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로 미래로] 남북 정상 합의했지만…기약 없는 ‘이산 상봉’

입력 2021.05.01 (08:01) 수정 2021.05.0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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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년 전 남북한 정상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죠.

네, 그런데 판문점 선언 이후 딱 한 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을 뿐 합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산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취재하고 왔죠?

[답변]

네, 다들 백발이 성성한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는데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정부가 이산가족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고요?

[답변]

네, 현재 이산가족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요.

5년을 주기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소년이 노인이 되기까지 70년 동안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려 온 이산가족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우두커니 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황해도 벽성군 출신인 고우균 할아버지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항상 이곳을 찾는데요.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옛날엔 황해도에서 배가 이리로 와서 마포까지 걸어 다녔거든. 배를 타고 가면 황해도까지 간다고."]

인민군 징집을 피해 15살에 홀로 피난길에 오른 할아버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뒤 평생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열흘이면 (고향 땅에) 국군들 다 들어오고 하니까 그걸 믿고 나왔다가 영 못 들어가고 말았지."]

한강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고 온 할아버지가 영업 준비를 합니다.

50년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해 온 잡곡 가게인데요.

["아버지 저 왔어요. (그래 왔니.) 벌써 다 열어 놓으셨어. (그래. 일찍 왔구나.)"]

환갑이 다 된 아들이 든든하게 옆을 지키고 있지만,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아무 생각 않고 집 생각만 고향 생각만 하고 이북에서 나왔다 하면 붙잡고 울기만 하고 그랬어요. 동생이 82살 되고 막냇동생이 79살 됐으니까 난 내 동생 살아 있으면 보고 싶죠."]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은 가슴이 아려옵니다.

[고종순/고우균 씨 아들 : "명절 때는 온 가족이 많이 모이잖아요. 우린 가족이 없었어요. 아버지 혼자니까. 아버지 전망대 가서 북의 고향 보면서 가끔가다 눈물 흘리시고 그때가 제일 안타까웠던 거 같아요."]

아들과 마주 앉은 고우균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꺼내듭니다.

북녘에 남아 있는 가족과 고향 정보가 담긴 이산가족상봉 신청서인데요.

["이거 내 고향 주소. 부모형제들 다 내가 적어 놓은. 이산가족 찾는다고 이북오도청에 써냈거든. 내가 세상을 뜨더라도 이거 네가 가지고 있다가 혹시라도 통일되면 가서 이걸 가지고 찾아. (이왕이면 아버지랑 나랑 같이 가자.)"]

[고종순/고우균 씨 아들 : "이건 아버지가 안 보여줬어요. 아버님 형제분이라든가 가족들 뵀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한을 한번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이산가족들은 곧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3년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이산가족들은 기약 없이 계속해서 기다리는 실정입니다.

2000년 8월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는 2018년 8월까지 모두 21차례 열렸는데요.

남북한을 합쳐 2만 604명의 이산가족들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매일같이 달밤에 나가서 굳세어라 금순이를 불렀지."]

["꼭 사진을, 어머님 사진을 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훨씬 많은 실정인데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 3월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3만 3,41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신청자 가운데 8만여 명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생존자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상봉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1년에 3, 4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 걸 다 감안해서 북한도 정치적 접근보다는 인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13살에 피난을 온 오익환 할아버지.

북에 홀로 두고 온 동생을 찾고 있는데요.

죽기 전에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의 끈은 절대로 놓을 수 없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고향의 겨울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물건들을 고르는데요.

[오익환/83세/이산가족 : "(고향이) 황해도 옹진인데요. 거긴 무척 추워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그래서 겨울용품 주로 사려고요."]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동생을 위해 하나둘 사 모은 선물이 어느새 가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가방에 안 들어가겠어요. (네, 가방을 큰 거로 바꿔야. 꼭 좀 전해 줬으면 좋겠는데...)"]

건네지 못한 선물 꾸러미는 세월의 흔적만 켜켜이 쌓여 가는데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생각하면 동생을 향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갑니다.

[오익환/83세/이산가족 : "우린 이념 정치 이런 거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무조건 난 북한하고 대화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돼서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이산가족의 생존자 67%가 80세 이상의 고령층인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을 위해서 4월 6일부터 남북이산가족 실태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실태조사는 5년마다 진행되는데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방문 또는 전화통화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실태조사 참여가 가능한데, 올해 10월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병옥/통일부 이산가족과 사무관 :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이산가족 교류 수요를 정밀하게 파악하여, 더욱 실효적인 이산가족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입니다."]

냉전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남북한 정상이 손을 맞잡는 모습은 모든 이산가족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이산가족들의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만나서 손이라도 잡고 싶은 평생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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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일로 미래로] 남북 정상 합의했지만…기약 없는 ‘이산 상봉’
    • 입력 2021-05-01 08:01:15
    • 수정2021-05-01 08:3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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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3년 전 남북한 정상은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접근해 해결하겠다고 약속했죠.

네, 그런데 판문점 선언 이후 딱 한 차례 이산가족 상봉이 이뤄졌을 뿐 합의 정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최효은 리포터, 이산가족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취재하고 왔죠?

[답변]

네, 다들 백발이 성성한 고령의 어르신들이었는데요.

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앵커]

그런데 정부가 이산가족 실태 조사를 하고 있다고요?

[답변]

네, 현재 이산가족의 현황을 파악하기 위한 조사가 진행 중인데요.

5년을 주기로 실태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소년이 노인이 되기까지 70년 동안 기약 없는 만남을 기다려 온 이산가족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리포트]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이 우두커니 한강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황해도 벽성군 출신인 고우균 할아버지는 고향이 그리울 때면 항상 이곳을 찾는데요.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옛날엔 황해도에서 배가 이리로 와서 마포까지 걸어 다녔거든. 배를 타고 가면 황해도까지 간다고."]

인민군 징집을 피해 15살에 홀로 피난길에 오른 할아버지.

가족들과 생이별을 한 뒤 평생 이산의 아픔을 안고 살아왔습니다.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열흘이면 (고향 땅에) 국군들 다 들어오고 하니까 그걸 믿고 나왔다가 영 못 들어가고 말았지."]

한강을 바라보며 향수를 달래고 온 할아버지가 영업 준비를 합니다.

50년째 같은 자리에서 운영해 온 잡곡 가게인데요.

["아버지 저 왔어요. (그래 왔니.) 벌써 다 열어 놓으셨어. (그래. 일찍 왔구나.)"]

환갑이 다 된 아들이 든든하게 옆을 지키고 있지만, 북에 두고 온 동생들을 평생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우균/85세/이산가족 : "아무 생각 않고 집 생각만 고향 생각만 하고 이북에서 나왔다 하면 붙잡고 울기만 하고 그랬어요. 동생이 82살 되고 막냇동생이 79살 됐으니까 난 내 동생 살아 있으면 보고 싶죠."]

아버지의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아들은 가슴이 아려옵니다.

[고종순/고우균 씨 아들 : "명절 때는 온 가족이 많이 모이잖아요. 우린 가족이 없었어요. 아버지 혼자니까. 아버지 전망대 가서 북의 고향 보면서 가끔가다 눈물 흘리시고 그때가 제일 안타까웠던 거 같아요."]

아들과 마주 앉은 고우균 할아버지가 무언가를 꺼내듭니다.

북녘에 남아 있는 가족과 고향 정보가 담긴 이산가족상봉 신청서인데요.

["이거 내 고향 주소. 부모형제들 다 내가 적어 놓은. 이산가족 찾는다고 이북오도청에 써냈거든. 내가 세상을 뜨더라도 이거 네가 가지고 있다가 혹시라도 통일되면 가서 이걸 가지고 찾아. (이왕이면 아버지랑 나랑 같이 가자.)"]

[고종순/고우균 씨 아들 : "이건 아버지가 안 보여줬어요. 아버님 형제분이라든가 가족들 뵀으면 좋겠어요. 아버지 한을 한번 풀었으면 좋겠습니다."]

4.27 판문점 선언 이후 이산가족들은 곧 가족들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었습니다.

하지만 3년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한 채 이산가족들은 기약 없이 계속해서 기다리는 실정입니다.

2000년 8월 시작된 남북 이산가족상봉 행사는 2018년 8월까지 모두 21차례 열렸는데요.

남북한을 합쳐 2만 604명의 이산가족들이 꿈에 그리던 혈육을 만났습니다.

["매일같이 달밤에 나가서 굳세어라 금순이를 불렀지."]

["꼭 사진을, 어머님 사진을 구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아직 만나지 못한 이산가족들이 훨씬 많은 실정인데요.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 3월까지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가 13만 3,412명으로 집계됐습니다.

신청자 가운데 8만여 명은 이미 고인이 됐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생존자 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습니다.

[양무진/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 "상봉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이 1년에 3, 4천 명씩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그런 걸 다 감안해서 북한도 정치적 접근보다는 인도주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13살에 피난을 온 오익환 할아버지.

북에 홀로 두고 온 동생을 찾고 있는데요.

죽기 전에 동생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의 끈은 절대로 놓을 수 없습니다.

유난히 추웠던 고향의 겨울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물건들을 고르는데요.

[오익환/83세/이산가족 : "(고향이) 황해도 옹진인데요. 거긴 무척 추워요, 겨울에. 눈이 많이 오고 그래서 겨울용품 주로 사려고요."]

만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동생을 위해 하나둘 사 모은 선물이 어느새 가방을 가득 채웠습니다.

["가방에 안 들어가겠어요. (네, 가방을 큰 거로 바꿔야. 꼭 좀 전해 줬으면 좋겠는데...)"]

건네지 못한 선물 꾸러미는 세월의 흔적만 켜켜이 쌓여 가는데요.

얼마 남지 않은 여생을 생각하면 동생을 향한 그리움은 더 커져만 갑니다.

[오익환/83세/이산가족 : "우린 이념 정치 이런 거 개의치 않습니다. 그냥 무조건 난 북한하고 대화해서 이산가족 (상봉이) 계속돼서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처럼 이산가족의 생존자 67%가 80세 이상의 고령층인데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을 위해서 4월 6일부터 남북이산가족 실태조사가 시작됐습니다.

정부와 대한적십자사의 이산가족 실태조사는 5년마다 진행되는데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방문 또는 전화통화로 조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실태조사 참여가 가능한데, 올해 10월까지 진행된다고 합니다.

[이병옥/통일부 이산가족과 사무관 : "실태조사 결과를 통해 이산가족 교류 수요를 정밀하게 파악하여, 더욱 실효적인 이산가족 정책이 될 수 있도록 해 나갈 것입니다."]

냉전의 상징이었던 판문점에서 남북한 정상이 손을 맞잡는 모습은 모든 이산가족의 가슴을 울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은 자꾸 흘러가고, 이산가족들의 마음도 타들어 가고 있습니다.

만나서 손이라도 잡고 싶은 평생의 소원이 하루빨리 이뤄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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