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K] 역사학자 없는 영정심의위원회…고려·조선 전공자 전무

입력 2019.10.02 (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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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친일 행적과 고증 오류로 논란이 된 충무공 영정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가 두 차례나 영정 교체 불가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관련된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연관기사] [취재K] 충무공 영정 두 번이나 “교체 불가”…이유 알아보니

영정을 지정하고 또 지정에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영정심의위원 가운데 고려시대 이후 역사 전공자가 단 한 명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KBS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과 함께 영정심의위원들의 명단과 주요 경력을 분석해봤더니, 현재 위촉된 위원 11명 가운데 역사학자는 2명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전공은 각각 무구(武具, 전쟁에서 쓰이는 여러 도구)와 고대사입니다. 다른 9명의 전공은 용모와 복식, 공예, 미술사 등으로 넓은 의미에서 미술 분야로 볼 수 있습니다.


무구 전공은 복식 전공처럼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것이니,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학자는 고대사를 전공한 1명뿐입니다. 한반도의 고대사는 일반적으로 고려 이전, 삼국시대까지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고려 이후 시기를 전공한 심의위원은 없는 것인데, 기존에 제작된 영정은 어느 시대 인물들인지 살펴봤습니다.

정부표준영정은 총 98위(位)…전공자 없는 고려 이후가 ⅔

현재 정부표준영정이 있는 98명의 위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인물은 고조선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입니다. 그 뒤로는 가야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정견모주와 이진아시왕이 있고, 이후로는 광개토대왕과 김유신 등 삼국시대의 인물과 가깝게는 일제강점기의 유관순 열사가 있습니다. 98명 전체를 시대별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통일국가가 등장하는 고려 이후의 인물이 61명으로 전체의 ⅔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심의위원들이 1973년부터 지정된 모든 영정을 심의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표준영정이 새로 제작될 개연성이 있는 위인의 숫자도 고려 이전보다는 이후일 확률이 더 높다고 볼 때, 현재의 위원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심의위가 기존 영정을 해제할 권한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 61명의 위인 영정은 전공자 없는 심의위에 맡겨진 셈입니다.

정부표준영정제도 개선을 위해 입법안을 만들고 있는 신동근 의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시대인 고려와 조선시대 연구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면서 "영정심의위원 구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미술과 관련된 위원이 9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영정 심의 과정에 미술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영정 제작 화가의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이후에도 해당 화가가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보니 표준영정 해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실제로 충무공 영정 외에 윤봉길 의사의 영정도 기념사업회가 표준영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업회는 아예 자체적으로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따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정부표준영정이라는 명칭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체부가 마련한 표준영정 제도 개선안.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 제공문체부가 마련한 표준영정 제도 개선안.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 제공

문체부 "역사학자 참여 보장"…화가 친일 논란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문체부가 심의위원 구성과 관련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개선안에는 역사학자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고려와 조선, 근대사 전공자를 1명씩 추가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영정 해제와 관련해서도 영정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한 절차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돼 있는데, 충무공 영정 등의 논란을 의식한 조치로 보입니다.

신동근 의원실에서는 문체부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입법안을 준비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화가의 친일 논란이 심의 규정에 없어 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영정 화가의 행적이 논란이 되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영정 해제를 검토하는 취지의 조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신 의원은 "영정을 그린 화가의 행적이 논란이 될 경우, 영정의 주인공인 위인의 위상에도 해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전해드린 대로 충무공 영정 문제는 감사원에 공익 감사가 신청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심의위원회 제도 개선안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영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기관이 참여하게 되는 만큼 10년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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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K] 역사학자 없는 영정심의위원회…고려·조선 전공자 전무
    • 입력 2019-10-02 06:17:25
    취재K
화가의 친일 행적과 고증 오류로 논란이 된 충무공 영정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 영정동상심의위원회가 두 차례나 영정 교체 불가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드렸는데, 관련된 내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연관기사] [취재K] 충무공 영정 두 번이나 “교체 불가”…이유 알아보니

영정을 지정하고 또 지정에서 해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영정심의위원 가운데 고려시대 이후 역사 전공자가 단 한 명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KBS가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과 함께 영정심의위원들의 명단과 주요 경력을 분석해봤더니, 현재 위촉된 위원 11명 가운데 역사학자는 2명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의 전공은 각각 무구(武具, 전쟁에서 쓰이는 여러 도구)와 고대사입니다. 다른 9명의 전공은 용모와 복식, 공예, 미술사 등으로 넓은 의미에서 미술 분야로 볼 수 있습니다.


무구 전공은 복식 전공처럼 특정 분야에 한정된 것이니, 엄밀한 의미에서 역사학자는 고대사를 전공한 1명뿐입니다. 한반도의 고대사는 일반적으로 고려 이전, 삼국시대까지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그러면 고려 이후 시기를 전공한 심의위원은 없는 것인데, 기존에 제작된 영정은 어느 시대 인물들인지 살펴봤습니다.

정부표준영정은 총 98위(位)…전공자 없는 고려 이후가 ⅔

현재 정부표준영정이 있는 98명의 위인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인물은 고조선 건국신화에 등장하는 단군입니다. 그 뒤로는 가야 건국설화에 등장하는 정견모주와 이진아시왕이 있고, 이후로는 광개토대왕과 김유신 등 삼국시대의 인물과 가깝게는 일제강점기의 유관순 열사가 있습니다. 98명 전체를 시대별로 구분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삼국시대를 지나 본격적인 통일국가가 등장하는 고려 이후의 인물이 61명으로 전체의 ⅔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심의위원들이 1973년부터 지정된 모든 영정을 심의한 것은 물론 아닙니다. 하지만 앞으로 표준영정이 새로 제작될 개연성이 있는 위인의 숫자도 고려 이전보다는 이후일 확률이 더 높다고 볼 때, 현재의 위원 구성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또, 심의위가 기존 영정을 해제할 권한도 있다는 점에서 현재 61명의 위인 영정은 전공자 없는 심의위에 맡겨진 셈입니다.

정부표준영정제도 개선을 위해 입법안을 만들고 있는 신동근 의원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역사시대인 고려와 조선시대 연구자가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면서 "영정심의위원 구성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특히, 미술과 관련된 위원이 9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도 개선이 필요하다면서, "영정 심의 과정에 미술계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큰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이러한 지적은 영정 제작 화가의 친일 행적이 드러난 이후에도 해당 화가가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인물이다 보니 표준영정 해제가 되지 않고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에 근거한 것입니다.

실제로 충무공 영정 외에 윤봉길 의사의 영정도 기념사업회가 표준영정 해제를 지속적으로 요구해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념사업회는 아예 자체적으로 윤봉길 의사의 영정을 따로 제작하기도 했습니다. 정부표준영정이라는 명칭이 무색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문체부가 마련한 표준영정 제도 개선안. 더불어민주당 신동근 의원실 제공
문체부 "역사학자 참여 보장"…화가 친일 논란은?

이러한 지적에 대해 문체부가 심의위원 구성과 관련해 개선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개선안에는 역사학자의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고려와 조선, 근대사 전공자를 1명씩 추가하는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표준영정 해제와 관련해서도 영정 공백 상태를 막기 위한 절차 규정을 보완하겠다고 돼 있는데, 충무공 영정 등의 논란을 의식한 조치로 보입니다.

신동근 의원실에서는 문체부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입법안을 준비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화가의 친일 논란이 심의 규정에 없어 해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영정 화가의 행적이 논란이 되거나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경우 영정 해제를 검토하는 취지의 조항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신 의원은 "영정을 그린 화가의 행적이 논란이 될 경우, 영정의 주인공인 위인의 위상에도 해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서 전해드린 대로 충무공 영정 문제는 감사원에 공익 감사가 신청된 상태입니다. 여기에 국회에서도 심의위원회 제도 개선안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영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기관이 참여하게 되는 만큼 10년의 논란이 종지부를 찍게 될지 지켜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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