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 앞인데…세운4구역은 9년간 문화재 심의, 3구역은 면제?

입력 2019.05.22 (16:30) 수정 2019.05.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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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세계유산 종묘 앞 세운재정비촉진지구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이지만, 경관 훼손 우려에 문화재위 심의
오세훈 시장의 122m 초고층 건축계획, 9년 심의해 52.6m로 하향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문화재위가 부결한 청계천변 90m 용인

메이커시티③ 역사도심 서울

세운상가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40년간 개발되지 못한 이유로 복잡한 권리관계, 도심부의 높은 지가와 함께 문화재 심의가 꼽힌다. 종묘 앞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면 종묘의 역사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문화재 심의가 장기간 진행됐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4년 도시재생을 골자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이유 중 하나로 '문화재 심의에 따른 높이제한'을 명시했다. 또, '세운지구 전체 문화재 심의 대상 포함'이라고 밝히고, 기본방향에 '역사문화도심 가치 존중'을 밝혔다.

그러나 2014년 밝힌 원칙과 달리 현재 세운지구에서 문화재청 협의 대상지역은 청계천 북쪽인 2,4구역으로 축소되고 청계천 이남 지역은 제외된 상태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유관기관 문서를 통해, 종묘 앞 역사경관 보존 대책이 후퇴한 전말을 짚어본다.

종묘에서 170m 세운 4구역, 문화재위원회 심의만 9년

 종묘 정전 앞 상월대를 기준으로 한 세운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종묘 정전 앞 상월대를 기준으로 한 세운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오세훈 시장은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지구)로 지정하고, 세운상가를 철거해 녹지축을 만들고 주변 일대를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는 도심 재창조 계획을 발표한다. 최고 높이 122.3m, 36층 건물 8동을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문화재 심의를 피하지 않았다.

세운상가 맞은 편에 있는 세계유산 종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상태였다. 세운지구 중 종묘와 가장 가까운 4구역은 170m 거리. 문화재위원회 심의 대상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100m를 벗어나지만, 서울시 조례는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한 공사에 대해서도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유산을 관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종묘 앞 초고층 건축 계획에 우려를 표명하자, 4구역의 인허가권자인 종로구는 2009년 문화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한다. 문화재위는 2010년 "종묘에서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층 이하로 보이도록 하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문화재위는 10여 차례 심의 끝에 세운 4구역의 122.3m 건물 높이 계획을 종로변 기준 52.6m로 낮췄다. 이 안이 통과돼 SH공사가 지난해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인허가 지연으로 SH공사는 지난해 1월 기준으로 매월 6억 8천만 원의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시간이 돈인 재개발에서 문화재 심의가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부상했다.

5월 7일 종묘 정전 앞 상월대에서 촬영한 세운지구 방향 스카이라인. 청계천 남쪽 세운 6구역에 지난달 준공된 서밋타워(90m)가 수목선 위로 선명하게 보인다.5월 7일 종묘 정전 앞 상월대에서 촬영한 세운지구 방향 스카이라인. 청계천 남쪽 세운 6구역에 지난달 준공된 서밋타워(90m)가 수목선 위로 선명하게 보인다.

'95m 주상복합' 민원에 뒤집힌 문화재위원회 심의 기준

서울시가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자, 문화재청은 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개발규모가 8개 대형 블록에서 171개로 나뉘면서, 전체적인 높이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관할 구청에 보낸 공문에서 행정의 객관성과 투명성 제고, 종묘 주변 경관 관리의 일관성 유지, 개발행위에 대한 예측 가능성 향상, 민원 처리 기간 단축, 행정력 낭비 방지 등을 위해 심의 기준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2월 문화재청이 마련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구역별 협의(문화재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종묘와 약 400m 거리 청계천변에 접한 3·5구역은 건물 높이가 71.9m 초과하는 경우, 그보다 먼 6-3구역은 91.2m 초과하는 경우에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했다.

2015년 2월 문화재청이 정한 문화재위 심의 기준. 2017년 7월 문화재청은 세운 2, 4구역만 심의 대상으로 남기는 것으로 기준을 변경한다.2015년 2월 문화재청이 정한 문화재위 심의 기준. 2017년 7월 문화재청은 세운 2, 4구역만 심의 대상으로 남기는 것으로 기준을 변경한다.

그런데 2016년 12월 세운 3-5구역에서 94.95m, 26층 주상복합 건축계획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이 기준이 흔들린다. 3-5구역은 이미 73m 숙박시설로 문화재위 심의를 통과했는데, 3-1,4 구역과 통합개발을 추진하면서 더 큰 규모로 다시 심의를 요청한 것이다. 높이를 상향해달라는 사업시행자의 변경 계획을 문화재위원회는 '역사문화환경 저해 우려'를 이유로 부결시킨다.

이에 대해 시행사는 문화재위원회 심의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세운지구 문화재 심의의 법적 근거와 권한을 재검토한다.

세운지구 문화재위원회 심의 근거는 서울시의 협의 요청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최종 입장을 정리하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문화재청에서 진행되지만 세운지구에 대해 문화재위가 심의하는 근거는 서울시에 있다. 세운 4구역이 종묘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100m를 벗어나지만 문화재위가 심의한 것도 서울시의 방침과 종로구청의 협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재검토 과정에서 서울시는 오락가락한 입장을 보였다. 2017년 4월 서울시는 "세운지구 건물 최고 높이를 문화재청 협의 및 심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지" 문화재청에 질의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4년 서울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고시에 근거가 있다고 회신한다. 자신의 권한을 다른 기관에 유권해석 받은 서울시는 중구청에 문화재청 협의를 받아야 한다고 회신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문화재 심의에 대한 입장세운재정비촉진지구 문화재 심의에 대한 입장

문화재청은 2017년 7월 종로변 세운 2,4구역만 협의 대상으로 하는 내용으로 결국 세운지구 구역별 협의기준을 변경한다. 법률 자문 결과 문화재위의 세운지구 심의가 문화재청의 법적 권한을 벗어났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 및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 제19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세운지구에서 가장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3, 5구역은 문화재 심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준 변경은 행정상 하자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설명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권한 밖이라는 청계천 이남 세운지구 8개 구역을 이미 심의한 뒤였다. 세운지구 심의에 참여했던 한 문화재위원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의 개발인 경우에도, 문화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대상"이라며 그간의 심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문화재청은 이미 2014년에 법률 자문을 통해 세운지구 심의가 문화재보호법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5년 기준안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지만, 행정 예측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면서 "4구역 심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를 마치고 문화재 발굴이 한창인 세운 3-1,4,5구역.중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를 마치고 문화재 발굴이 한창인 세운 3-1,4,5구역.

"역사경관 훼손" 문화재위 판단에도 서울시 "문제 없다"

문화재위원회의 판단과 배치되는 기준 변경에 대해 문화재청은 "행정 입장에서 심의 결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역사경관 훼손 여부는 문화재 위원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 식견에 따라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준 변경 역시 문화재위원회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준 변경은 3-5구역을 부결시킨 위원들이 임기 만료로 교체된 이후 진행됐다.

세운지구 전체가 문화재청 협의 대상이라던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문화재위 심의 결과를 인허가에 반영할지는 서울시와 관할 지자체의 몫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14년) 재정비촉진계획에서 제시한 높이(90m)에 대한 범주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도시계획위원회나 재정비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이 같이 포함해서 논의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이 협의 기준을 변경하면서, 역사문화환경 훼손을 이유로 부결됐던 세운 3-5구역은 문화재위의 추가 심의 없이 서울시 높이 기준인 90m, 주상복합 아파트로 개발되고 있다. 최종적인 높이 결정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는 데 두 기관의 입장은 일치한다.

문화재 주무부처는 문화재청이지만,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지정은 시·도지사의 권한이다. 서울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에서 대상 구역이 500m임을 고려하면, 종묘로부터 500m 이내 세운지구 구역을 심의해 온 문화재청의 2015년도 기준은 지나치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인 2, 4구역을 여전히 문화재위 심의 대상으로 둔 것처럼,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문화재위 심의를 요청하는 것도 지자체장의 권한이다.

서울시는 2014년 계획 수립 당시 '종묘를 고려한 높이 관리를 통해 도심 경관 관리'를 원칙으로 밝혔다. 역사도심을 강조한 서울시의 도시재생이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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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묘 앞인데…세운4구역은 9년간 문화재 심의, 3구역은 면제?
    • 입력 2019-05-22 16:30:24
    • 수정2019-05-24 09: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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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유산 종묘 앞 세운재정비촉진지구 <br />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이지만, 경관 훼손 우려에 문화재위 심의<br /> 오세훈 시장의 122m 초고층 건축계획, 9년 심의해 52.6m로 하향 <br /> 박원순 시장의 도시재생, 문화재위가 부결한 청계천변 90m 용인
메이커시티③ 역사도심 서울

세운상가 일대가 재개발 구역으로 지정된 뒤 40년간 개발되지 못한 이유로 복잡한 권리관계, 도심부의 높은 지가와 함께 문화재 심의가 꼽힌다. 종묘 앞인 세운재정비촉진지구에 초고층 건물을 세우면 종묘의 역사경관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문화재 심의가 장기간 진행됐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2014년 도시재생을 골자로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이유 중 하나로 '문화재 심의에 따른 높이제한'을 명시했다. 또, '세운지구 전체 문화재 심의 대상 포함'이라고 밝히고, 기본방향에 '역사문화도심 가치 존중'을 밝혔다.

그러나 2014년 밝힌 원칙과 달리 현재 세운지구에서 문화재청 협의 대상지역은 청계천 북쪽인 2,4구역으로 축소되고 청계천 이남 지역은 제외된 상태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서울시와 문화재청 등 유관기관 문서를 통해, 종묘 앞 역사경관 보존 대책이 후퇴한 전말을 짚어본다.

종묘에서 170m 세운 4구역, 문화재위원회 심의만 9년

 종묘 정전 앞 상월대를 기준으로 한 세운4구역 건축물 높이 계획 변화 과정. SH공사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
오세훈 시장은 2006년 세운상가 일대를 재정비촉진지구(뉴타운지구)로 지정하고, 세운상가를 철거해 녹지축을 만들고 주변 일대를 초고층 빌딩으로 둘러싸는 도심 재창조 계획을 발표한다. 최고 높이 122.3m, 36층 건물 8동을 짓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지만 문화재 심의를 피하지 않았다.

세운상가 맞은 편에 있는 세계유산 종묘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1995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상태였다. 세운지구 중 종묘와 가장 가까운 4구역은 170m 거리. 문화재위원회 심의 대상인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100m를 벗어나지만, 서울시 조례는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한 공사에 대해서도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유산을 관리하는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종묘 앞 초고층 건축 계획에 우려를 표명하자, 4구역의 인허가권자인 종로구는 2009년 문화재청에 사업시행인가를 위한 현상변경허가를 신청한다. 문화재위는 2010년 "종묘에서 건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스카이라인을 고려해 종묘 정전에서 상월대를 바라볼 때 건축물 최상부 3개층 이하로 보이도록 하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문화재위는 10여 차례 심의 끝에 세운 4구역의 122.3m 건물 높이 계획을 종로변 기준 52.6m로 낮췄다. 이 안이 통과돼 SH공사가 지난해 사업시행인가를 받기까지 무려 9년이 걸렸다. 인허가 지연으로 SH공사는 지난해 1월 기준으로 매월 6억 8천만 원의 고정비용을 지출해야 했다. 시간이 돈인 재개발에서 문화재 심의가 주요 변수 중 하나로 부상했다.

5월 7일 종묘 정전 앞 상월대에서 촬영한 세운지구 방향 스카이라인. 청계천 남쪽 세운 6구역에 지난달 준공된 서밋타워(90m)가 수목선 위로 선명하게 보인다.
'95m 주상복합' 민원에 뒤집힌 문화재위원회 심의 기준

서울시가 2014년 세운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자, 문화재청은 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개발규모가 8개 대형 블록에서 171개로 나뉘면서, 전체적인 높이 관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문화재청은 서울시와 관할 구청에 보낸 공문에서 행정의 객관성과 투명성 제고, 종묘 주변 경관 관리의 일관성 유지, 개발행위에 대한 예측 가능성 향상, 민원 처리 기간 단축, 행정력 낭비 방지 등을 위해 심의 기준을 정하겠다고 밝혔다.

2015년 2월 문화재청이 마련한 '세운재정비촉진지구 구역별 협의(문화재위원회 심의) 기준'에 따르면 종묘와 약 400m 거리 청계천변에 접한 3·5구역은 건물 높이가 71.9m 초과하는 경우, 그보다 먼 6-3구역은 91.2m 초과하는 경우에 문화재청과 협의하도록 했다.

2015년 2월 문화재청이 정한 문화재위 심의 기준. 2017년 7월 문화재청은 세운 2, 4구역만 심의 대상으로 남기는 것으로 기준을 변경한다.
그런데 2016년 12월 세운 3-5구역에서 94.95m, 26층 주상복합 건축계획을 문화재위원회에 제출하면서, 이 기준이 흔들린다. 3-5구역은 이미 73m 숙박시설로 문화재위 심의를 통과했는데, 3-1,4 구역과 통합개발을 추진하면서 더 큰 규모로 다시 심의를 요청한 것이다. 높이를 상향해달라는 사업시행자의 변경 계획을 문화재위원회는 '역사문화환경 저해 우려'를 이유로 부결시킨다.

이에 대해 시행사는 문화재위원회 심의 자체가 법적 근거가 없다는 민원을 제기하고, 이를 계기로 문화재청과 서울시는 세운지구 문화재 심의의 법적 근거와 권한을 재검토한다.

세운지구 문화재위원회 심의 근거는 서울시의 협의 요청

문화재청과 서울시의 최종 입장을 정리하면, 문화재위원회 심의는 문화재청에서 진행되지만 세운지구에 대해 문화재위가 심의하는 근거는 서울시에 있다. 세운 4구역이 종묘의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100m를 벗어나지만 문화재위가 심의한 것도 서울시의 방침과 종로구청의 협의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7년 재검토 과정에서 서울시는 오락가락한 입장을 보였다. 2017년 4월 서울시는 "세운지구 건물 최고 높이를 문화재청 협의 및 심의를 통해 결정해야 하는지" 문화재청에 질의했다. 이에 문화재청은 2014년 서울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고시에 근거가 있다고 회신한다. 자신의 권한을 다른 기관에 유권해석 받은 서울시는 중구청에 문화재청 협의를 받아야 한다고 회신했다.

세운재정비촉진지구 문화재 심의에 대한 입장
문화재청은 2017년 7월 종로변 세운 2,4구역만 협의 대상으로 하는 내용으로 결국 세운지구 구역별 협의기준을 변경한다. 법률 자문 결과 문화재위의 세운지구 심의가 문화재청의 법적 권한을 벗어났다는 이유에서였다.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 제13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 및 서울시 문화재보호조례 제19조(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보호) 규정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로 인해 세운지구에서 가장 사업성이 높다고 평가되는 3, 5구역은 문화재 심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준 변경은 행정상 하자를 바로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의 설명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문화재위원회는 권한 밖이라는 청계천 이남 세운지구 8개 구역을 이미 심의한 뒤였다. 세운지구 심의에 참여했던 한 문화재위원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의 개발인 경우에도, 문화재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면 예외적으로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대상"이라며 그간의 심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문화재청은 이미 2014년에 법률 자문을 통해 세운지구 심의가 문화재보호법 범위를 벗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5년 기준안은 논란이 있는 부분이지만, 행정 예측성을 제고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면서 "4구역 심의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변경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중구청으로부터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철거를 마치고 문화재 발굴이 한창인 세운 3-1,4,5구역.
"역사경관 훼손" 문화재위 판단에도 서울시 "문제 없다"

문화재위원회의 판단과 배치되는 기준 변경에 대해 문화재청은 "행정 입장에서 심의 결과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라면서도 "역사경관 훼손 여부는 문화재 위원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 식견에 따라 주관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준 변경 역시 문화재위원회를 거쳤다고 강조했다. 다만, 기준 변경은 3-5구역을 부결시킨 위원들이 임기 만료로 교체된 이후 진행됐다.

세운지구 전체가 문화재청 협의 대상이라던 서울시의 입장은 어떨까. 문화재위 심의 결과를 인허가에 반영할지는 서울시와 관할 지자체의 몫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2014년) 재정비촉진계획에서 제시한 높이(90m)에 대한 범주라면 크게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도시계획위원회나 재정비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에 문화재 관련 전문가들이 같이 포함해서 논의를 하기 때문에 종합적으로 판단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이 협의 기준을 변경하면서, 역사문화환경 훼손을 이유로 부결됐던 세운 3-5구역은 문화재위의 추가 심의 없이 서울시 높이 기준인 90m, 주상복합 아파트로 개발되고 있다. 최종적인 높이 결정 권한은 서울시에 있다는 데 두 기관의 입장은 일치한다.

문화재 주무부처는 문화재청이지만,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지정은 시·도지사의 권한이다. 서울시를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에서 대상 구역이 500m임을 고려하면, 종묘로부터 500m 이내 세운지구 구역을 심의해 온 문화재청의 2015년도 기준은 지나치다고 보기 힘들다. 또한,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인 2, 4구역을 여전히 문화재위 심의 대상으로 둔 것처럼, 문화재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면 문화재위 심의를 요청하는 것도 지자체장의 권한이다.

서울시는 2014년 계획 수립 당시 '종묘를 고려한 높이 관리를 통해 도심 경관 관리'를 원칙으로 밝혔다. 역사도심을 강조한 서울시의 도시재생이 방향을 잃은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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