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몰 11일 동안 빗물과 종이상자로 연명

입력 1995.07.09 (21: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김종진 앵커 :

의료진들도 최 씨의 생환에 대해서 기적이라는 표현 이외의 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지를 갖고 살아온 최 씨의 밝고 건강한 모습은 삶의 환희를 새삼 일깨워 줬습니다.

김철민 기자의 취재입니다.


김철민 기자 :

마치 사나흘 잠을 자고 나은 것 같다는 최명석씨.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서 악몽 같은 230여 시간을 버티고 사고발생 11일 만에 구조 됐습니다. A동 지상2층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던 최 씨는 사고가 난 다음날부터 함께 매몰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숨지자 한때 절망적인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콘크리트 더미 속 한 평도 안 되는 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명석씨는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물에 젖어 퉁퉁 불어 종이상자를 뜯어 먹으며 굶주림을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최영석씨 :

빗물 조금 먹고……. 거의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김철민 기자 :

다행스럽게도 커다란 부상은 없었지만 지하에서 올라오는 유독가스와 화재열기로 숨이 턱까지 막혀왔습니다. 양말을 벗어 코와 입을 틀어막고 힘겨운 사투를 벌였습니다. 빗물과 소방수를 양말에 적셔 목을 추겨가며 견디기 힘든 갈증을 달랬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쏟아져 내린 빗물과 소방수가 최 씨에겐 또 하나의 실낱같은 생명수였습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감을 잊기 위해 불편한 몸을 조금씩 뒤척여 보기도 했고, 우연히 손에 잡힌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두려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력을 잃어 갔고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도 생겼습니다. 머리위에서 요란한 포클레인의 굉음이 울릴 때마다 또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아침 동이틀무렵 최 씨가 갇혀있던 깜깜한 틈 속으로 희미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려달라는 최 씨의 가느다란 음성이 중장비의 요란한 굉음을 뚫고 구조대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KBS 뉴스, 김철민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매몰 11일 동안 빗물과 종이상자로 연명
    • 입력 1995-07-09 21:00:00
    뉴스 9

김종진 앵커 :

의료진들도 최 씨의 생환에 대해서 기적이라는 표현 이외의 말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지를 갖고 살아온 최 씨의 밝고 건강한 모습은 삶의 환희를 새삼 일깨워 줬습니다.

김철민 기자의 취재입니다.


김철민 기자 :

마치 사나흘 잠을 자고 나은 것 같다는 최명석씨. 참혹한 죽음의 현장에서 악몽 같은 230여 시간을 버티고 사고발생 11일 만에 구조 됐습니다. A동 지상2층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있던 최 씨는 사고가 난 다음날부터 함께 매몰된 사람들이 하나 둘씩 숨지자 한때 절망적인 죽음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콘크리트 더미 속 한 평도 안 되는 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명석씨는 불편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정신을 가다듬었습니다. 물에 젖어 퉁퉁 불어 종이상자를 뜯어 먹으며 굶주림을 달래보기도 했습니다.


최영석씨 :

빗물 조금 먹고……. 거의 아무것도 안 먹었어요.


김철민 기자 :

다행스럽게도 커다란 부상은 없었지만 지하에서 올라오는 유독가스와 화재열기로 숨이 턱까지 막혀왔습니다. 양말을 벗어 코와 입을 틀어막고 힘겨운 사투를 벌였습니다. 빗물과 소방수를 양말에 적셔 목을 추겨가며 견디기 힘든 갈증을 달랬습니다. 사나흘에 한 번씩 쏟아져 내린 빗물과 소방수가 최 씨에겐 또 하나의 실낱같은 생명수였습니다. 죽음보다 무서운 공포감을 잊기 위해 불편한 몸을 조금씩 뒤척여 보기도 했고, 우연히 손에 잡힌 장난감을 가지고 놀며 두려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기력을 잃어 갔고 죽을 수도 있다는 절망감도 생겼습니다. 머리위에서 요란한 포클레인의 굉음이 울릴 때마다 또다시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아침 동이틀무렵 최 씨가 갇혀있던 깜깜한 틈 속으로 희미한 햇살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살려달라는 최 씨의 가느다란 음성이 중장비의 요란한 굉음을 뚫고 구조대원들에게 전해졌습니다.

KBS 뉴스, 김철민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2024 파리 패럴림픽 배너 이미지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