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단독] 일본 손에 들어간 극비 사진…밀정은 누구인가?

입력 2019.04.11 (21:18) 수정 2019.04.1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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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가 최초 발굴한 임시정부 수립 직후의 사진이 발견된 곳은 일본 방위성입니다.

상해임시정부 초기 독립운동가들의 단체 사진이 어쩌다 일제의 손에 들어갔고, 또,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눈을 피해, 어디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단체 사진을 찍었을까...여기에 밀정이 등장합니다.

이세중 기자가 상하이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0여 명이 빼곡히 담긴 단체 사진, 이 사진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극비였습니다.

일제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분실할 때는 제재를 가한다는 서약 아래 엄밀하게 보관한 것"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렇게 비밀을 유지하려던 사진이 어쩌다 일제 손에 들어간 걸까.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보입니다.

이 사진이 "상인 곽윤수의 집에 걸려있었다"는 겁니다.

곽윤수 선생은 자신의 집을 임시정부 사무실로 제공했던 공로를 인정받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실제 곽 선생의 집이 임정 사무실로 사용된 시기는 사진이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1919년 4월 말부터 약 3개월 동안입니다.

사진을 바탕으로 상하이 현지에서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전문가와 함께 곽 선생의 집터를 찾아가 봤습니다.

지금은 대형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광재/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 : "(이 사진이 왜 곽 선생님 집에 걸려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떤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을까요?) (곽윤수 선생의 집이) 교민단 사무소 겸 임시정부 임시사무소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진이 걸려있었고..."]

국가보훈처의 기록을 토대로 곽 선생의 후손을 수소문한 끝에, 중국에 살고 계신 첫째 딸 곽종옥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올해 104세로 기억은 흐릿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회의하던 삼엄한 분위기는 떠올렸습니다.

[곽종옥/故 곽윤수 선생 딸 :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들이 이야기를 나누실 때는 문을 닫고, 나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가 사진을 확보한 배경에는 곽 선생의 가족이 연관됐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는, "곽윤수 처남으로 하여금 은밀히 밀정에게 가져오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것 역시 할아버지의 중요한 기록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김문렴/故 곽윤수 선생 손자 :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외할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삼엄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당시 프랑스공원으로 불린 현재의 푸싱공원이 유력합니다.

임시정부와도 가깝고, 무엇보다 외국인 전용 주거지라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광만/역사저술가 : "(일제 입장에서는) 감시를 해야 되고, 분쇄를 시켜야 되고, 임시정부가 더 자라기 전에 없애야되는 것이기 때문에..독립운동가들의 숫자보다 밀정의 숫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당시 상하이는) 혼탁했었죠."]

상하이 지역사 전문가도 당시 사진을 보면 공원을 둘러싼 울타리 모양이 같다는 점과 서양식 구조물을 근거로 꼽으며, 프랑스공원을 지목했습니다.

[천주언/상하이 역사 전공 교수 : "다른 공원에는 (사진에 나오는)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가 프랑스공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제작된 프랑스공원 지도와 비교해봤습니다.

취재진이 주목한 건 테니스장으로 추정되는 흰색 선, 지도에 표시된 테니스장을 기준으로 보면, 뒤편 오른쪽에 있는 2층짜리 건물부터, 가운데 임시 가건물이 있는 공터까지 구도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천주언/상하이 역사전공 교수 : "(사진을 보면) 앞은 테니스장이고, 뒤편은 전시장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로 봤을 때, 당시 지도를 근거로 보면 바로 여기가 그 장소입니다."]

지금은 공원 구조가 바뀌어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테니스장이 있던 공원 북쪽 지점이 촬영 장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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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탐사K/단독] 일본 손에 들어간 극비 사진…밀정은 누구인가?
    • 입력 2019-04-11 21:22:48
    • 수정2019-04-11 22: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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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KBS가 최초 발굴한 임시정부 수립 직후의 사진이 발견된 곳은 일본 방위성입니다.

상해임시정부 초기 독립운동가들의 단체 사진이 어쩌다 일제의 손에 들어갔고, 또, 독립운동가들이 일제의 눈을 피해, 어디에서 이렇게 대규모로

단체 사진을 찍었을까...여기에 밀정이 등장합니다.

이세중 기자가 상하이 현지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200여 명이 빼곡히 담긴 단체 사진, 이 사진은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극비였습니다.

일제가 보고한 내용을 보면, "분실할 때는 제재를 가한다는 서약 아래 엄밀하게 보관한 것"이라고 쓰여있습니다.

이렇게 비밀을 유지하려던 사진이 어쩌다 일제 손에 들어간 걸까.

보고서를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보입니다.

이 사진이 "상인 곽윤수의 집에 걸려있었다"는 겁니다.

곽윤수 선생은 자신의 집을 임시정부 사무실로 제공했던 공로를 인정받은 독립운동가입니다.

실제 곽 선생의 집이 임정 사무실로 사용된 시기는 사진이 찍힌 것으로 추정되는 1919년 4월 말부터 약 3개월 동안입니다.

사진을 바탕으로 상하이 현지에서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전문가와 함께 곽 선생의 집터를 찾아가 봤습니다.

지금은 대형 쇼핑몰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김광재/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실장 : "(이 사진이 왜 곽 선생님 집에 걸려있을까를 생각해 보면 어떤 이유를 추정해볼 수 있을까요?) (곽윤수 선생의 집이) 교민단 사무소 겸 임시정부 임시사무소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사진이 걸려있었고..."]

국가보훈처의 기록을 토대로 곽 선생의 후손을 수소문한 끝에, 중국에 살고 계신 첫째 딸 곽종옥 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올해 104세로 기억은 흐릿하지만, 당시 독립운동가들이 회의하던 삼엄한 분위기는 떠올렸습니다.

[곽종옥/故 곽윤수 선생 딸 : "(아버지가) 독립운동가들이 이야기를 나누실 때는 문을 닫고, 나는 들어오지 못하게 했어요."]

그런데 불편한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가 사진을 확보한 배경에는 곽 선생의 가족이 연관됐기 때문입니다.

보고서에는, "곽윤수 처남으로 하여금 은밀히 밀정에게 가져오게 했다"고 나와 있습니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겐 다소 충격적인 이야기,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것 역시 할아버지의 중요한 기록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김문렴/故 곽윤수 선생 손자 : "역사적인 측면에서 보면 기분 상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저는 우리 외할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역사를 알고 싶습니다."]

삼엄한 일제의 감시를 피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곳은 어디일까.

당시 프랑스공원으로 불린 현재의 푸싱공원이 유력합니다.

임시정부와도 가깝고, 무엇보다 외국인 전용 주거지라 일제의 눈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김광만/역사저술가 : "(일제 입장에서는) 감시를 해야 되고, 분쇄를 시켜야 되고, 임시정부가 더 자라기 전에 없애야되는 것이기 때문에..독립운동가들의 숫자보다 밀정의 숫자가 더 많았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로 (당시 상하이는) 혼탁했었죠."]

상하이 지역사 전문가도 당시 사진을 보면 공원을 둘러싼 울타리 모양이 같다는 점과 서양식 구조물을 근거로 꼽으며, 프랑스공원을 지목했습니다.

[천주언/상하이 역사 전공 교수 : "다른 공원에는 (사진에 나오는) 건축물이 없었기 때문에, 여기가 프랑스공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920년 제작된 프랑스공원 지도와 비교해봤습니다.

취재진이 주목한 건 테니스장으로 추정되는 흰색 선, 지도에 표시된 테니스장을 기준으로 보면, 뒤편 오른쪽에 있는 2층짜리 건물부터, 가운데 임시 가건물이 있는 공터까지 구도가 정확히 일치합니다.

[천주언/상하이 역사전공 교수 : "(사진을 보면) 앞은 테니스장이고, 뒤편은 전시장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요소로 봤을 때, 당시 지도를 근거로 보면 바로 여기가 그 장소입니다."]

지금은 공원 구조가 바뀌어 흔적이 남아있지 않지만, 테니스장이 있던 공원 북쪽 지점이 촬영 장소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KBS 뉴스 이세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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