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눈치? 협조? 대립?…트럼프 거친 질주에 스트롱맨들은 ‘동상이몽’

입력 2019.06.22 (07:17) 수정 2019.06.25 (1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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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뜨거운 국제 이슈는 미국-중국, 미국-이란 간 갈등이다. 그에 버금가는 것이 북한 핵 문제와 베네수엘라 사태이다. 중국과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미국으로부터 전례 없는 압박을 받는 중에 만나 '우호'와 '대화'를 강조했고, 이란 쪽에서는 유조선 피격 사건에 이어 미군의 드론이 격추됐다는 소식이, 베네수엘라에서는 매일 4천 명의 국민이 고국을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세계인들이 익숙해질 만큼 집중 조명을 받는 이 지역 문제들의 공통점은 첫째 '미국이 깊숙이 개입돼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이 이번엔 반드시 해결한다는 일념으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미국의 기성 정치권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 이란을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의 카르텔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자신의 신념인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방법론에 있어 그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대신 상대국에 최대 압박의 제재를 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적국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과거와 달리 시대에 맞게 '경제적 타격'을 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굿딜 아니면 노딜'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목표를 정하면 적당한 타협도 없는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세계 각국의 무수한 지도자가 그와 뜻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 지도자들도 '동상이몽'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편이든 반대편이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에 따라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고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는 자신의 목표에 얼마만큼 다가갔을까?

■ 미국-이란 '진실공방' 격화 ... 미국 편 안 드는 아베

지난 13일 호르무즈 해협 부근 오만 해에서 일본 유조선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폭탄이 이란군의 기뢰와 매우 유사하다고 미국 군 당국이 현지시각 19일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주에도 이란 측이 공격 이후 유조선에 공격 전 부착해놨던 미폭발 폭탄을 제거하는 장면이라며 동영상을 공개했었다. '미국의 공작설'로 맞대응해온 이란 정부는 이번에도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다. 사건 당일 가장 먼저 선원들을 구조한 것이 이란이었다고 재차 주장하면서 "미국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이란을 겨냥한 의도적 파괴행위"라고 반박했다.

‘아베’ 일본 총리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아베’ 일본 총리와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

[연관기사] 미국 “이란이 배후”…피해 당사국 일본 ‘신중’·유엔도 미온적

이렇게 진실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놀라운 건 피해 당사국인 일본의 반응이다. 먼저 피해 해운사 측이 "당시 유조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승무원들이 목격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주장과 달리 기뢰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고 밝힌 데 이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온 아베 총리마저 이란을 공격 주체로 특정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더 나아가 아베 총리가 공격 주체가 이란임을 확신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제공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연관기사][글로벌 돋보기] ‘오일파워’ 장착한 트럼프, ‘진정한 패권’ 추구하나?

일본은 미국과 달리, 산유국도 아닌 데다 석유 대부분을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에 큰 문제가 터져 국제유가가 급등한다면,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단숨에 원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된 미국과 달리 일본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에 통과하는 석유량이 1,700만 배럴로 세계 석유 수출량의 1/3이 지나는 석유수송로의 핵심 길목이다. 이란뿐 아니라 사우디와 쿠웨이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중동 산유국의 석유가 모두 이곳을 통해 수출된다. 한국도 전체 석유 수입량의 80%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직면한 이란이 경제난에서 벗어나고자 원유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조선 공격 등을 통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미국이나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보복 차원의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는 얘기다. 이란은 미국이 자신들을 위협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보여왔다. 이는 미국이 유조선 공격 배후를 이란으로 지목하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받는 일본으로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미국 편에 서는 대신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란으로 날아갔던 이유다.

■ 이란의 '결기'에도 '자제'하는 미국 ... "아직 움직일 때 아냐"

미국과 이란 갈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이란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다. 일부 외신은 시진핑 주석이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찾아가 '에너지 협력'에 공을 들인 이유가 이란을 대체할 석유 공급망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으로서도 이란이 제재 국면에 진입해 신음하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 전쟁보다는 제재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 전략상 시간을 끌면 이란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이란에 원유를 많이 수입했던 중국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과 말싸움을 넘어 언제든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고조된 지금 같은 상황은 미국이 의도한 바도 아닌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의 무인정찰기(드론)를 격추한 이란에 대한 공격을 승인했다가 돌연 철회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눈에 띈다. 잇따른 유조선 공격에 드론 격추까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을 유발하려는 세력의 음모이든, 이란 쪽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세력의 의도이든 계속해서 미국을 자극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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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는 이란에 대한 보복 군사 작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그가 이란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국이 이란 핵 협상에서 탈퇴한 두 가지 의도를 알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첫째, '셰일 혁명'을 통한 에너지 자립을 기반으로 석유수출국기구에 대한 전쟁, 즉 '에너지 안보 질서 재편'이다. 주요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더는 중동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어졌다. '시리아 미군 철군'이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 협상에서 탈퇴하며 밝힌 대로 '핵 동결'이 아닌 '진정한 핵 폐기'를 위해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나 제재를 가하더라도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의 '극약 처방'을 꺼내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우 제재를 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경제적 고통을 가한 뒤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지구전(持久戰)'을 펼치는 그의 전략상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전략은 중국과 북한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지 군사 전문가들도 미국이 당분간은 군사적 충돌보다는 경제제재를 유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질서를 지키는 선에서 상황을 관리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제재 이탈할까' 조마조마? ... 트럼프, 시진핑 만난 뒤 어떤 결단 내릴까

현재 국내 이슈를 제외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중국과 북한 문제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핵 회의론이 고개를 들자 북한 비핵화 과정을 칠면조 요리에 빗대어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중국을 향해 1차 관세 폭탄을 투하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여전히 스토브에는 열이 가해지고 있고, 상황은 시진핑 주석이 다급히 북한으로 가기까지에 이르렀다.

중국·북한과 미국 가운데 칼자루를 쥔 쪽은 미국이다. 급한 쪽은 제재 망에 갇혀 있는 두 나라다. 시 주석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합의가 절실하다. 홍콩의 대규모 반중 시위와 장쩌민계 등 반대파의 반발 등 국내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의 적당한 타협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중국에는 '공산당 중심 국가주도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북한에는 체제의 생명과도 같은 '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신 미국 주도의 대북 공조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장을 보냈다. 시 주석의 평양 도착 직전 북한과 연계된 중국에 있는 회사에 은행 계좌를 열어준 러시아 회사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 의회가 국제 은행 망에서 북한을 완전히 퇴출하는 법안을 추진한 이후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한 조치다. 다음날에는 '2019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과 중국, 러시아까지 최하위 등급 국가로 분류했다.

국내외 주요 매체들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두고 북한과 중국 모두 양국의 밀착을 대미 지렛대로 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시 주석이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밀 비핵화 카드가 미국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공은 다시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시 주석의 카드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이든 반대 방향이든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든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북한이 밀월을 과시하며 '버티기'로 나온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제재를 뛰어넘는 조치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 푸틴 "러시아 더 강해져야" ... 노련한 '실리주의자'

지금 가장 웃고 있을 사람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이란 제재 국면으로 중동의 긴장감이 고조되면 유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석유를 팔아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동에서 큰 전쟁이 터지는 것은 경계한다. 여러 국가가 개입되는 상황이 되면 러시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국제 유가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미군 드론 공격 소식에 "국제유가 100달러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해 초,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해묵은 불신과 반목을 제쳐놓고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셰일 석유를 생산하면서 유가가 떨어지자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가 유가를 받치기 위해 생산량과 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선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란 문제가 중동 전쟁으로 비화하면 러시아는 유가 조정과 관련해 협력할 상대를 잃게 된다. 미국이 이란의 드론 공격에 격분하자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이란 군사 공격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이유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

러시아는 중동뿐 아니라, 미국과도 같은 산유국으로서 에너지 문제에서는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석유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과 이권도 얽혀있는 데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이어지고 있는 서방세계의 제재 해제가 절실한 러시아로서는 미국과 대립할 이유가 없다.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 각을 세워온 러시아는 최근 마두로 정권을 도왔던 인력들을 철수시켰다. 베네수엘라에서 손을 뗀 것이다. '친미' 대 '반미' 구도가 형성된 베네수엘라에 굳이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베네수엘라에 흥미를 잃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꼬집은 바 있다. 이를 두고 마두로 정권은 이미 스스로 무너지는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 지도자가 찾아와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도움을 청할 때도 일단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조용히 실속은 챙겼다. 푸틴 대통령은 현지시각 20일 연례연설에서 "러시아가 지구 상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차지하려면 경제 분야를 포함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차르'로 불리고 싶은 푸틴이지만 그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리주의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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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22 07:17:30
    • 수정2019-06-25 13:5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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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뜨거운 국제 이슈는 미국-중국, 미국-이란 간 갈등이다. 그에 버금가는 것이 북한 핵 문제와 베네수엘라 사태이다. 중국과 북한, 이란, 베네수엘라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끊임없이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는 미국으로부터 전례 없는 압박을 받는 중에 만나 '우호'와 '대화'를 강조했고, 이란 쪽에서는 유조선 피격 사건에 이어 미군의 드론이 격추됐다는 소식이, 베네수엘라에서는 매일 4천 명의 국민이 고국을 탈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세계인들이 익숙해질 만큼 집중 조명을 받는 이 지역 문제들의 공통점은 첫째 '미국이 깊숙이 개입돼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미국이 이번엔 반드시 해결한다는 일념으로 전혀 다른 접근법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젊은 시절부터 미국의 기성 정치권이 무서운 기세로 치고 올라오는 중국과 이란을 중심으로 한 석유수출국기구의 카르텔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해왔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이 된 그는 자신의 신념인 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거친 항해를 이어가고 있다. 방법론에 있어 그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대신 상대국에 최대 압박의 제재를 가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적국을 쓰러뜨리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던 과거와 달리 시대에 맞게 '경제적 타격'을 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굿딜 아니면 노딜'이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목표를 정하면 적당한 타협도 없는듯하다. 하지만 아무리 초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라고 해도 세계 각국의 무수한 지도자가 그와 뜻을 같이하지는 않는다. 세계를 주름잡는 강대국 지도자들도 '동상이몽'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 편이든 반대편이든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고 그에 따라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고 언제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것이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이런 가운데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트럼프는 자신의 목표에 얼마만큼 다가갔을까?

■ 미국-이란 '진실공방' 격화 ... 미국 편 안 드는 아베

지난 13일 호르무즈 해협 부근 오만 해에서 일본 유조선을 공격하는 데 사용된 폭탄이 이란군의 기뢰와 매우 유사하다고 미국 군 당국이 현지시각 19일 주장했다. 미국은 지난주에도 이란 측이 공격 이후 유조선에 공격 전 부착해놨던 미폭발 폭탄을 제거하는 장면이라며 동영상을 공개했었다. '미국의 공작설'로 맞대응해온 이란 정부는 이번에도 억울하다며 펄쩍 뛰었다. 사건 당일 가장 먼저 선원들을 구조한 것이 이란이었다고 재차 주장하면서 "미국의 주장은 새빨간 거짓말, 이란을 겨냥한 의도적 파괴행위"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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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진실공방이 계속되는 가운데 놀라운 건 피해 당사국인 일본의 반응이다. 먼저 피해 해운사 측이 "당시 유조선을 향해 날아오는 물체를 승무원들이 목격했다"는 이유로 미국의 주장과 달리 기뢰에 의한 공격이 아니라고 밝힌 데 이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트럼프 대통령과 보조를 맞춰온 아베 총리마저 이란을 공격 주체로 특정하지 않았다. 일본 언론은 더 나아가 아베 총리가 공격 주체가 이란임을 확신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를 제공해달라고 미국에 요청했다고 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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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미국과 달리, 산유국도 아닌 데다 석유 대부분을 중동산에 의존하고 있다. 이란에 큰 문제가 터져 국제유가가 급등한다면, 이른바 '셰일 혁명'으로 단숨에 원유와 천연가스의 세계 최대 생산국이 된 미국과 달리 일본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호르무즈 해협은 하루에 통과하는 석유량이 1,700만 배럴로 세계 석유 수출량의 1/3이 지나는 석유수송로의 핵심 길목이다. 이란뿐 아니라 사우디와 쿠웨이트, 이라크, 아랍에미리트 등 주요 중동 산유국의 석유가 모두 이곳을 통해 수출된다. 한국도 전체 석유 수입량의 80%가 호르무즈 해협을 거쳐 들어온다.

월가에서는 미국의 제재에 직면한 이란이 경제난에서 벗어나고자 원유를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유조선 공격 등을 통한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미국이나 미국 동맹국들에 대한 보복 차원의 '에너지 안보 위협'이라는 얘기다. 이란은 미국이 자신들을 위협할 때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 카드를 꺼내 보여왔다. 이는 미국이 유조선 공격 배후를 이란으로 지목하는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자국의 에너지 안보를 위협받는 일본으로서는 지금 같은 상황에서 미국과 보조를 맞추기 어렵다. 아베 총리가 미국 편에 서는 대신 '중재자'를 자처하며 이란으로 날아갔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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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이란 갈등으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은 세계에서 이란산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다. 일부 외신은 시진핑 주석이 최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찾아가 '에너지 협력'에 공을 들인 이유가 이란을 대체할 석유 공급망을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으로서도 이란이 제재 국면에 진입해 신음하는 상황이 나쁘지 않다. 전쟁보다는 제재를 선호하는 트럼프 대통령 전략상 시간을 끌면 이란으로부터 얻고자 하는 것을 얻을 수 있고 이란에 원유를 많이 수입했던 중국에도 타격을 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란과 말싸움을 넘어 언제든 전쟁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긴장이 고조된 지금 같은 상황은 미국이 의도한 바도 아닌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의 무인정찰기(드론)를 격추한 이란에 대한 공격을 승인했다가 돌연 철회했다는 뉴욕타임스의 보도가 눈에 띈다. 잇따른 유조선 공격에 드론 격추까지.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을 유발하려는 세력의 음모이든, 이란 쪽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려는 세력의 의도이든 계속해서 미국을 자극하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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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현재까지는 이란에 대한 보복 군사 작전을 자제하는 분위기다. 앞으로 그가 이란에 어떻게 대응할지는 미국이 이란 핵 협상에서 탈퇴한 두 가지 의도를 알면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하다. 첫째, '셰일 혁명'을 통한 에너지 자립을 기반으로 석유수출국기구에 대한 전쟁, 즉 '에너지 안보 질서 재편'이다. 주요 산유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더는 중동의 눈치를 살필 이유가 없어졌다. '시리아 미군 철군'이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둘째는 트럼프 대통령이 핵 협상에서 탈퇴하며 밝힌 대로 '핵 동결'이 아닌 '진정한 핵 폐기'를 위해서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이나 제재를 가하더라도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릴 정도의 '극약 처방'을 꺼내 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그래 왔기 때문이다. 이란의 경우 제재를 가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경제적 고통을 가한 뒤 상대가 항복할 때까지 '지구전(持久戰)'을 펼치는 그의 전략상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 이런 전략은 중국과 북한 문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현지 군사 전문가들도 미국이 당분간은 군사적 충돌보다는 경제제재를 유지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의 질서를 지키는 선에서 상황을 관리해 나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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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 이슈를 제외한 트럼프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중국과 북한 문제일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싱가포르 회담 이후 북핵 회의론이 고개를 들자 북한 비핵화 과정을 칠면조 요리에 빗대어 "서두르면 스토브에서 칠면조를 서둘러 꺼내는 것과 같다"고 말한 바 있다. 그가 중국을 향해 1차 관세 폭탄을 투하한 지 1년이 다 돼간다. 여전히 스토브에는 열이 가해지고 있고, 상황은 시진핑 주석이 다급히 북한으로 가기까지에 이르렀다.

중국·북한과 미국 가운데 칼자루를 쥔 쪽은 미국이다. 급한 쪽은 제재 망에 갇혀 있는 두 나라다. 시 주석은 미국과의 무역협상 합의가 절실하다. 홍콩의 대규모 반중 시위와 장쩌민계 등 반대파의 반발 등 국내 정치 상황도 녹록지 않다. 하지만 미국과의 적당한 타협은 더욱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은 중국에는 '공산당 중심 국가주도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북한에는 체제의 생명과도 같은 '핵 포기'를 요구하고 있다. 중국과 북한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요구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북·중 정상회담에 대해 미국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대신 미국 주도의 대북 공조에서 이탈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장을 보냈다. 시 주석의 평양 도착 직전 북한과 연계된 중국에 있는 회사에 은행 계좌를 열어준 러시아 회사에 대한 제재를 단행했다. 미국 의회가 국제 은행 망에서 북한을 완전히 퇴출하는 법안을 추진한 이후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한 조치다. 다음날에는 '2019년 인신매매 실태보고서'를 발표하며 북한과 중국, 러시아까지 최하위 등급 국가로 분류했다.

국내외 주요 매체들은 이번 북·중 정상회담을 두고 북한과 중국 모두 양국의 밀착을 대미 지렛대로 쓰겠다는 속내를 내비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만약 시 주석이 G20 정상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내밀 비핵화 카드가 미국의 목표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공은 다시 미국으로 향할 것이다. 시 주석의 카드가 미국이 원하는 방향이든 반대 방향이든 한반도 문제에 대해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하려 든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중국과 북한이 밀월을 과시하며 '버티기'로 나온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기존의 제재를 뛰어넘는 조치를 고민해야 하기 때문이다.

■ 푸틴 "러시아 더 강해져야" ... 노련한 '실리주의자'

지금 가장 웃고 있을 사람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다. 이란 제재 국면으로 중동의 긴장감이 고조되면 유가가 오르기 때문이다. 러시아도 석유를 팔아 먹고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중동에서 큰 전쟁이 터지는 것은 경계한다. 여러 국가가 개입되는 상황이 되면 러시아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국제 유가가 출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란의 미군 드론 공격 소식에 "국제유가 100달러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지난해 초, 러시아가 사우디아라비아와 해묵은 불신과 반목을 제쳐놓고 전략적 동맹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본격적으로 셰일 석유를 생산하면서 유가가 떨어지자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와 사우디가 유가를 받치기 위해 생산량과 재고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선도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란 문제가 중동 전쟁으로 비화하면 러시아는 유가 조정과 관련해 협력할 상대를 잃게 된다. 미국이 이란의 드론 공격에 격분하자 푸틴 대통령이 "미국의 이란 군사 공격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선 이유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국왕
러시아는 중동뿐 아니라, 미국과도 같은 산유국으로서 에너지 문제에서는 전략적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석유 산업 분야에서 미국의 글로벌 기업들과 이권도 얽혀있는 데다, 2014년 크림반도 강제병합 이후 이어지고 있는 서방세계의 제재 해제가 절실한 러시아로서는 미국과 대립할 이유가 없다. 베네수엘라 사태와 관련해 미국과 각을 세워온 러시아는 최근 마두로 정권을 도왔던 인력들을 철수시켰다. 베네수엘라에서 손을 뗀 것이다. '친미' 대 '반미' 구도가 형성된 베네수엘라에 굳이 힘을 쏟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베네수엘라에 흥미를 잃었다"고 워싱턴포스트가 꼬집은 바 있다. 이를 두고 마두로 정권은 이미 스스로 무너지는 국면에 접어들었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과 북한 지도자가 찾아와 자신의 능력 밖에 있는 도움을 청할 때도 일단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조용히 실속은 챙겼다. 푸틴 대통령은 현지시각 20일 연례연설에서 "러시아가 지구 상에서 제대로 된 자리를 차지하려면 경제 분야를 포함해 더 강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차르'로 불리고 싶은 푸틴이지만 그가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리주의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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