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36억 원 뇌물은 인정하는데 집행유예?”…판결 후폭풍

입력 2018.02.06 (15:35) 수정 2018.02.06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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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36억 원 뇌물은 인정하는데 집행유예?”…판사 파면 요구 지나쳐

“이재용, 36억 원 뇌물은 인정하는데 집행유예?”…판사 파면 요구 지나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개별 판결 결과를 이유로 해당 재판장을 파면하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 견해가 많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가 양형 기준에 맞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5일 오후 나온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판결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청원 글의 요지는 대부분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은 "정경유착에 눈감고 사법정의를 부정한 만큼 정 부장판사를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청원자는 "재벌을 비호하기 위해 다른 피고인에게 죄를 전가해 죄형법정주의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법원 "재판장 파면 청원은 삼권분립에 위배"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다 해도 현직 법관의 파면을 대법원이 아닌 청와대에 청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하며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또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고 헌법은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관징계법은 법관에 대한 징계 처분을 정직과 감봉, 견책 3가지만 가능하도록 한다. 법관이 권력기관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법관의 인사와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개입할 수도 개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라며 "판결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수용하더라도 법관을 청와대가 파면하라는 취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계 “36억 뇌물 사건에 집행유예는 이례적”

그럼에도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이 없다거나 재산국외도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적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36억 원이 넘는 부분에 대해 뇌물 공여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재판부가 비록 뇌물의 성격을 권력자가 겁박한 요구형 뇌물 사건으로 봤더라도 수십억 원의 뇌물을 준 사람을 집행유예로 석방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나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을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뇌물공여액이 5천만 원 이상이면 집행유예 선고를 부정하는 '주요참작사유'로 삼아야 한다. 또 대규모 이익과 관련한 뇌물공여인 경우에도 집행유예를 부정하는 '일반참작사유'로 삼도록 한다.

여기에다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과 달리 무죄로 본 동계영재스포츠 센터 16억 원 뇌물 공여 부분과 37억 원의 재산 국외 도피 등에 대해서도 2심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판결 직후 '이재용 부회장 등 항소심 선고 관련 특검 입장' 자료를 내고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논리”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경제적 이익을 건넸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특검팀은 제출된 증거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재판부가) 이재용의 승계 작업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면서, 합병 등 개별 현안이 성공에 이를 경우 삼성전자 등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등 모순되는 판단을 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재산 국외 도피 혐의를 전부 무죄로 본 것에 대해선 "재산을 국외로 도피할 의사가 아니라 뇌물을 줄 뜻에서 해외로 보냈다는 것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 "코어스포츠와의 허위 용역계약 체결이라는 불법적이고 은밀한 방법을 통해 삼성전자 자금을 독일로 빼돌린 것이 명백함에도 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자의적인 해석을 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이른바 '0차 독대'에 대해서도 "여러 물증이 존재함에도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이 작성한 일지의 신빙성 문제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다. 특검팀은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 그대로 수첩을 기재했다고 증언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항소심 판결의 명백한 오류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해 실체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번 판결을 두고 "국정농단에 완벽한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노종화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항소심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을 부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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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용, 36억 원 뇌물은 인정하는데 집행유예?”…판결 후폭풍
    • 입력 2018-02-06 15:35:51
    • 수정2018-02-06 15:46:48
    취재K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선고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다양한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개별 판결 결과를 이유로 해당 재판장을 파면하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삼권분립 원칙에 맞지 않는 견해가 많다. 그럼에도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가 양형 기준에 맞느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은 상태다.

5일 오후 나온 이 부회장에 대한 2심 판결 이후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재판장인 정형식 부장판사를 파면하라’는 청원 글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 청원 글의 요지는 대부분 이 부회장에 대한 집행유예 판결은 "정경유착에 눈감고 사법정의를 부정한 만큼 정 부장판사를 파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청원자는 "재벌을 비호하기 위해 다른 피고인에게 죄를 전가해 죄형법정주의와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 아닌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법원 "재판장 파면 청원은 삼권분립에 위배"

이에 대해 법조계에서는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이 있다 해도 현직 법관의 파면을 대법원이 아닌 청와대에 청원하는 것은 지나치다고 지적한다.

헌법 103조는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고 규정하며 재판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 또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지 않는 한 파면되지 않는다고 헌법은 규정한다. 이에 따라 법관징계법은 법관에 대한 징계 처분을 정직과 감봉, 견책 3가지만 가능하도록 한다. 법관이 권력기관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독립적으로 재판하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헌법이 보장하는 삼권분립에 따라 현직법관의 인사와 관련된 문제는 청와대가 개입할 수도 개입해서도 안 되는 영역"이라며 "판결에 대한 건전한 비판은 수용하더라도 법관을 청와대가 파면하라는 취지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법조계 “36억 뇌물 사건에 집행유예는 이례적”

그럼에도 법조계 내부에서는 이번 판결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법조계 인사들은 이 부회장에게 부정한 청탁이 없다거나 재산국외도피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법리적 판단은 존중돼야 하지만, 36억 원이 넘는 부분에 대해 뇌물 공여를 인정하면서도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재판부가 비록 뇌물의 성격을 권력자가 겁박한 요구형 뇌물 사건으로 봤더라도 수십억 원의 뇌물을 준 사람을 집행유예로 석방한 것은 국민의 법 감정이나 다른 사건과의 형평성을 볼 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실제로 법원 양형기준에 따르면 뇌물공여액이 5천만 원 이상이면 집행유예 선고를 부정하는 '주요참작사유'로 삼아야 한다. 또 대규모 이익과 관련한 뇌물공여인 경우에도 집행유예를 부정하는 '일반참작사유'로 삼도록 한다.

여기에다 2심 재판부가 1심 판결과 달리 무죄로 본 동계영재스포츠 센터 16억 원 뇌물 공여 부분과 37억 원의 재산 국외 도피 등에 대해서도 2심 판단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판결 직후 '이재용 부회장 등 항소심 선고 관련 특검 입장' 자료를 내고 항소심 선고 결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논리”

삼성이 '경영권 승계'를 위해 '부정한 청탁'과 함께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 씨 측에 경제적 이익을 건넸다는 공소사실에 대해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을 두고 특검팀은 제출된 증거를 제대로 판단하지 않고 결론 내렸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재판부가) 이재용의 승계 작업을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시하면서, 합병 등 개별 현안이 성공에 이를 경우 삼성전자 등의 지배력 확보에 직간접적으로 유리한 효과가 있었다고 판단하는 등 모순되는 판단을 했다"는 견해를 내놨다.


재산 국외 도피 혐의를 전부 무죄로 본 것에 대해선 "재산을 국외로 도피할 의사가 아니라 뇌물을 줄 뜻에서 해외로 보냈다는 것은 술은 마셨지만, 음주 운전은 아니라는 것과 같은 논리"라고 비판했다. 또 "코어스포츠와의 허위 용역계약 체결이라는 불법적이고 은밀한 방법을 통해 삼성전자 자금을 독일로 빼돌린 것이 명백함에도 도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자의적인 해석을 했다"고 지적했다.

항소심에서 인정되지 않은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이른바 '0차 독대'에 대해서도 "여러 물증이 존재함에도 안 전 수석의 보좌관이 작성한 일지의 신빙성 문제만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 것은 증거재판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주장했다.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수첩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 삼았다. 특검팀은 "안 전 수석이 박 전 대통령의 지시 내용 그대로 수첩을 기재했다고 증언했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특검팀은 "항소심 판결의 명백한 오류에 대해 대법원에 상고해 실체 진실에 부합하는 판결이 선고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번 판결을 두고 "국정농단에 완벽한 면죄부를 준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민변 노종화 변호사는 구체적으로 항소심이 이 부회장의 '승계작업'이라는 현안을 부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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