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체크K] 제2의 ‘구하라 사건’ 발생…제도 개선 왜 안 되나?

입력 2020.10.27 (12:37) 수정 2020.10.27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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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딸이 암으로 숨지자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억대의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간 사실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생모는 유족이 사용한 병원비와 장례 비용이 숨진 딸의 카드로 결제됐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까지 낸 것으로 알려져 누리꾼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른바 `제2의 구하라 사건‘으로 표현됐는데요.

지난해 11월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20여 년 전 자녀를 떠난 친모가 나타나 구 씨의 유산 상속권을 제기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죠?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구 씨의 오빠가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라면서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입법 청원을 해 국회 논의까지 됐습니다. 일명 ’구하라법‘으로 불렸죠. 하지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고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은 폐기됐습니다.

그런 사이 부양의무는 저버린 채 자녀가 남긴 재산만 상속받으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뜨거웠던 국민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좌초된 이유가 뭔지,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관련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 내용 발췌. 관련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 내용 발췌.

■ 혈연 중심 상속제도의 사각 ‘구하라 사건’

우선 구하라법의 핵심 내용을 알아야 좌초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하라법은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친족이라도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건 아니고 기존 민법을 일부 개정하는 안입니다.

현행법(민법 제1000조)에 따르면 상속인은 피상속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선순위를 갖죠.


다만,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5가지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친족이라고 해도 상속인에서 제외됩니다. 살인·상해치사, 유언서 위조 등 범죄·부정 행위가 해당됩니다.


그런데 상속 순위와 결격 사유 어디에도 부양 여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수십년 동안 연락 끊고 살던 친부모가 불현듯 찾아와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거죠,

이를 막기 위해 상속 결격 사유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자는 게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 “상속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 필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서영교, 박대출, 박재호 의원 등 여야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심사가 이뤄졌지만 “계속 심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법안은 자동 폐기됐습니다.

당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현행 상속제도의 취지와 개정안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개정안 시행시 소송이 빈번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학계나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2011년에 관련 제도를 검토했던 법무부도 여러 가지 대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김인경 법원행정처 차장과 송기헌 당시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데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자신의 1호 법안으로 구하라법을 재차 발의했습니다. 서 의원은 “현행법상으로는 아이를 양육하지 않고 버려둔 부모가 자녀 사망 후 상속을 받아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이번에는 구하라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서 의원 법안에 대한 법사위 검토보고서 내용은 앞선 회의와 대동소이합니다. 법안 발의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입법할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고, 개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영교 국회 행안위 위원장이 지난 8월 노종언 변호사, 故 구하라 친오빠 구호인 씨, 故 전북 소방관 친언니 강화현 씨와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서영교 국회 행안위 위원장이 지난 8월 노종언 변호사, 故 구하라 친오빠 구호인 씨, 故 전북 소방관 친언니 강화현 씨와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불명확한 ‘부양’기준

법 개정 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부작용으로 지목되는 건 ’부양의무를 현저하게 게을리한다‘는 상속 결격 사유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로 볼 것인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여의치 않다는 거죠. 故 구하라 씨나 이번에 알려진 경우처럼 수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찾아온 경우는 상대적으로 명확해지겠지만, 개정된 법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어서 극소수의 사례를 위해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되는 강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헌법재판소도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과 그 정도는 각 가족의 생활상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며, 따라서 이를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하면 결격 여부를 판단하기가 곤란해져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것으로 우려한 바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2018.2.22 선고/2017헌바59 결정) 모호한 판단 기준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거죠

또,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자칫 피상속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 상속인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이 자신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를 용서한다고 해도 상속결격 요건에 따라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별다른 친분이 없어도 부양의무에서 자유로운 친족이 부양의무로 결격자가 된 직계존속보다 상속 우선순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 생존 유언 등 “현행법 활용으로 상당 부분 해결 가능” 의견도

반면 현행법을 잘 이용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선고를 통해 현행 민법은 ’유언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어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증여(유증)를 하면 자신에게 부양 의무를 다한 직계존속에게 더 많은 비율의 재산을 상속하게 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더불어 특정 상속인이 상당기간 동거를 하거나 간호를 하며 피상속인을 부양 또는 재산 증가에 특별히 이바지했을 경우 민법의 기여분 제도(제1008조의2 제1항)를 통해 상속분 산정 시 해당 부분을 기여분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고, 부양의무를 이행한 직계존속이 그렇지 않은 다른 직계존속을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덕춘 변호사는 최근 KBS에 출연“법원이 운영만 잘하면 현행법제도 하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면서 “특정한 몇 건을 위해 구하라법을 제정할 경우 누더기법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변호사와 함께 출연한 박정교 변호사는 구하라법 입법과 관련해 “법률적으로 따져볼 문제가 너무 많아 예상되는 부작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해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故 구하라 씨 경우처럼 피상속인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나 법적 효력을 갖는 공증 절차 없이 유언하는 경우 생전 증여나 유증이 어렵고,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적용돼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가 단독상속인인 경우 적용이 안 된다는 맹점도 있습니다. 또 현행 법체계에서는 혈연이 아닌 가족(계부모나 계자녀)간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점도 고려해야합니다.

상속 결격 사유에 부양의무를 추가해 별도의 재판절차 없이 상속인의 자격을 당연히 잃게 하는 방식이 옳은지, 아니면 법원의 판단을 물어 결정하는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를 도입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마디로 현행법이든 개정된 법이든, 법리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많다는 얘깁니다.


■ 1958년 제정된 민법…정부·국회 변화에 공감하는 목소리 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공감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현행 민법이 제정됐던 1958년에는 이혼율이 낮고 여성의 재혼이 제한되는 등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강하게 유지됐습니다. 법률상 부모가 자식에 대한 양육의무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라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법사위 보고서에는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 해태를 상속제한 사유에 포함하려는 입법안이 지속해서 발의됐다.”면서 “피상속인이 자녀이고 상속인이 부모인 경우에 상속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강하게 요구된다.”라고 적시됐습니다.

다만, 그 전제조건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법무부 등 관계기관도 상속제도 개편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학계와 변호사 등 8인으로 구성된 T/F를 구성해 상속제도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논의 결과가 나오면 정부입법으로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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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슈체크K] 제2의 ‘구하라 사건’ 발생…제도 개선 왜 안 되나?
    • 입력 2020-10-27 12:37:48
    • 수정2020-10-27 12:42:15
    팩트체크K
젊은 딸이 암으로 숨지자 28년 만에 나타난 생모가 억대의 보험금과 유산을 받아 간 사실이 최근 언론보도를 통해 알려졌습니다. 생모는 유족이 사용한 병원비와 장례 비용이 숨진 딸의 카드로 결제됐다며 부당이득금 반환 소송까지 낸 것으로 알려져 누리꾼의 공분을 샀습니다. 이른바 `제2의 구하라 사건‘으로 표현됐는데요.

지난해 11월 구하라 씨가 사망하자 20여 년 전 자녀를 떠난 친모가 나타나 구 씨의 유산 상속권을 제기하면서 사회적으로 크게 논란이 된 적이 있죠? 많이들 기억하실 겁니다. 당시 구 씨의 오빠가 “부양의무를 저버린 친모는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라면서 국민동의청원 홈페이지에 입법 청원을 해 국회 논의까지 됐습니다. 일명 ’구하라법‘으로 불렸죠. 하지만 본회의에 오르지 못했고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법안은 폐기됐습니다.

그런 사이 부양의무는 저버린 채 자녀가 남긴 재산만 상속받으려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는데요. 뜨거웠던 국민적 공분에도 불구하고 지난 국회에서 ’구하라법‘이 좌초된 이유가 뭔지,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살펴봤습니다.

관련 기사에 달린 인터넷 댓글 내용 발췌.
■ 혈연 중심 상속제도의 사각 ‘구하라 사건’

우선 구하라법의 핵심 내용을 알아야 좌초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구하라법은 부모나 자식 등에 대한 부양의무를 게을리할 경우 친족이라도 재산을 상속받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새로운 법을 만드는 건 아니고 기존 민법을 일부 개정하는 안입니다.

현행법(민법 제1000조)에 따르면 상속인은 피상속인과 혈연관계가 있으면 원칙적으로 상속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우선순위를 갖죠.


다만, 민법이 규정하고 있는 5가지 결격사유에 해당하면 친족이라고 해도 상속인에서 제외됩니다. 살인·상해치사, 유언서 위조 등 범죄·부정 행위가 해당됩니다.


그런데 상속 순위와 결격 사유 어디에도 부양 여부에 대한 내용은 없습니다. 이런 점 때문에 수십년 동안 연락 끊고 살던 친부모가 불현듯 찾아와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는 거죠,

이를 막기 위해 상속 결격 사유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으로서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추가하자는 게 개정안의 핵심입니다.


■ “상속제도 전반에 대한 검토 필요”

구하라법은 20대 국회에서 서영교, 박대출, 박재호 의원 등 여야 의원이 발의했습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안심사가 이뤄졌지만 “계속 심사가 필요하다.”는 결정이 내려졌고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법안은 자동 폐기됐습니다.

당시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 제1소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법원행정처는 현행 상속제도의 취지와 개정안의 내용이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있고 개정안 시행시 소송이 빈번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학계나 전문가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2011년에 관련 제도를 검토했던 법무부도 여러 가지 대안을 함께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습니다. 김인경 법원행정처 차장과 송기헌 당시 소위원장(더불어민주당)은 논의가 더 필요하다는 데에 방점을 찍었습니다.

이후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21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자신의 1호 법안으로 구하라법을 재차 발의했습니다. 서 의원은 “현행법상으로는 아이를 양육하지 않고 버려둔 부모가 자녀 사망 후 상속을 받아 가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서 “이번에는 구하라법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서 의원 법안에 대한 법사위 검토보고서 내용은 앞선 회의와 대동소이합니다. 법안 발의의 취지에는 공감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입법할 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충분한 법리적 검토가 필요하고, 개정안 심사를 위한 공청회를 개최할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 나왔습니다. 이후 구체적인 논의는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서영교 국회 행안위 위원장이 지난 8월 노종언 변호사, 故 구하라 친오빠 구호인 씨, 故 전북 소방관 친언니 강화현 씨와 함께 국회 소통관에서 구하라법 통과를 위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는 불명확한 ‘부양’기준

법 개정 시 발생할 수 있는 가장 큰 부작용으로 지목되는 건 ’부양의무를 현저하게 게을리한다‘는 상속 결격 사유의 개념이 불명확하다는 점입니다.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의 범위를 어느 정도까지로 볼 것인지,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했다고 판단하는 기준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가 여의치 않다는 거죠. 故 구하라 씨나 이번에 알려진 경우처럼 수십 년 동안 연락 한 번 없다가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찾아온 경우는 상대적으로 명확해지겠지만, 개정된 법은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것이어서 극소수의 사례를 위해 더 큰 부작용이 우려되는 강한 처방을 내릴 수는 없다는 입장입니다.

헌법재판소도 부양의무를 이행하는 방법과 그 정도는 각 가족의 생활상과 경제적 여건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부양의무 이행의 개념은 상대적이며, 따라서 이를 상속 결격 사유로 규정하면 결격 여부를 판단하기가 곤란해져 상속을 둘러싼 법적 분쟁이 빈번해질 것으로 우려한 바가 있습니다. (헌법재판소 2018.2.22 선고/2017헌바59 결정) 모호한 판단 기준이 법적 안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거죠

또,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자칫 피상속인의 의사에 부합하지 않는 상속인 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됩니다. 예를 들어 피상속인이 자신에 대한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를 용서한다고 해도 상속결격 요건에 따라 부모 이외의 다른 친족에게 상속이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별다른 친분이 없어도 부양의무에서 자유로운 친족이 부양의무로 결격자가 된 직계존속보다 상속 우선순위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또 다른 분쟁의 씨앗이 될 수 있습니다.


■ 생존 유언 등 “현행법 활용으로 상당 부분 해결 가능” 의견도

반면 현행법을 잘 이용하면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선고를 통해 현행 민법은 ’유언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어 피상속인이 생전에 증여하거나 유언으로 증여(유증)를 하면 자신에게 부양 의무를 다한 직계존속에게 더 많은 비율의 재산을 상속하게 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더불어 특정 상속인이 상당기간 동거를 하거나 간호를 하며 피상속인을 부양 또는 재산 증가에 특별히 이바지했을 경우 민법의 기여분 제도(제1008조의2 제1항)를 통해 상속분 산정 시 해당 부분을 기여분으로 인정받는 것이 가능하고, 부양의무를 이행한 직계존속이 그렇지 않은 다른 직계존속을 상대로 양육비를 청구할 수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이덕춘 변호사는 최근 KBS에 출연“법원이 운영만 잘하면 현행법제도 하에서도 소화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면서 “특정한 몇 건을 위해 구하라법을 제정할 경우 누더기법이 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변호사와 함께 출연한 박정교 변호사는 구하라법 입법과 관련해 “법률적으로 따져볼 문제가 너무 많아 예상되는 부작용을 동시에 고려해야 해서 쉽게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故 구하라 씨 경우처럼 피상속인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사망했을 경우나 법적 효력을 갖는 공증 절차 없이 유언하는 경우 생전 증여나 유증이 어렵고, 기여분 제도는 공동상속인이 존재하는 경우에만 적용돼 부양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부모가 단독상속인인 경우 적용이 안 된다는 맹점도 있습니다. 또 현행 법체계에서는 혈연이 아닌 가족(계부모나 계자녀)간 상속을 인정하지 않는 점도 고려해야합니다.

상속 결격 사유에 부양의무를 추가해 별도의 재판절차 없이 상속인의 자격을 당연히 잃게 하는 방식이 옳은지, 아니면 법원의 판단을 물어 결정하는 ’상속권 상실선고 제도‘를 도입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옵니다.

한마디로 현행법이든 개정된 법이든, 법리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많다는 얘깁니다.


■ 1958년 제정된 민법…정부·국회 변화에 공감하는 목소리 커

그럼에도 어떤 방식으로든 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에 공감하는 시선이 많습니다.

현행 민법이 제정됐던 1958년에는 이혼율이 낮고 여성의 재혼이 제한되는 등 전통적인 가족제도가 강하게 유지됐습니다. 법률상 부모가 자식에 대한 양육의무를 게을리할 가능성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습니다. 그러나 시대변화에 따라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국회 법사위 보고서에는 “18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 해태를 상속제한 사유에 포함하려는 입법안이 지속해서 발의됐다.”면서 “피상속인이 자녀이고 상속인이 부모인 경우에 상속의 타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강하게 요구된다.”라고 적시됐습니다.

다만, 그 전제조건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밝혔는데요. 법무부 등 관계기관도 상속제도 개편에 대한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다는 점에 모두 공감했습니다.

법무부는 지난 6월 학계와 변호사 등 8인으로 구성된 T/F를 구성해 상속제도 개편에 대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논의 결과가 나오면 정부입법으로 민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다는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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