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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6.25 관련문서, 김일성이 한국전쟁 주도
입력 1994.07.20 (21:00)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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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성 앵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가뭄피해면적이 불과 이틀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오늘부터 무기한 직장폐쇄에 들어갔습니다.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후계자로 추대됐습니다.

KBS뉴스, 첫 번째 순서입니다.


오늘 외무부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한국전쟁 관련문서를 공개 했습니다. 전쟁준비를 위한 김일성과 스탈린의 생생한 대화내용, 당시 김일성의 심정 그리고 9.28 서울이 탈환된 뒤,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다급하게 지원을 요구하는 친필편지 등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김진석 기자가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김진석 기자 :

한국전발발 1년3개월 전인 49년 3월 5일 크렘린. 김일성과 박헌영, 스탈린이 마주앉습니다. 먼저 김일성 남침 계획을 설명합니다. 이에 스탈린 ‘남한의 미군병력은 어느 정돈가?’하고 묻습니다. 김일성 ‘2만명 정도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다시 스탈린 ‘남한에 국군도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김일성 ‘약 6만명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스탈린, 웃으면서 ‘북과 남 군대 어느 쪽이 센가?’하고 묻습니다. 이번엔 박헌영이 ‘물론 북쪽이 셉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때만 해도 ‘북한군이 남한군보다 절대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남한의 침략을 격퇴만해야지,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 열 달 뒤인 50년 1월 17일. 평양 박헌영의 관저. 소련, 중국의 외교관들을 위한 리셉션이 베풀어집니다. 김일성이 먼저 중국대사에게 ‘모택동은 내 친구로 나를 도와줄 것이요’라고 자신합니다. 이어 소련 참사관들에게 김일성 ‘중국 통일이 완료됐으니 이제는 남한을 해방시킬 차례요. 통일을 원하는 남한 인민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은, 밤에 잠이 안 옵니다’라고 말합니다. 참사관들이 응답을 회피하자 다시 소련대사에게 다가온 김일성 ‘3일이면 응진반도를 끝내고, 며칠이면은 서울에 들어갈 수 있는데, 필리포프 동지는 왜 허락을 안 해주는지’ 하고 푸념합니다.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이 대화내용을 본국에 전하면서 김일성이 항상 공격구상만 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석 달 뒤인 50년 4월.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는 스탈린. 그러면서 중국의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한 달 뒤인 50년 5월 15일 이에 동의하는 모택동. 김일성에게 ‘미군의 참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하고 조언하는데, 김일성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하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참전으로 서울이 탈환된 바로 이튿날, 50년 9월 29일. 다급해진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에게 간곡한 부탁의 편지를 보냅니다. 박헌영의 친필로 된 이 편지에는, ‘친애하는 이요시포 비싸리요노비치 시여, 우리 자체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 단어에 한자와 한글이 섞여 쓰인 대목에서 당시 이들의 다급한 심정이 읽혀집니다.

KBS뉴스, 김진석 입니다.

  • 러시아의 6.25 관련문서, 김일성이 한국전쟁 주도
    • 입력 1994-07-20 21:00:00
    뉴스 9

이윤성 앵커 :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9시 뉴스입니다.

가뭄피해면적이 불과 이틀 전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오늘부터 무기한 직장폐쇄에 들어갔습니다. 김정일이 사실상 북한의 후계자로 추대됐습니다.

KBS뉴스, 첫 번째 순서입니다.


오늘 외무부는, 러시아 정부로부터 받은 한국전쟁 관련문서를 공개 했습니다. 전쟁준비를 위한 김일성과 스탈린의 생생한 대화내용, 당시 김일성의 심정 그리고 9.28 서울이 탈환된 뒤, 김일성 박헌영이 스탈린에게 다급하게 지원을 요구하는 친필편지 등이 처음으로 공개되고 있습니다.

먼저 김진석 기자가 정리를 해 드리겠습니다.


김진석 기자 :

한국전발발 1년3개월 전인 49년 3월 5일 크렘린. 김일성과 박헌영, 스탈린이 마주앉습니다. 먼저 김일성 남침 계획을 설명합니다. 이에 스탈린 ‘남한의 미군병력은 어느 정돈가?’하고 묻습니다. 김일성 ‘2만명 정도입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다시 스탈린 ‘남한에 국군도 있는가?’ 하고 묻습니다. 김일성 ‘약 6만명 있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스탈린, 웃으면서 ‘북과 남 군대 어느 쪽이 센가?’하고 묻습니다. 이번엔 박헌영이 ‘물론 북쪽이 셉니다’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스탈린은 이때만 해도 ‘북한군이 남한군보다 절대 우위를 확보하지 못하는 한, 남한의 침략을 격퇴만해야지, 먼저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하고 결론을 내립니다.

그 열 달 뒤인 50년 1월 17일. 평양 박헌영의 관저. 소련, 중국의 외교관들을 위한 리셉션이 베풀어집니다. 김일성이 먼저 중국대사에게 ‘모택동은 내 친구로 나를 도와줄 것이요’라고 자신합니다. 이어 소련 참사관들에게 김일성 ‘중국 통일이 완료됐으니 이제는 남한을 해방시킬 차례요. 통일을 원하는 남한 인민의 열망을 저버리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하면은, 밤에 잠이 안 옵니다’라고 말합니다. 참사관들이 응답을 회피하자 다시 소련대사에게 다가온 김일성 ‘3일이면 응진반도를 끝내고, 며칠이면은 서울에 들어갈 수 있는데, 필리포프 동지는 왜 허락을 안 해주는지’ 하고 푸념합니다.

소련대사 스티코프는, 이 대화내용을 본국에 전하면서 김일성이 항상 공격구상만 하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석 달 뒤인 50년 4월.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하는 스탈린. 그러면서 중국의 동의를 받을 것을 요구합니다. 한 달 뒤인 50년 5월 15일 이에 동의하는 모택동. 김일성에게 ‘미군의 참전 가능성을 경계해야 합니다’하고 조언하는데, 김일성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하고 장담합니다.

그러나 미군을 비롯한 연합군의 참전으로 서울이 탈환된 바로 이튿날, 50년 9월 29일. 다급해진 김일성은 박헌영과 함께 스탈린에게 간곡한 부탁의 편지를 보냅니다. 박헌영의 친필로 된 이 편지에는, ‘친애하는 이요시포 비싸리요노비치 시여, 우리 자체 힘으로서는 이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당신의 특별한 원조를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한 단어에 한자와 한글이 섞여 쓰인 대목에서 당시 이들의 다급한 심정이 읽혀집니다.

KBS뉴스, 김진석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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