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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로 미래로] 현충일 봉사 “마음을 나눠요”
입력 2020.06.06 (08:20) 수정 2020.06.06 (08:38) 남북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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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오늘은 예순다섯 번째 현충일이죠. 매년 이맘때면 서울 현충원을 찾는 탈북민들이 있습니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섰는데요.

남한에 정착한 이후 알게 된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올해로 13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돼 구슬땀을 흘리는 현장에 채유나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현충일을 앞두고, 서울 현충원 앞이 북적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탈북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펼치는 봉사활동은, 현충탑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곧바로 헌화와 함께, 굳은 땅에 구멍을 내기 시작하는데요.

태극기를 꽂기 위한 작업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허리를 굽혔다 폈다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데요,

[김윤희/탈북민 : "힘이야 왜 안 들겠어요. 힘들지만 호국영웅들한테 바치는 맘이랄까…."]

[윤홍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땅이 딱딱하니까 태극기를 꽂아드리기가 쉽진 않네요. 숨이 차고…. (그래도 탈북민들과) 같이 하기 때문에 땀도 같이 흘리고 해서 기분도 좋고 좋습니다."]

아직 이 일이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태극기를요 이렇게 바로 세워주시고 빨간색이 위로 여기가 건인데 건이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까? (네. 됐어요. 잘 꽂았어요.) 태극기가 꽂을 때 꽂으면 된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확하게 알았어요."]

매년 이맘때 이렇게 모여서 봉사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는데요.

하지만 처음에는 현충일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다고 합니다.

[이장복/탈북민 : "(현충일) 몰랐죠. 몰랐어요. 평양처럼 애국열사릉과 같은 곳이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훌륭한 사람들만 여기 모시는구나…."]

[한옥수/탈북민 : "이분들이 있었기에 저희가 오늘날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든 줄 모르고 하게 돼요."]

탈북민 이장복 씨와 김영순 씨. 현충원 봉사를 마치고 재래시장으로 향하는데요.

[이장복/탈북민 : "이게 뾰족뾰족한 게 맛있어요. 더 아삭하고 더 뾰족뾰족한 게 맛있어요. 매끈한 거보다 (어머니 되게 꼼꼼히 고르시는 거 같아요) 좋은 거 사자고요."]

탈북민들이 현충일이면 함께 하는 분들은 순국선열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유공자와 실향민들은 전쟁의 상처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발걸음까지 동행해보겠습니다. 함께 가보시죠.

한가득, 꼼꼼히 고른 식재료를 들고 가파른 길을 지나 어디론가 향합니다.

두 사람이 찾은 곳은, 6.25 전쟁 때 친형님과 헤어졌다는 이수남 씨 집입니다.

["(저희가 음식을 맛있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해드리려고 왔어요) 고맙습니다."]

이 씨는 지난 2018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극적으로 친형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전쟁통에 홀로 북으로 넘어갔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형과 헤어진 지 무려 68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잠깐의 만남 뒤로 그리운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는데요.

두 탈북민은 이런 이 씨를 위로해주기 위해 북한에서 형님이 드셨을 법한 음식을 손수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이장복/탈북민 : "(이거 북한식이에요?) 북한에는 참기름 들기름 이런 게 없잖아요. 있긴 있는데 귀하니까 파를 기름내서 향을 내고 있어요."]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함경도 해안지방의 향토음식인 오징어순대와 북한 주민들이 고기 대신 즐겨 먹는 인조 고기밥.

여기에, 옥수숫가루와 물을 반죽해 쪄낸 옥수수 떡, 그리고 명절 음식 송편입니다.

두 탈북민이 공들여 3시간 동안 만든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북한 음식 한 상을 선물 받은 이수남 씨 부부.

난생처음 접해본 음식에 신기한 듯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고영자/서울시 용산구 : "(이게 소가 뭐예요?) 완두콩. 이게 인기가 좋아요. 다이어트에도 좋고... (내가 먹어야 할 떡이네.)"]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좋아요. 너무 좋고 형님 생각이 더 간절히 나고 형님은 또 평생 이런 음식을 접하고 사셨을 거니까. (저희가 형님이 동생한테 해주지 못한 음식을 해줬다고 생각하면 돼요.)"]

고마움의 표시일까요? 수남 씨가 보물처럼 여기는 사진첩을 들고나옵니다.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우리 형님에 대한 거 이 두 장 가지고 있는 거야 평생 이게 16살인가 17살 때... 우리 큰형님 이태원 초등학교 졸업장이야. 이게. 형님의 것이니까 아직 소중히 보관했죠. 제가 평생."]

가족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또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김영순/탈북민 : "(저도) 사진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사진 한 장 없고..."]

세 사람 모두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통일에 대한 간절함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이장복/탈북민 : "딸 하나 북한에 있는데 헤어지고 말았어요. 이쁜 옷 봐도 생각나고 음식 봐도 생각나고 (북한은) 사과도 아프면 앓는 사람한테 한 알씩 싸서 가져가는데 여긴 맨 과일이잖아요. 그런 거 볼 때마다 딸 생각나죠."]

[김영순/탈북민 : "자식과 형제들하고 만나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살아서 봉사도 많이 하고 불우이웃 돕기도 많이 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했어요."]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형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이 “건강해라, 건강해라, 우리가 그래야 또 만날 수 있지 않냐” 얘기하신 걸 너무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요. 어떻게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하루빨리 이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또 하나 된 남과 북을 위해 탈북민들이 펼치는 활동이 통일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통일로 미래로] 현충일 봉사 “마음을 나눠요”
    • 입력 2020-06-06 08:33:44
    • 수정2020-06-06 08:38:41
    남북의 창
[앵커]

오늘은 예순다섯 번째 현충일이죠. 매년 이맘때면 서울 현충원을 찾는 탈북민들이 있습니다.

호국 보훈의 달을 맞아 현충원을 찾는 시민들을 위해 봉사활동에 나섰는데요.

남한에 정착한 이후 알게 된 현충일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올해로 13년째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남과 북이 하나가 돼 구슬땀을 흘리는 현장에 채유나 리포터가 다녀왔습니다.

[리포트]

현충일을 앞두고, 서울 현충원 앞이 북적입니다. 매년 이맘때면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탈북민들과 남한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펼치는 봉사활동은, 현충탑 앞에 서서 두 손 모아 참배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곧바로 헌화와 함께, 굳은 땅에 구멍을 내기 시작하는데요.

태극기를 꽂기 위한 작업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허리를 굽혔다 폈다 수없이 반복해야 하는데요,

[김윤희/탈북민 : "힘이야 왜 안 들겠어요. 힘들지만 호국영웅들한테 바치는 맘이랄까…."]

[윤홍일/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 "땅이 딱딱하니까 태극기를 꽂아드리기가 쉽진 않네요. 숨이 차고…. (그래도 탈북민들과) 같이 하기 때문에 땀도 같이 흘리고 해서 기분도 좋고 좋습니다."]

아직 이 일이 익숙하지 않은 탈북민에게 친절하게 알려주기도 합니다.

["(태극기를요 이렇게 바로 세워주시고 빨간색이 위로 여기가 건인데 건이 이쪽으로 오게...) 됐습니까? (네. 됐어요. 잘 꽂았어요.) 태극기가 꽂을 때 꽂으면 된다 하고 생각했는데 이젠 정확하게 알았어요."]

매년 이맘때 이렇게 모여서 봉사한 지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는데요.

하지만 처음에는 현충일이 있는지조차 몰랐었다고 합니다.

[이장복/탈북민 : "(현충일) 몰랐죠. 몰랐어요. 평양처럼 애국열사릉과 같은 곳이구나 하는 걸 알았어요. 훌륭한 사람들만 여기 모시는구나…."]

[한옥수/탈북민 : "이분들이 있었기에 저희가 오늘날 편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힘든 줄 모르고 하게 돼요."]

탈북민 이장복 씨와 김영순 씨. 현충원 봉사를 마치고 재래시장으로 향하는데요.

[이장복/탈북민 : "이게 뾰족뾰족한 게 맛있어요. 더 아삭하고 더 뾰족뾰족한 게 맛있어요. 매끈한 거보다 (어머니 되게 꼼꼼히 고르시는 거 같아요) 좋은 거 사자고요."]

탈북민들이 현충일이면 함께 하는 분들은 순국선열뿐만이 아닙니다.

국가유공자와 실향민들은 전쟁의 상처로 인해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데요.

이들을 위한 발걸음까지 동행해보겠습니다. 함께 가보시죠.

한가득, 꼼꼼히 고른 식재료를 들고 가파른 길을 지나 어디론가 향합니다.

두 사람이 찾은 곳은, 6.25 전쟁 때 친형님과 헤어졌다는 이수남 씨 집입니다.

["(저희가 음식을 맛있게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해드리려고 왔어요) 고맙습니다."]

이 씨는 지난 2018년 이산가족 상봉에서 극적으로 친형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전쟁통에 홀로 북으로 넘어갔다 끝내 돌아오지 못한 형과 헤어진 지 무려 68년 만의 만남이었습니다.

잠깐의 만남 뒤로 그리운 마음은 더 커져만 갔다는데요.

두 탈북민은 이런 이 씨를 위로해주기 위해 북한에서 형님이 드셨을 법한 음식을 손수 만들어 대접하기로 했습니다.

[이장복/탈북민 : "(이거 북한식이에요?) 북한에는 참기름 들기름 이런 게 없잖아요. 있긴 있는데 귀하니까 파를 기름내서 향을 내고 있어요."]

고민 끝에 정한 메뉴는 함경도 해안지방의 향토음식인 오징어순대와 북한 주민들이 고기 대신 즐겨 먹는 인조 고기밥.

여기에, 옥수숫가루와 물을 반죽해 쪄낸 옥수수 떡, 그리고 명절 음식 송편입니다.

두 탈북민이 공들여 3시간 동안 만든 음식들이 상을 가득 채웠습니다.

북한 음식 한 상을 선물 받은 이수남 씨 부부.

난생처음 접해본 음식에 신기한 듯 궁금한 것도 많은데요.

[고영자/서울시 용산구 : "(이게 소가 뭐예요?) 완두콩. 이게 인기가 좋아요. 다이어트에도 좋고... (내가 먹어야 할 떡이네.)"]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좋아요. 너무 좋고 형님 생각이 더 간절히 나고 형님은 또 평생 이런 음식을 접하고 사셨을 거니까. (저희가 형님이 동생한테 해주지 못한 음식을 해줬다고 생각하면 돼요.)"]

고마움의 표시일까요? 수남 씨가 보물처럼 여기는 사진첩을 들고나옵니다.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우리 형님에 대한 거 이 두 장 가지고 있는 거야 평생 이게 16살인가 17살 때... 우리 큰형님 이태원 초등학교 졸업장이야. 이게. 형님의 것이니까 아직 소중히 보관했죠. 제가 평생."]

가족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또 마음이 착잡해집니다.

[김영순/탈북민 : "(저도) 사진이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사진 한 장 없고..."]

세 사람 모두 가족과 생이별한 아픔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통일에 대한 간절함도 남다를 수밖에 없는데요.

[이장복/탈북민 : "딸 하나 북한에 있는데 헤어지고 말았어요. 이쁜 옷 봐도 생각나고 음식 봐도 생각나고 (북한은) 사과도 아프면 앓는 사람한테 한 알씩 싸서 가져가는데 여긴 맨 과일이잖아요. 그런 거 볼 때마다 딸 생각나죠."]

[김영순/탈북민 : "자식과 형제들하고 만나는 그날까지 더 열심히 살아서 봉사도 많이 하고 불우이웃 돕기도 많이 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했어요."]

[이수남/서울시 용산구 : "형님이 저한테 하신 말씀이 “건강해라, 건강해라, 우리가 그래야 또 만날 수 있지 않냐” 얘기하신 걸 너무 또렷이 기억하고 있고요. 어떻게든지 다시 만날 수 있으면 바람은 그것뿐입니다."]

하루빨리 이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또 하나 된 남과 북을 위해 탈북민들이 펼치는 활동이 통일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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