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라도 찾았으면”…38년 애타는 기다림
입력 2018.05.17 (07:33)
수정 2018.05.17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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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38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애타는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곽선정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의 모습은 앳된 고등학생에 멈춰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간 임옥환 씨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씨 부모는 광주시내를 헤집고 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임준배/행방불명자 아버지 : "아들을 어떻게 찾아가지고 나 살아있을 때 땅에다 묻어야 눈을 감고 가겠다..."]
80년 5월 20일 이웃 주민과 기름을 사러 나갔다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정기영 씨.
여러 차례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가족들은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매년 5월이 되면 제삿상을 차립니다.
[정호화/미인정 행방불명자 아들 : "절망적이고 이게 진짜 심사가 투명하게 되나 의구심도 갖고. 5·18 워크샵(자료집) 보면 공무원의 허위,왜곡,부실 조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정된다고 나와있습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5.18 묘역의 무명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지만 76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2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종수/5·18기념재단 연구원 : "80년 6월에 당시 군인들이 내려와서 시신을 발굴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고인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것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지난 38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애타는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곽선정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의 모습은 앳된 고등학생에 멈춰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간 임옥환 씨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씨 부모는 광주시내를 헤집고 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임준배/행방불명자 아버지 : "아들을 어떻게 찾아가지고 나 살아있을 때 땅에다 묻어야 눈을 감고 가겠다..."]
80년 5월 20일 이웃 주민과 기름을 사러 나갔다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정기영 씨.
여러 차례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가족들은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매년 5월이 되면 제삿상을 차립니다.
[정호화/미인정 행방불명자 아들 : "절망적이고 이게 진짜 심사가 투명하게 되나 의구심도 갖고. 5·18 워크샵(자료집) 보면 공무원의 허위,왜곡,부실 조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정된다고 나와있습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5.18 묘역의 무명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지만 76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2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종수/5·18기념재단 연구원 : "80년 6월에 당시 군인들이 내려와서 시신을 발굴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고인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것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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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해라도 찾았으면”…38년 애타는 기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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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정2018-05-17 07:4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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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8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애타는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곽선정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의 모습은 앳된 고등학생에 멈춰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간 임옥환 씨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씨 부모는 광주시내를 헤집고 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임준배/행방불명자 아버지 : "아들을 어떻게 찾아가지고 나 살아있을 때 땅에다 묻어야 눈을 감고 가겠다..."]
80년 5월 20일 이웃 주민과 기름을 사러 나갔다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정기영 씨.
여러 차례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가족들은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매년 5월이 되면 제삿상을 차립니다.
[정호화/미인정 행방불명자 아들 : "절망적이고 이게 진짜 심사가 투명하게 되나 의구심도 갖고. 5·18 워크샵(자료집) 보면 공무원의 허위,왜곡,부실 조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정된다고 나와있습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5.18 묘역의 무명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지만 76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2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종수/5·18기념재단 연구원 : "80년 6월에 당시 군인들이 내려와서 시신을 발굴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고인의 유해라도 찾고 싶다는 것이 돌아오지 못한 가족을 기다리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입니다.
KBS 뉴스 곽선정입니다.
지난 38년 동안 시신조차 찾지 못한 행방불명자 가족들은 애타는 기다림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곽선정 기자가 이들의 사연을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아들의 모습은 앳된 고등학생에 멈춰 있습니다.
1980년 5월 22일. 계엄군을 피해 학교 뒷산으로 간 임옥환 씨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임 씨 부모는 광주시내를 헤집고 다녔지만 아들의 흔적을 찾지 못했고, 당시 목격자들을 수소문해 어렵사리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았습니다.
[임준배/행방불명자 아버지 : "아들을 어떻게 찾아가지고 나 살아있을 때 땅에다 묻어야 눈을 감고 가겠다..."]
80년 5월 20일 이웃 주민과 기름을 사러 나갔다 길이 엇갈려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정기영 씨.
여러 차례 행불자 신청을 했지만 증거 부족으로 기각됐습니다.
가족들은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한 채 매년 5월이 되면 제삿상을 차립니다.
[정호화/미인정 행방불명자 아들 : "절망적이고 이게 진짜 심사가 투명하게 되나 의구심도 갖고. 5·18 워크샵(자료집) 보면 공무원의 허위,왜곡,부실 조사가 사실로 확인되면 인정된다고 나와있습니다."]
광주시가 인정한 5.18 행방불명자는 82명.
이 가운데 6명은 2001년 5.18 묘역의 무명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신원이 확인됐지만 76명은 아직도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행방불명자로 인정받지 못한 사람도 24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됩니다.
[차종수/5·18기념재단 연구원 : "80년 6월에 당시 군인들이 내려와서 시신을 발굴해갔다는 기록이 남아있는데, 그 이후에 어떻게 처리됐는가에 대해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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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선정 기자 coolsu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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