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돋보기] 동시에 터진 ‘핵충돌’과 ‘무역전쟁’…‘결전의 순간’ 임박했나?

입력 2019.05.08 (20:14) 수정 2019.05.0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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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이란 핵 합의 탈퇴를 선언한 지 정확히 1년 만에 이란도 '합의 이행 일부 중단'을 선언했다. 이란 역시 합의에서 발을 뺄 수 있다는 경고로, 미국의 제재 복원 뒤 군사적 대치로 긴장감이 고조된 가운데 핵위기까지 재발할 위기에 놓였다.

[연관 기사] 美, 이란 핵 협정 탈퇴 선언…“北에 신호 보낸 것”

사실상 '핵 동결'로 마무리한 이란 핵 합의는 협상 당시부터 논란이 거셌다. 이란 핵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마다 써온 단골 메뉴다. 미국과 이란의 대치는 파국의 길로 봐야 할까? 지금이라도 이란을 완전한 비핵화로 되돌리기 위한 길로 봐야 할까?

미국은 이란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 베네수엘라까지 동시에 다뤄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기간 미국이 내버려 뒀던 문제들'이라고 지적해온 사안들이 일거에 중대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핵 합의 탈퇴' 카드 꺼낸 이란 ... 美 "군사 행동 안 돼"

가장 긴박하게 돌아가는 곳은 이란 쪽이다. 이란의 경제 봉쇄망을 조이는 데 주력하던 미국 정부는 지난 주말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B-52 폭격기를 중동에 긴급 배치했다.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에 실어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CNN의 보도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이란을 겨냥한 갑작스러운 화력 증강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이런 가운데 영국 가디언은 폼페이오 장관이 중동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란의 '대리군'을 잠재적 표적으로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장악한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돼왔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한 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 측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공습을 두고 외신들은 사실상 이란에 대한 경고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볼턴과 폼페이오가 이란이 최근 제재 강화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이용하거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폭격을 선동하는 작전을 계획할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이란 압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이만큼 우선시할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단순히 핵 문제 차원으로 접근하면 맞는 지적이지만, 미국의 이란 압박은 이른바 '셰일 혁명' 이후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오른 미국이 자국 주도로 세계 에너지 질서를 재편한다는 큰 그림의 일부분이다. 동시에 이란이 주도해온 석유수출국기구, OPEC에 대한 '오일 패권' 전쟁이기도 하다.

[연관 기사] [글로벌 돋보기] ‘오일파워’ 장착한 트럼프, ‘진정한 패권’ 추구하나?

미국이 국제 유가 통제력까지 가진 상황에서 이란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핵 합의 맞불 탈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합의 의무 이행 일부 중단'으로 수위를 조절한 결정에서 이란의 고민이 엿보인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결기가 보인다. 일부 외신은 폼페이오 장관의 전격적인 이라크 방문을 대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라크가 이란과 반이란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해온 만큼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은 최근, 미국이 지난달 이란산 원유 제재 예외 조치 종료 방침을 밝히며 내놓은 요구사항 중 '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에 대해 협상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무역전쟁 '2라운드'? ... 힘 받는 대중 강경노선

이렇게 중동이 시끄러운 사이 뉴욕 월가는 무역전쟁 공포에 휩싸였다. 대중국 추가 '관세 폭탄'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휴일 트윗'이 협상용 엄포가 아니라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국 증시는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주저앉았다.

지금 세계 금융 시장의 눈은 오일 쇼크 가능성이 낮은 이란보다는 중국으로 향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천억 달러 규모 중국산 상품에 매겼던 10%의 관세가 (이번 주) 금요일부터 25%로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금요일(현지시각 10일)은 미·중 대표단의 워싱턴 협상이 마감되는 날이다.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입장도 완강하다. "무역협상은 관세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겅솽 외교부 대변인 발표에 이어 인민일보는 미국을 향해 "중국의 양보는 생각도 말라"고 밝혔다. 더 두들겨 맞을지언정 항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온 입장으로 볼 때, 미국도 첨단산업 분야 등 주요 의제에서 중국이 확실히 양보하지 않는 한 당장 휴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CPDC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CPDC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패권 전쟁'이다. 무역은 공격 수단일 뿐이다. 애초부터 싱겁게 끝날 일이 아니다. 시진핑의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발톱을 드러냈었다면 '에너지 자립'이라는 날개를 단 트럼프의 미국이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백악관 전·현직 참모들의 성향이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백악관 내 최고 대중 강경파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도 눈에 띈다. 그는 "미국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본능을 따르고 미국이 직면한 역대 최대 존망의 위협에 대항해 자세를 완화하지 않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중국을 '공격적인 전체주의적 적(an aggressive totalitarian foe)'으로 규정하며 배넌을 비롯한 거물급 전직 관리들이 참여해 구성한 '현존 위협 중국에 대한 위원회(The 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 China, CPDC)'도 최근 공청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만만치 않은 '미국 패권 수호' ... 파국일까? 성공일까?

앞서 소개한 로버트 매닝 연구원은 "지금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중국과 북한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이미 중국 제압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다만 중국과의 패권 전쟁도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 개편과 뗄 수 없는 문제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육상 실크로드의 경우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주요 산유국과 이란을 관통해 유럽으로 향한다. 해상 실크로드 역시 동남아시아의 원유를 포함한 주요 수출입 선박 이동 경로와 중동의 아덴만과 홍해를 관통한다. 중국은 미국 앞마당인 남미의 에너지 전략 기지로 베네수엘라를 낙점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에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 안보까지 위협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저자세로 임하는 무역협상과는 달리 태평양, 특히 대만에서의 군사적 대치에서만큼은 미국에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타이완해협 중간선 넘어까지 전투기를 보낸 데 이어 현재 타이완 앞바다에서 실사격 훈련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타이완 총통 선거 출마를 선언한 쿼 타이밍 폭스콘 그룹 회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중국 공산당 출신으로 공산당이 키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친중 인사로 꼽힌다. 쿼 회장의 행보는 미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차이잉원 현 총통이 미국과 밀착하고 있지만 쿼 회장이 당선되면 미-중- 타이완 간 현 구도가 바뀔 수 있다. 타이완 정부는 총선 선거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인터넷 기업 아이치이를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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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분야든 군사 분야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타격을 줄 때마다 상황이 맞물려 돌아간 곳이 있다. 미국이 '미국 전략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하는 한반도다. CNN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발사체를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이란의 위협을 경고하지만, 더욱 긴급한 곳은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주도하는 ‘트럼프 사단’미국의 세계전략을 주도하는 ‘트럼프 사단’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은 많이 제기돼왔지만, 추가 관세 인상 카드는 미국 주요 언론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이 낙관적 견해를 밝히면서 '합의 임박' 보도도 잇따랐던 터라 중국도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느닷없는 관세 인상 위협의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 배후론을 수없이 제기해왔다. 반대로 "무역협상이 깨지면 중국이 북한을 미국에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센터 한국담당 국장은 CNBC 인터뷰에서 "북한 수출의 90%가 중국으로 간다"며 "중국이 북한에 국경을 열면 최대 압박을 바로 끝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더는 경찰국가가 아니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패권국가의 모습으로 적들을 제압하고 나선 미국이지만, 이란은 물론 중국과 북한, 베네수엘라 상황까지 단기간 내 미국 의도대로 결말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참모들 입에서 '군사 옵션'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주 나쁜 신호다. '오랜 기간 내버려 뒀던 문제들'을 전쟁 같은 파국 없이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성패를 가를 순간이 임박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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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19-05-08 20:2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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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핵 동결'로 마무리한 이란 핵 합의는 협상 당시부터 논란이 거셌다. 이란 핵 합의는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전 대통령을 비판할 때마다 써온 단골 메뉴다. 미국과 이란의 대치는 파국의 길로 봐야 할까? 지금이라도 이란을 완전한 비핵화로 되돌리기 위한 길로 봐야 할까?

미국은 이란뿐 아니라 중국과 북한, 베네수엘라까지 동시에 다뤄야 하는 상황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오랜 기간 미국이 내버려 뒀던 문제들'이라고 지적해온 사안들이 일거에 중대 국면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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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긴박하게 돌아가는 곳은 이란 쪽이다. 이란의 경제 봉쇄망을 조이는 데 주력하던 미국 정부는 지난 주말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 전단과 B-52 폭격기를 중동에 긴급 배치했다. "이란이 페르시아만에서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배에 실어 옮길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를 입수했기 때문"이라는 CNN의 보도가 있었지만, 미국 정부는 이란을 겨냥한 갑작스러운 화력 증강의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미국 항공모함 ‘에이브러햄 링컨’
이런 가운데 영국 가디언은 폼페이오 장관이 중동 각지에 흩어져 있는 이란의 '대리군'을 잠재적 표적으로 언급한 것이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란은 팔레스타인을 장악한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슬라믹 지하드의 배후세력으로 지목돼왔다. 미국이 항공모함을 파견한 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는 하마스 측의 선제공격으로 인한 이스라엘과의 무력 충돌이 벌어지고 있었다. 당시 이스라엘의 공습을 두고 외신들은 사실상 이란에 대한 경고라고 보도했다. 가디언은 "볼턴과 폼페이오가 이란이 최근 제재 강화에 대한 보복으로 가자지구를 이용하거나 이스라엘과 미국에 대한 폭격을 선동하는 작전을 계획할 것을 우려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와 오바마 행정부에서 일했던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현재 미국의 이란 압박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비판했다. 이만큼 우선시할 지역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단순히 핵 문제 차원으로 접근하면 맞는 지적이지만, 미국의 이란 압박은 이른바 '셰일 혁명' 이후 최대 산유국 반열에 오른 미국이 자국 주도로 세계 에너지 질서를 재편한다는 큰 그림의 일부분이다. 동시에 이란이 주도해온 석유수출국기구, OPEC에 대한 '오일 패권' 전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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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국제 유가 통제력까지 가진 상황에서 이란이 쓸 수 있는 카드는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핵 합의 맞불 탈퇴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합의 의무 이행 일부 중단'으로 수위를 조절한 결정에서 이란의 고민이 엿보인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력으로 몸부림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미국의 결기가 보인다. 일부 외신은 폼페이오 장관의 전격적인 이라크 방문을 대이란 경고 메시지로 해석했다. 하지만 이라크가 이란과 반이란 국가들 사이에서 중재자를 자처해온 만큼 물밑 협상이 진행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란은 최근, 미국이 지난달 이란산 원유 제재 예외 조치 종료 방침을 밝히며 내놓은 요구사항 중 '억류된 미국 시민들 석방'에 대해 협상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무역전쟁 '2라운드'? ... 힘 받는 대중 강경노선

이렇게 중동이 시끄러운 사이 뉴욕 월가는 무역전쟁 공포에 휩싸였다. 대중국 추가 '관세 폭탄'을 예고한 트럼프 대통령의 '휴일 트윗'이 협상용 엄포가 아니라는 우려가 확산하면서 미국 증시는 4개월 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하며 주저앉았다.

지금 세계 금융 시장의 눈은 오일 쇼크 가능성이 낮은 이란보다는 중국으로 향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2천억 달러 규모 중국산 상품에 매겼던 10%의 관세가 (이번 주) 금요일부터 25%로 오를 것"이라고 밝혔다. 금요일(현지시각 10일)은 미·중 대표단의 워싱턴 협상이 마감되는 날이다. 협상의 여지를 남겨둔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입장도 완강하다. "무역협상은 관세로 해결하지 못한다"는 겅솽 외교부 대변인 발표에 이어 인민일보는 미국을 향해 "중국의 양보는 생각도 말라"고 밝혔다. 더 두들겨 맞을지언정 항복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온 입장으로 볼 때, 미국도 첨단산업 분야 등 주요 의제에서 중국이 확실히 양보하지 않는 한 당장 휴전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 겸 선임고문이 CPDC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과 중국의 싸움은 '패권 전쟁'이다. 무역은 공격 수단일 뿐이다. 애초부터 싱겁게 끝날 일이 아니다. 시진핑의 중국이 미국 패권에 도전하는 발톱을 드러냈었다면 '에너지 자립'이라는 날개를 단 트럼프의 미국이 세계 패권을 확고히 하기 위해 거침없이 질주하는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에 대한 백악관 전·현직 참모들의 성향이 점차 강경해지고 있다. 백악관 내 최고 대중 강경파는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라는 블룸버그 통신의 보도가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의 워싱턴 포스트 기고문도 눈에 띈다. 그는 "미국이 갈림길에 선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본능을 따르고 미국이 직면한 역대 최대 존망의 위협에 대항해 자세를 완화하지 않는 것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3월, 중국을 '공격적인 전체주의적 적(an aggressive totalitarian foe)'으로 규정하며 배넌을 비롯한 거물급 전직 관리들이 참여해 구성한 '현존 위협 중국에 대한 위원회(The Committee on the Present Danger: China, CPDC)'도 최근 공청회를 여는 등 본격적인 여론몰이에 나섰다.

만만치 않은 '미국 패권 수호' ... 파국일까? 성공일까?

앞서 소개한 로버트 매닝 연구원은 "지금 미국의 최우선 관심사는 중국과 북한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들어 미국은 이미 중국 제압에 역량을 집중해왔다.


다만 중국과의 패권 전쟁도 미국 주도의 에너지 질서 개편과 뗄 수 없는 문제다. 중국의 일대일로는 육상 실크로드의 경우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 주요 산유국과 이란을 관통해 유럽으로 향한다. 해상 실크로드 역시 동남아시아의 원유를 포함한 주요 수출입 선박 이동 경로와 중동의 아덴만과 홍해를 관통한다. 중국은 미국 앞마당인 남미의 에너지 전략 기지로 베네수엘라를 낙점하고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이런 움직임은 미국에 '중국이 미국의 에너지 안보까지 위협하려 한다'는 의심을 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은 저자세로 임하는 무역협상과는 달리 태평양, 특히 대만에서의 군사적 대치에서만큼은 미국에 물러서지 않고 있다. 지난 3월 타이완해협 중간선 넘어까지 전투기를 보낸 데 이어 현재 타이완 앞바다에서 실사격 훈련을 벌이고 있다. 특히 최근 타이완 총통 선거 출마를 선언한 쿼 타이밍 폭스콘 그룹 회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중국 공산당 출신으로 공산당이 키운 인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친중 인사로 꼽힌다. 쿼 회장의 행보는 미국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차이잉원 현 총통이 미국과 밀착하고 있지만 쿼 회장이 당선되면 미-중- 타이완 간 현 구도가 바뀔 수 있다. 타이완 정부는 총선 선거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중국 인터넷 기업 아이치이를 시장에서 퇴출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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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역분야든 군사 분야든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타격을 줄 때마다 상황이 맞물려 돌아간 곳이 있다. 미국이 '미국 전략의 린치핀(linchpin·핵심축)'이라고 강조하는 한반도다. CNN은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발사체를 단거리 '탄도' 미사일이라고 평가하면서 "정부 당국자들이 이란의 위협을 경고하지만, 더욱 긴급한 곳은 북한"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의 세계전략을 주도하는 ‘트럼프 사단’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합의 시점을 늦출 수 있다는 관측은 많이 제기돼왔지만, 추가 관세 인상 카드는 미국 주요 언론의 예측을 완전히 빗나간 시나리오다. 트럼프 대통령이 낙관적 견해를 밝히면서 '합의 임박' 보도도 잇따랐던 터라 중국도 어리둥절하다는 반응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발사체 발사가 트럼프 대통령의 느닷없는 관세 인상 위협의 배경이 됐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 배후론을 수없이 제기해왔다. 반대로 "무역협상이 깨지면 중국이 북한을 미국에 대항하는 무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해리 카지아니스 미국 국익센터 한국담당 국장은 CNBC 인터뷰에서 "북한 수출의 90%가 중국으로 간다"며 "중국이 북한에 국경을 열면 최대 압박을 바로 끝낼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더는 경찰국가가 아니라면서도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패권국가의 모습으로 적들을 제압하고 나선 미국이지만, 이란은 물론 중국과 북한, 베네수엘라 상황까지 단기간 내 미국 의도대로 결말을 내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참모들 입에서 '군사 옵션'이라는 말이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은 아주 나쁜 신호다. '오랜 기간 내버려 뒀던 문제들'을 전쟁 같은 파국 없이 미국이 추구하는 새로운 질서로 승화시킬 수 있을지 성패를 가를 순간이 임박한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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