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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미래로] 한국 대표 챔피언을 향한 도전…탈북 복서 최현미
입력 2017.09.30 (08:20) 수정 2017.09.30 (08:54)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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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멘트>

열세 번을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프로 권투선수가 있습니다.

WBA, WBF 통합 챔피언, 최현미 선순데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투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타이틀 방어전 준비에 한창인 최현미 선수를 정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하천 주변에 조성된 공원.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이곳을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 권투선수 최현미 씨인데요.

17년 전 권투를 시작한 뒤부터 계속해온 운동, 쉬면 오히려 병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4Km에서 6Km정도 가볍게 뛰고요. 시합이 잡히면 이제 산을 뛰니까 산을. 많이 달라져요. 지금은 그냥 워밍업 정도고..."

2004년 한국에 온 그녀는 2008년 WBA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이후 7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뒤 체급을 올려 슈퍼 페더급에 도전해 역시 챔피언이 됐습니다.

북한에서처럼 스포츠 영웅이 되면 한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권투.

트로피와 벨트들은 승리의 상징이자,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9년 동안 지키는 동안에, 저는 이 벨트를 지키려고 많이 울기도 하고 땀도 흘리고 그랬던 거라서 저한테는 가보 같은 거예요. 평생 얘를 보면서 아 그렇게 힘들었을 때도 있었고 그렇게 행복했었던 때도 있다..."

13전 12승 1무... 프로 데뷔 후 무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최현미 선수.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체육관을 찾은 현미 씨. 훈련 할 때는 눈빛이 사뭇 매서워집니다.

<인터뷰> 장기준(권투 체육관 관장) : "근성은 현미 선수에 대한 제일 장점이죠. 시합에서 보면 이 근성이 없으면 절대 10라운드를 못 뛰거든요."

사실 현미 씨는 북한에서 권투 영재를 키우는 김철주 사범대학 체육관 출신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거의 성인 월급을 받으면서 운동했어요. 11살 때부터.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씩 스파링으로 그 월급이 왔다갔다 금액이 달라지고 쌀Kg수가 달라... 배급이 달라진단 말이에요. 눈을 뜨는 순간부터 경쟁이었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경쟁이었고..."

그때,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운동량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한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 있다는데요.

권투 경기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스폰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방어전 한 번 치를 때마다 다음 방어전 준비는 어떻게 하지? 스폰서가 없어서 또 다음 방어전 준비는 어떻게 하지?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부모님이 그 스폰서 때문에 정말 모르는 분들한테 고개 숙이면서 부탁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

매번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치러야 하는 경기.

그러나 링 위에서는 모든 것을 잊고 경기에 몰입해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제 가슴에 인공기가 달렸다가 태극기로 바뀌는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분명 국가대표가 존경받는 위치라는 건 알겠지만 저랑 의미는 또 다르게 다가온단 말이에요. 정말 이게 좋고 정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그런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최현미 선수는 어려운 권투 환경 속에서도 지난 4월 막강한 도전자를 누르고 챔피언 벨트를 지켜냈는데요.

조만간 다섯 번 째 방어전도 치를 예정입니다.

<녹취> IBF(국제권투연맹) : "챔피언을 했던 애니까,기본 체력은 있다고 봐야지. 전적도..."

11월 초로 예정된 현미 씨의 5차 타이틀 방어전.

인천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어렵게 성사됐는데요.

협회 관계자는 자신의 일처럼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합니다.

<인터뷰> 김정표((사)한국권투협회 대표) : "7,80년대에는 권투가 인기가 좋아가지고 스폰을 서로 하기 위해서 이제 했지만 지금은 인기가 좀 없으니까 그래서 스폰서 구하는 게 좀 힘들죠. 시합 할 때마다... 선수들한테 참 미안하죠."

시합을 위한 합숙 훈련 전, 마지막 자유시간을 보내는 현미 씨를 응원하러 온 친구가 있습니다.

이종격투기 선수 천선유 씨인데요.

같은 격투기 종목 선수로서 통하는 점이 많다는 두 사람.

링 밖에서는 천생 여자입니다.

외모에 관심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권투 선수가 아닌, 친구 최현미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데요.

<인터뷰> 천선유(이종격투기 선수) : "탈북하신 분들 보면 많이 힘들어하고 막 조금은 내성적이고 좀 사람과의 관계를 좀 멀리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내색 하나도 없는 게 너무 멋지고 대견스럽고 더 아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그런 동생입니다."

<녹취> "나 추석 지나면 없어. 추석 지나면 또 한 달 있다가 나오겠지?"

링에 선다는 긴장과 설렘! 현미 씨의 마음을 잘 아는 선유 씨는 긴 말 대신 든든한 식사 한 끼로 마음을 전합니다.

<녹취> "야야 새우가 맛있어. 먹어봐..."

다가오는 경기가 다섯 번째 방어전이 아니라 다섯 번째 도전이라는 권투선수 최현미.

자신이 좋아하는 권투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무패 행진보다 오뚝이 같은 도전 정신이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 [통일로 미래로] 한국 대표 챔피언을 향한 도전…탈북 복서 최현미
    • 입력 2017-09-30 08:43:09
    • 수정2017-09-30 08:54:41
    남북의 창
<앵커 멘트>

열세 번을 싸워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은 무적의 프로 권투선수가 있습니다.

WBA, WBF 통합 챔피언, 최현미 선순데요.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권투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타이틀 방어전 준비에 한창인 최현미 선수를 정은지 리포터와 만나보시죠.

<리포트>

서울의 한 하천 주변에 조성된 공원.

매일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이곳을 달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 권투선수 최현미 씨인데요.

17년 전 권투를 시작한 뒤부터 계속해온 운동, 쉬면 오히려 병이 날 정도라고 합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4Km에서 6Km정도 가볍게 뛰고요. 시합이 잡히면 이제 산을 뛰니까 산을. 많이 달라져요. 지금은 그냥 워밍업 정도고..."

2004년 한국에 온 그녀는 2008년 WBA 페더급 챔피언에 등극했습니다.

이후 7차 방어전까지 성공한 뒤 체급을 올려 슈퍼 페더급에 도전해 역시 챔피언이 됐습니다.

북한에서처럼 스포츠 영웅이 되면 한국에서도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권투.

트로피와 벨트들은 승리의 상징이자, 성공적인 정착을 위한 노력의 결실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9년 동안 지키는 동안에, 저는 이 벨트를 지키려고 많이 울기도 하고 땀도 흘리고 그랬던 거라서 저한테는 가보 같은 거예요. 평생 얘를 보면서 아 그렇게 힘들었을 때도 있었고 그렇게 행복했었던 때도 있다..."

13전 12승 1무... 프로 데뷔 후 무패 기록을 이어가고 있는 최현미 선수.

북한에서 태어났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 선수가 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현장을 찾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체육관을 찾은 현미 씨. 훈련 할 때는 눈빛이 사뭇 매서워집니다.

<인터뷰> 장기준(권투 체육관 관장) : "근성은 현미 선수에 대한 제일 장점이죠. 시합에서 보면 이 근성이 없으면 절대 10라운드를 못 뛰거든요."

사실 현미 씨는 북한에서 권투 영재를 키우는 김철주 사범대학 체육관 출신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거의 성인 월급을 받으면서 운동했어요. 11살 때부터. 지방에서 온 친구들은 한 달에 한 번 씩 스파링으로 그 월급이 왔다갔다 금액이 달라지고 쌀Kg수가 달라... 배급이 달라진단 말이에요. 눈을 뜨는 순간부터 경쟁이었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경쟁이었고..."

그때,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운동량이라는 깨달음을 얻었고 한시도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노력해도 극복하기 어려운 벽이 있다는데요.

권투 경기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스폰서를 구하는 일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방어전 한 번 치를 때마다 다음 방어전 준비는 어떻게 하지? 스폰서가 없어서 또 다음 방어전 준비는 어떻게 하지? 운동이 힘들어서 그만두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해 봤지만 부모님이 그 스폰서 때문에 정말 모르는 분들한테 고개 숙이면서 부탁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을 때..."

매번 그 같은 어려움 속에서 힘겹게 치러야 하는 경기.

그러나 링 위에서는 모든 것을 잊고 경기에 몰입해 챔피언 자리를 지켜냈습니다.

그녀의 가장 큰 꿈은 2020년 도쿄 올림픽에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금메달을 따는 것입니다.

<인터뷰> 최현미(프로 권투 선수/탈북민) : "제 가슴에 인공기가 달렸다가 태극기로 바뀌는 순간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분명 국가대표가 존경받는 위치라는 건 알겠지만 저랑 의미는 또 다르게 다가온단 말이에요. 정말 이게 좋고 정말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그런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으나..."

최현미 선수는 어려운 권투 환경 속에서도 지난 4월 막강한 도전자를 누르고 챔피언 벨트를 지켜냈는데요.

조만간 다섯 번 째 방어전도 치를 예정입니다.

<녹취> IBF(국제권투연맹) : "챔피언을 했던 애니까,기본 체력은 있다고 봐야지. 전적도..."

11월 초로 예정된 현미 씨의 5차 타이틀 방어전.

인천의 한 교회의 도움으로 어렵게 성사됐는데요.

협회 관계자는 자신의 일처럼 반가우면서 한편으로는 미안합니다.

<인터뷰> 김정표((사)한국권투협회 대표) : "7,80년대에는 권투가 인기가 좋아가지고 스폰을 서로 하기 위해서 이제 했지만 지금은 인기가 좀 없으니까 그래서 스폰서 구하는 게 좀 힘들죠. 시합 할 때마다... 선수들한테 참 미안하죠."

시합을 위한 합숙 훈련 전, 마지막 자유시간을 보내는 현미 씨를 응원하러 온 친구가 있습니다.

이종격투기 선수 천선유 씨인데요.

같은 격투기 종목 선수로서 통하는 점이 많다는 두 사람.

링 밖에서는 천생 여자입니다.

외모에 관심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은 20대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권투 선수가 아닌, 친구 최현미는 어떤 모습인지 궁금한데요.

<인터뷰> 천선유(이종격투기 선수) : "탈북하신 분들 보면 많이 힘들어하고 막 조금은 내성적이고 좀 사람과의 관계를 좀 멀리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런 내색 하나도 없는 게 너무 멋지고 대견스럽고 더 아껴주고 싶고 챙겨주고 싶은 그런 동생입니다."

<녹취> "나 추석 지나면 없어. 추석 지나면 또 한 달 있다가 나오겠지?"

링에 선다는 긴장과 설렘! 현미 씨의 마음을 잘 아는 선유 씨는 긴 말 대신 든든한 식사 한 끼로 마음을 전합니다.

<녹취> "야야 새우가 맛있어. 먹어봐..."

다가오는 경기가 다섯 번째 방어전이 아니라 다섯 번째 도전이라는 권투선수 최현미.

자신이 좋아하는 권투를 통해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국민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리고 있습니다.

그녀의 무패 행진보다 오뚝이 같은 도전 정신이 더 빛나고 아름다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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