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의 섬’ 레스보스를 가다

입력 2019.12.14 (21:46) 수정 2019.12.20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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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럽에서 난민 문제로 혼자서만 끙끙앓듯 힘들어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난민들이 주로 오는 중동과 그들의 목적지 유럽을 잇는 위치에 있는 그리스인데요.

다른 국가들이 국경 빗장을 꼭 걸어 잠근 사이 그리스엔 지금도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용 인원을 초과해 '난민의 섬'이 돼버린 그리스 레스보스 섬을, 송영석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아테네에서 에게해를 건너 비행기로 한 시간.

터키와 맞닿은 레스보스 섬이 보입니다.

유럽행을 바라는 대다수 난민들이 이 섬을 찾습니다.

난민 캠프로 가는 길에도 난민들이 보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 "저는 경찰관이었어요. (경찰이었는데 왜 온 거죠? 혹시 탈레반에 맞서 싸웠나요?) 네, 탈레반과 싸웠어요."]

[후세인/아프가니스탄 난민 : "(독일에 가길 원하나요?) 네, 독일이요. (가족과 같이 갈 건가요?) 네. 가족과 함께..."]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는 모리야 캠프.

바로 옆에 또 하나 캠프가 있습니다.

조립식 건물인 모리야와 달리 텐트만 빽빽합니다.

정원 3천 명인 모리야 캠프에 다섯 배인 만 5천 명까지 사람이 불자 옆 올리브 나무 숲을 임시 캠프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붙은 캠프 이름이 '올리브숲'.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하소연이 들립니다.

[샤바나/아프가니스탄 난민 : "(이 텐트에) 7명이 살아요. (7명이요?) 네 7명요. 남자들이 다 나가면 그제서야 잘 수 있어요."]

올리브숲은 모리야 캠프와 단절돼 있지만, 두 캠프 난민들은 철조망에 난 구멍으로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정식 캠프와 임시 캠프는 보시다시피 화장실의 질부터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모리야 캠프 안엔 생활용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시장, 이발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리브숲 난민들까지 편의시설을 함께 쓰다보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비브/아프가니스탄 난민 : "잘 곳도 화장실도 부족합니다. 병원도 없어요."]

석달 전 화재를 겪고나선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난민이 촬영한 당시 영상.

["(그래서 그녀가 죽었나요?) 네, 죽었습니다. 두 아기와 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사망했어요."]

화재 참변은 캠프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난민들의 시위를 촉발했고,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 이슈가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출신이 대부분인 난민들 모두 터키를 거쳐 이곳에 왔습니다.

국경 쪽으로 1시간 남짓 달리자 터키가 보입니다.

저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광활한 땅이 바로 터키입니다.

목숨을 걸고 바닷길을 건너온 난민들이 버리고 간 흔적들을 섬 해안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게해가 가른 직선거리는 6킬로미터.

이 좁은 해협이 난민들에겐 생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국경지대 쓰레기 매립장.

난민들이 버린 구명조끼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조끼 하나하나에 난민들의 애환과 '그리스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까지 배어있는 듯 했습니다.

캠프에서 최소 8개월을 버텨야 그리스 본토에 갈 수 있습니다.

2015년 '난민 위기' 이후 유럽 각국이 난민을 받지 않겠다며 국경 통제를 강화하자 유럽의 관문 그리스도 본토행 자격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레스보스 섬 체류 난민이 급증한 이윱니다.

[마리아 카시니/모리야 캠프 자원봉사자 : "(터키에서 지금도 난민이 오고 있나요?) 네, 여전히 매일매일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난민들을 위한 공간을 더 만드는 것 뿐입니다."]

캠프를 나와, 레스보스 시내로 향했습니다.

난민 캠프를 출발해서 1킬로미터 정도 걸어 내려와봤습니다.

음식점마다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합니다.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난민들이 갈망하는 삶이 있는곳, 캠프 밖 외출이 자유롭다보니 부둣가와 공원 등 관광객 차지였던 장소마다 난민들로 넘쳐납니다.

섬 전체 인구의 20% 가까운 난민이 모여들자 원주민들의 불만도 커져만 갑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 : "관광객들 발길이 끊겼어요. 밖에 나가면 낯선 나라에서 온 난민들이 너무 많으니 겁나는 거에요."]

시내에선 인출기의 돈을 찾는 난민들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난민들은 유엔 등이 매달 지급하는 지원금으로 생필품을 사고 음식을 사먹습니다.

하지만, 지원금은 난민 신청을 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야 나오기 때문에 돈 없이 지내는 난민들도 많습니다.

["시내까지 걸어오는데 세시간 걸렸어요. (세시간요? 버스를 안탔나요?) 네, 돈이 없어요."]

'난민의 섬'이 됐다는 비판이 커지자 그리스 정부는 최근, 난민 캠프를 수용소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밀화 해소를 위해 캠프에서 본토로 보낼 난민 수를 늘리기로 했습니다.

본토에 가면 삶이 나아질까.

아테네 자선단체에서 영어를 배우고 합숙을 하는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북유럽으로 가고 싶었지만 난민을 받지 않아 그리스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에 온지 짧게는 2년에서 4년 이상 돼 정식 난민 지위도 받았습니다.

난민 신청을 한지 만 2년이 지나면 지원금도 끊기는데, 아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후세인 카리미얀/이란 난민 : "그리스 경제도 너무 안좋아요. 일자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스 재정 위기 때 버려진 이 아파트는 단지 전체를 난민들이 점거해 살고 있습니다.

노숙자가 된 난민들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전역의 난민 신청자만 약 7만 명.

한때 난민 문제를 이슈로 띄웠던 유럽 지도자들도 '그리스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말뿐인 약속 외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카시니/자원봉사자 : "제가 느끼기에 난민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미디어는 더이상 난민 위기를 보도하지 않아요. 사람들도 난민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더이상 난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레스보스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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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민의 섬’ 레스보스를 가다
    • 입력 2019-12-14 22:18:38
    • 수정2019-12-20 18: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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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유럽에서 난민 문제로 혼자서만 끙끙앓듯 힘들어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난민들이 주로 오는 중동과 그들의 목적지 유럽을 잇는 위치에 있는 그리스인데요.

다른 국가들이 국경 빗장을 꼭 걸어 잠근 사이 그리스엔 지금도 난민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습니다.

수용 인원을 초과해 '난민의 섬'이 돼버린 그리스 레스보스 섬을, 송영석 순회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아테네에서 에게해를 건너 비행기로 한 시간.

터키와 맞닿은 레스보스 섬이 보입니다.

유럽행을 바라는 대다수 난민들이 이 섬을 찾습니다.

난민 캠프로 가는 길에도 난민들이 보였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난민 : "저는 경찰관이었어요. (경찰이었는데 왜 온 거죠? 혹시 탈레반에 맞서 싸웠나요?) 네, 탈레반과 싸웠어요."]

[후세인/아프가니스탄 난민 : "(독일에 가길 원하나요?) 네, 독일이요. (가족과 같이 갈 건가요?) 네. 가족과 함께..."]

유엔난민기구가 운영하는 모리야 캠프.

바로 옆에 또 하나 캠프가 있습니다.

조립식 건물인 모리야와 달리 텐트만 빽빽합니다.

정원 3천 명인 모리야 캠프에 다섯 배인 만 5천 명까지 사람이 불자 옆 올리브 나무 숲을 임시 캠프로 만든 겁니다.

그래서 붙은 캠프 이름이 '올리브숲'.

들어가보니 여기저기서 하소연이 들립니다.

[샤바나/아프가니스탄 난민 : "(이 텐트에) 7명이 살아요. (7명이요?) 네 7명요. 남자들이 다 나가면 그제서야 잘 수 있어요."]

올리브숲은 모리야 캠프와 단절돼 있지만, 두 캠프 난민들은 철조망에 난 구멍으로 자유롭게 드나듭니다.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있는 정식 캠프와 임시 캠프는 보시다시피 화장실의 질부터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모리야 캠프 안엔 생활용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시장, 이발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올리브숲 난민들까지 편의시설을 함께 쓰다보니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하비브/아프가니스탄 난민 : "잘 곳도 화장실도 부족합니다. 병원도 없어요."]

석달 전 화재를 겪고나선 걱정이 더 커졌습니다.

난민이 촬영한 당시 영상.

["(그래서 그녀가 죽었나요?) 네, 죽었습니다. 두 아기와 엄마, 할머니까지 모두 사망했어요."]

화재 참변은 캠프 환경을 개선해달라는 난민들의 시위를 촉발했고, 경찰이 강경 진압에 나서 이슈가 됐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 출신이 대부분인 난민들 모두 터키를 거쳐 이곳에 왔습니다.

국경 쪽으로 1시간 남짓 달리자 터키가 보입니다.

저너머 희미하게 보이는 광활한 땅이 바로 터키입니다.

목숨을 걸고 바닷길을 건너온 난민들이 버리고 간 흔적들을 섬 해안가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게해가 가른 직선거리는 6킬로미터.

이 좁은 해협이 난민들에겐 생사의 갈림길이었습니다.

국경지대 쓰레기 매립장.

난민들이 버린 구명조끼가 산처럼 쌓였습니다.

조끼 하나하나에 난민들의 애환과 '그리스 땅을 밟았다'는 안도감까지 배어있는 듯 했습니다.

캠프에서 최소 8개월을 버텨야 그리스 본토에 갈 수 있습니다.

2015년 '난민 위기' 이후 유럽 각국이 난민을 받지 않겠다며 국경 통제를 강화하자 유럽의 관문 그리스도 본토행 자격 요건을 강화했습니다.

레스보스 섬 체류 난민이 급증한 이윱니다.

[마리아 카시니/모리야 캠프 자원봉사자 : "(터키에서 지금도 난민이 오고 있나요?) 네, 여전히 매일매일 들어오고 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난민들을 위한 공간을 더 만드는 것 뿐입니다."]

캠프를 나와, 레스보스 시내로 향했습니다.

난민 캠프를 출발해서 1킬로미터 정도 걸어 내려와봤습니다.

음식점마다 관광객들로 왁자지껄합니다. 완전히 다른 두 세상이 공존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난민들이 갈망하는 삶이 있는곳, 캠프 밖 외출이 자유롭다보니 부둣가와 공원 등 관광객 차지였던 장소마다 난민들로 넘쳐납니다.

섬 전체 인구의 20% 가까운 난민이 모여들자 원주민들의 불만도 커져만 갑니다.

[현지 여행사 관계자 : "관광객들 발길이 끊겼어요. 밖에 나가면 낯선 나라에서 온 난민들이 너무 많으니 겁나는 거에요."]

시내에선 인출기의 돈을 찾는 난민들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난민들은 유엔 등이 매달 지급하는 지원금으로 생필품을 사고 음식을 사먹습니다.

하지만, 지원금은 난민 신청을 한 뒤 일정 기간이 지나야 나오기 때문에 돈 없이 지내는 난민들도 많습니다.

["시내까지 걸어오는데 세시간 걸렸어요. (세시간요? 버스를 안탔나요?) 네, 돈이 없어요."]

'난민의 섬'이 됐다는 비판이 커지자 그리스 정부는 최근, 난민 캠프를 수용소 체제로 바꾸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과밀화 해소를 위해 캠프에서 본토로 보낼 난민 수를 늘리기로 했습니다.

본토에 가면 삶이 나아질까.

아테네 자선단체에서 영어를 배우고 합숙을 하는 난민들을 만났습니다.

북유럽으로 가고 싶었지만 난민을 받지 않아 그리스에 정착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에 온지 짧게는 2년에서 4년 이상 돼 정식 난민 지위도 받았습니다.

난민 신청을 한지 만 2년이 지나면 지원금도 끊기는데, 아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습니다.

[후세인 카리미얀/이란 난민 : "그리스 경제도 너무 안좋아요. 일자리도 없고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스 재정 위기 때 버려진 이 아파트는 단지 전체를 난민들이 점거해 살고 있습니다.

노숙자가 된 난민들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전역의 난민 신청자만 약 7만 명.

한때 난민 문제를 이슈로 띄웠던 유럽 지도자들도 '그리스와 고통을 분담하겠다'는 말뿐인 약속 외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 카시니/자원봉사자 : "제가 느끼기에 난민 위기는 결코 끝나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미디어는 더이상 난민 위기를 보도하지 않아요. 사람들도 난민 얘기를 하지 않습니다."]

더이상 난민이 발생하지 않도록, 근원적인 해결책은 없는 걸까요?

레스보스에서 송영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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