한 번도 안와보니까 어떤건가 하고 그것도 몰랐어요."
경남 김해로 돌아온 후손은 모두 90여 명.
그리웠던 부모님의 나라로 돌아왔지만,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했습니다.
생계비로 받는 정부 지원금이 한 달에 100만 원.
그나마 일을 해 돈을 벌면 지원금이 깎여 생활고는 여전합니다.
<인터뷰> 김임학(형주 귀국 사할린 동포) : "지금 물건 다 비싸게 됐잖아요. 올라가잖아요. 생활비는 그대로고. 그래서 모자라요."
생이별을 겪는 후손도 상당숩니다.
4세 후손부터는 재외동포로 인정받지 못해 석달이상 머물 수 없는 방문객 신분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박봐짐(고려인 4세) : "매번 90일마다 출입국 해야 되다 보니 비용이 너무 부담됩니다. 어머니와 남동생과 계속 같이 살고 싶습니다."
조국을 잃고, 먼 타지로 끌려가 통한의 세월을 보낸 사할린 강제 이주 동포들.
미비한 법과 제도에 그 후손들의 눈물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KBS 뉴스 김준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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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원 기자 mond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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