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IN] 44년 만에 상봉한 모녀 “전쟁 고아들의 희망되길”

입력 2019.11.27 (10:48) 수정 2019.11.27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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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전쟁은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못한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습니다.

전쟁고아들도 그 중 하나인데요.

44년 전 전쟁 통에 헤어졌던 모녀가 얼마 전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기적의 재회 스토리를 지구촌 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베트남에 사는 70세 노모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44년 전 자신의 손으로 버린 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노모는 딸의 행복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벗을 수 없는 짐을 지고, 평생을 눈물로 딸을 버린 죄책감과 후회 속에 살았습니다.

[응우옌 티 뎁/엄마 : "고통스러웠고, 슬펐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뇌가 산산조각이 나는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를 사랑했고,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48년 전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는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 병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몇 해 뒤 본국으로 복귀한 뒤론 연락이 끊겼고, 홀로 딸을 낳아 길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딸과의 행복한 시간은 길지 못했습니다.

1975년 4월,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때.

전쟁고아 등 어린이들만이라도 구출해야 한다는 구제 구호 단체의 거센 요구에, 미군은 남베트남 고아들을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송하는 '베이비 리프트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노모의 딸도 이 작전에 포함돼 미국으로 입양됐는데요.

[응우옌 티 뎁/엄마 : "제가 딸을 사랑한다 해도 고작 며칠 밖에 함께 있을 수 없을 거라고, '북군이 딸을 죽이면 어쩌냐고?' 주변 사람들이 말했어요. 저는 공황 상태가 됐고, 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

이후 엄마는 딸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 44년간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딸을 찾는 데 인생을 바쳤습니다.

한편, 딸은 다행히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자랐고, 지금은 삼 남매의 엄마가 됐는데요.

[스몰/딸 : "입양된 것이 큰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저는 멋진 가정과 가족을 꾸렸고, 국적에 상관없이 평범한 십 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DNA 센터에서 자신의 DNA와 일치하는 여성을 찾았고, 생모가 간절히 그녀를 찾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스몰/딸 : "처음 메일을 열어보곤 자매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 엄마가 저를 찾는다던 군요. 오후 4시쯤이었고, 화요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어요."]

몇 주 뒤, 두 사람은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 재회했습니다.

44년 만에 다시 서로를 꽉 껴안은 두 사람.

다신 놓치지 않을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진심을 전했는데요.

이제는 잃어버리지 말라며 딸은 자신 사진이 담긴 목걸이를 엄마에게 선물했습니다.

[스몰/딸 : "엄마의 결정에 감사해요. 미안한 감정은 이제 그만 지우세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화나거나 슬프지 않아요."]

[엄마 :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해줘서 고맙다."]

[딸 :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해요."]

엄마의 지난 외로운 세월을 위로하듯 딸은 사위와 손자, 손녀들까지 대 가족을 한 꺼번에 선물했는데요.

기적과 같았던 딸과 엄마의 44년 만의 재회.

두 사람은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며, 자신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전쟁고아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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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촌 IN] 44년 만에 상봉한 모녀 “전쟁 고아들의 희망되길”
    • 입력 2019-11-27 10:49:29
    • 수정2019-11-27 11:13:02
    지구촌뉴스
[앵커]

20세기 중반까지 계속된 전쟁은 지금까지도 치유되지 못한 수많은 상처와 고통을 남겼습니다.

전쟁고아들도 그 중 하나인데요.

44년 전 전쟁 통에 헤어졌던 모녀가 얼마 전 다시 만났다고 합니다.

기적의 재회 스토리를 지구촌 인에서 만나보시죠.

[리포트]

베트남에 사는 70세 노모는 매일 기도했습니다.

44년 전 자신의 손으로 버린 딸을 단 한 번만이라도 만나게 해달라고.

노모는 딸의 행복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벗을 수 없는 짐을 지고, 평생을 눈물로 딸을 버린 죄책감과 후회 속에 살았습니다.

[응우옌 티 뎁/엄마 : "고통스러웠고, 슬펐습니다. 생각할 때마다 뇌가 산산조각이 나는 고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이를 사랑했고, 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기 때문에 떠나보내기로 했습니다."]

48년 전 젊고 아름다웠던 엄마는 베트남에 파견된 미군 병사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하지만 몇 해 뒤 본국으로 복귀한 뒤론 연락이 끊겼고, 홀로 딸을 낳아 길렀습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전쟁 중이었고, 딸과의 행복한 시간은 길지 못했습니다.

1975년 4월, 베트남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던 때.

전쟁고아 등 어린이들만이라도 구출해야 한다는 구제 구호 단체의 거센 요구에, 미군은 남베트남 고아들을 미국 등 다른 나라로 이송하는 '베이비 리프트 작전'을 실시했습니다.

노모의 딸도 이 작전에 포함돼 미국으로 입양됐는데요.

[응우옌 티 뎁/엄마 : "제가 딸을 사랑한다 해도 고작 며칠 밖에 함께 있을 수 없을 거라고, '북군이 딸을 죽이면 어쩌냐고?' 주변 사람들이 말했어요. 저는 공황 상태가 됐고, 딸을 보내기로 했습니다. "]

이후 엄마는 딸의 생사조차 확인할 수 없었고, 지금까지 44년간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딸을 찾는 데 인생을 바쳤습니다.

한편, 딸은 다행히 미국의 평범한 가정에 입양됐습니다.

평화롭고 행복하게 자랐고, 지금은 삼 남매의 엄마가 됐는데요.

[스몰/딸 : "입양된 것이 큰 영향을 주지 않았어요. 저는 멋진 가정과 가족을 꾸렸고, 국적에 상관없이 평범한 십 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미국 DNA 센터에서 자신의 DNA와 일치하는 여성을 찾았고, 생모가 간절히 그녀를 찾는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스몰/딸 : "처음 메일을 열어보곤 자매인 줄 알았는데, 베트남 엄마가 저를 찾는다던 군요. 오후 4시쯤이었고, 화요일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소식이었어요."]

몇 주 뒤, 두 사람은 베트남의 한 호텔에서 재회했습니다.

44년 만에 다시 서로를 꽉 껴안은 두 사람.

다신 놓치지 않을 두 손을 꼭 잡고 서로의 진심을 전했는데요.

이제는 잃어버리지 말라며 딸은 자신 사진이 담긴 목걸이를 엄마에게 선물했습니다.

[스몰/딸 : "엄마의 결정에 감사해요. 미안한 감정은 이제 그만 지우세요. 괜찮아요. 정말 괜찮습니다. 엄마를 사랑하고, 화나거나 슬프지 않아요."]

[엄마 :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고, 사랑해줘서 고맙다."]

[딸 : "너무 오래 걸려서 죄송해요."]

엄마의 지난 외로운 세월을 위로하듯 딸은 사위와 손자, 손녀들까지 대 가족을 한 꺼번에 선물했는데요.

기적과 같았던 딸과 엄마의 44년 만의 재회.

두 사람은 앞으로 이어질 새로운 인생을 기대하며, 자신들의 이야기가 수많은 전쟁고아에게 희망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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