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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임시정부 수립 100년
힘겨운 타국 생활에도…“시신 수습해 번 돈, 임정 후원”
입력 2019.04.12 (21:35) 수정 2019.04.12 (22:40) 뉴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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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엔 조국 해방을 염원하며 독립운동을 뒷받침한 민초들의 힘이 컸습니다.

그중엔 타국에서 피땀흘려 모은 돈을 임시 정부에 후원했던 해외 동포들도 있었는데요.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리 양민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프랑스 동부 쉬프의 황량한 벌판에서 저고리를 입고 작업을 하는 이들, 현지 향토 사학자는 이 사진에 '전투지역을 청소하는 한인들'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1919년, 1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이 곳에 한인 37명이 이주했습니다.

70만 명 가까이 전사한 인근 '베르덩'을 비롯해 독일과의 격전지였던 이 지역의 전쟁 피해 복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그 중엔 일본의 압제를 피해 연해주와 영국을 거쳐 프랑스까지 온 한인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1차 대전 참전 용사들이 묻혀있는 쉬프의 묘역입니다.

당시 한인들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전사자 묘역을 조성하는데도 참여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앙 클레멍/프랑스 쉬프 지역신문 기자 : "(한인들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하루종일 전쟁터에서 유해를 모아서 관에 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힘겨운 타국 생활에도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국적을 '꼬레앙' 이라 밝힌 자긍심은 프랑스 관청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엘렌 오메르/프랑스 마른주 기록 보관소장 : "가족 중 아버지가 이두순, 한국 사람이라고기록돼 있습니다. 1919년 말에 여기 도착했고요."]

한국민회를 조직한 쉬프 한인들은 삼일절 1주년엔 유럽 각지의 동포들을 모아 독립 만세를 외쳤고, 시신 안치로 어렵게 번 돈을 쪼개 임시 정부로 보내며 해방을 염원했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주 한인들도 3.1 운동을 계기로 임시 정부 후원에 나섰습니다.

'금전으로 싸우는 군인'이 되자며 하와이와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에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아낌 없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놨습니다.

돌아갈 조국이 없단 설움은 타국살이의 고통보다 깊었기에, 독립을 향한 해외 한인들의 열망은 임시 정부 활동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양민효입니다.
  • 힘겨운 타국 생활에도…“시신 수습해 번 돈, 임정 후원”
    • 입력 2019-04-12 21:37:43
    • 수정2019-04-12 22:40:05
    뉴스 9
[앵커]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데엔 조국 해방을 염원하며 독립운동을 뒷받침한 민초들의 힘이 컸습니다.

그중엔 타국에서 피땀흘려 모은 돈을 임시 정부에 후원했던 해외 동포들도 있었는데요.

이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리 양민효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프랑스 동부 쉬프의 황량한 벌판에서 저고리를 입고 작업을 하는 이들, 현지 향토 사학자는 이 사진에 '전투지역을 청소하는 한인들'이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1919년, 1차 대전으로 폐허가 된 이 곳에 한인 37명이 이주했습니다.

70만 명 가까이 전사한 인근 '베르덩'을 비롯해 독일과의 격전지였던 이 지역의 전쟁 피해 복구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대거 투입됐습니다.

그 중엔 일본의 압제를 피해 연해주와 영국을 거쳐 프랑스까지 온 한인들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1차 대전 참전 용사들이 묻혀있는 쉬프의 묘역입니다.

당시 한인들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전사자 묘역을 조성하는데도 참여한 걸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앙 클레멍/프랑스 쉬프 지역신문 기자 : "(한인들의 삶은) 어려웠습니다. 하루종일 전쟁터에서 유해를 모아서 관에 담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은 힘겨운 타국 생활에도 조국을 잊지 않았습니다.

나라는 빼앗겼어도 국적을 '꼬레앙' 이라 밝힌 자긍심은 프랑스 관청 기록에도 남아있습니다.

[엘렌 오메르/프랑스 마른주 기록 보관소장 : "가족 중 아버지가 이두순, 한국 사람이라고기록돼 있습니다. 1919년 말에 여기 도착했고요."]

한국민회를 조직한 쉬프 한인들은 삼일절 1주년엔 유럽 각지의 동포들을 모아 독립 만세를 외쳤고, 시신 안치로 어렵게 번 돈을 쪼개 임시 정부로 보내며 해방을 염원했습니다.

유럽뿐 아니라 미주 한인들도 3.1 운동을 계기로 임시 정부 후원에 나섰습니다.

'금전으로 싸우는 군인'이 되자며 하와이와 멕시코의 사탕수수밭에서 피땀 흘려 모은 돈을 아낌 없이 독립운동 자금으로 내놨습니다.

돌아갈 조국이 없단 설움은 타국살이의 고통보다 깊었기에, 독립을 향한 해외 한인들의 열망은 임시 정부 활동의 밑거름이 됐습니다.

파리에서 KBS 뉴스 양민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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