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혐의 근거’에도 내사 거쳐 수사까지…결국 ‘무혐의’

입력 2020.05.15 (15:33) 수정 2020.05.15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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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기록물 유출 혐의' 최종 무혐의 처분
내사 단계에서 나온 자료가 결정적 근거
박 씨 "피의자 전환에 큰 압박 느껴"
군포서 "강제수사 때문에 피의자 전환"

군포시청 공무원 박 모 씨는 지난해 10월 건축과 광고물팀장에서 지역경제과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광고물팀장을 하면서 각 정당이 불법으로 걸어놓은 현수막을 일제 단속한 직후였다. 군포시 정책감사실장은 시의회에 출석해 박 씨 인사 배경에 대해 정당 현수막은 불법이라도 단속하지 않는다는 행정 관례를 어겨서 인사를 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명백한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를 외부에 알리려다 평소 알던 한 인터넷매체 기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공문서 복사본을 전달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공익적 성격이 있는 이 일은 군포경찰서에서 범죄 첩보로 생산하면서 '공공기록물 유출 사건'이 됐다.

군포서는 지난해 12월 무렵 내사에 들어갔다. 박 씨는 내사 단계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공문서 원본이 아닌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므로, 복사본을 유출했다고 해도 무죄'라는 법원 판례 등이 담긴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이 사건이 공익적 성격이 있고, 유출했다는 공문서도 민감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도 담겼다.

판례 외에도 경찰청에서 자체 운영하는 법률 자문 서비스인 '현장법률 365'에도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라는 내용이 명백히 나와 있었다.

이런 여러 '무혐의 근거'에도 불구하고 군포서는 박 씨를 공공기록물 유출 피의자로 입건하고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지난 3월 KBS에서 보도했다. 이제부터는 이 사건의 뒷이야기인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박 씨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법 적용 어렵다"는 경찰청 해석에도 일선서 수사 강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93300)


내사 단계서 확보한 자료가 무혐의 핵심 근거
KBS의 보도 이후 박 씨는 군포서 수사에 문제가 있다며 경찰청에 민원을 냈다. 경찰청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심의계에서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하도록 조치했다.

군포서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경기남부청은 박 씨 소환 조사 없이 자료 검토만으로 '무혐의 의견'을 달아 검찰에 보냈고, 검찰도 최종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불기소 통지서는 19장에 달하는데, 불기소 이유를 설명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긴 내용이다. 이는 경기남부청에서 의견서를 자세히 써서 검찰에 넘겼기 때문이다.

무혐의의 핵심 근거는 '공문서 원본이 아닌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므로 복사본은 유출했어도 무죄'라는 논리다. 이는 박 씨가 내사 단계에서 경찰에 제출한 의견서에 있는 법원 판례에도 나온다.

군포서가 내사 단계에서 확보한 자료가 무혐의의 결정적 자료가 된 건데, 결과적으로 내사 종결했어도 될 사안을 군포서에서 '괜한 수사'로 이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군포서 "절차상 입건 필요해"…박 씨 "압박감 느껴"
군포서는 박 씨 사건을 내사 종결하지 않고 피의자 입건 후 정식 수사로 이어간 이유에 대해 참고인의 비협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에게 공문서 복사본을 넘겨받은 인터넷매체 기자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경찰의 요청에 계속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기자가 핵심 참고인이라 공문서를 주고받은 경위를 알기 위해서는 조사가 꼭 필요했는데, 기자가 수차례 응하지 않아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기 위해 입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씨가 기자와 공문서를 주고받은 경위는 박 씨가 이미 다 진술했고, 해당 공문서도 어떤 내용인지 경찰이 다 확인한 상황이었다. 강제수사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참고인 출석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박 씨를 입건했다고 했지만, 박 씨 입건과 참고인 최초 출석 요구는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경찰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법원 판례 등 무혐의 근거가 너무 명확해 내사 단계에서 끝날 걸로 생각했던 박 씨는 정식 입건 이후 큰 압박감을 느꼈다. 박 씨는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입건이 됐었을 때 그 압박감은, '내가 큰 죄를 짓고 이제 살아갈 수 있나' 이럴 정도로 나한테는 엄청났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군포서는 박 씨를 입건한 이유를 박 씨에겐 설명해주지 않았고, 지난 2~3월 취재 과정에서도 수사 중이라며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다가 무혐의 처분 이후 취재에서 뒤늦게 설명했다.


공공기록물법 어렵게 되자 전자정부법 검토
박 씨를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던 군포서는 수사 중간에 공공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다른 법 적용까지 검토했다. 이러한 내용은 검찰이 박 씨에게 발급해준 불기소 통지서에 담겨 있다.

군포서가 추가로 검토한 법률은 전자정부법이다. 전자정부법 35조 4호에서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행정정보를 정당한 이유 없이 누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박 씨가 기자에게 준 공문서가 행정정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본 것이다.

군포서는 전자정부법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전자정부정책과에 법령 질의까지 보냈다. 행안부에서 답변이 오기 전에 사건이 경기남부청으로 넘어갔고, 나중에 행안부는 개별 사안마다 사법부가 판단해야 한다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박 씨는 이 사건 초기부터 군포서가 자신을 무조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군포서가 공공기록물법 외에 다른 법률 적용도 검토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된 박 씨는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군포서는 전자정부법 적용도 검토한 것에 대해 공공기록물법과 유사한 조항이 있는 법이라고 검토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경기남부청에서 최종 무혐의 의견을 내주고, 자료 검토도 꼼꼼히 해서 장문의 의견서를 써 준 것에 대해 여러 번 감사의 뜻을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 자정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포경찰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씨는 "범죄 첩보를 생산한 군포서 정보과와 첩보를 받아 수사한 군포서 수사과 지능팀에 대해 경찰청에 민원을 다시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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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혐의 근거’에도 내사 거쳐 수사까지…결국 ‘무혐의’
    • 입력 2020-05-15 15:33:45
    • 수정2020-05-15 15:39:24
    취재K
'기록물 유출 혐의' 최종 무혐의 처분<br />내사 단계에서 나온 자료가 결정적 근거<br />박 씨 "피의자 전환에 큰 압박 느껴"<br />군포서 "강제수사 때문에 피의자 전환"
군포시청 공무원 박 모 씨는 지난해 10월 건축과 광고물팀장에서 지역경제과 평직원으로 발령 났다. 광고물팀장을 하면서 각 정당이 불법으로 걸어놓은 현수막을 일제 단속한 직후였다. 군포시 정책감사실장은 시의회에 출석해 박 씨 인사 배경에 대해 정당 현수막은 불법이라도 단속하지 않는다는 행정 관례를 어겨서 인사를 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명백한 인사 불이익이라고 생각한 박 씨는 이를 외부에 알리려다 평소 알던 한 인터넷매체 기자에게 이 사건과 관련한 공문서 복사본을 전달했다. 자신의 억울함을 알리려는 공익적 성격이 있는 이 일은 군포경찰서에서 범죄 첩보로 생산하면서 '공공기록물 유출 사건'이 됐다. 군포서는 지난해 12월 무렵 내사에 들어갔다. 박 씨는 내사 단계에서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으면서 '공문서 원본이 아닌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므로, 복사본을 유출했다고 해도 무죄'라는 법원 판례 등이 담긴 변호인 의견서를 제출했다. 의견서에는 이 사건이 공익적 성격이 있고, 유출했다는 공문서도 민감한 것이 아니라는 내용도 담겼다. 판례 외에도 경찰청에서 자체 운영하는 법률 자문 서비스인 '현장법률 365'에도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라는 내용이 명백히 나와 있었다. 이런 여러 '무혐의 근거'에도 불구하고 군포서는 박 씨를 공공기록물 유출 피의자로 입건하고 정식 수사에 착수했다. 여기까지의 내용은 지난 3월 KBS에서 보도했다. 이제부터는 이 사건의 뒷이야기인데, 결론부터 얘기하면 박 씨는 결국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법 적용 어렵다"는 경찰청 해석에도 일선서 수사 강행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393300) 내사 단계서 확보한 자료가 무혐의 핵심 근거 KBS의 보도 이후 박 씨는 군포서 수사에 문제가 있다며 경찰청에 민원을 냈다. 경찰청은 경기남부지방경찰청 수사심의계에서 이 사건을 직접 수사하도록 조치했다. 군포서에서 사건을 넘겨받은 경기남부청은 박 씨 소환 조사 없이 자료 검토만으로 '무혐의 의견'을 달아 검찰에 보냈고, 검찰도 최종 무혐의로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검찰의 불기소 통지서는 19장에 달하는데, 불기소 이유를 설명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긴 내용이다. 이는 경기남부청에서 의견서를 자세히 써서 검찰에 넘겼기 때문이다. 무혐의의 핵심 근거는 '공문서 원본이 아닌 복사본은 기록물이 아니므로 복사본은 유출했어도 무죄'라는 논리다. 이는 박 씨가 내사 단계에서 경찰에 제출한 의견서에 있는 법원 판례에도 나온다. 군포서가 내사 단계에서 확보한 자료가 무혐의의 결정적 자료가 된 건데, 결과적으로 내사 종결했어도 될 사안을 군포서에서 '괜한 수사'로 이어간 것으로 볼 수 있다. 군포서 "절차상 입건 필요해"…박 씨 "압박감 느껴" 군포서는 박 씨 사건을 내사 종결하지 않고 피의자 입건 후 정식 수사로 이어간 이유에 대해 참고인의 비협조 때문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씨에게 공문서 복사본을 넘겨받은 인터넷매체 기자가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는 경찰의 요청에 계속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기자가 핵심 참고인이라 공문서를 주고받은 경위를 알기 위해서는 조사가 꼭 필요했는데, 기자가 수차례 응하지 않아서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를 하기 위해 입건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 씨가 기자와 공문서를 주고받은 경위는 박 씨가 이미 다 진술했고, 해당 공문서도 어떤 내용인지 경찰이 다 확인한 상황이었다. 강제수사 필요성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게다가 경찰은 참고인 출석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박 씨를 입건했다고 했지만, 박 씨 입건과 참고인 최초 출석 요구는 비슷한 시기에 이뤄졌다. 경찰의 설명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다. 법원 판례 등 무혐의 근거가 너무 명확해 내사 단계에서 끝날 걸로 생각했던 박 씨는 정식 입건 이후 큰 압박감을 느꼈다. 박 씨는 "참고인에서 피의자로 입건이 됐었을 때 그 압박감은, '내가 큰 죄를 짓고 이제 살아갈 수 있나' 이럴 정도로 나한테는 엄청났었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군포서는 박 씨를 입건한 이유를 박 씨에겐 설명해주지 않았고, 지난 2~3월 취재 과정에서도 수사 중이라며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다가 무혐의 처분 이후 취재에서 뒤늦게 설명했다. 공공기록물법 어렵게 되자 전자정부법 검토 박 씨를 공공기록물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던 군포서는 수사 중간에 공공기록물법 적용이 어렵다고 판단되자, 다른 법 적용까지 검토했다. 이러한 내용은 검찰이 박 씨에게 발급해준 불기소 통지서에 담겨 있다. 군포서가 추가로 검토한 법률은 전자정부법이다. 전자정부법 35조 4호에서는 '공개해서는 안 되는 행정정보를 정당한 이유 없이 누설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박 씨가 기자에게 준 공문서가 행정정보에 해당하는지를 따져본 것이다. 군포서는 전자정부법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전자정부정책과에 법령 질의까지 보냈다. 행안부에서 답변이 오기 전에 사건이 경기남부청으로 넘어갔고, 나중에 행안부는 개별 사안마다 사법부가 판단해야 한다며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박 씨는 이 사건 초기부터 군포서가 자신을 무조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길 생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군포서가 공공기록물법 외에 다른 법률 적용도 검토했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 된 박 씨는 자신의 느낌이 맞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군포서는 전자정부법 적용도 검토한 것에 대해 공공기록물법과 유사한 조항이 있는 법이라고 검토해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씨는 경기남부청에서 최종 무혐의 의견을 내주고, 자료 검토도 꼼꼼히 해서 장문의 의견서를 써 준 것에 대해 여러 번 감사의 뜻을 밝혔다. 경찰 내부에서 자정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군포경찰서에 대해서는 반드시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박 씨는 "범죄 첩보를 생산한 군포서 정보과와 첩보를 받아 수사한 군포서 수사과 지능팀에 대해 경찰청에 민원을 다시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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