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아빠 논문’에 이름 넣기…연구윤리만 지키면 문제 없다?

입력 2019.10.02 (14:48) 수정 2019.10.02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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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인 부모 연구실에서 만든 논문에 고등학생 자녀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문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고등학생 자녀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릴 만큼 논문과 연구에 기여했을까?' 이런 의심이 들 겁니다. 더불어 '부모가 교수여서 공짜로 얻은 기회는 과연 정당할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 역시 들 겁니다.

■ 이병천 등 서울대 교수 2명 논문에 자녀 이름 올려 연구윤리 위반

지난해 교육부 조사 결과 교수인 부모 실험실 등에서 연구에 참여해 논문에 이름을 올린 미성년 자녀가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연구윤리 위반으로 결론 내린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와 서울대 의대 A 교수의 자녀들도 조사 결과에 포함됐습니다.

[연관 기사] 자녀를 논문 저자로…이병천 등 서울대 교수 2명 “연구윤리 위반”

이병천 교수의 아들 이 모 씨는 미성년자였던 2012년 아버지의 '소 복제' 관련 논문에 제2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실험 일부를 수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내용이 단편적이어서 이 교수 자녀가 저자로 인정받을 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A 교수의 자녀 또한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2007년과 2008년 총 3편의 논문에 아버지와 함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연구진실성위원회는 3편 모두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자녀가 논문 수정 단계에서 한 문단을 추가하거나 실험에서 약품을 투여했다고 해도 이 같은 행위를 논문 저자로 인정받을 정도의 기여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 “6명 중 4명은 연구윤리 위반 아냐”…‘아빠 찬스’는 문제없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이 교수와 A 교수 외에 미성년 자녀를 본인 논문에 올린 다른 4명의 교수에 대해서도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자녀는 미성년임에도 논문에 이름을 올릴 만큼의 기여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저자 등이 연구 당시 작성한 연구노트 등을 근거로 이들 4명의 교수 자녀가 실험과 분석을 실질적으로 수행했다거나 핵심내용을 분석하는 등 논문에 기여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문 속 연구에서 미성년 자녀가 실질적인 역할을 했는지만 살펴본 결과입니다. 이 미성년 자녀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연구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빠져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자녀들이 과연 어떤 자격으로 해당 연구에 참여하게 됐을까요? 현재 규정상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수들의 연구에 참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자격 제한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고교생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를 하는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연구 참여를 요청하고, 실제로 방학을 이용해 그 연구실에서 실습 등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교생이라도 연구에 참여시키는 것은 100% 교수 재량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부모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에 참여해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자녀들은 흔히 말하는 '아빠 찬스'나 '엄마 찬스'를 쓴 셈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런 특별한 기회를 이용해 얻은 결과를 만약 대입에 활용했다면, 연구에 성실히 참여해 연구윤리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교수 자녀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공계 분야 연구윤리를 전문으로 하는 황은성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고등학생 참여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학생 스스로 이메일 등을 보내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후 실험에 참여하는 '정상적인 루트'를 밟은 게 아니라 교수 자녀가 쉽게 연구기회를 제공받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39건 중 12건만 연구윤리 위반이라던 ‘아빠 논문’ 재조사 결과 주목해야

교수가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논문 139건에 대해 지난해 각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자체검증한 결과 12건의 논문만이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머지 127건의 논문 속 미성년 공저자가 모두 논문에 인정될만한 기여를 했다는 겁니다.

이에 교육부가 각 대학 검증결과를 재검토했고, 연구부정이 아니라고 결론 난 127건 중 40건만 검증결과가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87건은 '재조사 중'입니다. 2건은 교육부가 재검토하고, 85건은 해당 연구의 연구비를 지원한 부처나 각 대학에 재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교육부가 이렇게 재조사를 요청한 게 올 초입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교수 미성년 자녀 및 미성년 공저자 논문 조사결과' 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뒤 아직 재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십 건의 연구부정이 추가로 밝혀질 수 있을지 교육부의 재조사 결과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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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아빠 논문’에 이름 넣기…연구윤리만 지키면 문제 없다?
    • 입력 2019-10-02 14:48:06
    • 수정2019-10-02 14:48:18
    취재후·사건후
"교수인 부모 연구실에서 만든 논문에 고등학생 자녀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 문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고등학생 자녀가 공저자로 이름을 올릴 만큼 논문과 연구에 기여했을까?' 이런 의심이 들 겁니다. 더불어 '부모가 교수여서 공짜로 얻은 기회는 과연 정당할까.' 라는 근본적인 의문 역시 들 겁니다.

■ 이병천 등 서울대 교수 2명 논문에 자녀 이름 올려 연구윤리 위반

지난해 교육부 조사 결과 교수인 부모 실험실 등에서 연구에 참여해 논문에 이름을 올린 미성년 자녀가 적지 않았습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연구윤리 위반으로 결론 내린 서울대 수의대 이병천 교수와 서울대 의대 A 교수의 자녀들도 조사 결과에 포함됐습니다.

[연관 기사] 자녀를 논문 저자로…이병천 등 서울대 교수 2명 “연구윤리 위반”

이병천 교수의 아들 이 모 씨는 미성년자였던 2012년 아버지의 '소 복제' 관련 논문에 제2 저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실험 일부를 수행한 사실은 인정되지만, 내용이 단편적이어서 이 교수 자녀가 저자로 인정받을 정도의 기여를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서울대 의대 A 교수의 자녀 또한 한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2007년과 2008년 총 3편의 논문에 아버지와 함께 공저자로 이름을 올렸는데, 연구진실성위원회는 3편 모두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자녀가 논문 수정 단계에서 한 문단을 추가하거나 실험에서 약품을 투여했다고 해도 이 같은 행위를 논문 저자로 인정받을 정도의 기여로 보기는 어렵다고 봤습니다.


■ “6명 중 4명은 연구윤리 위반 아냐”…‘아빠 찬스’는 문제없다?

국회 교육위원회 김해영 의원실(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이 교수와 A 교수 외에 미성년 자녀를 본인 논문에 올린 다른 4명의 교수에 대해서도 연구윤리 위반 여부를 조사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의 자녀는 미성년임에도 논문에 이름을 올릴 만큼의 기여가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저자 등이 연구 당시 작성한 연구노트 등을 근거로 이들 4명의 교수 자녀가 실험과 분석을 실질적으로 수행했다거나 핵심내용을 분석하는 등 논문에 기여했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는 논문 속 연구에서 미성년 자녀가 실질적인 역할을 했는지만 살펴본 결과입니다. 이 미성년 자녀가 어떤 자격으로 어떤 과정을 거쳐 해당 연구에 참여했는지에 대한 판단은 빠져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 자녀들이 과연 어떤 자격으로 해당 연구에 참여하게 됐을까요? 현재 규정상 고등학생들이 대학교수들의 연구에 참여하는 것에는 아무런 자격 제한이 없습니다. 이 때문에 일부 고교생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의 연구를 하는 교수에게 메일을 보내 연구 참여를 요청하고, 실제로 방학을 이용해 그 연구실에서 실습 등을 하기도 합니다.

이는 고교생이라도 연구에 참여시키는 것은 100% 교수 재량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부모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에 참여해 논문 저자로 이름을 올린 자녀들은 흔히 말하는 '아빠 찬스'나 '엄마 찬스'를 쓴 셈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이런 특별한 기회를 이용해 얻은 결과를 만약 대입에 활용했다면, 연구에 성실히 참여해 연구윤리를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교수 자녀라는 이유로 특혜를 받았다고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와 관련해 이공계 분야 연구윤리를 전문으로 하는 황은성 서울시립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고등학생 참여 자체를 문제라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학생 스스로 이메일 등을 보내 공부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후 실험에 참여하는 '정상적인 루트'를 밟은 게 아니라 교수 자녀가 쉽게 연구기회를 제공받거나 부모가 자녀에게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은 부적절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139건 중 12건만 연구윤리 위반이라던 ‘아빠 논문’ 재조사 결과 주목해야

교수가 미성년 자녀를 공저자로 올린 논문 139건에 대해 지난해 각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가 자체검증한 결과 12건의 논문만이 연구윤리를 위반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나머지 127건의 논문 속 미성년 공저자가 모두 논문에 인정될만한 기여를 했다는 겁니다.

이에 교육부가 각 대학 검증결과를 재검토했고, 연구부정이 아니라고 결론 난 127건 중 40건만 검증결과가 적절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나머지 87건은 '재조사 중'입니다. 2건은 교육부가 재검토하고, 85건은 해당 연구의 연구비를 지원한 부처나 각 대학에 재조사를 요청했습니다. 교육부가 이렇게 재조사를 요청한 게 올 초입니다.

교육부는 지난 5월 '교수 미성년 자녀 및 미성년 공저자 논문 조사결과' 자료를 통해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뒤 아직 재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십 건의 연구부정이 추가로 밝혀질 수 있을지 교육부의 재조사 결과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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