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장벽이 녹색 평화지대로…비결은?

입력 2020.10.10 (22:39) 수정 2020.10.1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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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도 불려지고 있는데요,

30년 전 통일을 이룩한 독일은 동서독을 나눴던 1,393km의 경계선에서 철조망과 지뢰를 걷어내고 생명의 녹색지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독일어로 '그뤼네스 반트'라고 불리는 이 녹색지대는 이제 생태 체험과 역사교육 현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 하르츠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동서독 분단 시절 동독 주민의 출입을 제한했던 검문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프리드하트 크놀레/박사/하르츠 국립공원 대변인 : "저 안에 살거나 직계가족이 거기 살거나 군인일 경우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안쪽으로 5km 국경 지점까지 위치한 마을엔 친정부 성향 주민만 살았습니다.

[프리드하트 크놀레/박사/하르츠 국립공원 대변인 : "아주 강력한 감시체계가 있었습니다. 바깥 경계선과 안쪽 경계선이 있었고, 지뢰밭도 있었습니다."]

비무장지대 마을 국경 지점에는 과거 감시탑의 벙커 출입문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지금 과거 동서독을 나누던 철책 앞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의 접근이 차단됐던 비무장지대는 이제 생태계의 보고이자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는 등산로 입구, 60대 부부의 발걸음이 경쾌합니다.

[요아힘 뷔스테펠트/방문객 : "자연과 새, 동물을 관찰하고, 이 곳에서 하르츠 증기기관차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울창한 가문비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과거 동서독으로 나뉘었던 저수지 위 댐을 지나기도 하는 등 색다른 체험을 합니다.

[스베틀라나/방문객 : "자유로워지는 느낌이고 편안합니다. 맑은 공기, 나무, 한적함, 자연 그 자체입니다."]

평지에서도 폭 50~200미터의 숲이 녹색 띠를 이루며 발트해에서 체코 국경까지 1,393km 구간에 이어집니다.

전체 면적 17,000여 ha의 84%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동식물 5천여 종이 서식하게 됐는데, 그 중 천2백여 종은 멸종 위기의 희귀종입니다.

주민 40여 명이 거주하는 과거 국경 마을, 감시탑과 철조망, 장벽 등 분단시절 시설물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이런 감시탑이 국경 전체에 걸쳐 570여 곳이 운영됐습니다.

2~3km마다 하나씩 설치됐던 셈입니다.

1945년 독일이 분단되면서 이 마을은 국경선인 실개천을 따라 동서독으로 갈라졌고, 1966년엔 장벽까지 세워지면서 주민들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한 마을이 둘로 갈라진 탓에 '작은 베를린'으로 불린 이 마을은, 지금은 연간 7만여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됐습니다.

[로베르트 레베게른/뫼들라로이트 박물관장 : "어떤 방식, 어느 규모로 이 작은 마을을 통해 독일의 분단 역사를 후손을 위해 보존할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뤼네스 반트 전 구간에 설치된 48개의 박물관은 각 구간의 역사를 특색 있게 보여줍니다.

[코르버/방문객 : "국경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보는 게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아주 목가적인 곳에 있지만 국경은 매우 폭력적이었습니다."]

철조망과 지뢰로 상징되던 지역이 이렇게 생태 숲으로 거듭난 건 저절로 된 게 아닙니다.

40여 년 간 국경지역 생태계를 연구해 온 프로벨 교수, 각 분야 학자와 독일 환경보존협회, 연방정부는 통일 직후부터 경계지역 내 생물종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카이 프로벨/교수/환경생태학자 : "1989년 반인륜적인 국경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준비가 잘 돼 있었습니다. 곧바로 다종의 보물창고를 후손을 위해 통일기념물로 보존하자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독일 정부는 8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환경친화적인 체험 프로그램 개발, 농경지로 개발하고 싶어하는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카이 프로벨/교수/환경생태학자 : "끔찍했던 국경이 생태학적인 기념물이 됐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특색 있는 생태지역으로 재탄생한 그뤼네스 반트, 독일 정부와 민간협회는 이제 그뤼네스 반트를 유럽의 다른 녹색지대와 연계해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뤼네스 반트에서 유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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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전의 장벽이 녹색 평화지대로…비결은?
    • 입력 2020-10-10 22:39:23
    • 수정2020-10-10 23:02:52
    특파원 보고 세계는 지금
[앵커]

한반도의 허리를 동서로 가로지르고 있는 비무장지대는 생태계의 보고로도 불려지고 있는데요,

30년 전 통일을 이룩한 독일은 동서독을 나눴던 1,393km의 경계선에서 철조망과 지뢰를 걷어내고 생명의 녹색지대로 재탄생시켰습니다.

독일어로 '그뤼네스 반트'라고 불리는 이 녹색지대는 이제 생태 체험과 역사교육 현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유광석 특파원이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독일 하르츠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동서독 분단 시절 동독 주민의 출입을 제한했던 검문소가 있던 자리입니다.

[프리드하트 크놀레/박사/하르츠 국립공원 대변인 : "저 안에 살거나 직계가족이 거기 살거나 군인일 경우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안쪽으로 5km 국경 지점까지 위치한 마을엔 친정부 성향 주민만 살았습니다.

[프리드하트 크놀레/박사/하르츠 국립공원 대변인 : "아주 강력한 감시체계가 있었습니다. 바깥 경계선과 안쪽 경계선이 있었고, 지뢰밭도 있었습니다."]

비무장지대 마을 국경 지점에는 과거 감시탑의 벙커 출입문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지금 과거 동서독을 나누던 철책 앞을 걷고 있습니다.

사람의 접근이 차단됐던 비무장지대는 이제 생태계의 보고이자 편안한 휴식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른 아침부터 북적이는 등산로 입구, 60대 부부의 발걸음이 경쾌합니다.

[요아힘 뷔스테펠트/방문객 : "자연과 새, 동물을 관찰하고, 이 곳에서 하르츠 증기기관차 타는 것을 좋아합니다."]

울창한 가문비나무 숲길을 걷다보면 과거 동서독으로 나뉘었던 저수지 위 댐을 지나기도 하는 등 색다른 체험을 합니다.

[스베틀라나/방문객 : "자유로워지는 느낌이고 편안합니다. 맑은 공기, 나무, 한적함, 자연 그 자체입니다."]

평지에서도 폭 50~200미터의 숲이 녹색 띠를 이루며 발트해에서 체코 국경까지 1,393km 구간에 이어집니다.

전체 면적 17,000여 ha의 84%가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동식물 5천여 종이 서식하게 됐는데, 그 중 천2백여 종은 멸종 위기의 희귀종입니다.

주민 40여 명이 거주하는 과거 국경 마을, 감시탑과 철조망, 장벽 등 분단시절 시설물을 그대로 보존했습니다.

이런 감시탑이 국경 전체에 걸쳐 570여 곳이 운영됐습니다.

2~3km마다 하나씩 설치됐던 셈입니다.

1945년 독일이 분단되면서 이 마을은 국경선인 실개천을 따라 동서독으로 갈라졌고, 1966년엔 장벽까지 세워지면서 주민들의 접촉이 완전히 차단됐습니다.

한 마을이 둘로 갈라진 탓에 '작은 베를린'으로 불린 이 마을은, 지금은 연간 7만여 명이 찾는 관광지가 됐습니다.

[로베르트 레베게른/뫼들라로이트 박물관장 : "어떤 방식, 어느 규모로 이 작은 마을을 통해 독일의 분단 역사를 후손을 위해 보존할지가 중요했습니다."]

그뤼네스 반트 전 구간에 설치된 48개의 박물관은 각 구간의 역사를 특색 있게 보여줍니다.

[코르버/방문객 : "국경이 얼마나 폭력적인 것인지 보는 게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아주 목가적인 곳에 있지만 국경은 매우 폭력적이었습니다."]

철조망과 지뢰로 상징되던 지역이 이렇게 생태 숲으로 거듭난 건 저절로 된 게 아닙니다.

40여 년 간 국경지역 생태계를 연구해 온 프로벨 교수, 각 분야 학자와 독일 환경보존협회, 연방정부는 통일 직후부터 경계지역 내 생물종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카이 프로벨/교수/환경생태학자 : "1989년 반인륜적인 국경이 무너졌을 때 우리는 준비가 잘 돼 있었습니다. 곧바로 다종의 보물창고를 후손을 위해 통일기념물로 보존하자는 비전을 세웠습니다."]

독일 정부는 800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환경친화적인 체험 프로그램 개발, 농경지로 개발하고 싶어하는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카이 프로벨/교수/환경생태학자 : "끔찍했던 국경이 생태학적인 기념물이 됐다는 것에 대해 주민들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유럽뿐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특색 있는 생태지역으로 재탄생한 그뤼네스 반트, 독일 정부와 민간협회는 이제 그뤼네스 반트를 유럽의 다른 녹색지대와 연계해 유네스코 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뤼네스 반트에서 유광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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