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탈북민에 나누는 설 떡국의 온정

입력 2019.02.02 (08:20) 수정 2019.02.0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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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표적인 설 음식, 우리 국민이면 열에 아홉은 아마 떡국을 떠올리실 겁니다.

북한의 떡국은 돼지고기를 넣는 등 우리와는 조금 재료가 다르다고 하네요.

얼마 전 설을 외로이 보내는 탈북민을 위로하기 위한 떡국 나눔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떡국 한 그릇을 통해 가족애는 물론 남북간의 훈훈한 정을 나눴다고 합니다.

정은지 리포터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광주광역시의 한 떡집.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데요.

곱게 갈아놓은 쌀을 반죽해 쪄내기를 반복하자 보기만 해도 쫄깃한 가래떡이 나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재빨리 포장하는 손길도 바쁜데요.

오늘 모인 사람들은 탈북민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 단체의 회원들.

코 앞으로 다가온 설을 맞아 탈북민을 위한 떡국 나눔 행사를 열기로 했습니다.

[강삼규/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평소에는 저희가 사단법인을 통해서 쌀을 기부했었는데 이번에는 탈북민과 함께 떡국을 먹는다기에 이렇게 한번 와서 돕게 됐습니다."]

정성스레 포장된 가래떡을 들고 이제 음식을 준비하러 갑니다.

근처 회관의 식당 부엌에선 이미 떡국 끓일 준비가 한창입니다.

잘 우러난 육수에 가래떡을 넣고, 떡국에 올릴 고명 하나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김연화/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제일 중요한 건 육수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요. 아무래도 정성이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하고 함께 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같이 함께하시고 즐거운 마음, 그런 마음으로 같이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설까지는 후원자들에게 기부 받은 쌀을 탈북민 가정에 배달하는 형식이었지만, 일부 탈북민들이 느낄 가정 방문에 대한 부담감을 고려해 올해는 떡국 나눔 행사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현정/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북한에 계시는 가족분들이나 많은 분들의 명절이 더 외롭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런 말씀들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고 저희가 가족처럼 같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행사가 뭘까 생각을 하다가 같이 떡국을 나누게 됐습니다."]

어느덧 다가온 점심시간.

떡국을 맛보려는 탈북민들로 금새 자리가 다 찼습니다.

떡국을 처음 맛본다는 탈북민들도 많은데요.

구정보다는 1월 1일 신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에선 설 음식도 떡국보다는 송편이 보편적이랍니다.

[서은숙/2013년 탈북 : "북한에서는 거의 그냥 떡국보다는 떡이요. 뭐 집에서 여러 가지 떡, 송편이랑 그런 거 해서 먹는 것 같아요. (떡국 맛이 어떠세요?) 좋은 분들이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7년 전 탈북한 진숙씨도 아들과 이 곳을 찾았습니다.

탈북 당시 어린 아들과 헤어졌던 진숙 씨는 두 달 전, 오랜 노력 끝에 극적으로 아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진숙/2012년 탈북 : "(아드님 떡국 먹는 모습 보니까 어떠신가요?) 너무 좋아요. 7년 만에 보거든요. 7살 때 두고 와서 지금 14살인데 정말 너무 좋고 진짜 고생스럽더라도 어떻게 잘 이겨내서 통일되는 날 우리 아들하고 고향으로 가야죠."]

아들과 함께 하는 기쁨만큼이나 떡국에 담긴 온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데요.

[이진숙/2012년 탈북 : "북에는 친척이 얼마 없었어요. 그러다보니까 항상 아이들하고 외롭게 보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래도 명절 때마다 회사에서 선물도 주고 구정이라고 이렇게 떡국도 차려주고 하니까 좀 마음이 한결 편안해요. 따뜻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모여 맛있는 떡국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처음에는 어색했던 봉사자와 탈북민들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는데요.

모두에게 마음이 풍성해지는 한 끼 식사가 되었습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떡은 이제 집에 가져가시는 거예요?) 네. 가져가서 아들, 형제들하고 같이 나눠 먹으려고요."]

11년 전 남으로 왔다는 탈북민 현정 씨는 오늘 받은 떡으로 처음으로 떡국 만들기에 도전해볼 참인데요.

[양현정/2008년 탈북 : "(우와 이게 뭐예요?) 고향에서 즐겨 먹던 두부밥인데 지금 한국에서 말하면 유부초밥 비슷한 두부밥이라고 해요."]

떡국과 함께 북한 명절음식까지, 한 상을 뚝딱 차려냈습니다.

몇 년 간 쌀과 떡을 지원해줬던 단체의 회원들에게도 한 끼 식사를 대접했는데요.

떡국 한 그릇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해봅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남이 음식을 소중한 손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을 받아먹는다는 게 정말 너무 행복한 거 있죠? 사람들도 진짜 모두 다 감사하다 하더라고요 그런 사랑 처음 받아보니까."]

행복한 명절 식사 자리지만 북녘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양춘실/동생/2010년 탈북 : "고향에서 우리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이걸 같이 먹었더라면 그 기쁨이 몇 배, 곱으로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고향에 있는 언니들이랑 가족들에게는 그 떡국을 같이 나눌 수 없다는 그런 생각에 조금 자책감이 들죠."]

함께 하는 식사가 현정 씨 같은 탈북민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기를 탈북민 지원단체 회원들도 바라 봅니다.

[김치곤/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이사장 : "이 분(탈북민)들은 이 땅에 먼저 온 통일입니다. 이분들이 이 땅에 잘 정착해야 만이 앞으로 장차 다가올 통일의 첫발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지만 명절에는 더 짙어질 수 밖에 없을 고향 생각.

그 그리움을 달래주는 건 언젠가 이뤄질 통일에 대한 희망입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다 같이 앉아 먹으니까 아 바로 이 순간이 남과 북이 하나로 모여서 하나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고 그런 일들이 여러 번 계속된다면 우리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남북이 어울려 함께 떡국을 먹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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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탈북민에 나누는 설 떡국의 온정
    • 입력 2019-02-02 08:21:36
    • 수정2019-02-02 08:3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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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표적인 설 음식, 우리 국민이면 열에 아홉은 아마 떡국을 떠올리실 겁니다.

북한의 떡국은 돼지고기를 넣는 등 우리와는 조금 재료가 다르다고 하네요.

얼마 전 설을 외로이 보내는 탈북민을 위로하기 위한 떡국 나눔 행사가 열렸다고 합니다.

떡국 한 그릇을 통해 가족애는 물론 남북간의 훈훈한 정을 나눴다고 합니다.

정은지 리포터와 함께 가보시죠.

[리포트]

광주광역시의 한 떡집.

이른 아침부터 분주한데요.

곱게 갈아놓은 쌀을 반죽해 쪄내기를 반복하자 보기만 해도 쫄깃한 가래떡이 나옵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가래떡을 재빨리 포장하는 손길도 바쁜데요.

오늘 모인 사람들은 탈북민의 자립을 돕는 비영리 단체의 회원들.

코 앞으로 다가온 설을 맞아 탈북민을 위한 떡국 나눔 행사를 열기로 했습니다.

[강삼규/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평소에는 저희가 사단법인을 통해서 쌀을 기부했었는데 이번에는 탈북민과 함께 떡국을 먹는다기에 이렇게 한번 와서 돕게 됐습니다."]

정성스레 포장된 가래떡을 들고 이제 음식을 준비하러 갑니다.

근처 회관의 식당 부엌에선 이미 떡국 끓일 준비가 한창입니다.

잘 우러난 육수에 가래떡을 넣고, 떡국에 올릴 고명 하나에도 정성을 다합니다.

[김연화/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제일 중요한 건 육수 내는 것이 제일 중요하고요. 아무래도 정성이 들어가야 될 것 같습니다. 저희하고 함께 한다는 그런 마음으로 같이 함께하시고 즐거운 마음, 그런 마음으로 같이 함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 설까지는 후원자들에게 기부 받은 쌀을 탈북민 가정에 배달하는 형식이었지만, 일부 탈북민들이 느낄 가정 방문에 대한 부담감을 고려해 올해는 떡국 나눔 행사로 바꿨다고 합니다.

[이현정/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회원 : "북한에 계시는 가족분들이나 많은 분들의 명절이 더 외롭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런 말씀들을 들었을 때 정말 마음이 아팠고 저희가 가족처럼 같이 한자리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행사가 뭘까 생각을 하다가 같이 떡국을 나누게 됐습니다."]

어느덧 다가온 점심시간.

떡국을 맛보려는 탈북민들로 금새 자리가 다 찼습니다.

떡국을 처음 맛본다는 탈북민들도 많은데요.

구정보다는 1월 1일 신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북한에선 설 음식도 떡국보다는 송편이 보편적이랍니다.

[서은숙/2013년 탈북 : "북한에서는 거의 그냥 떡국보다는 떡이요. 뭐 집에서 여러 가지 떡, 송편이랑 그런 거 해서 먹는 것 같아요. (떡국 맛이 어떠세요?) 좋은 분들이 맛있게 만들어주셔서 너무 맛있는 것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7년 전 탈북한 진숙씨도 아들과 이 곳을 찾았습니다.

탈북 당시 어린 아들과 헤어졌던 진숙 씨는 두 달 전, 오랜 노력 끝에 극적으로 아들과 다시 만날 수 있었는데요.

[이진숙/2012년 탈북 : "(아드님 떡국 먹는 모습 보니까 어떠신가요?) 너무 좋아요. 7년 만에 보거든요. 7살 때 두고 와서 지금 14살인데 정말 너무 좋고 진짜 고생스럽더라도 어떻게 잘 이겨내서 통일되는 날 우리 아들하고 고향으로 가야죠."]

아들과 함께 하는 기쁨만큼이나 떡국에 담긴 온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데요.

[이진숙/2012년 탈북 : "북에는 친척이 얼마 없었어요. 그러다보니까 항상 아이들하고 외롭게 보냈거든요. 그런데 지금 한국에서는 그래도 명절 때마다 회사에서 선물도 주고 구정이라고 이렇게 떡국도 차려주고 하니까 좀 마음이 한결 편안해요. 따뜻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과 손길이 모여 맛있는 떡국이 되었습니다.

따뜻한 떡국 한 그릇에 처음에는 어색했던 봉사자와 탈북민들의 관계도 한층 가까워졌는데요.

모두에게 마음이 풍성해지는 한 끼 식사가 되었습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떡은 이제 집에 가져가시는 거예요?) 네. 가져가서 아들, 형제들하고 같이 나눠 먹으려고요."]

11년 전 남으로 왔다는 탈북민 현정 씨는 오늘 받은 떡으로 처음으로 떡국 만들기에 도전해볼 참인데요.

[양현정/2008년 탈북 : "(우와 이게 뭐예요?) 고향에서 즐겨 먹던 두부밥인데 지금 한국에서 말하면 유부초밥 비슷한 두부밥이라고 해요."]

떡국과 함께 북한 명절음식까지, 한 상을 뚝딱 차려냈습니다.

몇 년 간 쌀과 떡을 지원해줬던 단체의 회원들에게도 한 끼 식사를 대접했는데요.

떡국 한 그릇에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해봅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남이 음식을 소중한 손으로 만들어서 그 사람이 만들어준 음식을 받아먹는다는 게 정말 너무 행복한 거 있죠? 사람들도 진짜 모두 다 감사하다 하더라고요 그런 사랑 처음 받아보니까."]

행복한 명절 식사 자리지만 북녘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더 짙어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양춘실/동생/2010년 탈북 : "고향에서 우리 가족들이 모여 앉아서 이걸 같이 먹었더라면 그 기쁨이 몇 배, 곱으로 되지 않을까? 우리는 고향에 있는 언니들이랑 가족들에게는 그 떡국을 같이 나눌 수 없다는 그런 생각에 조금 자책감이 들죠."]

함께 하는 식사가 현정 씨 같은 탈북민들의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덜어 줄 수 있기를 탈북민 지원단체 회원들도 바라 봅니다.

[김치곤/탈북민 사랑나눔 운동본부 이사장 : "이 분(탈북민)들은 이 땅에 먼저 온 통일입니다. 이분들이 이 땅에 잘 정착해야 만이 앞으로 장차 다가올 통일의 첫발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삶을 찾아 고향을 떠났지만 명절에는 더 짙어질 수 밖에 없을 고향 생각.

그 그리움을 달래주는 건 언젠가 이뤄질 통일에 대한 희망입니다.

[양현정/2008년 탈북 : "다 같이 앉아 먹으니까 아 바로 이 순간이 남과 북이 하나로 모여서 하나가 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되고 그런 일들이 여러 번 계속된다면 우리가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남북이 어울려 함께 떡국을 먹을 수 있는 그날이 하루 빨리 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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