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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K] 잃어버린 피…“뒤엉킨 아픔 특별법으로 보듬어야”
입력 2021.04.02 (19:23) 수정 2021.04.02 (19:46) 뉴스7(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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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4·3의 광풍으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와 유족들은 혼인이나 출생·사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은데요.

개정된 4·3특별법으로 뒤얽힌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단초가 마련됐지만, 앞으로도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잃어버린 핏줄을 둘러싼 과제를 탐사K 취재팀 안서연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1949년 부모가 총살당하고 동생 셋을 맡게 된 16살 소년이 이제 아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부시켜주겠다는 말에 자식이 없는 지인에게 양딸로 보낸 막냇동생.

출생신고도 안됐던 동생은 그렇게 김씨가 아닌 정씨가 됐는데, 이젠 되돌릴 길이 없어 원통하기만 합니다.

[김명원/4·3 후유장애인 : "아버지 시신 못 찾은 것도 한이지만 이 동생, 살아있는 동생이 호적이 뒤틀린 것에 대해서 내가 오빠로서 책임을 다 못했다는 걸 통감하고 있습니다."]

73년간 아버지의 조카로 살아야 했던 김정희 할머니.

4·3 당시 어머니 배 속에 있던 김 할머니는 혼인신고조차 못 한 채 총살로 숨진 아버지 대신 가상의 아버지 호적에 올랐습니다.

[김정희/4·3 후유장애인 가족 : "(할아버지가) 가짜 아들, 둘째 아들을 만들어서 이름만, 실체 없는 이름만 만들어서 호에 올렸다고 합디다."]

바로잡기 위해 3년째 애쓰고 있지만, 어머니와 가상의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만 받아냈습니다.

공백으로 남은 친부의 자리,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김정희/4·3 후유장애인 가족 :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빨리 좀 우리 같은 사람 가족관계등록부에 좀 올려줬으면 진짜 고맙겠습니다."]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위해서는 등록상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친생자 관계 부존재 소송'을 거친 뒤, 진짜 부모가 누군지 밝히는 '친생자 관계 존재 소송'을 해야 했습니다.

혼외 출생자일 경우 '인지청구 소송'을 할 수 있지만, 부모의 사망을 안 뒤 2년 안에 소를 제기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보니 바로 잡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문성윤/변호사 : "(친생자 관계 존재)소송을 통하게 되면 결국 DNA 검사를 해야 되는데, 심지어 무덤을 파서 DNA 검사를 하기까지 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는데."]

이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4·3특별법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대한 조항이 개정됐습니다.

기존법에서는 4·3사건 당시 호적부가 소실됐을 경우만 정정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한 피해라면 다른 법령 규정에 상관없이 정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넓어진 정정 사유 범위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문성윤/변호사 : "(기존 민법상) 신분관계의 획일성이나 안전성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되는 또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개정된 4·3특별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를 풀 길이 열렸지만 평탄치만은 않아 보이는데요.

이번에 신설된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놓고도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알아봤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지난 1월 4·3 수형인 재심에서 형님의 무죄를 받아낸 서명진 할아버지입니다.

해방 전 부모를 잃고 단둘이 살다 경찰에 끌려가 버린 형, 이제야 명예를 회복했지만 보상은 청구할 수 없는 처집니다.

[서명진/4·3 수형인 유족 : "그 당시(사망 시점) 법을 적용해서 나보고는 상속권이 없다 이거라. 큰아버지 자제분들(사촌)에게 상속권이 있지. 그 후손들이 있지. 나는 상속권이 없다고."]

민법상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부터 상속이 개시되는 것으로 보는데, 현 민법이 시행된 1960년 전, 4·3때인 1947년에서 1954년 사이 사망했을 경우, 구 민법을 적용받아 호주가 상속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형제가 희생자에 대해 제사를 지내왔더라도, 호주, 즉 법상 한 집안의 주인으로 등록된 큰아버지 등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문성윤/변호사 : "지금(현 민법)은 이제 배우자와 자식들이 나눠서 이렇게 재산상속을 하게 돼 있지만, 그때(구 민법)는 호주만이 모든 상속을 하게 돼 있어서. (위자료가) 그 당시 호주한테 지급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함이."]

이 때문에 4·3 희생자 위자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상속이 시작되는 시점을 사망 시점인 4·3 당시가 아닌, 위자료 지급이 결정된 현 시점으로 보는 특례를 두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오임종/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 "특별법은 현 민법을 초월해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마련해서."]

4·3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지급할 위자료의 금액과 기준을 정하기 위한 행정안전부의 연구용역에서 꼭 검토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영훈/국회의원 : "6개월간의 용역을 거친 이후에 다시 보완 입법상에서 실제로 유족들에게 필요한 세세한 이런 내용이 잘 규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현대사의 비극인 4·3으로 뒤엉켜버린 핏줄, 살아남은 혈육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 입법이 필요합니다.

탐사K입니다.

촬영기자:고진현/그래픽:박미나
  • [탐사K] 잃어버린 피…“뒤엉킨 아픔 특별법으로 보듬어야”
    • 입력 2021-04-02 19:23:55
    • 수정2021-04-02 19:46:10
    뉴스7(제주)
[앵커]

4·3의 광풍으로 가족을 잃은 희생자와 유족들은 혼인이나 출생·사망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한 경우들이 많은데요.

개정된 4·3특별법으로 뒤얽힌 가족관계를 바로잡을 단초가 마련됐지만, 앞으로도 과제는 많아 보입니다.

잃어버린 핏줄을 둘러싼 과제를 탐사K 취재팀 안서연 기자가 들여다봤습니다.

[리포트]

1949년 부모가 총살당하고 동생 셋을 맡게 된 16살 소년이 이제 아흔을 앞두고 있습니다.

공부시켜주겠다는 말에 자식이 없는 지인에게 양딸로 보낸 막냇동생.

출생신고도 안됐던 동생은 그렇게 김씨가 아닌 정씨가 됐는데, 이젠 되돌릴 길이 없어 원통하기만 합니다.

[김명원/4·3 후유장애인 : "아버지 시신 못 찾은 것도 한이지만 이 동생, 살아있는 동생이 호적이 뒤틀린 것에 대해서 내가 오빠로서 책임을 다 못했다는 걸 통감하고 있습니다."]

73년간 아버지의 조카로 살아야 했던 김정희 할머니.

4·3 당시 어머니 배 속에 있던 김 할머니는 혼인신고조차 못 한 채 총살로 숨진 아버지 대신 가상의 아버지 호적에 올랐습니다.

[김정희/4·3 후유장애인 가족 : "(할아버지가) 가짜 아들, 둘째 아들을 만들어서 이름만, 실체 없는 이름만 만들어서 호에 올렸다고 합디다."]

바로잡기 위해 3년째 애쓰고 있지만, 어머니와 가상의 아버지의 혼인이 무효라는 판결만 받아냈습니다.

공백으로 남은 친부의 자리, 아버지 이름조차 찾을 수 없는 현실이 야속합니다.

[김정희/4·3 후유장애인 가족 :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빨리 좀 우리 같은 사람 가족관계등록부에 좀 올려줬으면 진짜 고맙겠습니다."]

그동안 가족관계등록부 정정을 위해서는 등록상 부모가 친부모가 아니라는 '친생자 관계 부존재 소송'을 거친 뒤, 진짜 부모가 누군지 밝히는 '친생자 관계 존재 소송'을 해야 했습니다.

혼외 출생자일 경우 '인지청구 소송'을 할 수 있지만, 부모의 사망을 안 뒤 2년 안에 소를 제기할 수 있어 적용이 어려웠습니다.

이 과정에서 유전자 검사가 필요하다 보니 바로 잡지 못한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문성윤/변호사 : "(친생자 관계 존재)소송을 통하게 되면 결국 DNA 검사를 해야 되는데, 심지어 무덤을 파서 DNA 검사를 하기까지 하는 그런 경우도 있었는데."]

이 복잡한 절차를 간소화하기 위해 4·3특별법에 가족관계등록부 작성에 대한 조항이 개정됐습니다.

기존법에서는 4·3사건 당시 호적부가 소실됐을 경우만 정정할 수 있었는데, 개정법에서는 4·3사건으로 인한 피해라면 다른 법령 규정에 상관없이 정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넓어진 정정 사유 범위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는 미지숩니다.

[문성윤/변호사 : "(기존 민법상) 신분관계의 획일성이나 안전성 때문에 소송을 통해서 바로 잡아야 되는 또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어서 아직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개정된 4·3특별법으로 꼬여버린 가족관계를 풀 길이 열렸지만 평탄치만은 않아 보이는데요.

이번에 신설된 희생자에 대한 위자료 지급을 놓고도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알아봤습니다.

["만세! 만세! 만세!"]

지난 1월 4·3 수형인 재심에서 형님의 무죄를 받아낸 서명진 할아버지입니다.

해방 전 부모를 잃고 단둘이 살다 경찰에 끌려가 버린 형, 이제야 명예를 회복했지만 보상은 청구할 수 없는 처집니다.

[서명진/4·3 수형인 유족 : "그 당시(사망 시점) 법을 적용해서 나보고는 상속권이 없다 이거라. 큰아버지 자제분들(사촌)에게 상속권이 있지. 그 후손들이 있지. 나는 상속권이 없다고."]

민법상 피상속인의 사망 시점부터 상속이 개시되는 것으로 보는데, 현 민법이 시행된 1960년 전, 4·3때인 1947년에서 1954년 사이 사망했을 경우, 구 민법을 적용받아 호주가 상속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배우자나 형제가 희생자에 대해 제사를 지내왔더라도, 호주, 즉 법상 한 집안의 주인으로 등록된 큰아버지 등이 상속권을 갖게 된다는 겁니다.

[문성윤/변호사 : "지금(현 민법)은 이제 배우자와 자식들이 나눠서 이렇게 재산상속을 하게 돼 있지만, 그때(구 민법)는 호주만이 모든 상속을 하게 돼 있어서. (위자료가) 그 당시 호주한테 지급될 수밖에 없는 그런 불합리함이."]

이 때문에 4·3 희생자 위자료에 대해서만이라도 상속이 시작되는 시점을 사망 시점인 4·3 당시가 아닌, 위자료 지급이 결정된 현 시점으로 보는 특례를 두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오임종/제주4·3희생자유족회장 : "특별법은 현 민법을 초월해서 집행할 수 있기 때문에 될 수 있으면 유족들을 조금이라도 위로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법을 마련해서."]

4·3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지급할 위자료의 금액과 기준을 정하기 위한 행정안전부의 연구용역에서 꼭 검토해야 할 부분입니다.

[오영훈/국회의원 : "6개월간의 용역을 거친 이후에 다시 보완 입법상에서 실제로 유족들에게 필요한 세세한 이런 내용이 잘 규정이 마련될 수 있도록 끝까지 관심을."]

현대사의 비극인 4·3으로 뒤엉켜버린 핏줄, 살아남은 혈육들이 더는 눈물 흘리지 않도록 세심한 보완 입법이 필요합니다.

탐사K입니다.

촬영기자:고진현/그래픽:박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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