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투표하기엔 부족한 당신”…헌재 결정문서 ‘청소년 차별’을 읽다

입력 2018.04.17 (11:42) 수정 2018.04.1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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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만 19세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 공직선거법 제15조에 대해 꾸준히 헌법소원을 제기해 왔다.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왔다. 그 이유는 뭘까. 2013년 나온 헌재 결정문(2012헌마287)을 보자.

"보통선거의 원칙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선거권을 갖는 것을 요구하는데 그 전제로서 일정한 연령에 이르지 못한 국민에 대하여는 선거권을 제한하는 바, 선거권 행사는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인 판단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9세 미만으로서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은 … 정치적 의사표현이 민주시민으로서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의존성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표현이 왜곡될 우려도 있다. 물론 오늘날 미성년자라도 신체적으로는 성년자 못지않게 발달하였고, 각종 문화 및 정보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다양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지적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수준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19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물질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여 아직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경험이나 적응능력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아직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판단의 주된 논거는 청소년의 '미성숙함'이었다. 청소년은 선거권을 합리적으로 행사할 정도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할 권리를 주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 연령에 대한 헌법소원이 기각될 때마다(96헌마89, 2000헌마111, 2002헌마787 등) 번번이 전면에 등장했던 이 논리에 대해,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은 묵직한 물음표를 던졌다.

[연관 기사] 선거, 왜 ‘19금’인가요?

◆ "성숙과 미성숙, 누가 어떻게 판단하나?"

당장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은 헌법재판소가 선거권 부여의 기준이라고 칭한 "정치적 판단 능력"이다. 그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얘기다.

"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건지, 그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대졸한테만 선거권을 줄 건가. 말도 안되잖아요, 사실. 그건 차별이잖아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잘 아는' 사람들한테만 선거권을 줄 거면, 학력 좋은 사람들한테는 투표용지 2장 주고 아이큐 테스트를 하지." (김윤송·15살)

헌재 결정문에는 "독자적인 판단", "의존성"과 "자율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나온다. 청소년이 투표를 하게 되면 부모나 특정 세력에 선동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셈이다. '미성년=미성숙'이라는 공식과 궤를 같이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선동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이유는 저희가 나이가 어리고 청소년이어서가 아니라, 어른들도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한울·17살)

"학교에서도 교사가 질문을 던졌을 때 다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교사의 말을 듣고 학생들이 '그래, 선생님 말이 다 맞아' 이렇게만 생각하지 않잖아요. 평소에는 "요즘 애들은 어른들 말을 너무 안 듣는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선거에 대해서만큼은 "애들은 부모님 말만 듣고 선동될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되게 모순적인 것 같아요." (이은선·18살)


이처럼 명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연령'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당사자인 청소년 입장에서는 부당한 편견이자 낙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성인에게는 아무런 평가나 심사 없이 일률적으로 인정되는 정치적 판단능력, 성숙함이라는 것이 과연 미성년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논거로서 타당한 것일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배제되고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도 크다.

"저는 정말 신경쓰이거든요. 제가 사는 지역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저 멀리 지방까지도 누가 선출될지가 정말 궁금하고 마음이 졸여지고 그런 게 있는데. … 제 주변 어른들의 태도를 보면 (선거가)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는 것처럼 사회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제가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온 나라는 떠들썩한데, 나도 떠들썩해야할 거 같은데, 나는 함부로 떠들썩할 수 없을 거 같은 느낌." (김윤송·15살)


◆ "미성숙한 사람도 시민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가정을 어렵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들은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 있어야만 선거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라는 헌법재판소의 전제 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권은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에 속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선거권은 단순히 '투표할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는 시각이다. "선거권은 인권이다"라는 청소년들의 행진 구호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선거권을 "개인의 생래적(타고난) 기본권"으로 개념화한 사례가 있다. (2012헌마409, 재판관 이진성의 별개 의견)


"성숙과 미성숙이 선거, 참정권 부여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지적으로 똑똑하고, 얼마나 성숙하고 미성숙하고와 관계 없이 그냥 인간이고, 구성원이니까 참정권을 당연히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한울·17살)

"모르는 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르는 게 그 사람의 권리를 빼앗을 근거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좀 지겨워요. 언제까지 "우리는 멍청하지 않아요"라고 얘기해야 되는 건지. 저는 더이상 그렇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몰라도, 아무 것도 몰라도 주어져야 하는 권리가 있는 거다. 그게 선거권이고 기본권이다." (김윤송·15살)

"사람들이 18세 선거권에 동의를 할 때, 18세는 결혼도 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있고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희가 선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제발 다른 권리와 의무를 청소년 참정권 의제에 엮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치의 영향을 함께 받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당연히 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은선·18살)


◆ "선거 연령 하향, 청소년 차별을 줄이는 길"

"비청소년에게는 선거권이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없기 때문에, 이 둘의 권력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그것이 이 둘을 달라지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에 서게 만들고, 그래서 여러 차별과 폭력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선거연령 하향이, 청소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줄이는 첫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윤송(15)씨는 선거권 이슈가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부 기계", "어린 애"로만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성.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18세 선거권' 논쟁의 핵심이었다.


"작년에 집회 신고를 하고 한 공원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를 했거든요. 학생들이 되게 많이 모여서 각자 자기 자유발언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청소년들끼리 꾸려나가는 것에 감동, 뿌듯함을 느꼈어요. 우리끼리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는 생각. 어떻게보면 사회가 평소에 우리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듯한 느낌이 알게 모르게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끼리 뭔가를 해냈을 때 감동적인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서한울·17살)

"교복을 입고 다닐 때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요. 갑자기 반말을 한다거나. 길가던 사람이 갑자기 툭 때리고 간다거나.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제가 길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막 돌아간다거나 그런 일도 있었거든요. 결국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부터 그런 일상의 차별이 시작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인식이 변화하는 데 필요한 첫 단추가 참정권, 선거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은선·18살)


윤송 씨와 은선 씨는 4월 국회에서 선거연령을 하향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오늘(17일)로 27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몇 개월, 몇 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선거권이 주어지는데, 왜 굳이 그렇게 사서 고생이냐고 이야기한다. 같은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돌아온 답변.

"단순한 거 같아요. 지금의 문제니까 지금 해결하려고 하는 것. 나는 지금 문제의식을 느끼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를 한다. 그런 거 같아요." (서한울·17살)

"기간이 정해진 차별이잖아요, 사실. 이렇게까지 농성하고 삭발하고 하지 않아도 몇 년 뒤에 내가 만 19세가 되면 가질 수 있는 권리이고. 매일매일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해결돼 나가는 차별들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에 더 무감각해지는 게 있고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개인의 고통이 끝난다고 해도 청소년에 대한 낙인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김윤송·15살)

*참고 문헌
권민지, 김덕현 외(2014), 공직선거법상 연령에 따른 선거권 제한에 대한 비판
김효연(2016),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참여와 선거권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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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투표하기엔 부족한 당신”…헌재 결정문서 ‘청소년 차별’을 읽다
    • 입력 2018-04-17 11:42:55
    • 수정2018-04-17 16:47:41
    취재후·사건후
대한민국 청소년들은 '만 19세 이상' 국민에게만 선거권을 부여한 공직선거법 제15조에 대해 꾸준히 헌법소원을 제기해 왔다. 그때마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해 왔다. 그 이유는 뭘까. 2013년 나온 헌재 결정문(2012헌마287)을 보자.

"보통선거의 원칙은 일정한 연령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당연히 선거권을 갖는 것을 요구하는데 그 전제로서 일정한 연령에 이르지 못한 국민에 대하여는 선거권을 제한하는 바, 선거권 행사는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인 판단능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19세 미만으로서 아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학생들은 … 정치적 의사표현이 민주시민으로서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인지 의문이 있을 수 있고, 그러한 의존성으로 말미암아 정치적 판단이나 의사표현이 왜곡될 우려도 있다. 물론 오늘날 미성년자라도 신체적으로는 성년자 못지않게 발달하였고, 각종 문화 및 정보매체의 발달로 인하여 다양한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지적 수준이 많이 향상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신적·신체적 수준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는 19세 미만인 미성년자의 경우 부모나 보호자로부터 물질적이나 정신적인 면에서 충분히 자유롭지 못하여 아직 자기정체성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고, 경험이나 적응능력의 부족 등으로 인하여 중요한 판단을 그르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19세 미만인 미성년자는 아직 정신적·신체적 자율성이 충분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판단의 주된 논거는 청소년의 '미성숙함'이었다. 청소년은 선거권을 합리적으로 행사할 정도로 "독자적인 정치적 판단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투표할 권리를 주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선거 연령에 대한 헌법소원이 기각될 때마다(96헌마89, 2000헌마111, 2002헌마787 등) 번번이 전면에 등장했던 이 논리에 대해,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은 묵직한 물음표를 던졌다.

[연관 기사] 선거, 왜 ‘19금’인가요?

◆ "성숙과 미성숙, 누가 어떻게 판단하나?"

당장 의문이 제기되는 지점은 헌법재판소가 선거권 부여의 기준이라고 칭한 "정치적 판단 능력"이다. 그 기준이 자의적이고 모호하다는 얘기다.

"뭘 아는 사람들이라는 게 도대체 어떻게 정의내릴 수 있는 건지, 그것의 기준이 무엇인지. 대졸한테만 선거권을 줄 건가. 말도 안되잖아요, 사실. 그건 차별이잖아요.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정말 '잘 아는' 사람들한테만 선거권을 줄 거면, 학력 좋은 사람들한테는 투표용지 2장 주고 아이큐 테스트를 하지." (김윤송·15살)

헌재 결정문에는 "독자적인 판단", "의존성"과 "자율성"이라는 단어도 자주 나온다. 청소년이 투표를 하게 되면 부모나 특정 세력에 선동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 셈이다. '미성년=미성숙'이라는 공식과 궤를 같이 한다.

"사실 개인적으로 그럴 수 있다(선동당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 이유는 저희가 나이가 어리고 청소년이어서가 아니라, 어른들도 누구나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서한울·17살)

"학교에서도 교사가 질문을 던졌을 때 다 다른 생각을 하잖아요. 교사의 말을 듣고 학생들이 '그래, 선생님 말이 다 맞아' 이렇게만 생각하지 않잖아요. 평소에는 "요즘 애들은 어른들 말을 너무 안 듣는다"라고 이야기하면서, 선거에 대해서만큼은 "애들은 부모님 말만 듣고 선동될 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되게 모순적인 것 같아요." (이은선·18살)


이처럼 명확하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연령'이라는 기준만으로 판단력이 부족하다고 간주하는 것은, 당사자인 청소년 입장에서는 부당한 편견이자 낙인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성인에게는 아무런 평가나 심사 없이 일률적으로 인정되는 정치적 판단능력, 성숙함이라는 것이 과연 미성년자의 선거권을 제한하는 논거로서 타당한 것일까.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정치적 논의의 장에서 배제되고 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오는 좌절감도 크다.

"저는 정말 신경쓰이거든요. 제가 사는 지역구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저 멀리 지방까지도 누가 선출될지가 정말 궁금하고 마음이 졸여지고 그런 게 있는데. … 제 주변 어른들의 태도를 보면 (선거가) 저하고는 아무 상관 없다는 것처럼 사회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게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졌고, 제가 분리된 것처럼 느껴졌어요. 온 나라는 떠들썩한데, 나도 떠들썩해야할 거 같은데, 나는 함부로 떠들썩할 수 없을 거 같은 느낌." (김윤송·15살)


◆ "미성숙한 사람도 시민이다"

'청소년은 미성숙하다'는 가정을 어렵게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인터뷰에 응한 청소년들은 "일정한 수준의 정치적 판단 능력이 있어야만 선거권을 행사할 자격이 있다"라는 헌법재판소의 전제 자체에도 동의할 수 없다고 했다. 선거권은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하는 기본권에 속한다는 게 그 이유였다. 선거권은 단순히 '투표할 권리'가 아니라, "공동체의 구성원이 공동체의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행복을 추구할 권리"라는 시각이다. "선거권은 인권이다"라는 청소년들의 행진 구호도 같은 맥락에 놓여 있다. 헌법재판소에서도 선거권을 "개인의 생래적(타고난) 기본권"으로 개념화한 사례가 있다. (2012헌마409, 재판관 이진성의 별개 의견)


"성숙과 미성숙이 선거, 참정권 부여의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얼마나 지적으로 똑똑하고, 얼마나 성숙하고 미성숙하고와 관계 없이 그냥 인간이고, 구성원이니까 참정권을 당연히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한울·17살)

"모르는 게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모르는 게 그 사람의 권리를 빼앗을 근거가 될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좀 지겨워요. 언제까지 "우리는 멍청하지 않아요"라고 얘기해야 되는 건지. 저는 더이상 그렇게 말하고 싶지가 않아요. 몰라도, 아무 것도 몰라도 주어져야 하는 권리가 있는 거다. 그게 선거권이고 기본권이다." (김윤송·15살)

"사람들이 18세 선거권에 동의를 할 때, 18세는 결혼도 할 수 있고 공무원 시험도 볼 수 있고 이런 얘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근데 그런 걸 할 수 있다는 이유로 저희가 선거를 할 수 있다는 건 아니에요. 제발 다른 권리와 의무를 청소년 참정권 의제에 엮으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정치의 영향을 함께 받는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당연히 표를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요." (이은선·18살)


◆ "선거 연령 하향, 청소년 차별을 줄이는 길"

"비청소년에게는 선거권이 있지만 청소년에게는 없기 때문에, 이 둘의 권력 차이가 계속 벌어지고, 그것이 이 둘을 달라지게 만들고, 사회적으로 다른 위치에 서게 만들고, 그래서 여러 차별과 폭력들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요. 저는 이 선거연령 하향이, 청소년에 대한 억압과 차별을 줄이는 첫 시작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김윤송(15)씨는 선거권 이슈가 궁극적으로는 청소년에 대한 사회적 차별 문제라고 이야기했다. 청소년을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공부 기계", "어린 애"로만 바라보는 시선의 폭력성. 기자가 만난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18세 선거권' 논쟁의 핵심이었다.


"작년에 집회 신고를 하고 한 공원에서 세월호 추모 행사를 했거든요. 학생들이 되게 많이 모여서 각자 자기 자유발언도 하고, 공연도 하고 그러면서 우리 청소년들끼리 꾸려나가는 것에 감동, 뿌듯함을 느꼈어요. 우리끼리도 충분히 잘해낼 수 있다는 생각. 어떻게보면 사회가 평소에 우리를 무시하고 배제하는 듯한 느낌이 알게 모르게 쌓여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우리끼리 뭔가를 해냈을 때 감동적인 마음이 들었던 거 같아요." (서한울·17살)

"교복을 입고 다닐 때 특히 그런 경우가 많아요. 갑자기 반말을 한다거나. 길가던 사람이 갑자기 툭 때리고 간다거나. 택시를 탔는데 아저씨가 제가 길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막 돌아간다거나 그런 일도 있었거든요. 결국 청소년이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데서부터 그런 일상의 차별이 시작된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 인식이 변화하는 데 필요한 첫 단추가 참정권, 선거권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은선·18살)


윤송 씨와 은선 씨는 4월 국회에서 선거연령을 하향하는 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것을 요구하며, 국회의사당역 앞에서 오늘(17일)로 27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몇 개월, 몇 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선거권이 주어지는데, 왜 굳이 그렇게 사서 고생이냐고 이야기한다. 같은 질문을 던진 기자에게 돌아온 답변.

"단순한 거 같아요. 지금의 문제니까 지금 해결하려고 하는 것. 나는 지금 문제의식을 느끼고,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이야기를 한다. 그런 거 같아요." (서한울·17살)

"기간이 정해진 차별이잖아요, 사실. 이렇게까지 농성하고 삭발하고 하지 않아도 몇 년 뒤에 내가 만 19세가 되면 가질 수 있는 권리이고. 매일매일 나이를 먹으면서 그렇게 하나하나 해결돼 나가는 차별들이 있어요. 그것 때문에 저는 청소년에 대한 차별에 더 무감각해지는 게 있고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저 개인의 고통이 끝난다고 해도 청소년에 대한 낙인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제가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이 문제를 포기할 수는 없을 거 같아요." (김윤송·15살)

*참고 문헌
권민지, 김덕현 외(2014), 공직선거법상 연령에 따른 선거권 제한에 대한 비판
김효연(2016), 아동·청소년의 정치적 참여와 선거권 연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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