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불길 속’ 뛰쳐든 의용소방대원…할머니 구했지만 지원은 ‘옷 한 벌’
입력 2021.06.03 (14:37)
수정 2021.06.03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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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불난 집에서 잠들었던 노인이 무사히 구조됐습니다.
■ "어머니만 살았으면 됐다고 그래, 아들이"
전북 정읍시 망제동에서 난 불입니다. 사달은 지난달 28일 오전에 났습니다. 소뼈 고던 아궁이에 나무를 채워 넣고, 87살 서순이 할머니는 깜빡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아궁이에서 날아든 불씨는 서까래를 태우고 이내 천장 속 숨겨진 수십 년 된 초가 짚단마저 잡아먹었습니다. 그때부턴 불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고 합니다.
서순이 할머니가 잠들었던 방
이 방에서 할머니는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할머니도 굉장히 위험했단 걸 압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그러나 웃었습니다. 더 큰 일은 피했다는 안도감이 먼저겠지만, 은인에 대한 고마움이 섞인 웃음입니다. 할머니가 말한 은인은 의용소방대원 41살 서수길 씨입니다.
의용소방대원 서수길 씨
■ '담 넘어 불길 속으로'…수돗물 뿌려 초기 진화서수길 씨는 막 아궁이 근처 주방이 타고 있을 때, 이 불을 처음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웃 마을 주민이기도 한 그는 불을 보고 119에 신고한 뒤, 곧장 할머니 집 담을 넘었습니다. 당장 서 씨 눈에 띈 건 마당 수돗가에 늘어진 호스였다고 합니다. 그 호스를 들고 서 씨는 불길 속으로 뛰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서수길 씨는 소방관이 와서 할머니를 구할 때까지 불과 싸웠습니다. 화마가 안방을 덮치기 직전 할머니가 구조됐으니, 대단히 귀한 얼마 간의 시간을 수돗물을 뿌리며 벌어준 셈입니다. 서 씨가 그날 한 일은 1년 동안 의용소방대에서 배운 그대로였습니다.
■ '우리 동네 파수꾼' 의용소방대…처우는 열악
'소방'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 '지원' 문제를 꺼내는 건 이제 너무 뻔하지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의용소방대' 역시 열악합니다. 기본적으로 봉사에 의미를 둔 의용소방대원에겐 출동한 시간 만큼 계산해 약간의 돈이 지급됩니다. '소집 수당'이라고 하는데, 시간당 1만 원 남짓입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집 수당의 상한을 '4시간'으로 못 박기도 했습니다. 산불 현장에서 10시간을 일해도 4시간만 쳐줬던 겁니다. 최근에서야 8시간까진 인정하고, 특별재난지역에서 고생할 땐 이보다 더 수당을 지급하게끔 바뀌었습니다.
위험과 맞서 헌신하지만, 처우와 지원은 열악
그렇지만 처우나 지원이 아주 넉넉해졌다고 보긴 여전히 어렵습니다. 소집 수당은 사무실 운영비로 쓰이는 형편이고, 헬멧이나 장갑 같은 안전장비 역시 돌려쓰는 공용만 비치돼 있습니다. 의용소방대원 각자에게 지원되는 건 옷 한 벌이 다인 셈입니다.
서수길 씨는 의용소방대에 지원한 이유를 어릴 적 어려웠던 사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베풀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남을 돕는 방법을 찾은 게 '불 끄는 시민'입니다. 대부분 의용소방대원이 서 씨처럼 이런 사명감으로 동네 파수꾼이 돼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감만 강제할 순 없습니다. 전국에 의용소방대원은 9만 6천 명이 있습니다.
젊은 농부는 바람대로 사람을 도왔고, 할머니는 그가 낸 순간의 용기가 고맙습니다. 침대는 못 버린다며 할머니가 한참 철거 업자를 호통칠 때, 서 씨가 찾아왔습니다. 불났을 때와 달리 활짝 열린 대문으로 걸어 들어온 서 씨 손을 붙들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구했으니 얼마나 고마와. 안 죽고 살려고 좋은 사람을 만났어. 고맙소, 고마워." |
[연관 기사] ‘담 넘어 불길 속으로’…할머니 구한 의용소방대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9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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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취재후] ‘불길 속’ 뛰쳐든 의용소방대원…할머니 구했지만 지원은 ‘옷 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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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6-03 14:37:23
- 수정2021-06-03 14:38:30
■ "어머니만 살았으면 됐다고 그래, 아들이"
전북 정읍시 망제동에서 난 불입니다. 사달은 지난달 28일 오전에 났습니다. 소뼈 고던 아궁이에 나무를 채워 넣고, 87살 서순이 할머니는 깜빡 잠들었다고 했습니다. 아궁이에서 날아든 불씨는 서까래를 태우고 이내 천장 속 숨겨진 수십 년 된 초가 짚단마저 잡아먹었습니다. 그때부턴 불이 순식간에 덩치를 키웠다고 합니다.
이 방에서 할머니는 극적으로 구조됐습니다. 할머니도 굉장히 위험했단 걸 압니다. "조금만 늦었으면 죽었어"라고 말하는 할머니는 그러나 웃었습니다. 더 큰 일은 피했다는 안도감이 먼저겠지만, 은인에 대한 고마움이 섞인 웃음입니다. 할머니가 말한 은인은 의용소방대원 41살 서수길 씨입니다.
■ '담 넘어 불길 속으로'…수돗물 뿌려 초기 진화
서수길 씨는 막 아궁이 근처 주방이 타고 있을 때, 이 불을 처음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웃 마을 주민이기도 한 그는 불을 보고 119에 신고한 뒤, 곧장 할머니 집 담을 넘었습니다. 당장 서 씨 눈에 띈 건 마당 수돗가에 늘어진 호스였다고 합니다. 그 호스를 들고 서 씨는 불길 속으로 뛰쳐 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서수길 씨는 소방관이 와서 할머니를 구할 때까지 불과 싸웠습니다. 화마가 안방을 덮치기 직전 할머니가 구조됐으니, 대단히 귀한 얼마 간의 시간을 수돗물을 뿌리며 벌어준 셈입니다. 서 씨가 그날 한 일은 1년 동안 의용소방대에서 배운 그대로였습니다.
■ '우리 동네 파수꾼' 의용소방대…처우는 열악
'소방'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 '지원' 문제를 꺼내는 건 이제 너무 뻔하지만, 안 할 수가 없습니다. '의용소방대' 역시 열악합니다. 기본적으로 봉사에 의미를 둔 의용소방대원에겐 출동한 시간 만큼 계산해 약간의 돈이 지급됩니다. '소집 수당'이라고 하는데, 시간당 1만 원 남짓입니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소집 수당의 상한을 '4시간'으로 못 박기도 했습니다. 산불 현장에서 10시간을 일해도 4시간만 쳐줬던 겁니다. 최근에서야 8시간까진 인정하고, 특별재난지역에서 고생할 땐 이보다 더 수당을 지급하게끔 바뀌었습니다.
그렇지만 처우나 지원이 아주 넉넉해졌다고 보긴 여전히 어렵습니다. 소집 수당은 사무실 운영비로 쓰이는 형편이고, 헬멧이나 장갑 같은 안전장비 역시 돌려쓰는 공용만 비치돼 있습니다. 의용소방대원 각자에게 지원되는 건 옷 한 벌이 다인 셈입니다.
서수길 씨는 의용소방대에 지원한 이유를 어릴 적 어려웠던 사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주위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으니, 베풀고 싶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남을 돕는 방법을 찾은 게 '불 끄는 시민'입니다. 대부분 의용소방대원이 서 씨처럼 이런 사명감으로 동네 파수꾼이 돼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명감만 강제할 순 없습니다. 전국에 의용소방대원은 9만 6천 명이 있습니다.
젊은 농부는 바람대로 사람을 도왔고, 할머니는 그가 낸 순간의 용기가 고맙습니다. 침대는 못 버린다며 할머니가 한참 철거 업자를 호통칠 때, 서 씨가 찾아왔습니다. 불났을 때와 달리 활짝 열린 대문으로 걸어 들어온 서 씨 손을 붙들고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나를 어머니라고 생각하고 구했으니 얼마나 고마와. 안 죽고 살려고 좋은 사람을 만났어. 고맙소, 고마워." |
[연관 기사] ‘담 넘어 불길 속으로’…할머니 구한 의용소방대원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199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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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기자 ohh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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