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피해자다움’은 편협한 관점”…‘성인지감수성’ 원칙 확립

입력 2019.09.09 (21:35) 수정 2019.09.09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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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9일) 대법원 확정 판결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이 감내해온 이른바 '피해자다움'이 더이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상식적이다", 혹은 "피해자답지 않다"는 인식은 편협하고 잘못된 인식이라는 겁니다.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는 피해자가 처할 수 있는 불평등 상황과 같은 다양한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 원칙이 법원의 판결 원리로 자리잡았다는 평가입니다.

김채린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 직후, 이른바 '피해자다움'에 대한 논란이 거셌습니다.

1심 재판부는 성인지감수성 원칙을 언급하면서도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그 근거로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들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성폭행 피해를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안 전 지사를 적극 지지하는 말을 한 점.

최소한의 회피도, 저항도 하지 않은 점은 물론 해외에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날이 밝자마자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를 파는 식당을 적극 찾아본 점 등 세세한 행동까지 열거하며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피해자다움'을 전제한 판단이 "편협한 관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의 타고난 성품과 가해자와의 관계, 개별 상황에 따라 대처 양상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일과 성폭행 사건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던 점.

그리고 해외 순방에 동행한 유일한 비서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성폭행 당일 아침이라 하더라도 업무상 순두부 식당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을 걸로 보인다는 등, 피해자의 처지를 더 깊이 살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2심 판단이 1심보다 '성인지 감수성'에 더 부합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이어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거듭 주장한 안 전 지사 측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혜선/변호사/'안희정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 : "앞으로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움츠러 들지 않고 외부에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도록, 이러한 판결이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

'피해자다움'을 깨뜨린 성인지감수성 원칙은 이번 대법 판결에 따라 더 확고한 법리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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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법 “‘피해자다움’은 편협한 관점”…‘성인지감수성’ 원칙 확립
    • 입력 2019-09-09 21:38:46
    • 수정2019-09-09 21:57:39
    뉴스 9
[앵커]

오늘(9일) 대법원 확정 판결은 그동안 성폭력 피해자들이 감내해온 이른바 '피해자다움'이 더이상 판단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재확인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래야 상식적이다", 혹은 "피해자답지 않다"는 인식은 편협하고 잘못된 인식이라는 겁니다.

성폭력 사건을 심리할 때는 피해자가 처할 수 있는 불평등 상황과 같은 다양한 사정을 살펴야 한다는 '성인지 감수성' 원칙이 법원의 판결 원리로 자리잡았다는 평가입니다.

김채린 기자입니다.

[리포트]

지난해 8월 안희정 전 지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 직후, 이른바 '피해자다움'에 대한 논란이 거셌습니다.

1심 재판부는 성인지감수성 원칙을 언급하면서도 사건의 유일한 증거인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며 그 근거로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않은' 모습을 들었습니다.

가까운 지인에게조차 성폭행 피해를 전혀 내색하지 않고 안 전 지사를 적극 지지하는 말을 한 점.

최소한의 회피도, 저항도 하지 않은 점은 물론 해외에서 성폭행을 당하고도 날이 밝자마자 안 전 지사가 좋아하는 순두부를 파는 식당을 적극 찾아본 점 등 세세한 행동까지 열거하며 납득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이런 '피해자다움'을 전제한 판단이 "편협한 관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했습니다.

피해자의 타고난 성품과 가해자와의 관계, 개별 상황에 따라 대처 양상이 달라지는 게 당연하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피해자가 '일과 성폭행 사건을 분리시켜야 한다'고 다짐했던 점.

그리고 해외 순방에 동행한 유일한 비서였던 점을 고려한다면, 성폭행 당일 아침이라 하더라도 업무상 순두부 식당을 찾아볼 수 밖에 없었을 걸로 보인다는 등, 피해자의 처지를 더 깊이 살폈습니다.

대법원은 이런 2심 판단이 1심보다 '성인지 감수성'에 더 부합한다고 결론내렸습니다.

이어 '피해자다움'을 근거로 피해자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거듭 주장한 안 전 지사 측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혜선/변호사/'안희정 사건' 피해자 법률대리인 : "앞으로도 (성폭력) 피해자들이 움츠러 들지 않고 외부에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주도록, 이러한 판결이 계속 유지되기를 희망합니다."]

'피해자다움'을 깨뜨린 성인지감수성 원칙은 이번 대법 판결에 따라 더 확고한 법리로 자리잡게 됐습니다.

KBS 뉴스 김채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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