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리포트] 한국 유적지 지키는 중국인…왜?

입력 2019.04.14 (10:00) 수정 2019.04.14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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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국내외에서 열리고 있다. 중국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는 발길도 잦다. 역사 탐방객들은 중국 유적지를 둘러보며 대체로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독립운동가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거. 그리고 이들 유적지를 지금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이라는 거다.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지키는 중국인들! 그들은 왜 그곳에 있을까?


광복군 기념공원 문지기 '자오성린' 할아버지

중국 산시성 시안 두취진에 가면 한국광복군 제2지대 기념공원이 있다. 이곳에 1942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가 주둔했던 것을 기념해 2014년 중국 정부가 만든 공원이다. 공원엔 중국식 정자 안에 검은 대리석 기념비가 있고, 주위는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이 공원 관리인은 72살 자오성린 할아버지다. 벌써 6년째 공원 문지기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자오성린 할아버지가 공원 문지기가 된 사연은 뭘까?

"저의 양부모가 쌍둥이 중에 하나를 입양해 왔다고 했어요. 친부모는 광복군 부대에 있었대요. 아버지 성씨가 '이 씨'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자오성린 할아버지가 20대 때 양부모와 산파에게 들은 출생 비밀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한국광복군 부부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친부모가 출산 사흘 뒤 자신을 중국인 가정에 입양 보냈다는 것이다. 광복이 되면서 친부모는 입양 보낸 자신은 두고 귀국했다. 끊어진 핏줄을 다시 이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체념하고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운명적인 일이 생긴다. 마을에 '광복군 기념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할아버지는 문지기를 자처했고, 지금도 매일 공원에 나간다. 가끔 찾아오는 한국인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나무를 키우고 비석을 걸레로 닦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모님이 광복군이었고, 제가 이 기념공원을 관리한다는 게 참 기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마도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에요. 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쌍둥이 형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요."


김구 피난처 '수메이젠' 안내인

중국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아싱이란 곳이 있다. 지아싱은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거 후 일제의 체포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이다. 이곳에는 두 곳의 김구 선생 피난처가 있는 데, 그중 하이옌현에 있는 피난처 안내인이 '수메이젠' 씨다. 벌써 14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남북호 호수 관광회사에 취업했는데, 관광구에 있는 김구 선생 피난처에 해설자로 배치됐습니다. 김구 선생님을 전혀 몰랐는데, 이후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백범일지>도 읽어보고 하면서 김구 선생님에 대해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분의 항일투쟁 정신과 인격에 매료됐습니다."

수메이젠 씨는 김구 선생을 배우기 위해 한국 유학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2008년과 2014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머무르며,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김구 선생에 대해 탐독했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도 늘었다. 수메이젠 씨가 생각하는 김구 선생은 어떤 분일까?

"김구 선생님은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분의 애국적인 감정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우리가 모두 배우고 우러러볼 만합니다."

김구 피난처 방문한 시진핑 주석 2006.7.김구 피난처 방문한 시진핑 주석 2006.7.

수메이젠 씨의 말대로 시골 마을 호수 한쪽에 자리한 김구 선생 피난처를 찾는 중국 사람들은 뜻밖에 많았다. 피난처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 저장성 최고위 인사인 서기들도 임명 뒤 거의 빠짐없이 피난처를 찾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저장성 서기이던 2006년 7월 12일 인민위원회 위원들과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구 선생 피난처에는 매년 한국인들이 2천 명 정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5만 명이 넘습니다. 김구 선생 피난처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애국을 배우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뤼단' 관장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두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이 저장성 항저우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도 복원돼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다. 이곳 관장은 중국인 '뤼단' 씨다. 뤼단 시는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은 매우 보람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역사 흔적을 보존하는 것이고, 또 한국과 중국이 함께 항일전쟁을 치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항저우 청사는 2016년 3만 명의 한국인이 찾기도 했지만, 매년 급격하게 줄어 지금은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꾸준히 5~6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또 2012년, 2016년 청사 보수에 우리 독립기념관이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복원 사업이 시작된 2002년 이후 청사 복원과 유지, 보수에 들어간 상당 부분의 예산을 중국이 부담했다. 저장성 정부가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성급 문화재'로 지정한 덕분이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들이 청사가 잘 보존된 것에 감사함을 표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학자나 학생들은 매우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자세히 물어보기도 합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라며, 얼굴 드러내기를 거절한 뤼단 씨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가 "두 나라 민간 문화역사 교류의 중요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중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정부는 사드 여파로 해석되는 일련의 조치들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모르쇠와 어깃장에 시민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이런 정치적, 외교적 대응과 별개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두 나라의 우의를 다져가는 중국인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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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리포트] 한국 유적지 지키는 중국인…왜?
    • 입력 2019-04-14 10:00:37
    • 수정2019-04-14 10:06:44
    특파원 리포트
상하이 임시정부 10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국내외에서 열리고 있다. 중국에 있는 우리 독립운동 유적지를 찾는 발길도 잦다. 역사 탐방객들은 중국 유적지를 둘러보며 대체로 두 가지 사실에 놀란다. 하나는 독립운동가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상황보다 훨씬 더 열악한 조건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거. 그리고 이들 유적지를 지금 지키고 관리하는 사람은 대부분 중국인이라는 거다. 한국 독립운동 유적지를 지키는 중국인들! 그들은 왜 그곳에 있을까?


광복군 기념공원 문지기 '자오성린' 할아버지

중국 산시성 시안 두취진에 가면 한국광복군 제2지대 기념공원이 있다. 이곳에 1942년 한국광복군 제2지대가 주둔했던 것을 기념해 2014년 중국 정부가 만든 공원이다. 공원엔 중국식 정자 안에 검은 대리석 기념비가 있고, 주위는 정원으로 꾸며 놓았다. 이 공원 관리인은 72살 자오성린 할아버지다. 벌써 6년째 공원 문지기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는 이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자오성린 할아버지가 공원 문지기가 된 사연은 뭘까?

"저의 양부모가 쌍둥이 중에 하나를 입양해 왔다고 했어요. 친부모는 광복군 부대에 있었대요. 아버지 성씨가 '이 씨'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자오성린 할아버지가 20대 때 양부모와 산파에게 들은 출생 비밀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한국광복군 부부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로 태어났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친부모가 출산 사흘 뒤 자신을 중국인 가정에 입양 보냈다는 것이다. 광복이 되면서 친부모는 입양 보낸 자신은 두고 귀국했다. 끊어진 핏줄을 다시 이을 방법도 없었다. 그렇게 체념하고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그런 할아버지에게 운명적인 일이 생긴다. 마을에 '광복군 기념공원'이 들어선 것이다. 할아버지는 문지기를 자처했고, 지금도 매일 공원에 나간다. 가끔 찾아오는 한국인 탐방객들을 맞이하고, 나무를 키우고 비석을 걸레로 닦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부모님이 광복군이었고, 제가 이 기념공원을 관리한다는 게 참 기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마도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에요. 할 수만 있다면 죽기 전에 쌍둥이 형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어요."


김구 피난처 '수메이젠' 안내인

중국 저장성 성도 항저우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지아싱이란 곳이 있다. 지아싱은 김구 선생이 윤봉길 의거 후 일제의 체포를 피해 몸을 숨긴 곳이다. 이곳에는 두 곳의 김구 선생 피난처가 있는 데, 그중 하이옌현에 있는 피난처 안내인이 '수메이젠' 씨다. 벌써 14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남북호 호수 관광회사에 취업했는데, 관광구에 있는 김구 선생 피난처에 해설자로 배치됐습니다. 김구 선생님을 전혀 몰랐는데, 이후 한국 역사를 공부하고 <백범일지>도 읽어보고 하면서 김구 선생님에 대해 존경하게 됐습니다. 그분의 항일투쟁 정신과 인격에 매료됐습니다."

수메이젠 씨는 김구 선생을 배우기 위해 한국 유학을 두 차례나 다녀왔다. 2008년과 2014년 천안 독립기념관에 머무르며, 한국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김구 선생에 대해 탐독했다. 한국말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한국어 실력도 늘었다. 수메이젠 씨가 생각하는 김구 선생은 어떤 분일까?

"김구 선생님은 한국인입니다. 하지만 그는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분의 애국적인 감정은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우리가 모두 배우고 우러러볼 만합니다."

김구 피난처 방문한 시진핑 주석 2006.7.
수메이젠 씨의 말대로 시골 마을 호수 한쪽에 자리한 김구 선생 피난처를 찾는 중국 사람들은 뜻밖에 많았다. 피난처에 전시된 사진을 보면 저장성 최고위 인사인 서기들도 임명 뒤 거의 빠짐없이 피난처를 찾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저장성 서기이던 2006년 7월 12일 인민위원회 위원들과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김구 선생 피난처에는 매년 한국인들이 2천 명 정도 찾아옵니다. 그런데 이곳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은 5만 명이 넘습니다. 김구 선생 피난처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애국을 배우는 중요한 장소입니다."

중국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 '뤼단' 관장

19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두 번째로 자리 잡은 곳이 저장성 항저우다.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도 복원돼 일반인들이 관람할 수 있다. 이곳 관장은 중국인 '뤼단' 씨다. 뤼단 시는 10년째 이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은 매우 보람 있습니다. 우선 중요한 역사 흔적을 보존하는 것이고, 또 한국과 중국이 함께 항일전쟁을 치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항저우 청사는 2016년 3만 명의 한국인이 찾기도 했지만, 매년 급격하게 줄어 지금은 1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꾸준히 5~6만 명을 유지하고 있다. 또 2012년, 2016년 청사 보수에 우리 독립기념관이 예산을 지원하기도 했지만, 복원 사업이 시작된 2002년 이후 청사 복원과 유지, 보수에 들어간 상당 부분의 예산을 중국이 부담했다. 저장성 정부가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를 '성급 문화재'로 지정한 덕분이다.

"이곳을 찾은 한국인들이 청사가 잘 보존된 것에 감사함을 표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학자나 학생들은 매우 열심히 강의를 듣고, 자세히 물어보기도 합니다."

묵묵히 자기 일을 할 뿐이라며, 얼굴 드러내기를 거절한 뤼단 씨는 항저우 임시정부 청사가 "두 나라 민간 문화역사 교류의 중요한 플랫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최근 한중 관계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중국 정부는 사드 여파로 해석되는 일련의 조치들을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발 미세먼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모르쇠와 어깃장에 시민들이 분노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이런 정치적, 외교적 대응과 별개로 드러나지 않은 곳에서 두 나라의 우의를 다져가는 중국인들을 만나는 즐거움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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