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폭력 생존자입니다”…어느 화가의 #미투

입력 2018.03.07 (18:44) 수정 2018.03.08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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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 기사] [뉴스9] “나는 피해자 아닌 생존자입니다”…화폭에 담은 ‘미투’ 선언 

성폭력을 당한 예술가가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최근 첫 개인전 <죽은 민영이의 장례식>을 연 서도이 씨가 바로 그다. 화가 서도이 씨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름을 서민영에서 서도이로 바꿨다. 길었던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성폭력 생존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전시는 성폭력을 겪었던 제 삶에 대한 장례식입니다. 힘들었던 일들을 오랫동안 마주하면서, 그 일들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치렀던 장례식이고요. '미투'가 "나도 당했다"인데 저는 이 전시를 통해서 "나도 당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았어", 왜 제가 피해자라는 정체성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서도이 작가서도이 작가

■ 그날 이후

"한 9년 간을 계속 잠을 못자는 상태로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해가 지면 아예 밖에 못 나갔어요. 집에 있을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거나 인기척이 나면 3시간씩 문 앞에 서서 그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서 사는 거예요."

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

"뒤에서 끌려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뒤에 무엇이 있든 공포를 느끼면서 제가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있는 상태로… 그런 불안감이나 공포도 일상에 존재했었고."

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

"남들에게는 의자이지만, 저는 그 의자에 앉았을 때 느낌만으로도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 방바닥에 앉아 있거나 그런 장면들도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그 일을 재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 있었다는 것들. 죽은 민영이의 삶이 그림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해요."


■ 피해자라는 감옥

"돌고 돌고, 계속 걷는데도 불구하고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느꼈어요. 제 여태까지의 9년을. 이 사건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서도이 作 〈꽃상여는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2018서도이 作 〈꽃상여는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2018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을 외부에서 많이 주입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만약에 밝은 모습을 보이게 되면은 "어, 근데 너 그런 일 겪고도 괜찮아?" 저의 어떤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제가 계속 힘들기를 바라는 그런 느낌."

■ 또 다른 칼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말들을 굉장히 쉽게 한다고 저는 느꼈어요. ― 그러니까 왜 밤 늦게 돌아다니냐. 아무나 만나지 말라 그랬지. 더 큰일 없어서 다행이다…."

서도이 作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불타지 않았던 말들〉, 2018서도이 作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불타지 않았던 말들〉, 2018

"아, 그러면 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내가 정말 더 큰일을 당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들었을 때 그냥 먹지 못하는데 억지로 삼켜야 하는 말이었어요. 그거를 이제 저는, 상대방의 어떤 진실된 사과나 공감 없이 저 혼자서 태워야했었거든요. 그리고 타지 않았어요. 제 기억 속에 오랜 잔상으로, 거의 제 마음에 꼬매졌던 거죠, 그 말들이."

■ 대수롭지 않은 일

"언론에 비쳐지는 기사 헤드라인이나 이런 것들조차도 2차 가해에 해당이 돼요. 만약 내 사건이 기사화가 됐다면 '○○녀'라고 불리면서 "저 사람 저런 일을 당했대." "어, 완전 더럽다." "아 그러면 (성)경험이 있다는 거네." 이런 식의 말들을 많이 해요. 그리고 그걸 세상에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분들이 본단 말이예요. 고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고."

서도이 作 〈도망치는 구멍〉, 2018서도이 作 〈도망치는 구멍〉, 2018

"내가 이런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당할 불이익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회나 법이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는데, 피해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라는 게 폭력이 아니면 뭘까 싶은 거예요, 저는. 내가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당연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안돼 있다고 보는 거죠."

■ 가해자에게

"잘 지냈냐고 사실 저는 묻고 싶어요. 저는 정말 잘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동안 잊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동안에도. 저한테 사과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법적인 처벌을 받을 필요도 없었고. 2차 가해나 이런 것들은 저만 싸우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참 화가 날 때도 많고."

서도이 作 〈악〉, 2018서도이 作 〈악〉, 2018

"나는 이 사건에서 단지 계속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싶지 않고. 주체적으로 심판하고, 그리고 처벌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나한테 있었으면."

■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사건 당시) 어떤 일을 겪었고 언제 어떻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면 항상 도움받고 지켜줘야하고 그런 수동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이 많이 생각을 해왔었는데. 그저 도움이 대상이 되지를 않기를 바라고, 고발의 주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인지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에요. '생존자'라는 이름이 더 맞다고 생각하고."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얘기할 거예요. 계속 얘기하고 계속 말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뭔가 하나의 그냥 순간적인 이슈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얘기 됐으면 하고, 제가 이렇게 동참하는 것도 분명 어떤 분들께는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저도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굉장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저도 동참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아프셨을지 저는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그리고 바뀔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 모든 작품은 서도이 작가 인스타그램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instagram.com/anothertropical)

- 취재·제작: 김채린, 지선호
- 제보: metoo.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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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는 성폭력 생존자입니다”…어느 화가의 #미투
    • 입력 2018-03-07 18:44:33
    • 수정2018-03-08 11:07:55
    사회
[연관 기사] [뉴스9] “나는 피해자 아닌 생존자입니다”…화폭에 담은 ‘미투’ 선언 

성폭력을 당한 예술가가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미투' 운동에 동참했다. 최근 첫 개인전 <죽은 민영이의 장례식>을 연 서도이 씨가 바로 그다. 화가 서도이 씨는 이번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이름을 서민영에서 서도이로 바꿨다. 길었던 고통의 시간을 끝내고, 성폭력 피해자가 아닌 성폭력 생존자로 살아가고 싶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번 전시는 성폭력을 겪었던 제 삶에 대한 장례식입니다. 힘들었던 일들을 오랫동안 마주하면서, 그 일들을 떠나보내기 위해서 치렀던 장례식이고요. '미투'가 "나도 당했다"인데 저는 이 전시를 통해서 "나도 당했다, 그래서 이렇게 살았어", 왜 제가 피해자라는 정체성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것들을 표현하려고 했던 거 같아요."

서도이 작가
■ 그날 이후

"한 9년 간을 계속 잠을 못자는 상태로 매일같이 악몽을 꾸고 해가 지면 아예 밖에 못 나갔어요. 집에 있을 때,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거나 인기척이 나면 3시간씩 문 앞에 서서 그 소리에만 귀 기울이면서 사는 거예요."

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
"뒤에서 끌려갔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뒤에 무엇이 있든 공포를 느끼면서 제가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가 있는 상태로… 그런 불안감이나 공포도 일상에 존재했었고."

서도이 作 〈26개의 영정〉, 2018 중.
"남들에게는 의자이지만, 저는 그 의자에 앉았을 때 느낌만으로도 그때가 다시 떠오른다는 것. 방바닥에 앉아 있거나 그런 장면들도 있는데, 그때마다 저는 그 일을 재경험하는 것 같은 기분으로 계속 있었다는 것들. 죽은 민영이의 삶이 그림에 다 담겨 있다고 생각을 해요."


■ 피해자라는 감옥

"돌고 돌고, 계속 걷는데도 불구하고 빠져 나갈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이었다고 느꼈어요. 제 여태까지의 9년을. 이 사건을 빼놓고는 아무 것도 제 자신에 대해서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서도이 作 〈꽃상여는 아직도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2018
"무기력하고 우울한 모습을 외부에서 많이 주입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제가 만약에 밝은 모습을 보이게 되면은 "어, 근데 너 그런 일 겪고도 괜찮아?" 저의 어떤 피해 사실을 의심하고 제가 계속 힘들기를 바라는 그런 느낌."

■ 또 다른 칼

"사람들이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이유로 많은 말들을 굉장히 쉽게 한다고 저는 느꼈어요. ― 그러니까 왜 밤 늦게 돌아다니냐. 아무나 만나지 말라 그랬지. 더 큰일 없어서 다행이다…."

서도이 作 〈태워버리고 싶었지만 끝내 불타지 않았던 말들〉, 2018
"아, 그러면 저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 내가 정말 더 큰일을 당했어야 하는 건 아닌가? 들었을 때 그냥 먹지 못하는데 억지로 삼켜야 하는 말이었어요. 그거를 이제 저는, 상대방의 어떤 진실된 사과나 공감 없이 저 혼자서 태워야했었거든요. 그리고 타지 않았어요. 제 기억 속에 오랜 잔상으로, 거의 제 마음에 꼬매졌던 거죠, 그 말들이."

■ 대수롭지 않은 일

"언론에 비쳐지는 기사 헤드라인이나 이런 것들조차도 2차 가해에 해당이 돼요. 만약 내 사건이 기사화가 됐다면 '○○녀'라고 불리면서 "저 사람 저런 일을 당했대." "어, 완전 더럽다." "아 그러면 (성)경험이 있다는 거네." 이런 식의 말들을 많이 해요. 그리고 그걸 세상에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피해자분들이 본단 말이예요. 고백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게 사실이고."

서도이 作 〈도망치는 구멍〉, 2018
"내가 이런 피해 사실을 말했을 때 당할 불이익이나 이런 것들에 대해서 사회나 법이 제대로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걸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는데, 피해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라는 게 폭력이 아니면 뭘까 싶은 거예요, 저는. 내가 믿을 수 있고, 그래서 당연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이 전혀 안돼 있다고 보는 거죠."

■ 가해자에게

"잘 지냈냐고 사실 저는 묻고 싶어요. 저는 정말 잘 지내지 못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그동안 잊었을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영원히 잊지 못하는 동안에도. 저한테 사과할 필요도 없었고, 어떤 법적인 처벌을 받을 필요도 없었고. 2차 가해나 이런 것들은 저만 싸우고 있거든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참 화가 날 때도 많고."

서도이 作 〈악〉, 2018
"나는 이 사건에서 단지 계속 피해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살고 싶지 않고. 주체적으로 심판하고, 그리고 처벌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나한테 있었으면."

■ 피해자에서 생존자로

"미투 운동은 피해자가 (사건 당시) 어떤 일을 겪었고 언제 어떻게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성폭력 피해자라고 하면 항상 도움받고 지켜줘야하고 그런 수동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이 많이 생각을 해왔었는데. 그저 도움이 대상이 되지를 않기를 바라고, 고발의 주체라는 걸 많은 분들이 인지해 주셨으면 하는 그런 마음이에요. '생존자'라는 이름이 더 맞다고 생각하고."


"저는 멈추지 않고 계속 얘기할 거예요. 계속 얘기하고 계속 말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분들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하셨으면 좋겠어요. 이것이 뭔가 하나의 그냥 순간적인 이슈로 끝날 문제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얘기 됐으면 하고, 제가 이렇게 동참하는 것도 분명 어떤 분들께는 힘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을 해서. 저도 마찬가지로 성폭력 피해자이지만 굉장히 응원하고 지지하는 마음으로 저도 동참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아프셨을지 저는 공감하고 이해한다고. 그리고 바뀔 수 있다고 희망의 메시지를 드리고 싶어요."

* 모든 작품은 서도이 작가 인스타그램에서 감상할 수 있습니다. (http://instagram.com/anothertropical)

- 취재·제작: 김채린, 지선호
- 제보: metoo.kb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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