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입력 2018.04.29 (14:09) 수정 2018.04.2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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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진의 스승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질문에 미셸 베로프는 수차례나 이 말을 반복했다. 이제는 사제간의 관계가 아니라 어찌 보면 같은 길을 가는 선후배이자 동료로서의 관계……. 인터뷰 중간중간 조성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났다. 그리고 지난해 5월 KBS1TV <톡 쏘는 인터뷰 소다>에서 리사이틀을 위해 귀국한 조성진을 인터뷰했을 때 느낀 점 등과 비교해 두 사람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태도, 연주 철학…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천재 피아니스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일까? 아니면 애초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된 인연이었을까? 조성진이 스승인 미셸 베로프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은 것은 무엇일까? 거장 음악가이자 교육자인 미셸 베로프로부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자질과 피아니즘 그리고 지금의 조성진을 키워낸 특별한 교육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관기사]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지난 편에서 이어집니다.
Q. 이번 내한(지난 3월)에 대해 어떤 특별한 기대가 있으셨나요?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한국에 올 수 있었다는 데에 만족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잘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면 된 거로 생각했어요.

Q. 교수님은 1966년 파리음악원을 졸업하고 제1회 올리비에 메시앙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걸출한 메시앙 해석자로도 유명하십니다. 그동안 어떤 음악들을 해오셨는지요?

아시다시피 피아니스트가 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정말 다양합니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광대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그래서 그걸 다 소화하려면 삶이 두세 배는 되어야 할 겁니다. 제가 주로 연주한 곡들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벨, 프로코피에프, 메시앙, 불레(즈) 등의 곡들이었고, 젊었을 때는 현대음악도 많이 연주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곡을 섭렵하려고 했지요.

Q. 피아니스트이자 작가 러셀 셰먼이 쓴 <피아노 이야기 Piano Pieces>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출간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피아노란 어떤 악기인가요?

글쎄요.. 상자죠, 예쁘게 생긴 검은 상자요. 물론 상자보다는 모양이 좀 더 길쭉하지만, 피아노에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게 있어요. 피아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상자 모양의 곽에 불과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모든 악기의 느낌을 다 줄 수도 있죠. 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데 그래서 피아노로 다양한 화성과 폴리포니를 동시에 만들 수가 있어요. 바이올린이나 오보에, 클라리넷 같은 악기들과는 확연히 다르지요. 피아노는 확실히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연주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악기인데요, 그런데 또 그게 다가 아니에요. 거기에 연주자라는 요소가 더해집니다.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같은 피아노라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거든요. 정말 좋은 피아노를 만나면 누구든 절대적으로 훌륭한 소리를 지어내고 싶겠지만,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는 어디까지나 미디엄, 즉 매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필요하죠. 한편 피아노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악기입니다만 동시에 ‘환상’ 같은 측면도 있어요. 왜냐면 피아노에서 한 음을 치면 그 소리는 곧 날아가 버리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내는 소리 하고는 달라요,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을 잡고(끌고) 있을 수 있지만, 피아노는 음을 만드는 순간 사라져버리죠. 그래서 한 음을 다음 음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귀의 역할인데 정말 정말 중요하죠. 들어서 음악적 소리의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 피아니스트는 지휘자와도 비견될 수 있는데 피아니스트들은 다른 음악가들을 지휘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혼자서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틀림이 없는 귀가 필요합니다. 소리를 듣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하죠.

Q.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는 달라요. 그렇지만 언제 피아노가 솔로이고, 언제 반주 또는 협연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잘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악보를 볼 줄 아는 게 다시 한 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또 강조하지만 결국은 ‘음악을 하기 위한’ 겁니다. ‘피아노를 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피아노가 돋보이려는 게 아니라 거장 작곡가들의 ‘음악’을 위해서 ‘기여’하는 거에요.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서도 미디엄(매개체)이자, 메신저이자, 공간이라고도 하는 거고요, 천재 작곡가들의 음악을 전달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하고, 항상 이 음악은 우리가 쓴 게 아니라는 확실한 인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음악을 작곡한, 정말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요. 언제나 작곡가들이 그 곡을 쓸 당시의 정신, 생각, 마음 상태를 헤아려봐야 하고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또 그러므로 항상 겸손함을 가져야 하고, 음악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마음 다시 말해 ‘음악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요즘 한국에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피아니즘’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피아니즘’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하면 쉬울까요?

피아니즘이란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 각각의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가진 기술, 즉 테크닉에 따라 각자 다른 피아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그 피아니스트가 해석하려는 음악에 대해 어떤 소리적 이미지나 이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왜냐면 다시 말하지만 피아니즘도 결국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피아니즘은 분명히 테크닉과 관련이 있고 피아니스트는 그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도록요. 화가나 조각가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같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피아니즘 역시 매우 광범위한 개념인데요, 어떤 피아니스트는 매우 훌륭한 피아니즘을 가져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피아니스트는 기술이 모자라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피아니즘을 구현하려면 기술, 테크닉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인 테크닉과 흠 잡을 데 없는 제스처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도 보게 되고 아주 이상한 제스처로 정말 비통하게 연주하는 경우도 보게 되는 겁니다. 이 모두 다 피아니스트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떤 ‘욕구’가 있으면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그다음에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어떤 강한 ‘욕구’가 있다면 사람은 그걸 ‘표현’할 방도를 찾게 되죠. 당장 그런 방도가 없다고 해도 점차로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 거고요. 프랑스에는 ‘기능이 장기를 창조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러하듯 결국은 그 사람 안에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Q. 그렇다면 교수님의 피아니즘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제 피아니즘이요? 글쎄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받은 영향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네요. 제 피아노 테크닉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프랑스 학풍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물론 더는 프랑스 학풍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등등이요. 제 경우에는 영향을 미친 선생님이 계셨어요. 피아니즘이란 결국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죠. 정말 광대한 개념이에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일 수도 있어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있지만 피아니즘이라는 것은 테크닉과 음악적 메시지와 피아니스트의 개성과 인품 그 모든 것의 집합체거든요. 게다가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청중의 (피아니즘에 대한) 지각’이라는 부분도 있지요. 그래서 어려운 거에요. 피아니즘이라고 할 때는 그것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피아니즘’으로 범위를 좁혀 설명할 때가 많죠. 특히 그 사람의 개성이나 인품, 어떤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 그런 것들이 다 피아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그것이 우리가 듣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죠. 음악이고, 테크닉의 수준이고, 연주자의 몸가짐이고, 그리고 듣는 사람마다 어떤 한 연주자 또는 어떤 특정 피아니즘에 더 민감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심리학과도 많이 관련돼 있죠. 철학하고도요.


Q. 교수님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계신데요, 지난해 조성진이 베를린으로 옮긴 후에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물론입니다. 정기적으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지요.

Q. 201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의 우승을 예상하셨나요?

조성진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미 그가 16살 나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고 들었었어요. 그가 가진 아주 특별한 재능과 장점들이 보였죠. 연주와 관련해 그가 가진 태도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의지, 그리고 굳은 신념이 돋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진이 우승할 수 있겠다.’ 하지만 큰 콩쿠르는 결코 알 수가 없거든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그럼에도 본질적으로는 그의 피아노 실력이나 에너지, 그리고 지성과 교양은 저로 하여금 그가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조성진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고 준비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그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특정한 사람들한테만 어필하는 연주자일 경우에는 심사위원들도 의견이 갈라지기 쉽거든요. 사실 콩쿠르라는 게 좀 복잡해서 아주 실력이 있는 경우에도 심사위원 몇 사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은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보다 아무도 특별히 싫어하지 않는, 즉 어떤 심사위원으로부터도 극심한 반대를 사지 않는 사람이 우승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위대한 예술가들 가운데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조성진이 정말 열심이고, 지성을 갖추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연주하고, 또 많은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정말 크겠구나, 아주 멀리까지 가겠구나 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쇼팽 콩쿠르에서의 우승도 그에게는 마치 ‘당연한 선물’인 것처럼 여겨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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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2)
    • 입력 2018-04-29 14:09:38
    • 수정2018-04-29 14:16:19
    취재K
“조성진의 스승일 수 있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제자였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에 대한 질문에 미셸 베로프는 수차례나 이 말을 반복했다. 이제는 사제간의 관계가 아니라 어찌 보면 같은 길을 가는 선후배이자 동료로서의 관계……. 인터뷰 중간중간 조성진에 대한 애정과 존중이 묻어났다. 그리고 지난해 5월 KBS1TV <톡 쏘는 인터뷰 소다>에서 리사이틀을 위해 귀국한 조성진을 인터뷰했을 때 느낀 점 등과 비교해 두 사람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피아노에 대한 열정과 태도, 연주 철학…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천재 피아니스트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것일까? 아니면 애초 닮은 사람들끼리 만나게 된 인연이었을까? 조성진이 스승인 미셸 베로프에게 배우고 영향을 받은 것은 무엇일까? 거장 음악가이자 교육자인 미셸 베로프로부터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의 자질과 피아니즘 그리고 지금의 조성진을 키워낸 특별한 교육 철학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연관기사]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미셸 베로프를 만나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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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이번 내한(지난 3월)에 대해 어떤 특별한 기대가 있으셨나요?

아니요, 전혀 없습니다. 그저 한국에 올 수 있었다는 데에 만족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다 잘 마치고 돌아갈 수 있다면 된 거로 생각했어요.

Q. 교수님은 1966년 파리음악원을 졸업하고 제1회 올리비에 메시앙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한 걸출한 메시앙 해석자로도 유명하십니다. 그동안 어떤 음악들을 해오셨는지요?

아시다시피 피아니스트가 할 수 있는 레퍼토리는 정말 다양합니다. 18세기부터 21세기까지 ‘광대하다’는 표현이 맞을 거에요. 그래서 그걸 다 소화하려면 삶이 두세 배는 되어야 할 겁니다. 제가 주로 연주한 곡들은 모차르트, 슈베르트, 베토벤, 쇼팽, 슈만, 리스트, 드뷔시, 라벨, 프로코피에프, 메시앙, 불레(즈) 등의 곡들이었고, 젊었을 때는 현대음악도 많이 연주했습니다. 최대한 많은 곡을 섭렵하려고 했지요.

Q. 피아니스트이자 작가 러셀 셰먼이 쓴 <피아노 이야기 Piano Pieces>라는 책이 국내에서도 출간돼 호평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이 생각하시기에 피아노란 어떤 악기인가요?

글쎄요.. 상자죠, 예쁘게 생긴 검은 상자요. 물론 상자보다는 모양이 좀 더 길쭉하지만, 피아노에는 일종의 ‘마법’과도 같은 게 있어요. 피아노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상자 모양의 곽에 불과할 수도 있고, 정반대로 모든 악기의 느낌을 다 줄 수도 있죠. 사람 손가락이 열 개인데 그래서 피아노로 다양한 화성과 폴리포니를 동시에 만들 수가 있어요. 바이올린이나 오보에, 클라리넷 같은 악기들과는 확연히 다르지요. 피아노는 확실히 더 다양하고 풍요롭게 연주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흥미로운 악기인데요, 그런데 또 그게 다가 아니에요. 거기에 연주자라는 요소가 더해집니다. 누가 연주하느냐에 따라 같은 피아노라도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나거든요. 정말 좋은 피아노를 만나면 누구든 절대적으로 훌륭한 소리를 지어내고 싶겠지만, 피아노라는 악기 자체는 어디까지나 미디엄, 즉 매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에 사람의 손이 필요하죠. 한편 피아노는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악기입니다만 동시에 ‘환상’ 같은 측면도 있어요. 왜냐면 피아노에서 한 음을 치면 그 소리는 곧 날아가 버리거든요. 바이올리니스트가 내는 소리 하고는 달라요, 바이올리니스트는 음을 잡고(끌고) 있을 수 있지만, 피아노는 음을 만드는 순간 사라져버리죠. 그래서 한 음을 다음 음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정말 잘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귀의 역할인데 정말 정말 중요하죠. 들어서 음악적 소리의 균형을 맞춘다는 점에서 피아니스트는 지휘자와도 비견될 수 있는데 피아니스트들은 다른 음악가들을 지휘함으로써 균형을 맞추는 게 아니라 혼자서 이 모든 과정을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 틀림이 없는 귀가 필요합니다. 소리를 듣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하죠.

Q.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도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할 때는 달라요. 그렇지만 언제 피아노가 솔로이고, 언제 반주 또는 협연 역할을 수행하는지를 잘 가릴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악보를 볼 줄 아는 게 다시 한 번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그리고 또 강조하지만 결국은 ‘음악을 하기 위한’ 겁니다. ‘피아노를 하기 위한’ 게 아니에요. 피아노가 돋보이려는 게 아니라 거장 작곡가들의 ‘음악’을 위해서 ‘기여’하는 거에요. 그래서 피아니스트들에 대해서도 미디엄(매개체)이자, 메신저이자, 공간이라고도 하는 거고요, 천재 작곡가들의 음악을 전달하는 사람인 거죠. 그래서 항상 겸손해야 하고, 항상 이 음악은 우리가 쓴 게 아니라는 확실한 인식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음악을 작곡한, 정말 특별한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과 함께요. 언제나 작곡가들이 그 곡을 쓸 당시의 정신, 생각, 마음 상태를 헤아려봐야 하고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만요. 또 그러므로 항상 겸손함을 가져야 하고, 음악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마음 다시 말해 ‘음악을 전달’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 그게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Q. 요즘 한국에서 피아니스트들의 연주를 들을 기회가 많아지면서 ‘피아니즘’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하는데요.‘피아니즘’이란 정확히 무엇이고 어떻게 이해하면 쉬울까요?

피아니즘이란 아주 개인적인 것으로 각각의 피아니스트는 자신이 가진 기술, 즉 테크닉에 따라 각자 다른 피아니즘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요, 특히 그 피아니스트가 해석하려는 음악에 대해 어떤 소리적 이미지나 이해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왜냐면 다시 말하지만 피아니즘도 결국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서 있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피아니즘은 분명히 테크닉과 관련이 있고 피아니스트는 그 테크닉을 연마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도록요. 화가나 조각가가 자신이 만들고 싶은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기술이 필요하고 그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과 같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피아니즘 역시 매우 광범위한 개념인데요, 어떤 피아니스트는 매우 훌륭한 피아니즘을 가져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다 표현해낼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어떤 피아니스트는 기술이 모자라 다 표현하지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결국, 자기가 생각하는 피아니즘을 구현하려면 기술, 테크닉이라는 도구가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절대적인 테크닉과 흠 잡을 데 없는 제스처로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들도 보게 되고 아주 이상한 제스처로 정말 비통하게 연주하는 경우도 보게 되는 겁니다. 이 모두 다 피아니스트의 내부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어떤 ‘욕구’가 있으면 모든 ‘욕구’가 그렇듯이 그다음에 ‘표현’을 하게 되는 것이거든요. 따라서 어떤 강한 ‘욕구’가 있다면 사람은 그걸 ‘표현’할 방도를 찾게 되죠. 당장 그런 방도가 없다고 해도 점차로 발전시켜 나가게 되는 거고요. 프랑스에는 ‘기능이 장기를 창조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정말 그렇습니다. 삶의 많은 부분에서 그러하듯 결국은 그 사람 안에 욕구가 있느냐 없느냐, 어떤 욕구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예요.

Q. 그렇다면 교수님의 피아니즘에 대해 여쭤봐도 될까요?

제 피아니즘이요? 글쎄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받은 영향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하는 게 더 쉬울 것 같네요. 제 피아노 테크닉은 어디서 비롯됐는지, 프랑스 학풍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물론 더는 프랑스 학풍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등등이요. 제 경우에는 영향을 미친 선생님이 계셨어요. 피아니즘이란 결국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나타나는 건데 그렇기 때문에 몇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죠. 정말 광대한 개념이에요.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 아무 의미도 없는 말일 수도 있어요. 위대한 피아니스트들은 있지만 피아니즘이라는 것은 테크닉과 음악적 메시지와 피아니스트의 개성과 인품 그 모든 것의 집합체거든요. 게다가 연주자의 음악을 듣는 ‘청중의 (피아니즘에 대한) 지각’이라는 부분도 있지요. 그래서 어려운 거에요. 피아니즘이라고 할 때는 그것이 너무 광범위하기 때문에 ‘누군가의 피아니즘’으로 범위를 좁혀 설명할 때가 많죠. 특히 그 사람의 개성이나 인품, 어떤 피아니스트가 무대에서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 그런 것들이 다 피아니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그것이 우리가 듣는 것에도 영향을 미치죠. 음악이고, 테크닉의 수준이고, 연주자의 몸가짐이고, 그리고 듣는 사람마다 어떤 한 연주자 또는 어떤 특정 피아니즘에 더 민감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심리학과도 많이 관련돼 있죠. 철학하고도요.


Q. 교수님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스승으로도 잘 알려져 계신데요, 지난해 조성진이 베를린으로 옮긴 후에도 자주 연락하고 지내시나요?

물론입니다. 정기적으로 서로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지내고 있지요.

Q. 2015년 바르샤바에서 열린 쇼팽 콩쿠르에서 조성진의 우승을 예상하셨나요?

조성진을 처음 만났을 때 저는 이미 그가 16살 나이에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입상했다고 들었었어요. 그가 가진 아주 특별한 재능과 장점들이 보였죠. 연주와 관련해 그가 가진 태도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의지, 그리고 굳은 신념이 돋보이는 청년이었습니다.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조성진이 우승할 수 있겠다.’ 하지만 큰 콩쿠르는 결코 알 수가 없거든요. 심사위원들이 어떻게 평가할지. 그럼에도 본질적으로는 그의 피아노 실력이나 에너지, 그리고 지성과 교양은 저로 하여금 그가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죠. 조성진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고 준비돼 있었습니다. 게다가 다행스럽게도 그의 음악을 인정해주고 지지해주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특정한 사람들한테만 어필하는 연주자일 경우에는 심사위원들도 의견이 갈라지기 쉽거든요. 사실 콩쿠르라는 게 좀 복잡해서 아주 실력이 있는 경우에도 심사위원 몇 사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결국은 정말 실력이 있는 사람보다 아무도 특별히 싫어하지 않는, 즉 어떤 심사위원으로부터도 극심한 반대를 사지 않는 사람이 우승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위대한 예술가들 가운데 모두로부터 찬사를 받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아무튼, 그래서 저는 조성진이 정말 열심이고, 지성을 갖추고 진지하고 진실하게 연주하고, 또 많은 다른 것들에도 관심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앞으로 정말 크겠구나, 아주 멀리까지 가겠구나 하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죠. 쇼팽 콩쿠르에서의 우승도 그에게는 마치 ‘당연한 선물’인 것처럼 여겨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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