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범 앵커 :
휴전선에 새해, 새 연대, 아침은 아직도 차갑습니다.
통일이 되는 아침, 아니 장벽이 열리는 날, 제일 먼저 고향땅을 밟아 보겠다는 실향민들, 그들은 지금도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이른바 민통선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해 아침에 정용석 기자가 철원읍 대마리 민통선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정용석 기자 :
여기는 휴전선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민통선의 한 마을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철원읍 대마리, 190세대 980여명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할아버님 묘가 있구요, 또 여 넘어가면 아버님 묘가 있구. 그 원래 요기 살았었어요.
정용석 기자 :
그럼 할아버지 묘가, 요 하얀 산.
김 성래 (마을주민 53세) :
예, 고기 밑에 있어요.
정용석 기자 :
가 봤어요?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
못 가봤어요. 아직.
정용석 기자 :
왜요?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
철책이 있기때문에 뭐 가볼 수가 있습니까?
정용석 기자 :
대마리 마을 앞산은 6.25때 격전지였던, 백마 고지가 있고 그 앞쪽에는 철책선이 두꺼운 장벽이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대마리 마을의 190세대 가운데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실향민은 60%에, 한 세대당 8천에서 4만평의 농토의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책선 넘어 지척의 고향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은 우울합니다.
이승희 (마을 주민 70세) :
저, 독일 베를린도 무너진 건 텔레비전으로 보고...
정용석 기자 :
예.
이 승희 (마을주민 70세) :
이런 광경이 눈앞에 훤한데 우리는 언제나 이게 이렇게 되겠는지 지금 뭐, 뭐, 안타깝지요. 뭐, 너무 또 일생이 살아나간게 허무합니다.
나이만 70이 넘은 것 보니까
김 민기 (마을주민 55세) :
학교는 그러니까 지금 저기, 수색중대 요 앞에 지금 있어요.
이건 여기서 일루 넘어 댕기구요. 아니 면은 인제, 여, 장마가 지구 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저, 고개를 큰 백마고지 고개를 넘어가지구 글루 댕기구 그랬죠.
참, 저기만 쳐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참.
정용석 기자 :
마을의 철책은 아직도 실향민들에게는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두꺼운 장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마리 통선마을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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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해의 휴전선 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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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0-01-02 21:00:00
박성범 앵커 :
휴전선에 새해, 새 연대, 아침은 아직도 차갑습니다.
통일이 되는 아침, 아니 장벽이 열리는 날, 제일 먼저 고향땅을 밟아 보겠다는 실향민들, 그들은 지금도 북녘이 바라다 보이는 이른바 민통선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새해 아침에 정용석 기자가 철원읍 대마리 민통선 마을을 다녀왔습니다.
정용석 기자 :
여기는 휴전선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는 민통선의 한 마을입니다.
행정구역으로는 철원읍 대마리, 190세대 980여명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할아버님 묘가 있구요, 또 여 넘어가면 아버님 묘가 있구. 그 원래 요기 살았었어요.
정용석 기자 :
그럼 할아버지 묘가, 요 하얀 산.
김 성래 (마을주민 53세) :
예, 고기 밑에 있어요.
정용석 기자 :
가 봤어요?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
못 가봤어요. 아직.
정용석 기자 :
왜요?
김성래 (마을 주민 53세) :
철책이 있기때문에 뭐 가볼 수가 있습니까?
정용석 기자 :
대마리 마을 앞산은 6.25때 격전지였던, 백마 고지가 있고 그 앞쪽에는 철책선이 두꺼운 장벽이 남과 북을 갈라놓고 있습니다. 대마리 마을의 190세대 가운데 북한에 고향을 두고 있는 실향민은 60%에, 한 세대당 8천에서 4만평의 농토의 비교적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철책선 넘어 지척의 고향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은 우울합니다.
이승희 (마을 주민 70세) :
저, 독일 베를린도 무너진 건 텔레비전으로 보고...
정용석 기자 :
예.
이 승희 (마을주민 70세) :
이런 광경이 눈앞에 훤한데 우리는 언제나 이게 이렇게 되겠는지 지금 뭐, 뭐, 안타깝지요. 뭐, 너무 또 일생이 살아나간게 허무합니다.
나이만 70이 넘은 것 보니까
김 민기 (마을주민 55세) :
학교는 그러니까 지금 저기, 수색중대 요 앞에 지금 있어요.
이건 여기서 일루 넘어 댕기구요. 아니 면은 인제, 여, 장마가 지구 물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인저, 고개를 큰 백마고지 고개를 넘어가지구 글루 댕기구 그랬죠.
참, 저기만 쳐다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네요. 참.
정용석 기자 :
마을의 철책은 아직도 실향민들에게는 결코 넘어갈 수 없는 두꺼운 장벽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대마리 통선마을에서 전해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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