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척추 두 동강 난 유기견, 그 후…유기동물 문제를 둘러싼 ‘한계’와 ‘한숨’

입력 2019.07.16 (16:08) 수정 2019.07.17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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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전라북도 익산에서 유기견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유기견은 발견 당시 심각한 척추 부상으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척추 두 동강 난 유기견 발견' 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쏟아졌고 동물보호단체의 호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았다.

발견 당시 유기견(귀동이)의 모습(우)과 척추 골절 엑스레이 사진(좌)발견 당시 유기견(귀동이)의 모습(우)과 척추 골절 엑스레이 사진(좌)

유기견의 상태가 궁금해 사건 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입원 치료를 맡고 있다는 전주의 한 동물병원과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지난 3월과 4월 연이은 두 차례의 수술 끝에 이 유기견(귀동이)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긴 하지만 입양처를 알아봐도 될 정도로 회복됐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듣게 되었다. 이런 내용 등을 담아 지난 11일 영상으로 기사화했다.

[연관 기사] [영상] 척추 두 동강 난 채 발견된 유기견…그 후 일어난 기적

이 영상(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39879)은 출고되자마자 당일에만 수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평생 불구가 되어버린 이 유기견을 도울 수 있는 방법과 현재 수사 진행 상황 등을 문의해왔다.

관할인 익산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이 사건이 "아무런 외상이나 늑골뼈 부상도 없이 척추뼈만 골절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누군가 둔기 같은 것으로 위에서 내리쳤을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된다"는 담당 수의사의 소견에 따라, 한 동물보호단체가 검찰에 동물학대 여부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줄 것을 촉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몇 달 동안 CCTV와 주민 탐문 등 수사를 진행했지만, 학대범을 특정할 수 없어 사실상 수사 종결을 앞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기동물들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고 주변 사람들도 유기동물들에 대해서는 평소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다보니 작은 단서를 찾는 것조차 매우 어려웠다는 설명과 함께.

이번 경우는 특히 학대범이 있을 거라는 가정으로 접근하다 보니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다친 유기견에게 도움을 주려던 사람이 오해를 살 뻔한 일도 있었다며, 유기동물 학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동물권을 좀 더 배려하자는 사람들과 유기동물 문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빈발하는 길고양이 폐사 사건도, 독극물에 의한 살해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그 문제 자체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공권력 낭비' 또는 '성가신 문제'로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찰이 이른바 '국민의 지팡이'로서 균형을 잡기가 번번이 쉽지 않다고도 토로했다.

이런 애로는 경찰만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귀동이를 치료 중인 동물병원은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밝히기를 한사코 저어했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 지난 넉 달간 두 차례의 척추 골절 수술과 심장사상충 치료,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욕창 치료 등에 이미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조돼 막 내원했을 당시의 귀동이구조돼 막 내원했을 당시의 귀동이

'효율성만 따지자면 안락사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왜 이렇게 많은 비용과 수고를 감당하면서까지 살리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당 수의사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밥도 잘 챙겨먹고 물도 많이 챙겨먹고 하는 모습에서 살려고 하는 생명의 강한 의지가 느껴져 그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이런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오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계속해서 치료비가 누적되자 급기야 SNS를 중심으로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오직 생명에 대한 예의로서 기꺼이 돌봄과 도움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보람을 느끼면서도 유기동물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깊은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개별 사건의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할 땐 한결같이 '한숨'을 지었다.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거두고
누군가는 학대하고, 누군가는 치료하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선 아무도 선뜻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과연 동물들에만 관련된 문제일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기동물의 수를 점차 줄여나가는 일일 것이다. 일선 활동가들이나 경찰의 지적처럼 유기동물은 거처조차가 없다보니 상시 위험에 노출돼 있고 사고를 당할 확률도 높아서 민원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이를 대하는 입장과 시각이 서로 다른 주민들 간에 갈등이나 다툼으로까지 비화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해결할 제도나 체계가 없다. 따라서 전담 부서나 인력, 예산도 미비한 실정이다. 유기동물 구조는 물론이고 유기동물 감소 대책과 관련해서도 안락사나 중성화 수술 외에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구조된 유기동물을 거두고 치료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이나 동물보호단체의 몫이 된다.

전주의 한 동물병원에서 특수 제작 휠체어를 타고 적응 훈련 중인 귀동이. 뒷다리를 못 쓰게 되어서 사람으로 치자면 손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하루에 4~5시간밖에 휠체어를 타지 못 하고 나머지 시간은 누워서 지내야 한다.전주의 한 동물병원에서 특수 제작 휠체어를 타고 적응 훈련 중인 귀동이. 뒷다리를 못 쓰게 되어서 사람으로 치자면 손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하루에 4~5시간밖에 휠체어를 타지 못 하고 나머지 시간은 누워서 지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단체나 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ASPCA(The America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라는 전국적인 동물 복지 NGO 네트워크가 정부 및 지자체와 체계적으로 협업해 유기동물 문제와 동물학대 문제 해결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물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단체에 소속된 수의사는 물론이고 법의학자 등이 지역 경찰과 함께 현장 조사를 나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식이다. 물론 이는 동물학대가 법에 의해 '중범죄'로 인정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우선 주인 없는 유기동물에 대해서도 생명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그것이 동물을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위하는 방법이자 방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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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7-16 16:08:25
    • 수정2019-07-17 18:34:00
    취재후·사건후
지난 3월 전라북도 익산에서 유기견 한 마리가 발견됐다. 이 유기견은 발견 당시 심각한 척추 부상으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상태였다. 이 때문에 '척추 두 동강 난 유기견 발견' 등의 제목이 달린 기사가 쏟아졌고 동물보호단체의 호소로 널리 알려지면서 관심을 모았다.

발견 당시 유기견(귀동이)의 모습(우)과 척추 골절 엑스레이 사진(좌)
유기견의 상태가 궁금해 사건 발생 후 얼마 되지 않아 입원 치료를 맡고 있다는 전주의 한 동물병원과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지난 3월과 4월 연이은 두 차례의 수술 끝에 이 유기견(귀동이)이 평생 휠체어 신세를 져야 하긴 하지만 입양처를 알아봐도 될 정도로 회복됐다는 이야기를 최근에 듣게 되었다. 이런 내용 등을 담아 지난 11일 영상으로 기사화했다.

[연관 기사] [영상] 척추 두 동강 난 채 발견된 유기견…그 후 일어난 기적

이 영상(링크: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239879)은 출고되자마자 당일에만 수만 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많은 사람들이 평생 불구가 되어버린 이 유기견을 도울 수 있는 방법과 현재 수사 진행 상황 등을 문의해왔다.

관할인 익산경찰서 담당 수사관은 이 사건이 "아무런 외상이나 늑골뼈 부상도 없이 척추뼈만 골절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누군가 둔기 같은 것으로 위에서 내리쳤을 가능성이 강하게 의심된다"는 담당 수의사의 소견에 따라, 한 동물보호단체가 검찰에 동물학대 여부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줄 것을 촉구하는 고발장을 접수해놓은 상태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난 몇 달 동안 CCTV와 주민 탐문 등 수사를 진행했지만, 학대범을 특정할 수 없어 사실상 수사 종결을 앞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유기동물들은 주인이 없기 때문에 수사가 어렵고 주변 사람들도 유기동물들에 대해서는 평소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다보니 작은 단서를 찾는 것조차 매우 어려웠다는 설명과 함께.

이번 경우는 특히 학대범이 있을 거라는 가정으로 접근하다 보니 수사 과정에서 오히려 다친 유기견에게 도움을 주려던 사람이 오해를 살 뻔한 일도 있었다며, 유기동물 학대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동물권을 좀 더 배려하자는 사람들과 유기동물 문제에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최근 빈발하는 길고양이 폐사 사건도, 독극물에 의한 살해 가능성을 의심하는 사람들과 그 문제 자체를 그다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고 '공권력 낭비' 또는 '성가신 문제'로만 바라보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찰이 이른바 '국민의 지팡이'로서 균형을 잡기가 번번이 쉽지 않다고도 토로했다.

이런 애로는 경찰만 겪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귀동이를 치료 중인 동물병원은 그동안 들어간 비용을 밝히기를 한사코 저어했지만, (동물보호단체 등을 통해 취재한 결과) 지난 넉 달간 두 차례의 척추 골절 수술과 심장사상충 치료, 그리고 언제까지 지속될 지 모르는 욕창 치료 등에 이미 천만 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구조돼 막 내원했을 당시의 귀동이
'효율성만 따지자면 안락사 이야기가 나올 법도 한데 왜 이렇게 많은 비용과 수고를 감당하면서까지 살리려고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담당 수의사는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밥도 잘 챙겨먹고 물도 많이 챙겨먹고 하는 모습에서 살려고 하는 생명의 강한 의지가 느껴져 그 눈빛을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동안 이런 상황을 꾸준히 모니터링해오던 동물보호단체에서는 계속해서 치료비가 누적되자 급기야 SNS를 중심으로 모금 활동에 들어갔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된 건,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고 자발적으로, 오직 생명에 대한 예의로서 기꺼이 돌봄과 도움을 자처하고 있었지만, 보람을 느끼면서도 유기동물 문제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 깊은 '무력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개별 사건의 해결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해결책을 논할 땐 한결같이 '한숨'을 지었다.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거두고
누군가는 학대하고, 누군가는 치료하고,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반복되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해선 아무도 선뜻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못했다.

과연 동물들에만 관련된 문제일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유기동물의 수를 점차 줄여나가는 일일 것이다. 일선 활동가들이나 경찰의 지적처럼 유기동물은 거처조차가 없다보니 상시 위험에 노출돼 있고 사고를 당할 확률도 높아서 민원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종종 이를 대하는 입장과 시각이 서로 다른 주민들 간에 갈등이나 다툼으로까지 비화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은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지만 현재로서는 이를 해결할 제도나 체계가 없다. 따라서 전담 부서나 인력, 예산도 미비한 실정이다. 유기동물 구조는 물론이고 유기동물 감소 대책과 관련해서도 안락사나 중성화 수술 외에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지만,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으로 이어질 기미는 아직까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이렇다보니 구조된 유기동물을 거두고 치료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이나 동물보호단체의 몫이 된다.

전주의 한 동물병원에서 특수 제작 휠체어를 타고 적응 훈련 중인 귀동이. 뒷다리를 못 쓰게 되어서 사람으로 치자면 손을 계속 들고 있어야 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하루에 4~5시간밖에 휠체어를 타지 못 하고 나머지 시간은 누워서 지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제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문제를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전문 단체나 기관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ASPCA(The American Society for the Prevention of Cruelty to Animals)라는 전국적인 동물 복지 NGO 네트워크가 정부 및 지자체와 체계적으로 협업해 유기동물 문제와 동물학대 문제 해결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물 학대 신고가 들어오면 단체에 소속된 수의사는 물론이고 법의학자 등이 지역 경찰과 함께 현장 조사를 나가 원스톱으로 해결하는 식이다. 물론 이는 동물학대가 법에 의해 '중범죄'로 인정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아직 우리 사회가 그렇게 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지만, 우선 주인 없는 유기동물에 대해서도 생명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것이 그 시작이 되리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결국 그것이 동물을 위하고, 더 나아가서는 사람을 위하는 방법이자 방향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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