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본문 영역

상세페이지

이슈 한반도, 평화로 가는 길
[특파원리포트] 주독 남북대사의 ‘브로맨스’…“비핵화 진전이 향후 관건”
입력 2018.10.09 (11:12) 수정 2018.10.09 (11:30) 특파원 리포트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얼싸안은 두 사람. 남,북의 독일 주재 대사인 정범구(남), 박남영(북) 대사다. 지난 2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이전식. 두 대사는 이 날 두 시간 가량을 함께 하며 오랜 친구처럼 시종일관 환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뜻하는 ‘브로맨스’라 부를 만 하다.


정범구 대사는 평양냉면을 소재로 인사말을 꺼냈다.

정범구: 요새 남한에서는 옥류관 냉면 때문에 제가 잘 다니던 서울의 평양냉면집 앞에 요새 줄을 엄청 서요. 우리 대사님도 서울에 오셔서 서울에서 나오는 평양냉면 한 번…

박남영: 언제 정 대사님하고 국수 한 번 먹어볼 날이 오겠는지…(하하하)

박남영 대사는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의 초대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의미가 남다른 거 같다. 대사님이 참석해서…”라고 하니, 정범구 대사가 먼저 말을 받았다.

정범구: 저보다 인기가 훨씬 많으세요. 지난번 6.15 행사 때도 우리 박 대사 오시니까 저는 그냥…
박남영: (정 대사를 가리키며) 여기야 항상 몸을 잠그고 있는 거고(전적으로 달라붙다는 뜻), 우리야…

실제로 취재진을 비롯해 한독 양측의 많은 참석자들이 두 대사를 에워싸고 사진을 찍는 등 관심을 보였다.

정범구: 우리 둘이 있으니까 그림이 되는 모양이에요. 혼자 있으면 그림이 안 되는데… 남북이 함께 있어야 그림이 되는 거야.

필자는 박남영 대사에게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박 대사는“성명과 선언을 통해 알고 계시죠? 그 내용 다 자세히 알고 계시니까 여기서 특별히 뭐…”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다시 한 번 “지난 6월 행사에서는 민족자주 원칙 얘기해 주셨는데 이번에는?”이라고 재차 물었지만 더 이상의 답변은 없었다. 6월 9일 베를린 한인교회에서는 6.15공동선언 기념행사가 열렸고 이 때도 두 대사는 자리를 함께 했다.


이어진 상량식 행사. 박 대사는 처음 대하는 상량식 절차를 낯설어 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상량식 마룻대를 올리기 전에 도편수와 건축 관계자들의 이름을 담은 상량기문을 정 대사와 함께 마룻대에 넣었다. 또 막걸리를 따라 상에 올리고 삼배(三拜)의 예를 갖췄다. 막걸리를 정자 기둥에 부으며 ‘고수레’도 함께 외쳤다.

정범구 대사는 인사말을 통해 “올해 남북의 지도자가 짧은 시간에 세 번을 만났는데, 저와 박남영 대사도 벌써 세 번째 만났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전쟁과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며 “내일(10월 3일)이 독일 통일 28주년이 된다. 우리에게도 결국 갈라져 있는 민족이 하나로 되는 게 지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박 대사의 발언이 나왔다. 박 대사는 준비한 인사말을 통해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조선반도를 건설하려는 북남의 노력을 도이칠란트(독일) 측에서도 적극 지지 찬동해주고 또 조선학연구소가 적극적으로 기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외에 주재하는 북한대사가 비핵화에 대해 이렇게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힌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의례적인 인사말 정도를 예상했던 필자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남북 공동행사가 아닌 우리 측 행사에 참석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파격의 연속이었다.


상량식 행사를 마치고도 박 대사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학연구소 내부를 둘러봤다.
정 대사가 “박 대사 인기가 아이돌 수준”이라고 치켜세우자 박 대사는 “(지난 7월) 평양에 갔을 때 외신 통해서 봤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더라”며 화답했다. 정 대사가 임기가 3년쯤 된다며 “박 대사님 오래 계세요. 나는 한 2년은 더 있을 거 같으니까. 저 있는 동안 같이 좀 있으면서…”라고 하자, 박 대사가 받아 “정 대사가 돌아가면 나도 그때 가야죠”라고 껄껄 웃었다. 이 날 박 대사의 언행은 너무 격의 없는 자연스러운 태도여서 여느 국가 대사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실 북한 외교관들의 해외에서의 말과 행동은 크게 제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만난 폴란드 대사 출신 전직 외교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전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평일이 김일성 주석 직계 가족으로서 주재국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였지만, 남측과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2016년 10월, 연수 차 뉴욕의 미국 유엔대표부를 방문해 북한 외교관들의 외교 일선 모습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미국 유엔대표부 관계자는 “북한 외교관들이 김정은으로부터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북측 대표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북한 외교관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농담처럼 “우리가 다가가도 북한이 도망할 것”이라고 말한 뒤, 한국 대표부도 북한과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계속된 도발로 국제사회가 최대압박 정책을 추진하던 때여서, 미국 역시 북한을 ‘교류 금지 국가 목록’에 포함시키며 접촉을 제한하고 있었다.


다시 박남영 대사 얘기로 돌아가 보자. 박 대사는 2017년 4월 독일에 부임했다. 세 번째 시도 끝에 독일 정부의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받았다. 북한은 2016년 4월 리시홍 전 대사를 귀국시킨 뒤 후임으로 박 대사를 임명했지만, 독일 정부가 아그레망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귀국했던 전임 리 대사가 다시 베를린으로 복귀해 한동안 업무를 보기도 했다. 당시 유엔 결의를 지속적으로 위반하는 북한에 대한 독일 정부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나라를 불문하고 북한대사는 공식 외교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 등 잔뜩 움츠려 왔고, 이 때문에 남북대사가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변했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와 교류협력 추진에 합의했다. 북미 정상의 2차 회담도 임박했다. 남북, 북미간 실무급 접촉도 활발해지고 있다. 박남영 대사의 언행이 개인적인 판단에서 나온 게 아님이 분명한 만큼, 다른 국가에서도 북한 외교관들의 접촉면이 확대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전세계 54곳에 재외공관을 두고 있다. 우리 164곳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일부 국가에서는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도 독일을 비롯해 러시아, 루마니아,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전역에 걸쳐 12개의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조성된 대화 분위기 속에서 그간의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북한 재외공관의 외교 활동은 한층 왕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앞으로의 행보는 비핵화 협상 과정이 상당 부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 외교관들의 입지 확장 노력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은 여전하다. 독일 정부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공식 논평을 아직 내놓지 않을 정도로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독 北 대사 “핵무기 없는 한반도 위해 남북 같이 노력” (10월 3일 뉴스광장)
  • [특파원리포트] 주독 남북대사의 ‘브로맨스’…“비핵화 진전이 향후 관건”
    • 입력 2018-10-09 11:12:42
    • 수정2018-10-09 11:30:04
    특파원 리포트
환한 표정으로 서로를 얼싸안은 두 사람. 남,북의 독일 주재 대사인 정범구(남), 박남영(북) 대사다. 지난 2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베를린자유대 한국학연구소 이전식. 두 대사는 이 날 두 시간 가량을 함께 하며 오랜 친구처럼 시종일관 환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뜻하는 ‘브로맨스’라 부를 만 하다.


정범구 대사는 평양냉면을 소재로 인사말을 꺼냈다.

정범구: 요새 남한에서는 옥류관 냉면 때문에 제가 잘 다니던 서울의 평양냉면집 앞에 요새 줄을 엄청 서요. 우리 대사님도 서울에 오셔서 서울에서 나오는 평양냉면 한 번…

박남영: 언제 정 대사님하고 국수 한 번 먹어볼 날이 오겠는지…(하하하)

박남영 대사는 베를린자유대 한국학과장인 이은정 교수의 초대로 축하하는 의미에서 참석했다고 설명했다. 필자가 “의미가 남다른 거 같다. 대사님이 참석해서…”라고 하니, 정범구 대사가 먼저 말을 받았다.

정범구: 저보다 인기가 훨씬 많으세요. 지난번 6.15 행사 때도 우리 박 대사 오시니까 저는 그냥…
박남영: (정 대사를 가리키며) 여기야 항상 몸을 잠그고 있는 거고(전적으로 달라붙다는 뜻), 우리야…

실제로 취재진을 비롯해 한독 양측의 많은 참석자들이 두 대사를 에워싸고 사진을 찍는 등 관심을 보였다.

정범구: 우리 둘이 있으니까 그림이 되는 모양이에요. 혼자 있으면 그림이 안 되는데… 남북이 함께 있어야 그림이 되는 거야.

필자는 박남영 대사에게 이번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박 대사는“성명과 선언을 통해 알고 계시죠? 그 내용 다 자세히 알고 계시니까 여기서 특별히 뭐…”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다시 한 번 “지난 6월 행사에서는 민족자주 원칙 얘기해 주셨는데 이번에는?”이라고 재차 물었지만 더 이상의 답변은 없었다. 6월 9일 베를린 한인교회에서는 6.15공동선언 기념행사가 열렸고 이 때도 두 대사는 자리를 함께 했다.


이어진 상량식 행사. 박 대사는 처음 대하는 상량식 절차를 낯설어 하면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했다. 상량식 마룻대를 올리기 전에 도편수와 건축 관계자들의 이름을 담은 상량기문을 정 대사와 함께 마룻대에 넣었다. 또 막걸리를 따라 상에 올리고 삼배(三拜)의 예를 갖췄다. 막걸리를 정자 기둥에 부으며 ‘고수레’도 함께 외쳤다.

정범구 대사는 인사말을 통해 “올해 남북의 지도자가 짧은 시간에 세 번을 만났는데, 저와 박남영 대사도 벌써 세 번째 만났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두 정상이 평양에서 만나 전쟁과 핵무기가 없는 한반도를 만들자는 데 합의했다”며 “내일(10월 3일)이 독일 통일 28주년이 된다. 우리에게도 결국 갈라져 있는 민족이 하나로 되는 게 지상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한 박 대사의 발언이 나왔다. 박 대사는 준비한 인사말을 통해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조선반도를 건설하려는 북남의 노력을 도이칠란트(독일) 측에서도 적극 지지 찬동해주고 또 조선학연구소가 적극적으로 기여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외에 주재하는 북한대사가 비핵화에 대해 이렇게 명시적으로 입장을 밝힌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의례적인 인사말 정도를 예상했던 필자의 예측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남북 공동행사가 아닌 우리 측 행사에 참석한 것도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했는데, 파격의 연속이었다.


상량식 행사를 마치고도 박 대사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학연구소 내부를 둘러봤다.
정 대사가 “박 대사 인기가 아이돌 수준”이라고 치켜세우자 박 대사는 “(지난 7월) 평양에 갔을 때 외신 통해서 봤다고 이구동성으로 얘기하더라”며 화답했다. 정 대사가 임기가 3년쯤 된다며 “박 대사님 오래 계세요. 나는 한 2년은 더 있을 거 같으니까. 저 있는 동안 같이 좀 있으면서…”라고 하자, 박 대사가 받아 “정 대사가 돌아가면 나도 그때 가야죠”라고 껄껄 웃었다. 이 날 박 대사의 언행은 너무 격의 없는 자연스러운 태도여서 여느 국가 대사들과 달라 보이지 않았다.

사실 북한 외교관들의 해외에서의 말과 행동은 크게 제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만난 폴란드 대사 출신 전직 외교관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전 폴란드 주재 북한대사에 관한 얘기를 들려줬다. 김평일이 김일성 주석 직계 가족으로서 주재국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였지만, 남측과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설명했다.

필자는 2016년 10월, 연수 차 뉴욕의 미국 유엔대표부를 방문해 북한 외교관들의 외교 일선 모습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미국 유엔대표부 관계자는 “북한 외교관들이 김정은으로부터 허락을 받을 수 있을까?”라고 의문을 제기하며, 북측 대표들과 의미 있는 대화를 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또 “북한 외교관 대부분이 사회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농담처럼 “우리가 다가가도 북한이 도망할 것”이라고 말한 뒤, 한국 대표부도 북한과 그렇게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당시는 북한의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 계속된 도발로 국제사회가 최대압박 정책을 추진하던 때여서, 미국 역시 북한을 ‘교류 금지 국가 목록’에 포함시키며 접촉을 제한하고 있었다.


다시 박남영 대사 얘기로 돌아가 보자. 박 대사는 2017년 4월 독일에 부임했다. 세 번째 시도 끝에 독일 정부의 아그레망(주재국 임명동의)을 받았다. 북한은 2016년 4월 리시홍 전 대사를 귀국시킨 뒤 후임으로 박 대사를 임명했지만, 독일 정부가 아그레망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이 때문에 귀국했던 전임 리 대사가 다시 베를린으로 복귀해 한동안 업무를 보기도 했다. 당시 유엔 결의를 지속적으로 위반하는 북한에 대한 독일 정부의 경고라는 해석이 나왔다. 국제사회의 제재가 계속되면서 나라를 불문하고 북한대사는 공식 외교행사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 등 잔뜩 움츠려 왔고, 이 때문에 남북대사가 만날 기회는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변했다. 남북 정상은 세 차례 만나 한반도 긴장완화와 교류협력 추진에 합의했다. 북미 정상의 2차 회담도 임박했다. 남북, 북미간 실무급 접촉도 활발해지고 있다. 박남영 대사의 언행이 개인적인 판단에서 나온 게 아님이 분명한 만큼, 다른 국가에서도 북한 외교관들의 접촉면이 확대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북한은 전세계 54곳에 재외공관을 두고 있다. 우리 164곳과 비교하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지역 일부 국가에서는 견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도 독일을 비롯해 러시아, 루마니아, 스웨덴, 스위스, 스페인, 영국, 이탈리아 등 전역에 걸쳐 12개의 대사관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조성된 대화 분위기 속에서 그간의 고립에서 탈피하기 위한 북한 재외공관의 외교 활동은 한층 왕성해질 것이다. 하지만 결국 앞으로의 행보는 비핵화 협상 과정이 상당 부분 좌우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미를 포함한 국제사회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핵화에 실질적 진전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북한 외교관들의 입지 확장 노력도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북한 비핵화 의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심은 여전하다. 독일 정부는 평양공동선언에 대한 공식 논평을 아직 내놓지 않을 정도로 유보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관련기사] 주독 北 대사 “핵무기 없는 한반도 위해 남북 같이 노력” (10월 3일 뉴스광장)
kbs가 손수 골랐습니다. 네이버에서도 보세요.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