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현충일; 유격부대 군번없는 영웅들

입력 1996.06.0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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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찬 앵커 :

6.25 당시 3.8선 일대와 또 북한 후방지역에서는 자생적인 여러 유격부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게릴라전을 통해서 자유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불태웠지만은 군적도 또 군번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보훈 혜택은 커녕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준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준희 기자 :

해마다 현충일만 되면 국립묘지 한쪽 위령비 앞에 모이는 노병들 이들은 6.25전쟁 당시 주로 북한의 후방지역에서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공산주의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던 유격부대원들입니다. 당시 4만여명에 이르던 유격부대는 각 지역에 따라 구월산 돈키부대 백골병단 태극단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휴전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입니다.


⊙한윤홍 (당시 공수유격부대원) :

교량 파괴, 고사포 진지 파괴, 후방의 보급로 차단 또 적 주요 시설물 같은거를 파괴하고


⊙이준희 기자 :

이들 유격부대는 모두 4천4백여회에 걸친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북한군 7만여명을 사살하고 2개 군단 병력을 후방에 묶어놓는 빛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휴전후 만3천여명이 육군에 정식 편입됐을뿐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점차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시절 나라를 위해 수없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지만 정식 군인이 아니었다는 이유 때문에 유공자 등록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전사자의 위패만 대전 국립묘지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


⊙장예규 (한국유격군전우회장) :

전사한 사람에 대한 직위도 알아줘야 될 뿐만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가 노력한 사람들에게도 나라에서는 그만큼 인정을 해줘야 되지 않겠느냐


⊙이준희 기자 :

총성이 멎은뒤 43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 고희를 바라보는 이들 노병들은 맺힌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자꾸만 줄어드는 여생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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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현충일; 유격부대 군번없는 영웅들
    • 입력 1996-06-06 21:00:00
    뉴스 9

⊙류근찬 앵커 :

6.25 당시 3.8선 일대와 또 북한 후방지역에서는 자생적인 여러 유격부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게릴라전을 통해서 자유를 지키려는 굳은 의지를 불태웠지만은 군적도 또 군번도 없었기 때문에 전쟁이 끝나고 4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보훈 혜택은 커녕 우리들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져가고 있습니다.


이준희 기자의 보도입니다.


⊙이준희 기자 :

해마다 현충일만 되면 국립묘지 한쪽 위령비 앞에 모이는 노병들 이들은 6.25전쟁 당시 주로 북한의 후방지역에서 군번도 계급장도 없이 공산주의에 맞서 게릴라전을 벌였던 유격부대원들입니다. 당시 4만여명에 이르던 유격부대는 각 지역에 따라 구월산 돈키부대 백골병단 태극단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휴전때까지 활발한 활동을 벌입니다.


⊙한윤홍 (당시 공수유격부대원) :

교량 파괴, 고사포 진지 파괴, 후방의 보급로 차단 또 적 주요 시설물 같은거를 파괴하고


⊙이준희 기자 :

이들 유격부대는 모두 4천4백여회에 걸친 크고 작은 전투를 통해 북한군 7만여명을 사살하고 2개 군단 병력을 후방에 묶어놓는 빛나는 전과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휴전후 만3천여명이 육군에 정식 편입됐을뿐 나머지 유격대원들은 점차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젊은시절 나라를 위해 수없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였지만 정식 군인이 아니었다는 이유 때문에 유공자 등록은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전사자의 위패만 대전 국립묘지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


⊙장예규 (한국유격군전우회장) :

전사한 사람에 대한 직위도 알아줘야 될 뿐만이 아니라 살아서 우리가 노력한 사람들에게도 나라에서는 그만큼 인정을 해줘야 되지 않겠느냐


⊙이준희 기자 :

총성이 멎은뒤 43년이 흐른 지금 대부분 고희를 바라보는 이들 노병들은 맺힌 한을 가슴에 묻은 채 자꾸만 줄어드는 여생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KBS 뉴스, 이준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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