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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후] “이런 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국정원 채용에 무슨 일이…
입력 2019.11.10 (09:01) 수정 2019.11.10 (10:08) 취재후·사건후
채용 이슈는 언제나 민감합니다. '불공정 채용'은 의혹 수준에서도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죠. 조국 전 장관과 김성태 의원 자녀 사건에 대한 여론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사한 의혹이 국가정보원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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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정원서도 ‘아빠 찬스’ 채용 의혹…규정 벗어나고도 합격
“담당자의 단순 실수라 문제없다”…국정원 애매한 해명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정원은 2016년 5월, 7급 공채를 시작합니다. 〈서류전형-필기시험-체력검정-면접〉 4단계 평가를 거쳐, 2017년에 임용되는 일정이었습니다. 물론, 국정원이라는 곳의 특성상 최종 문턱은 매우 빡빡한 신원조회였습니다.

신원조회를 제외하면, 채용 전형 자체는 특별할 것 없었습니다. 비밀 요원인 국정원 직원도 일단은 국가공무원이니까요. 많은 부처가 그러하듯, 국정원도 어학시험 성적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공무원채용의 일반 기준에 따라 '토익은 국내나 일본 성적만 인정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한때 토익 '해외 원정 응시'가 유행했습니다. 미국, 필리핀 등에서는 기출문제가 그대로 출제되는 일이 잦아서 그만큼 점수를 얻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점을 막으려 인사혁신처는 2005년부터 국내와 일본 토익 성적만 인정해왔습니다. 국정원도 이를 따랐던 겁니다.

미국 토익 성적표를 냈는데도 합격…누구였길래?

그런데 한 지원자가 미국 토익 성적표를 제출합니다. 채용공고대로라면 당연히 서류 심사에서 탈락할 대상이지만, 웬일인지 서류 전형을 통과했습니다. 이 지원자는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국정원 채용 담당자들이 토익 성적의 국적을 '깜빡' 놓치기라도 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정원 일부 실무자들은 해당 지원자의 영어 성적 적격성을 문제 삼으며 채용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논란의 파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채용 담당 중간 간부가 일시적인 '직무 배제' 조치를 당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합격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취재 결과, 해당 지원자의 아버지는 국정원의 고위 간부 A 씨. (아직 현직 요원이어서 성씨도 비실명화 처리) A 씨는 국정원 요직을 거쳐 갔던 인물입니다. 감찰실에 오래 근무했고, 인사처장을 거쳐 방첩 수사를 총괄하는 수사단장까지 맡았습니다.

당시 A 씨는 직급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이른바 '실세'로 통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 파견을 갔다 온 뒤 위세가 더 커졌는데, A 씨와 함께 인수위에 나갔던 사람이 '우병우 비선 보고' 혐의로 현재 복역 중인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었습니다.

아버지 A 씨의 해명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다"

그렇다면, 미국 토익 성적의 무사통과는 아버지의 영향력 덕 아니었을까요? 취재된 사실을 종합하면, '아빠 찬스'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합니다. 취재 대상이 정보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지만,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팩트는 더 있습니다.

수소문 끝에 현직 요원인 A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취재진의 여러 질문에, 자신의 자녀는 오히려 피해자라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국정원이 안내를 잘못했고, 그걸 믿고 미국 토익 성적을 냈을 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국정원 국정감사 '아빠 찬스' 의혹 거론…서훈 원장 "단순 행정착오"

국정원은 채용과 보임은 물론 직원의 신원 정보 자체가 비밀인 곳입니다. 그런데도 특정 직원의 채용을 둘러싼 논란이 외부로 흘러나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지난 월요일(4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타 부처 국정감사와는 달리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는 모두 비공개됩니다. 정보위원과 국정원 양측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두 명의 정보위원이 이 문제를 추궁했다고 합니다. A 씨의 영향력이 개입된 불공정 채용 아니냐고 국정원 측을 질타했습니다.

국정원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방어했습니다. 서훈 국정원장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정원은 올 초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는데, 채용을 취소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고 KBS에 추가로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밀행성을 악용한다면

'미국 토익도 인정된다'고 담당자가 잘못 안내했으니 더 바로잡기는 어렵다는 국정원의 설명. 찬찬히 뜯어보면, 아리송한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채용공고에 너무나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 해당 지원자는 왜 굳이 미국 토익 인정 여부를 문의했을까요. 정부 채용에서 2005년부터 일관되게 유지된 어학시험 인정 기준을 담당자는 하필 그때 잘못 안내했을까요. 혹시라도 그 담당자는 채용 업무를 처음 해보는 신참자였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국정원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상합니다. 직원이 실수로 채용 기준을 잘못 안내했다고 해도, 채용공고는 공고대로 지켰어야 합니다. 직원이 잘못 안내했다고, 갑자기 미국 토익도 인정한다면, 그것은 국정원의 채용기준이 춤을 췄다고 자인하는 꼴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국정원은 해당 담당자를 문책 또는 징계했어야 마땅합니다. 공정이 최우선인 채용 기준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담당자에게 어떠한 인사 조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히려 더 좋은 자리를 배려받았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국정원 사정을 잘 알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국정원 인사 시스템을 잘 아는 한 취재원은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국정원은 인사가 모두 비밀로 이뤄지는 만큼, 어느 기관보다 기준이 엄격하게 준수되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이번 일이 국정원이 아닌 다른 부처에서 일어났다면, 사건의 진위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겁니다. 내부자의 제보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국정원장의 해명이 사실인지도 교차 검증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국정원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비밀인 기관입니다. 법이 '밀행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감사원 등 외부기관의 감시도 거의 없습니다. 국정원은 올 초 61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치 행정에 대해 감사를 받았던 게 전부입니다. 정보기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건 '정보 업무의 비밀'입니다. '비리 의혹을 덮을 비밀'을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업무를 더 잘하라고 법에 따라 비밀을 보장받는다면, 내부의 위법과 부당은 어느 기관보다 더 철저한 자정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자정 작용이 실패한다면, 결국은 외부의 메스를 들이댈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정보기관이라 해도 '비밀'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댓글 사건' 등 우리는 충분히 봐 왔습니다.

이번 보도 이후, 국정원 측이 정보 유출자를 색출한다는 뒷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그런 열정을 자정 작용에 더 쏟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취재진은 단순히 직원 1명에 대한 부당 채용 의혹에 그치지 않을 거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추가 제보를 기다립니다.
  • [취재후] “이런 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국정원 채용에 무슨 일이…
    • 입력 2019-11-10 09:01:37
    • 수정2019-11-10 10:08:46
    취재후·사건후
채용 이슈는 언제나 민감합니다. '불공정 채용'은 의혹 수준에서도 큰 공분을 불러일으키죠. 조국 전 장관과 김성태 의원 자녀 사건에 대한 여론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유사한 의혹이 국가정보원에도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십니까.

[연관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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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의 단순 실수라 문제없다”…국정원 애매한 해명


사건은 201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국정원은 2016년 5월, 7급 공채를 시작합니다. 〈서류전형-필기시험-체력검정-면접〉 4단계 평가를 거쳐, 2017년에 임용되는 일정이었습니다. 물론, 국정원이라는 곳의 특성상 최종 문턱은 매우 빡빡한 신원조회였습니다.

신원조회를 제외하면, 채용 전형 자체는 특별할 것 없었습니다. 비밀 요원인 국정원 직원도 일단은 국가공무원이니까요. 많은 부처가 그러하듯, 국정원도 어학시험 성적 제출을 요구했습니다. 공무원채용의 일반 기준에 따라 '토익은 국내나 일본 성적만 인정한다'고 명시했습니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습니다만, 한때 토익 '해외 원정 응시'가 유행했습니다. 미국, 필리핀 등에서는 기출문제가 그대로 출제되는 일이 잦아서 그만큼 점수를 얻기가 쉬웠기 때문입니다. 이런 허점을 막으려 인사혁신처는 2005년부터 국내와 일본 토익 성적만 인정해왔습니다. 국정원도 이를 따랐던 겁니다.

미국 토익 성적표를 냈는데도 합격…누구였길래?

그런데 한 지원자가 미국 토익 성적표를 제출합니다. 채용공고대로라면 당연히 서류 심사에서 탈락할 대상이지만, 웬일인지 서류 전형을 통과했습니다. 이 지원자는 최종 합격의 기쁨을 누렸습니다. 당시 국정원 채용 담당자들이 토익 성적의 국적을 '깜빡' 놓치기라도 했던 걸까요.

그렇지 않았습니다. 당시 국정원 일부 실무자들은 해당 지원자의 영어 성적 적격성을 문제 삼으며 채용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논란의 파장은 상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채용 담당 중간 간부가 일시적인 '직무 배제' 조치를 당했을 정도니까요. 그런데도, 합격 결론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취재 결과, 해당 지원자의 아버지는 국정원의 고위 간부 A 씨. (아직 현직 요원이어서 성씨도 비실명화 처리) A 씨는 국정원 요직을 거쳐 갔던 인물입니다. 감찰실에 오래 근무했고, 인사처장을 거쳐 방첩 수사를 총괄하는 수사단장까지 맡았습니다.

당시 A 씨는 직급을 넘어서는 힘을 가진 이른바 '실세'로 통했습니다. 박근혜 정부 인수위에 파견을 갔다 온 뒤 위세가 더 커졌는데, A 씨와 함께 인수위에 나갔던 사람이 '우병우 비선 보고' 혐의로 현재 복역 중인 추명호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이었습니다.

아버지 A 씨의 해명 "오히려 선의의 피해자다"

그렇다면, 미국 토익 성적의 무사통과는 아버지의 영향력 덕 아니었을까요? 취재된 사실을 종합하면, '아빠 찬스'라는 합리적 추정이 가능합니다. 취재 대상이 정보기관이라는 점을 감안해 일일이 거론하지는 않지만, 이런 추정을 뒷받침하는 팩트는 더 있습니다.

수소문 끝에 현직 요원인 A 씨와 연락이 닿았습니다. 취재진의 여러 질문에, 자신의 자녀는 오히려 피해자라는 취지로 답했습니다. '국정원이 안내를 잘못했고, 그걸 믿고 미국 토익 성적을 냈을 뿐'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국정원 국정감사 '아빠 찬스' 의혹 거론…서훈 원장 "단순 행정착오"

국정원은 채용과 보임은 물론 직원의 신원 정보 자체가 비밀인 곳입니다. 그런데도 특정 직원의 채용을 둘러싼 논란이 외부로 흘러나왔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입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지난 월요일(4일) 국회 정보위원회의 국정원 국감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습니다.

타 부처 국정감사와는 달리 국정원에 대한 국정감사는 모두 비공개됩니다. 정보위원과 국정원 양측에 대한 취재를 종합하면, 두 명의 정보위원이 이 문제를 추궁했다고 합니다. A 씨의 영향력이 개입된 불공정 채용 아니냐고 국정원 측을 질타했습니다.

국정원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방어했습니다. 서훈 국정원장은 단순한 행정 착오가 있었을 뿐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국정원은 올 초 감사원의 감사를 받았는데, 채용을 취소할 정도의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을 받았다고 KBS에 추가로 전해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일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밀행성을 악용한다면

'미국 토익도 인정된다'고 담당자가 잘못 안내했으니 더 바로잡기는 어렵다는 국정원의 설명. 찬찬히 뜯어보면, 아리송한 곳이 한둘이 아닙니다.

채용공고에 너무나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 해당 지원자는 왜 굳이 미국 토익 인정 여부를 문의했을까요. 정부 채용에서 2005년부터 일관되게 유지된 어학시험 인정 기준을 담당자는 하필 그때 잘못 안내했을까요. 혹시라도 그 담당자는 채용 업무를 처음 해보는 신참자였을까요.

백번 양보해서, 국정원의 해명이 사실이라고 쳐도 이상합니다. 직원이 실수로 채용 기준을 잘못 안내했다고 해도, 채용공고는 공고대로 지켰어야 합니다. 직원이 잘못 안내했다고, 갑자기 미국 토익도 인정한다면, 그것은 국정원의 채용기준이 춤을 췄다고 자인하는 꼴일 뿐입니다.

더 나아가 국정원은 해당 담당자를 문책 또는 징계했어야 마땅합니다. 공정이 최우선인 채용 기준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정원은 담당자에게 어떠한 인사 조처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오히려 더 좋은 자리를 배려받았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습니다.

취재진은 국정원 사정을 잘 알만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국정원 인사 시스템을 잘 아는 한 취재원은 "이런 일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는 국정원은 인사가 모두 비밀로 이뤄지는 만큼, 어느 기관보다 기준이 엄격하게 준수되어 왔다고 강조했습니다.

사실, 이번 일이 국정원이 아닌 다른 부처에서 일어났다면, 사건의 진위가 드러나는 것은 시간문제였을 겁니다. 내부자의 제보도 적지 않았을 것이고, 국정원장의 해명이 사실인지도 교차 검증하는 일이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국정원은 사실상 거의 모든 것이 비밀인 기관입니다. 법이 '밀행성'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감사원 등 외부기관의 감시도 거의 없습니다. 국정원은 올 초 61년 만에 처음으로 2년 치 행정에 대해 감사를 받았던 게 전부입니다. 정보기관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그러나 법이 보장하는 건 '정보 업무의 비밀'입니다. '비리 의혹을 덮을 비밀'을 보장하는 건 결코 아닐 겁니다. 업무를 더 잘하라고 법에 따라 비밀을 보장받는다면, 내부의 위법과 부당은 어느 기관보다 더 철저한 자정을 해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자정 작용이 실패한다면, 결국은 외부의 메스를 들이댈 방법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정보기관이라 해도 '비밀'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댓글 사건' 등 우리는 충분히 봐 왔습니다.

이번 보도 이후, 국정원 측이 정보 유출자를 색출한다는 뒷얘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그런 열정을 자정 작용에 더 쏟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취재진은 단순히 직원 1명에 대한 부당 채용 의혹에 그치지 않을 거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추가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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