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아 아나운서 :
군 수사당국은 상습적으로 필로폰을 복용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됐던 이른바 오렌지족 가운데 22살 성명관군이 지난 89년 신체검사 결과 현역 입영 대상 판정을 받자 허위 진단서를 제출해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저질 알콜음료를 마신 러시아 극동지역의 주민 4백여명이 숨졌다고 중국 청년보가 오늘 보도했습니다.
1920년대와 3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이 발간했던 선봉신문이 오늘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재소 한인들이 펴낸 최초의 신문 선봉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추방당하기 시작한 우리 동포들의 운명과 함께 폐간된 것으로 보입니다.
모스크바에서 김선기 특파원입니다.
김선기 특파원 :
1924년 7월 1일자로 된 선봉신문.
이 신문의 발행장소는 해삼 즉, 블라디보스토크였으면 한글과 한문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창간호는 1923년 3월에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4년 7월 1일자 신문은 4페이지 짜리 주간 신문입니다.
이 신문에는 1924년 1월 1일 현재 연해도의 고려인 관 사립학교 통계가 게재돼 있습니다.
당시 관립 즉, 국립국민학교수는 84개, 교원수는 215명, 학생수는 6,950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사립학교수는 86개, 교원수는 125명, 학생수는 4,161명으로 한인의 총 학생수는 11,111명이나 됐습니다.
기모노겐지 (1930년대 연해주 거주 한인) :
선봉 신문은 소련 거래인이 청므으로 발행한 신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중학교 학생으로서 아버지가 이 신문을 주문하기 때문에 제가 가끔 봤습니다.
김선기 특파원 :
1937년 2월 18일자에는 파종준비에 대한 기사가 실림으로써 이 신문은 농사지도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무렵부터 이른바 한인에 대한 숙청기사가 간간히 나오고 있습니다.
반 소비에트 행위를 했다고 학생직업 동맹단체 회장인 유진원을 숙청한다는 기사가 있고 한 모리스를 공산당에서 쫓아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선봉 신문은 아무도 1937년 9월 12일자가 마지막 신문인 것 같습니다.
이 날짜 신문은 당시 몇일 전에 시작된 한인의 강제 이주 기사를 전혀 다루지 않음으로써 강제이주는 불법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김선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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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소 한인 최초 신문 선봉신문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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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1993-02-16 21:00:00
유정아 아나운서 :
군 수사당국은 상습적으로 필로폰을 복용한 혐의로 지난달 29일 서울지방검찰청에 구속됐던 이른바 오렌지족 가운데 22살 성명관군이 지난 89년 신체검사 결과 현역 입영 대상 판정을 받자 허위 진단서를 제출해서 병역을 면제받은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중국에서 수입된 저질 알콜음료를 마신 러시아 극동지역의 주민 4백여명이 숨졌다고 중국 청년보가 오늘 보도했습니다.
1920년대와 30년대 러시아 연해주에 살던 한인들이 발간했던 선봉신문이 오늘 처음으로 공개됐습니다.
재소 한인들이 펴낸 최초의 신문 선봉은 1937년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추방당하기 시작한 우리 동포들의 운명과 함께 폐간된 것으로 보입니다.
모스크바에서 김선기 특파원입니다.
김선기 특파원 :
1924년 7월 1일자로 된 선봉신문.
이 신문의 발행장소는 해삼 즉, 블라디보스토크였으면 한글과 한문으로 쓰여져 있습니다.
그러나 창간호는 1923년 3월에 발행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924년 7월 1일자 신문은 4페이지 짜리 주간 신문입니다.
이 신문에는 1924년 1월 1일 현재 연해도의 고려인 관 사립학교 통계가 게재돼 있습니다.
당시 관립 즉, 국립국민학교수는 84개, 교원수는 215명, 학생수는 6,950명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그리고 사립학교수는 86개, 교원수는 125명, 학생수는 4,161명으로 한인의 총 학생수는 11,111명이나 됐습니다.
기모노겐지 (1930년대 연해주 거주 한인) :
선봉 신문은 소련 거래인이 청므으로 발행한 신문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중학교 학생으로서 아버지가 이 신문을 주문하기 때문에 제가 가끔 봤습니다.
김선기 특파원 :
1937년 2월 18일자에는 파종준비에 대한 기사가 실림으로써 이 신문은 농사지도의 역할도 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무렵부터 이른바 한인에 대한 숙청기사가 간간히 나오고 있습니다.
반 소비에트 행위를 했다고 학생직업 동맹단체 회장인 유진원을 숙청한다는 기사가 있고 한 모리스를 공산당에서 쫓아냈다는 기사도 있습니다.
선봉 신문은 아무도 1937년 9월 12일자가 마지막 신문인 것 같습니다.
이 날짜 신문은 당시 몇일 전에 시작된 한인의 강제 이주 기사를 전혀 다루지 않음으로써 강제이주는 불법적으로 그리고 비밀리에 진행되고 있음을 암시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KBS 뉴스 김선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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