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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으로 쌓아 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입력 2020.09.08 (07:00) 취재K
"검사는 임채진이라고 하고 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던 계장은 고재오라고 해서 계장이고..."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잡혀가 5년 반 남짓 옥살이를 해야 했던 강광보 씨는 자신을 조사했던 당시 수사관과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수사관들이 자신에게 소위 간첩질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행했던 끔찍한 고문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옥살이 이후 가정이 파탄 난 탓에 더는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은 현실은 매일 밤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강광보 씨는 차마 자신을 떠난 자식들 탓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간에 나로 인해 그 아이들도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간첩이라는 빨간 낙인이 찍힌 순간 자신의 인생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모조리 파괴됐던 암울한 과거.

1986년 간첩 사건 조작 피해자 강희철 씨.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2년간 복역했고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1986년 간첩 사건 조작 피해자 강희철 씨.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2년간 복역했고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피해는 강희철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고문만 105일. 그것도 보안대에서 전기고문하고 풀려난 거를 5년 뒤에 또 끌고 가서 이번에는 대공이랑 안기부랑 세 군데서 요리해 먹은 거예요. 양승태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제주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선택했던 일본행이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평생을 옭아맬지 전혀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훗날 강광보 씨나 강희철 씨나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확정받긴 했지만 지나온 세월의 억울한 한은 여전합니다.

과거 자신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이들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작으로 쌓은 '명성'…승승장구한 사람들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가 2018년 1차로 밝힌 '반헌법 행위자' 115명 명단에는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당시 수많은 수사관과 검사, 판사들의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양승태, 김황식, 서성, 임채진. 이들은 특히 제주인을 간첩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당시 판사, 검사로 올라있습니다.

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서성 전 대법관, 임채진 전 검찰총장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서성 전 대법관, 임채진 전 검찰총장

간첩 사건을 조작하며 명성을 쌓은 이들은 훗날 대법원장(양승태)과 국무총리(김황식), 대법관(서성), 검찰총장(임채진)까지 지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986년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강희철 씨에게 무기징역을, 같은 날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오재선 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1977년 서울지방법원 판사 재직 당시 1977년 강우규, 김문규 씨 등 11명이 연루된 재일교포 사업가 위장 간첩단 사건의 배석판사로서 11명 전원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1986년 강광보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를 맡았고, 서성 전 대법관은 이 사건을 비롯해 앞선 강희철 씨 사건의 2심 재판장을 맡아 모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은 모두 훗날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맡았던 사건들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겁니다.

"재심도 하늘의 뜻"…참된 사과는 '아직'

"사과해야 할 건 기회가 오면 얼마든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권리 구제는 재심 절차나 이런 걸 통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2011년 인사청문회 당시,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한 반성 의사를 묻는 청문위원에게 내놓은 답변입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과는 달리 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에도 사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취재진은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경기도 성남시 외곽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집은 높게 쌓아 올린 지위만큼이나 높은 담으로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6시간 남짓한 기다림 끝에 승용차 한 대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양 전 대법원장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분(조작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관련된 입장을 좀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최근 법정 농단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인지, 양 전 대법원장의 가족이 대신 응답했습니다. "지금 언론하고 만날 상황이 아니잖아요. 만날 수가 없다는 걸 기자님이 더 잘 아시는데. 그냥 돌아가세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문자메시지까지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습니다.

결국, 취재진은 시선을 돌려 다른 조작간첩 사건에 이바지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어렵사리 연락처를 구해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총리님의 판사 재직 시절 1977년 간첩 사건 관련해서 지금은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선고받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입장이 있으실까 해서요."

김 전 총리는 공식인터뷰는 거절하면서도 그 당시 법정에서 나타난 증거를 갖고 재판했다며 지금 변명하고 입장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특히, 무죄가 확정된 현재 재심에 대해서는 "또 지금 판결도 또 잘되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그것도 누가 알겠어요. 역사나 하늘에 뜻을 맡겨야죠."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그 누구도 자신들이 과거 간첩으로 내몰았던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지 않은 겁니다.

◆간첩 피해자를 위한 작은 움직임…"기억하자"

아직도 잘못된 과거에 순응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명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이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을 만드는 작업이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 2018년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지난 2018년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

2015년 출범한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는 이른바 반(反) 헌법 행위를 통해 출세한 인물 115명의 명단을 추려 2018년 1차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분야별로는 ▲내란 및 헌정유린 및 국정농단 분야 22명 ▲부정선거분야 2명 ▲고문조작 및 테러 분야 53명 ▲간첩조작 분야 27명 ▲학살분야 7명 ▲언론탄압 분야 3명 ▲기타 1명입니다.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를 이끄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간첩 만들어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자, 최상층에 포진해 있고, 그 기관들은 여전히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바로 잡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반헌법 행위자들을 지금 와서 감옥에 보내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도 잘못된 과거사에 이바지했던 이들에 대한 서훈이나 포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가피해자 지원 시민단체인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간첩으로 조작됐던 분들이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았으면 간첩에 대한 원인 무효가 된다"며 "그럼 그것을 통해 상장을 받거나 표창을 받거나 서훈을 받았으면 이 역시 원인무효가 되므로 당연히 반납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회 차원의 입법 움직임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은 지난 7월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재심으로 무죄가 난 과거사 사건을 사례별로 살펴봐야 한다."며 경찰공무원법상 특진 제도의 근거 규정을 바꿔서 (특진 취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에 대한 입법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바라는 건 가해자들의 사과"

우리가 과거의 잘못된 일을 기억하고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당시 가해자들의 참된 사과입니다.

그나마 1986년 강광보 씨에게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취재진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에게 보내온 문자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에게 보내온 문자

"과거 불행한 사태가 안타깝고, 당시 피해자 강광보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에서야 자신이 기소했던 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강광보 씨는 "그나마 양심적인 발언에 수십 년 쌓아 온 한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며 짧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며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 같은 억울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입니다.

역사가 퇴보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연관기사] [탐사K] 조작으로 쌓아 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http://news.kbs.co.kr/news/view.do?ncd=4524310
  • 조작으로 쌓아 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 입력 2020-09-08 07:00:54
    취재K
"검사는 임채진이라고 하고 내가 경찰서에서 조사받았던 계장은 고재오라고 해서 계장이고..."

1986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잡혀가 5년 반 남짓 옥살이를 해야 했던 강광보 씨는 자신을 조사했던 당시 수사관과 기소한 검사의 이름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당시 수사관들이 자신에게 소위 간첩질을 했다는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행했던 끔찍한 고문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억울한 옥살이 이후 가정이 파탄 난 탓에 더는 의지할 가족 하나 없이 홀로 덩그러니 남은 현실은 매일 밤 사무치는 외로움으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도 강광보 씨는 차마 자신을 떠난 자식들 탓을 하지 못합니다.

"내가 자식들에게 할 말이 없어요. 내가 잘했든 못했든 간에 나로 인해 그 아이들도 인생이 망가졌으니까."

간첩이라는 빨간 낙인이 찍힌 순간 자신의 인생은 물론 가족의 삶까지 모조리 파괴됐던 암울한 과거.

1986년 간첩 사건 조작 피해자 강희철 씨.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2년간 복역했고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1986년 간첩 사건 조작 피해자 강희철 씨.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12년간 복역했고 2008년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 피해는 강희철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고문만 105일. 그것도 보안대에서 전기고문하고 풀려난 거를 5년 뒤에 또 끌고 가서 이번에는 대공이랑 안기부랑 세 군데서 요리해 먹은 거예요. 양승태도 똑같은 인간이에요."

제주에서 먹고 살기 어려워 선택했던 일본행이 간첩이라는 누명으로 평생을 옭아맬지 전혀 몰랐던 일이었습니다.

훗날 강광보 씨나 강희철 씨나 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확정받긴 했지만 지나온 세월의 억울한 한은 여전합니다.

과거 자신들을 간첩으로 조작했던 이들의 진정한 사과를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조작으로 쌓은 '명성'…승승장구한 사람들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가 2018년 1차로 밝힌 '반헌법 행위자' 115명 명단에는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당시 수많은 수사관과 검사, 판사들의 이름이 포함됐습니다.

이 가운데서도 양승태, 김황식, 서성, 임채진. 이들은 특히 제주인을 간첩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했던 당시 판사, 검사로 올라있습니다.

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서성 전 대법관, 임채진 전 검찰총장왼쪽부터 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서성 전 대법관, 임채진 전 검찰총장

간첩 사건을 조작하며 명성을 쌓은 이들은 훗날 대법원장(양승태)과 국무총리(김황식), 대법관(서성), 검찰총장(임채진)까지 지냈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1986년 제주지방법원 부장판사 재직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강희철 씨에게 무기징역을, 같은 날 같은 혐의로 재판을 받았던 오재선 씨에게는 징역 7년을 선고했습니다.

김황식 전 국무총리 역시 1977년 서울지방법원 판사 재직 당시 1977년 강우규, 김문규 씨 등 11명이 연루된 재일교포 사업가 위장 간첩단 사건의 배석판사로서 11명 전원 유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1986년 강광보 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기소를 맡았고, 서성 전 대법관은 이 사건을 비롯해 앞선 강희철 씨 사건의 2심 재판장을 맡아 모두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이들이 국가보안법 위반 간첩으로 내몰았던 사람들은 모두 훗날 재심을 통해 무죄를 확정받았습니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맡았던 사건들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겁니다.

"재심도 하늘의 뜻"…참된 사과는 '아직'

"사과해야 할 건 기회가 오면 얼마든지 표명할 수 있습니다. 구체적인 권리 구제는 재심 절차나 이런 걸 통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2011년 인사청문회 당시, 과거 사법부의 잘못에 대한 반성 의사를 묻는 청문위원에게 내놓은 답변입니다.

하지만 이런 답변과는 달리 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이후에도 사과는 전혀 없었습니다.

취재진은 직접 양 전 대법원장을 찾아갔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양승태 전 대법원장 자택

경기도 성남시 외곽에 있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집은 높게 쌓아 올린 지위만큼이나 높은 담으로 가리어져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6시간 남짓한 기다림 끝에 승용차 한 대가 집으로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심스레 양 전 대법원장 집의 초인종을 눌렀습니다.

"그분(조작간첩 피해자)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받았고, 관련된 입장을 좀 듣고 싶어서 찾아왔습니다."

최근 법정 농단 사건 등으로 재판을 받고 있어서인지, 양 전 대법원장의 가족이 대신 응답했습니다. "지금 언론하고 만날 상황이 아니잖아요. 만날 수가 없다는 걸 기자님이 더 잘 아시는데. 그냥 돌아가세요."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문자메시지까지 보냈지만, 답장은 없었습니다.

결국, 취재진은 시선을 돌려 다른 조작간첩 사건에 이바지했던 김황식 전 국무총리를 찾아 나섰습니다. 직접 만나진 못했지만, 어렵사리 연락처를 구해 통화할 수 있었습니다.

"총리님의 판사 재직 시절 1977년 간첩 사건 관련해서 지금은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선고받고 있는데, 이와 관련해서 입장이 있으실까 해서요."

김 전 총리는 공식인터뷰는 거절하면서도 그 당시 법정에서 나타난 증거를 갖고 재판했다며 지금 변명하고 입장을 밝히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특히, 무죄가 확정된 현재 재심에 대해서는 "또 지금 판결도 또 잘되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그것도 누가 알겠어요. 역사나 하늘에 뜻을 맡겨야죠."라는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결국, 그 누구도 자신들이 과거 간첩으로 내몰았던 피해자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지 않은 겁니다.

◆간첩 피해자를 위한 작은 움직임…"기억하자"

아직도 잘못된 과거에 순응한 사람들이 쌓아 올린 명성은 철옹성처럼 굳건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작은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수많은 조작간첩을 만들었던 이들을 대중에게 알리는 '반헌법 행위자 열전'을 만드는 작업이 그중 하나입니다.

지난 2018년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지난 2018년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 기자회견

2015년 출범한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원회는 이른바 반(反) 헌법 행위를 통해 출세한 인물 115명의 명단을 추려 2018년 1차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분야별로는 ▲내란 및 헌정유린 및 국정농단 분야 22명 ▲부정선거분야 2명 ▲고문조작 및 테러 분야 53명 ▲간첩조작 분야 27명 ▲학살분야 7명 ▲언론탄압 분야 3명 ▲기타 1명입니다.

반헌법 행위자 열전 편찬위를 이끄는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는 "간첩 만들어서 승승장구했던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기득권자, 최상층에 포진해 있고, 그 기관들은 여전히 권력기관으로 행세하고 있다면 이것은 어떻게 바로 잡을지 고민이 필요하다."며 "반헌법 행위자들을 지금 와서 감옥에 보내거나 그러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그 사람들의 행적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취지를 설명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도 잘못된 과거사에 이바지했던 이들에 대한 서훈이나 포상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국가피해자 지원 시민단체인 '지금여기에' 변상철 사무국장은 이에 대해 "간첩으로 조작됐던 분들이 재심을 통해서 무죄를 받았으면 간첩에 대한 원인 무효가 된다"며 "그럼 그것을 통해 상장을 받거나 표창을 받거나 서훈을 받았으면 이 역시 원인무효가 되므로 당연히 반납해야 한다"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국회 차원의 입법 움직임도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은 지난 7월 김창룡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재심으로 무죄가 난 과거사 사건을 사례별로 살펴봐야 한다."며 경찰공무원법상 특진 제도의 근거 규정을 바꿔서 (특진 취소를) 준비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실제 이에 대한 입법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가장 바라는 건 가해자들의 사과"

우리가 과거의 잘못된 일을 기억하고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작 간첩 피해자들이 가장 바라는 건 당시 가해자들의 참된 사과입니다.

그나마 1986년 강광보 씨에게 간첩이란 누명을 씌워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취재진에게 한 통의 문자를 보내왔습니다.

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에게 보내온 문자임채진 전 검찰총장이 취재진에게 보내온 문자

"과거 불행한 사태가 안타깝고, 당시 피해자 강광보 씨에게 깊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에서야 자신이 기소했던 간첩 사건 당사자들이 재심 끝에 무죄를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는 겁니다.

이에 대해 강광보 씨는 "그나마 양심적인 발언에 수십 년 쌓아 온 한이 조금 풀리는 것 같다"며 짧은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에게도 진심 어린 사과를 받고 싶다"며 "그래야만 앞으로 우리 같은 억울한 사람이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의 말입니다.

역사가 퇴보하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현대를 사는 우리가 실천해야 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연관기사] [탐사K] 조작으로 쌓아 올린 '명성'…사과는 '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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