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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음주 운전자 괜히 잡았어요”
입력 2018.10.02 (15:40) 수정 2018.10.02 (22:26) 취재후
‘이번에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영상을 공유 드립니다’

지난달 28일 금요일, 이런 문구와 함께 영상이 담긴 제보가 왔습니다.

영상은 음주 운전자를 쫓아간 한 시민의 차량 블랙박스였습니다. 영상 속에서 앞 차량은 차선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곡예운전을 했습니다. 차량과 부딪칠 뻔한 상황이 10분 이상 계속됐습니다. 음주운전 차량이었습니다. 급기야 차량 운전자는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사이 경찰은 화면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 제보자의 전화번호가 없었지만 여기저기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 용감한 시민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연관기사] 시민이 ‘20분 추격’ 만취 운전자 잡아…경찰은 “관할 아닌데?”

보도 이후에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용감한 시민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경찰의 대응을 비판한 보도였기에 혹시 제보자에게 불이익은 없는지 확인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보도 이후 취재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더 알아보고자 했던 것은 크게 두 부분이었습니다.

● 시민이 음주 운전자를 잡을 때까지 경찰은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 보도가 나간 후 제보자는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했는지

지난 주말 동안 취재해보니 사건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무얼 하고 있었나?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관할을 따진 경찰'이었습니다. 실제로 출동한 경찰은 지역경계에서 추격을 멈췄습니다. 제보자 이성용 씨 형제의 처음 112신고는 서울 구로지역 경찰에게 전달됐습니다. 신고 장소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지하철 7호선 천왕역 주변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제 경인로에 진입했고 부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제보자 이야기를 듣고 경찰은 더는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경찰에 이유를 물었습니다.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이미 제보자와 음주 운전자 차량이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경찰에 공조 요청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출동은 했지만 이미 관할을 넘어갔기 때문에 추격은 안 했다는 겁니다.

제보자 블랙박스 화면 ‘KBS 자막뉴스’제보자 블랙박스 화면 ‘KBS 자막뉴스’

"아! 왜 전화 안 와!"

이성용 씨가 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다시 살폈습니다. 신고 후 서울지역 경찰이 걸었던 전화 이후 4분 동안 경찰은 연락이 없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제보자는 출동한 경찰 휴대전화 번호로 두 번 전화했지만 경찰은 제보자 전화를 받지도,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시각, 음주 운전자 신고 건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부천지역 경찰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한 박자 늦었습니다. 음주 운전자가 앞 차량을 들이받아 차량을 버리고 도망가는 순간에도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용 씨가 음주 운전자와 몸싸움을 벌여 제압하고 몇 분 기다린 후에 나타났습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5일 오후 7시 32분에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공조 요청을 받아 7시 33분에 현장 출동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후 7시 40분쯤에 신고자와 음주 운전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냥 갔던' 순찰차는 당시 미아신고를 받아 다른 곳으로 출동 중이던 순찰차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제보자가 음주 운전자 잡고 있고, 경찰이 달려가고 있다. 이현용 씨 제공제보자가 음주 운전자 잡고 있고, 경찰이 달려가고 있다. 이현용 씨 제공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지역 경찰이 왜 추격을 안 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경찰은 '도주차량 추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교통법규 위반 중에서 음주운전이나 타 관할 내 추격 등 위험 수준이 높으면 '추격을 중지할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위험하면 추격을 중지할 수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경찰은 "무리해서 추격하지 말라는 취지로 '추격 중지 가능'이라고 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경찰이 무리해서 추격하면 2차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가이드라인에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경우에는 '위험이 높은 수준에도 추격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고 경찰은 덧붙였습니다. 음주운전 차량은 '추격을 중지'할 수 있고, 강력범죄와 관련한 차량은 '추격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는 겁니다.

경찰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이성용 씨에게 제압된 음주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4% 만취 상태였습니다. 경찰이 '위험 수준이 높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음주 차량이 도로를 질주하는 사이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의 위험 수준은 판단의 근거가 안 됐을까요?

"빨리 가시라고요"..."괜히 신고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주 운전자를 추격하고 몸싸움해서 잡은 이성용 씨는 경찰로부터 표창을 준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말을 들은 것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이 씨는 경찰이 따로 한 말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계속하면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음주 운전자를 경찰에 넘겨준 직후 상황이었습니다. 형제인 이성용 씨와 이현용 씨는 음주 운전자가 검거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경찰이 신경질적으로 "빨리 가시라고요"라는 말을 했다고 두 형제는 말했습니다.

경찰 대신 음주 운전자를 잡아서 넘겨줬지만, "빨리 가라"면서 화를 내는 경찰을 보고 두 형제는 불쾌했다고 말했습니다. 112에 맨 처음 전화한 이현용 씨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빨리 가라'는 식의 짜증 섞인 말까지 들었다"면서 "사실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뒤늦게 말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검거된 음주 운전자가 당시에 행패와 욕설을 했고, 주변 시민의 안전과 다른 사건의 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이 제보자에게 가시라고 말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경찰은 "사건 처리하고 나서 음주 운전자 혈중알코올 수치 등의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성용(음주 운전자 잡은 시민)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KBS 자막뉴스’이성용(음주 운전자 잡은 시민)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KBS 자막뉴스’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여기서 안 잡으면 음주 운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고를 내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가 다칠 수 있으니까요" 이성용 씨는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음주 차량을 추격하다 자신이 신체적·경제적 피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이성용 씨와 이현용 씨는 이런 계산 없이 음주 운전자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서울과 경기도의 관할구역을 계산했습니다.

타인의 안전을 우려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두 형제는 경찰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현장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정말 슬펐던 건 제보자가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도 드네요"라고 말한 겁니다. 이 형제가 또 이런 상황을 접했을 때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행동에 나설까? 이들의 의로운 생각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부디 그러지 않길 빕니다.
  • [취재후] “음주 운전자 괜히 잡았어요”
    • 입력 2018-10-02 15:40:43
    • 수정2018-10-02 22:26:05
    취재후
‘이번에는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상황이라 영상을 공유 드립니다’

지난달 28일 금요일, 이런 문구와 함께 영상이 담긴 제보가 왔습니다.

영상은 음주 운전자를 쫓아간 한 시민의 차량 블랙박스였습니다. 영상 속에서 앞 차량은 차선 하나 제대로 지키지 못하면서 곡예운전을 했습니다. 차량과 부딪칠 뻔한 상황이 10분 이상 계속됐습니다. 음주운전 차량이었습니다. 급기야 차량 운전자는 차를 버리고 달아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그 사이 경찰은 화면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찌 된 일일까? 제보자의 전화번호가 없었지만 여기저기 연락처를 수소문해 이 용감한 시민을 만나 취재할 수 있었습니다.

[연관기사] 시민이 ‘20분 추격’ 만취 운전자 잡아…경찰은 “관할 아닌데?”

보도 이후에 제보자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용감한 시민을 소개하면서 동시에 경찰의 대응을 비판한 보도였기에 혹시 제보자에게 불이익은 없는지 확인하자는 차원이었습니다. 보도 이후 취재를 하면서 중점적으로 더 알아보고자 했던 것은 크게 두 부분이었습니다.

● 시민이 음주 운전자를 잡을 때까지 경찰은 왜 나타나지 않았는지
● 보도가 나간 후 제보자는 어떤 상황이었고 무슨 생각을 하고 했는지

지난 주말 동안 취재해보니 사건을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었습니다.

경찰은 무얼 하고 있었나?

가장 문제가 됐던 부분은 '관할을 따진 경찰'이었습니다. 실제로 출동한 경찰은 지역경계에서 추격을 멈췄습니다. 제보자 이성용 씨 형제의 처음 112신고는 서울 구로지역 경찰에게 전달됐습니다. 신고 장소가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지하철 7호선 천왕역 주변이었기 때문입니다. 경찰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이제 경인로에 진입했고 부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제보자 이야기를 듣고 경찰은 더는 움직이질 않았습니다. 경찰에 이유를 물었습니다. 해당 경찰서 관계자는 "이미 제보자와 음주 운전자 차량이 서울을 벗어나서 경기도 경찰에 공조 요청을 했다"고 말했습니다. 출동은 했지만 이미 관할을 넘어갔기 때문에 추격은 안 했다는 겁니다.

제보자 블랙박스 화면 ‘KBS 자막뉴스’제보자 블랙박스 화면 ‘KBS 자막뉴스’

"아! 왜 전화 안 와!"

이성용 씨가 준 차량 블랙박스 영상을 다시 살폈습니다. 신고 후 서울지역 경찰이 걸었던 전화 이후 4분 동안 경찰은 연락이 없었습니다. 다급한 마음에 제보자는 출동한 경찰 휴대전화 번호로 두 번 전화했지만 경찰은 제보자 전화를 받지도, 나중에 전화를 다시 하지도 않았습니다. 같은 시각, 음주 운전자 신고 건은 서울지방경찰청에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으로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경기도 부천지역 경찰이 달려오고 있었지만 한 박자 늦었습니다. 음주 운전자가 앞 차량을 들이받아 차량을 버리고 도망가는 순간에도 경찰은 현장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이성용 씨가 음주 운전자와 몸싸움을 벌여 제압하고 몇 분 기다린 후에 나타났습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5일 오후 7시 32분에 서울지방경찰청으로부터 공조 요청을 받아 7시 33분에 현장 출동을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오후 7시 40분쯤에 신고자와 음주 운전자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한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냥 갔던' 순찰차는 당시 미아신고를 받아 다른 곳으로 출동 중이던 순찰차였다고 해명했습니다.

제보자가 음주 운전자 잡고 있고, 경찰이 달려가고 있다. 이현용 씨 제공제보자가 음주 운전자 잡고 있고, 경찰이 달려가고 있다. 이현용 씨 제공

신고를 받고 출동한 서울지역 경찰이 왜 추격을 안 했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경찰은 '도주차량 추격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습니다. 교통법규 위반 중에서 음주운전이나 타 관할 내 추격 등 위험 수준이 높으면 '추격을 중지할 수 있다'고 해명했습니다.

'위험하면 추격을 중지할 수 있다…' 다시 물었습니다. 경찰은 "무리해서 추격하지 말라는 취지로 '추격 중지 가능'이라고 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경찰이 무리해서 추격하면 2차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같은 가이드라인에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경우에는 '위험이 높은 수준에도 추격이 가능하다'고 되어 있다고 경찰은 덧붙였습니다. 음주운전 차량은 '추격을 중지'할 수 있고, 강력범죄와 관련한 차량은 '추격이 가능하다'고 돼 있다는 겁니다.

경찰의 판단이 있었겠지만, 이성용 씨에게 제압된 음주 운전자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144% 만취 상태였습니다. 경찰이 '위험 수준이 높다'고 판단한 근거는 무엇이었을까요? 또 음주 차량이 도로를 질주하는 사이 다른 운전자와 보행자의 위험 수준은 판단의 근거가 안 됐을까요?

"빨리 가시라고요"..."괜히 신고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주 운전자를 추격하고 몸싸움해서 잡은 이성용 씨는 경찰로부터 표창을 준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후 별다른 말을 들은 것은 없는지 물었습니다. 이 씨는 경찰이 따로 한 말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취재를 계속하면서 다소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음주 운전자를 경찰에 넘겨준 직후 상황이었습니다. 형제인 이성용 씨와 이현용 씨는 음주 운전자가 검거되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어 자리를 뜨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한 경찰이 신경질적으로 "빨리 가시라고요"라는 말을 했다고 두 형제는 말했습니다.

경찰 대신 음주 운전자를 잡아서 넘겨줬지만, "빨리 가라"면서 화를 내는 경찰을 보고 두 형제는 불쾌했다고 말했습니다. 112에 맨 처음 전화한 이현용 씨는 "고맙다는 말은커녕 '빨리 가라'는 식의 짜증 섞인 말까지 들었다"면서 "사실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뒤늦게 말했습니다.

경찰은 이에 대해 "검거된 음주 운전자가 당시에 행패와 욕설을 했고, 주변 시민의 안전과 다른 사건의 발생을 막기 위해 경찰이 제보자에게 가시라고 말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어 경찰은 "사건 처리하고 나서 음주 운전자 혈중알코올 수치 등의 결과를 전화로 알려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고 답했습니다.

이성용(음주 운전자 잡은 시민)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KBS 자막뉴스’이성용(음주 운전자 잡은 시민)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KBS 자막뉴스’

"음주 운전자는 꼭 잡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뒤쫓았어요. 여기서 안 잡으면 음주 운전자가 다른 곳에서 사고를 내 보행자나 다른 운전자가 다칠 수 있으니까요" 이성용 씨는 담담하게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음주 차량을 추격하다 자신이 신체적·경제적 피해를 볼 수도 있었지만, 이성용 씨와 이현용 씨는 이런 계산 없이 음주 운전자를 잡았습니다. 하지만 경찰은 서울과 경기도의 관할구역을 계산했습니다.

타인의 안전을 우려해 위험을 무릅썼지만, 두 형제는 경찰에게 친절한 말 한마디 듣지 못하고 현장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정말 슬펐던 건 제보자가 "괜히 신고했다는 생각도 드네요"라고 말한 겁니다. 이 형제가 또 이런 상황을 접했을 때 자신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행동에 나설까? 이들의 의로운 생각이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닐까?...부디 그러지 않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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