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1등 보험’ 삼성의 민낯① 꼬박꼬박 낸 보험료, 받을 땐 왜 힘든가요?

입력 2019.12.06 (07:03) 수정 2019.12.06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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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줌마'가 집에 올 때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한 손에는 뭔지 모를 서류가 있었지만, 다른 손에는 주전부리며 작은 선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고 나서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이치를 알아차렸지만요. 과거 '보험 아줌마'라고 불렸던 이들은 이제 '설계사' 또는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오대성 기자) 역시 2개의 보험에 가입돼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취재를 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각각 하나씩입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업계 매출 1위인 점을 고려하면 유별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과연 저는 매달 꼬박꼬박 내는 보험료, 나중에 필요할 때 제대로 보험금 받을 수 있을까요?

[연관기사] "자살 아니냐" 보험금 안주고…'지급 권고'도 나몰라라? (2019.12.4. KBS1TV ‘뉴스9’)

"추락사다" vs "극단적 선택이다"

걱정하는 건 삼성화재 구성원도 마찬가집니다. 지난해 5월 숨진 20대 남성 김 씨와 김 씨의 어머니는 모두 삼성화재에서 근무하던 보험설계사입니다. 특히 김 씨의 어머니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삼성화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삼성화재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기 전까지는요.

삼성화재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20대 남성 김 모 씨가 지난해 5월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삼성화재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20대 남성 김 모 씨가 지난해 5월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보도 내용대로 김 씨 어머니와 삼성화재 측은 '상해사망' 보험금 12억 4천만 원을 두고 분쟁 중입니다.

김 씨 어머니는 경찰이 밝힌 사망 원인을 근거로 '사고이니 보험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삼성화재는 김 씨가 숨진 걸로 추정되는 계단 창문이 김 씨 체격에 비해 너무 높고 좁아서 실수로 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제3자이자 삼성화재의 감독 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삼성화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냈습니다. 이 판단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① 김 씨에게 채무가 전혀 없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 정신질환 등 극단적 선택의 단서 전혀 발견되지 않음
(※ 김 씨는 오피스텔과 승용차, 트럭을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었습니다.)

② 사고 현장이 할머니댁. 친구에게 이를 행선지로 알리는 것은 상식과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임
(※ 김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김 씨가 평소에 할머니를 좋아하고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진술했습니다.)

③ 경찰 조사 결과, 자기 과실에 의한 추락사로 내사 종결. 담당 검시관 등이 사망 원인을 추락사로 규명
(※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단서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④ 보험사의 사설 용역 업체 보고서는 객관성, 신뢰성에 흠결 있어 공적 기록에 우선해 인정하기 어려움


삼성화재는 김 씨가 사고사가 아니라는 점을 필사적으로 입증하려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의 사례로 '유족이 유서를 숨겼을 가능성'을 제시하는가 하면, 또 자체 용역 조사 결과 보고서도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재검토를 요구한 결정적인 요인은 뭘까요? 금감원 관계자는 "수사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사설 기관에서 한 역학 조사를 가지고 보험금을 안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죠. 경찰뿐 아니라 검시관 등, 공적인 데에서 판단한 것인데, 사설 기관 조사 내용을 금융감독원이 인정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다 보면 보험료 인상 문제로 이어진다"며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지난달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한 마디로 유족에게 줘야 할 돈이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건데요.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재검토 요구는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다"며 "강제적인 효력을 부과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소송을 하게 된 어머니는 오늘도, 본인이 보장받지 못한 삼성화재의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상을 못 받는데 제 고객님들을 제가 지킬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에요. 삼성화재가 이러면 다른 데서는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고. 삼성이라고 하면 1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일하고 있는 분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삼성 상품 좋아요'라고 판매를 해야하는데 '삼성 보상 잘 안 나가요,'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작년 5월 이후 지옥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취재후] ②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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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1등 보험’ 삼성의 민낯① 꼬박꼬박 낸 보험료, 받을 땐 왜 힘든가요?
    • 입력 2019-12-06 07:03:59
    • 수정2019-12-06 11:32:53
    취재후·사건후
어렸을 적 '아줌마'가 집에 올 때는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한 손에는 뭔지 모를 서류가 있었지만, 다른 손에는 주전부리며 작은 선물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크고 나서야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이치를 알아차렸지만요. 과거 '보험 아줌마'라고 불렸던 이들은 이제 '설계사' 또는 '컨설턴트'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소비자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저(오대성 기자) 역시 2개의 보험에 가입돼 있는데, 공교롭게도 이번에 취재를 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각각 하나씩입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생명보험사와 손해보험사 업계 매출 1위인 점을 고려하면 유별난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과연 저는 매달 꼬박꼬박 내는 보험료, 나중에 필요할 때 제대로 보험금 받을 수 있을까요?

[연관기사] "자살 아니냐" 보험금 안주고…'지급 권고'도 나몰라라? (2019.12.4. KBS1TV ‘뉴스9’)

"추락사다" vs "극단적 선택이다"

걱정하는 건 삼성화재 구성원도 마찬가집니다. 지난해 5월 숨진 20대 남성 김 씨와 김 씨의 어머니는 모두 삼성화재에서 근무하던 보험설계사입니다. 특히 김 씨의 어머니는 2006년부터 지금까지 삼성화재에서 근무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삼성화재에서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하기 전까지는요.

삼성화재 보험설계사로 일했던 20대 남성 김 모 씨가 지난해 5월 한 아파트에서 추락해 숨졌다.
보도 내용대로 김 씨 어머니와 삼성화재 측은 '상해사망' 보험금 12억 4천만 원을 두고 분쟁 중입니다.

김 씨 어머니는 경찰이 밝힌 사망 원인을 근거로 '사고이니 보험금을 줘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 삼성화재는 김 씨가 숨진 걸로 추정되는 계단 창문이 김 씨 체격에 비해 너무 높고 좁아서 실수로 떨어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제3자이자 삼성화재의 감독 기관인 금융감독원은 삼성화재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결론 냈습니다. 이 판단을 자세히 살펴볼까요?

① 김 씨에게 채무가 전혀 없음.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 정신질환 등 극단적 선택의 단서 전혀 발견되지 않음
(※ 김 씨는 오피스텔과 승용차, 트럭을 소유하는 등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상황이었습니다.)

② 사고 현장이 할머니댁. 친구에게 이를 행선지로 알리는 것은 상식과 경험칙에 비추어 이례적임
(※ 김 씨와 마지막으로 만난 친구는 '김 씨가 평소에 할머니를 좋아하고 이야기도 많이 한다'고 진술했습니다.)

③ 경찰 조사 결과, 자기 과실에 의한 추락사로 내사 종결. 담당 검시관 등이 사망 원인을 추락사로 규명
(※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했을 단서를 전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④ 보험사의 사설 용역 업체 보고서는 객관성, 신뢰성에 흠결 있어 공적 기록에 우선해 인정하기 어려움


삼성화재는 김 씨가 사고사가 아니라는 점을 필사적으로 입증하려 했습니다. 금융감독원에 '있을 수도 있는 일'의 사례로 '유족이 유서를 숨겼을 가능성'을 제시하는가 하면, 또 자체 용역 조사 결과 보고서도 제출했습니다.

그럼에도 금감원이 재검토를 요구한 결정적인 요인은 뭘까요? 금감원 관계자는 "수사 결과가 제일 중요하다"고 밝혔습니다.

"사설 기관에서 한 역학 조사를 가지고 보험금을 안 주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죠. 경찰뿐 아니라 검시관 등, 공적인 데에서 판단한 것인데, 사설 기관 조사 내용을 금융감독원이 인정해줄 수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삼성화재는 "객관적인 기준 없이 보험금을 지급하다 보면 보험료 인상 문제로 이어진다"며 이 권고를 따르지 않고, 지난달 채무부존재 확인 소송을 냈습니다. 한 마디로 유족에게 줘야 할 돈이 없음을 법원이 확인해달라는 건데요.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재검토 요구는 강제적인 구속력이 없다"며 "강제적인 효력을 부과하도록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소송을 하게 된 어머니는 오늘도, 본인이 보장받지 못한 삼성화재의 보험 상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상을 못 받는데 제 고객님들을 제가 지킬 수 있을까라는 불안한 마음이에요. 삼성화재가 이러면 다른 데서는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고. 삼성이라고 하면 1등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일하고 있는 분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아요. '삼성 상품 좋아요'라고 판매를 해야하는데 '삼성 보상 잘 안 나가요,' 이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작년 5월 이후 지옥 속에 사는 것 같아요."

※[취재후] ②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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