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K] ‘4·3 잃어버린 땅’(3) 가족에 땅까지 빼앗긴 유족들…“진상조사 절실”

입력 2021.04.02 (16:11) 수정 2021.04.02 (20: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요약

최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됐습니다. 부당한 국가폭력에 희생된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의 근거가 마련돼 4·3 해결에 큰 전기를 맞게 됐습니다. 하지만 진상규명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KBS는 4·3 73주년을 맞아 희생자와 유족들이 부당하게 소유권을 빼앗긴 ‘잃어버린 땅’에 주목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잃어버린 땅’의 사례와 실태 조사의 필요성을 전해드립니다.

작은할아버지 가족묘를 방문한 김군선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는 조부의 땅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주장한다.작은할아버지 가족묘를 방문한 김군선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는 조부의 땅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 잃어버린 땅, 그리고 부동산 특별조치법

4·3 때 아버지를 잃은 올해 73살의 김군선 할아버지. 해마다 벌초를 위해 고향을 찾지만 김 할아버지의 가족 땅은 고향 어디에도 없습니다. 4·3 당시 옆집에 살다 가족 9명이 모두 숨진 작은할아버지 가족묘도 마을 공유지에 모셔야 했습니다.

땅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72년 김 할아버지는 입대를 앞두고, 증조할아버지 땅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땅은 이미 마을 유지에게 넘어간 상황. 김 할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오면 돌려주겠다던 마을 유지의 말을 믿었지만, 지금껏 달라진 건 없습니다.

김 씨의 사례와 더불어 지난 기사에서 전해드린 4·3으로 '잃어버린 땅'들의 공통점.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에 대해 보증을 거쳐 쉽게 등기할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 특별조치법'입니다.

■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그렇다면 4·3과 관련해 소유권이 부당하게 넘어간 사례는 얼마나 될까? 제주지역에서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적용된 사례는 1978년 이후로만 20만 여건. 이 가운데 4·3과 관련된 땅을 골라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제주 4·3 제50주년 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발간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1998년)제주 4·3 제50주년 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발간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1998년)

KBS는 '잃어버린 마을'에 주목했습니다. 4·3 때 큰 피해를 봐 마을의 기능이 사라져 버린 만큼, 누군가 땅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본 자료가 바로 23년 전 발간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의 실태를 조사했는데, 일부 마을들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터를 기록해놓았습니다. 강태권 전 제주 4·3연구소 연구원은 "지적도를 들고 현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집터를 확인하고, 4·3을 거치면서 누가 희생됐는지 정리했다"고 설명합니다.

■ 잃어버린 마을 집터 83% '부동산 특별조치법' 적용

KBS는 책에 담긴 잃어버린 마을 가운데 5곳의 집터를 들여다봤습니다. 23년 전 그린 지도를 토대로 소유권 변동 과정을 조사한 겁니다. 옛 지적도를 복원해 약 2백 필지를 특정한 뒤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구 등기부등본까지 소유권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에 담긴 기록과 옛 지적도를 비교해 과거 집터의 번지를 특정하고 있다.‘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에 담긴 기록과 옛 지적도를 비교해 과거 집터의 번지를 특정하고 있다.

분석 결과, 4·3을 기점으로 부동산 특별조치법을 통해 소유관계가 바뀐 땅은 195필지 가운데 162필지. 83%에 달하는 땅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처음 시행된 1960년대 중반의 적용 사례가 가장 많았고, 1980년을 전후해서도 많았습니다.

특히 '제주4·3 평화재단'의 자료인 아카이브를 토대로 4·3 당시 주인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들도 대부분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적용됐는데, 4·3이 한참 지난 시기에 땅을 샀다며 소유권 등기를 한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친족이 넘겼는데도 제대로 등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3자가 부당하게 가져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 또 다른 피해 추정 유형도 발견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땅을 잃어버린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4·3 때 아버지를 잃은 김동호 할아버지는 KBS 취재를 통해 부친 명의였던 고향 땅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해당 토지의 옛날 등기부등본을 보면, 1971년 누군가 대신 등기를 한 기록이 적혀있습니다. 이미 사망한 부친에게 받아야 할 채권이 있다며 땅을 가져가 버린 겁니다.

김동호 할아버지의 부친은 4·3 때 희생됐지만, 1971년 누군가 받아야 할 채권이 있다며 소유권을 대신 등기해버렸다.김동호 할아버지의 부친은 4·3 때 희생됐지만, 1971년 누군가 받아야 할 채권이 있다며 소유권을 대신 등기해버렸다.

이렇게 넘어간 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일교포에게 팔렸고,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이제는 찾을 길이 요원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강병삼 변호사는 "인감증명 같은 서류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등기"라고 설명합니다.

김 할아버지의 고향에는 같은 방법으로 넘어간 땅이 여러 필지 발견됐는데, 억울하게 땅을 잃어버린 또 다른 유형의 4·3 피해로 추정됩니다.

■ '잃어버린 땅' 실태조사 나서야

KBS가 이번에 조사한 잃어버린 마을은 6곳. 그나마 집터만 확인했습니다. 현재 4·3 연구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잃어버린 마을은 모두 122군데에 달해 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마을만이라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양동윤 제주 4·3 도민연대 대표는 "희생된 사실을 회복하는 작업인데 왜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우리가 모두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올해 전부 개정된 4·3 특별법이 기회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개정된 법률에는 4·3의 진상규명 등을 위해 새로운 위원회를 두기로 했는데, 위원회 활동에는 추가 진상조사도 담겼습니다. 박찬식 전 제주 4·3 연구소 소장은 "토지 소유권 문제는 지금까지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물적 피해 실태 조사와 더불어 4·3의 원상회복 조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꼽히는 4·3으로 가족도 모자라 땅까지 잃어버린 유족들.

원동마을 4·3 유족 가운데 한 명인 김경용 씨는 "땅이 어디 있었는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삶"이었다며 "4·3의 피해와 아픔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잃어버린 땅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주는 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연관기사]
[탐사K] 4·3 또 하나의 상처…잃어버린 땅(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47796)
[탐사K] 4·3 잃어버린 땅…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2222)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탐사K] ‘4·3 잃어버린 땅’(3) 가족에 땅까지 빼앗긴 유족들…“진상조사 절실”
    • 입력 2021-04-02 16:11:18
    • 수정2021-04-02 20:44:00
    탐사K
최근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개정됐습니다. 부당한 국가폭력에 희생된 희생자들에 대한 배상의 근거가 마련돼 4·3 해결에 큰 전기를 맞게 됐습니다. 하지만 진상규명 과제는 여전히 적지 않게 남아 있습니다. KBS는 4·3 73주년을 맞아 희생자와 유족들이 부당하게 소유권을 빼앗긴 ‘잃어버린 땅’에 주목했습니다. 세 차례에 걸쳐 ‘잃어버린 땅’의 사례와 실태 조사의 필요성을 전해드립니다.
작은할아버지 가족묘를 방문한 김군선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는 조부의 땅을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주장한다.
■ 잃어버린 땅, 그리고 부동산 특별조치법

4·3 때 아버지를 잃은 올해 73살의 김군선 할아버지. 해마다 벌초를 위해 고향을 찾지만 김 할아버지의 가족 땅은 고향 어디에도 없습니다. 4·3 당시 옆집에 살다 가족 9명이 모두 숨진 작은할아버지 가족묘도 마을 공유지에 모셔야 했습니다.

땅이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닙니다. 1972년 김 할아버지는 입대를 앞두고, 증조할아버지 땅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하지만 땅은 이미 마을 유지에게 넘어간 상황. 김 할아버지는 군대를 다녀오면 돌려주겠다던 마을 유지의 말을 믿었지만, 지금껏 달라진 건 없습니다.

김 씨의 사례와 더불어 지난 기사에서 전해드린 4·3으로 '잃어버린 땅'들의 공통점. 소유권이 불분명한 땅에 대해 보증을 거쳐 쉽게 등기할 수 있도록 하는 '부동산 특별조치법'입니다.

■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

그렇다면 4·3과 관련해 소유권이 부당하게 넘어간 사례는 얼마나 될까? 제주지역에서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적용된 사례는 1978년 이후로만 20만 여건. 이 가운데 4·3과 관련된 땅을 골라내는 건 쉽지 않습니다.

제주 4·3 제50주년 학술·문화사업추진위원회가 발간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1998년)
KBS는 '잃어버린 마을'에 주목했습니다. 4·3 때 큰 피해를 봐 마을의 기능이 사라져 버린 만큼, 누군가 땅을 가로챘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한 겁니다. 이 과정에서 눈여겨본 자료가 바로 23년 전 발간된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라는 책입니다.

이 책은 대표적인 잃어버린 마을의 실태를 조사했는데, 일부 마을들은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집터를 기록해놓았습니다. 강태권 전 제주 4·3연구소 연구원은 "지적도를 들고 현장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집터를 확인하고, 4·3을 거치면서 누가 희생됐는지 정리했다"고 설명합니다.

■ 잃어버린 마을 집터 83% '부동산 특별조치법' 적용

KBS는 책에 담긴 잃어버린 마을 가운데 5곳의 집터를 들여다봤습니다. 23년 전 그린 지도를 토대로 소유권 변동 과정을 조사한 겁니다. 옛 지적도를 복원해 약 2백 필지를 특정한 뒤 일본 강점기에 만들어진 구 등기부등본까지 소유권 관련 자료를 모두 확인했습니다.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에 담긴 기록과 옛 지적도를 비교해 과거 집터의 번지를 특정하고 있다.
분석 결과, 4·3을 기점으로 부동산 특별조치법을 통해 소유관계가 바뀐 땅은 195필지 가운데 162필지. 83%에 달하는 땅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시기별로 살펴보면,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처음 시행된 1960년대 중반의 적용 사례가 가장 많았고, 1980년을 전후해서도 많았습니다.

특히 '제주4·3 평화재단'의 자료인 아카이브를 토대로 4·3 당시 주인이 희생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땅들도 대부분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적용됐는데, 4·3이 한참 지난 시기에 땅을 샀다며 소유권 등기를 한 경우도 확인됐습니다. 친족이 넘겼는데도 제대로 등기하지 않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제3자가 부당하게 가져갔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겁니다.

■ 또 다른 피해 추정 유형도 발견

부동산 특별조치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땅을 잃어버린 사례도 확인됐습니다.

4·3 때 아버지를 잃은 김동호 할아버지는 KBS 취재를 통해 부친 명의였던 고향 땅의 존재를 알게 됐습니다. 그런데 해당 토지의 옛날 등기부등본을 보면, 1971년 누군가 대신 등기를 한 기록이 적혀있습니다. 이미 사망한 부친에게 받아야 할 채권이 있다며 땅을 가져가 버린 겁니다.

김동호 할아버지의 부친은 4·3 때 희생됐지만, 1971년 누군가 받아야 할 채권이 있다며 소유권을 대신 등기해버렸다.
이렇게 넘어간 땅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재일교포에게 팔렸고,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면서 이제는 찾을 길이 요원한 상태입니다. 이에 대해 강병삼 변호사는 "인감증명 같은 서류를 부정한 방법으로 취득하지 않는 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불가능한 등기"라고 설명합니다.

김 할아버지의 고향에는 같은 방법으로 넘어간 땅이 여러 필지 발견됐는데, 억울하게 땅을 잃어버린 또 다른 유형의 4·3 피해로 추정됩니다.

■ '잃어버린 땅' 실태조사 나서야

KBS가 이번에 조사한 잃어버린 마을은 6곳. 그나마 집터만 확인했습니다. 현재 4·3 연구소에서 파악하고 있는 잃어버린 마을은 모두 122군데에 달해 더 많은 피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더 늦기 전에 잃어버린 마을만이라도 조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양동윤 제주 4·3 도민연대 대표는 "희생된 사실을 회복하는 작업인데 왜 지금까지 관심을 두지 않았는지 우리가 모두 깊이 성찰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올해 전부 개정된 4·3 특별법이 기회라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개정된 법률에는 4·3의 진상규명 등을 위해 새로운 위원회를 두기로 했는데, 위원회 활동에는 추가 진상조사도 담겼습니다. 박찬식 전 제주 4·3 연구소 소장은 "토지 소유권 문제는 지금까지 조사가 이뤄지지 못했다"며 "물적 피해 실태 조사와 더불어 4·3의 원상회복 조치를 위한 가장 중요한 주제가 될 수 있다"고 조사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으로 꼽히는 4·3으로 가족도 모자라 땅까지 잃어버린 유족들.

원동마을 4·3 유족 가운데 한 명인 김경용 씨는 "땅이 어디 있었는지 생각하는 것 자체가 사치였던 삶"이었다며 "4·3의 피해와 아픔은 7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 이어진다고 본다"고 말합니다.

잃어버린 땅의 진정한 주인을 찾아주는 일. 4·3의 완전한 해결을 위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일지도 모릅니다.

[연관기사]
[탐사K] 4·3 또 하나의 상처…잃어버린 땅(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47796)
[탐사K] 4·3 잃어버린 땅…잃어버린 마을을 찾아서(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52222)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