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UP!] ‘맨발로 빌라 탈출’ 1년…아동학대 대책은?

입력 2021.06.08 (19:45) 수정 2021.06.08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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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해 6월 창녕의 한 빌라 4층 지붕으로 11살 여자아이가 탈출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부모의 학대를 피해 목숨을 걸고 집에서 도망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었죠.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그 뒤 1년, 위기 속에 놓인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앙상하게 마른 몸과 시꺼멓게 멍든 두 눈.

11살 A양은 맨발로 자신이 살던 4층 빌라의 지붕을 가로질러 탈출했습니다.

탈출 전 집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부모의 폭행에 시달렸습니다.

믿기 힘든 참담한 현실이 세상이 드러난 지 1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침대 옆에는 앙증맞은 인형과 작은 수족관이 놓여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풀다가 만 문제집이 펼쳐져 있습니다.

올해 12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A양의 방입니다.

구조 당시 '큰아빠'에게 가고 싶다던 바람대로, 위탁 가정의 품에서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박영현/경상남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아이들이 보통 성인이 될 때까지는 다 보호가 되고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치료의 부분도 연계해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긴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전국 각 시군구에 '학대 전담 공무원' 배치였습니다.

민간 기관이 하던 현장조사와 후속 처리를 전담시켰습니다.

이전까지는 민간에서 현장 조사를 담당 하다 보니 부모가 거부할 경우 제대로 된 조사를 못 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건 발생 1년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118곳에 공무원 290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송동호/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기관장 :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가져가면서 기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 관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실제 현장은 어떨까?

현장 조사 때 폭행이나 협박 위험에 대비해 2인 1조의 원칙이 지켜지려면, 한 시군당 최소 2명 이상의 전담 공무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18개 시군 가운데 3명 이상의 전담 공무원을 둔 시군은 창원과 진주, 김해, 양산 등 4곳에 불과합니다.

전담 공무원이 2명인 곳은 2곳, 나머지 12개 시군은 전담 공무원이 한 명에 불과합니다.

[이영실/경남도의원 : "아동학대 사건으로 (현장에) 나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폭행·협박 이런 것들이 존재해요. 그러면 그거에 대응하기 위해서 2인 1조로, 두 명이 꾸려서 나가야 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동학대의 경우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 일해야 사례 관리의 전문성이 쌓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업무와 열악한 인력 구성 탓에, 전문성은커녕 배정된 인원을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경남 2개 시군에서는 불과 8개월도 안 돼 전담 공무원이 3차례 바뀌는가 하면, 또 다른 시군에서는 공무원 2명이 같은 시기에 휴직을 신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전담 공무원 대신 겸직을 배치하는 시군도 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 "보통 인사를 하면 보통은 희망 부서, 그저 그런 부서, 가기 싫은 부서 이런 식으로 있는데, 아동학대 쪽은 아무래도 가기 싫은 부서 쪽으로 인식되어 있는..."]

지난 2월 경남경찰청 안에 신설된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입니다.

창녕 아동학대에 이어, 생후 16개월 여아가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 시도경찰청에 꾸려졌습니다.

24시간 출동 체계를 유지하면서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수사합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112로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는 395건, 한 달 평균 100건인 셈인데, 팀장을 제외한 수사 인력은 8명입니다.

넘겨받는 사건 가운데 80%가 '가정 내 학대'인데 이 경우 가해자 분리와 재발 방지 조치까지 민감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진소희/경남경찰청 아동학대 특별수사팀 경장 : "(보육시설 아동학대는) 2개월 이상의 CCTV 영상을 압수해 분석하기 때문에 수사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또 아동학대 치사사건과 같이 사회적 이슈가 집중되는 사건 발생 시에는 다수의 수사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동학대 관련 대응 인력은 늘었지만, 현장에서는 업무 과중과 전문성 부족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학대 아동의 발견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대응 전반을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광자/경상남도 아동보호정책담당 : "우선으로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동학대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도에 임기제 전문관 채용 절차를..."]

학대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 상처투성이 몸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A양.

지난 1년 동안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의상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도 키워가고 있습니다.

위기에 놓인 모든 아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더욱 촘촘하고 내실 있는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경남 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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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 UP!] ‘맨발로 빌라 탈출’ 1년…아동학대 대책은?
    • 입력 2021-06-08 19:45:18
    • 수정2021-06-08 20:03:35
    뉴스7(창원)
[앵커]

지난해 6월 창녕의 한 빌라 4층 지붕으로 11살 여자아이가 탈출한 사건이 있었는데요.

부모의 학대를 피해 목숨을 걸고 집에서 도망 나온 사실이 알려지면서 국민적 공분을 샀었죠.

이 사건은 우리 사회가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자각하게 만든 계기가 됐습니다.

그 뒤 1년, 위기 속에 놓인 우리 아이들의 삶은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앙상하게 마른 몸과 시꺼멓게 멍든 두 눈.

11살 A양은 맨발로 자신이 살던 4층 빌라의 지붕을 가로질러 탈출했습니다.

탈출 전 집에서 쇠사슬에 묶인 채, 부모의 폭행에 시달렸습니다.

믿기 힘든 참담한 현실이 세상이 드러난 지 1년,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바뀌었을까요?

침대 옆에는 앙증맞은 인형과 작은 수족관이 놓여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풀다가 만 문제집이 펼쳐져 있습니다.

올해 12살, 초등학교 5학년이 된 A양의 방입니다.

구조 당시 '큰아빠'에게 가고 싶다던 바람대로, 위탁 가정의 품에서 몸과 마음의 안정을 되찾아 가고 있습니다.

[박영현/경상남도 아동보호전문기관 팀장 : "아이들이 보통 성인이 될 때까지는 다 보호가 되고 아이들이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치료의 부분도 연계해서 적극적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자, 정부는 긴급 대책을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전국 각 시군구에 '학대 전담 공무원' 배치였습니다.

민간 기관이 하던 현장조사와 후속 처리를 전담시켰습니다.

이전까지는 민간에서 현장 조사를 담당 하다 보니 부모가 거부할 경우 제대로 된 조사를 못 한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사건 발생 1년 전국 229개 시군구 가운데 118곳에 공무원 290명이 배치되었습니다.

[송동호/경남서부아동보호전문기관 기관장 : "아동학대 현장조사 업무를 가져가면서 기존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사례 관리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그런 부분들이 좋아졌다고 생각하고..."]

실제 현장은 어떨까?

현장 조사 때 폭행이나 협박 위험에 대비해 2인 1조의 원칙이 지켜지려면, 한 시군당 최소 2명 이상의 전담 공무원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18개 시군 가운데 3명 이상의 전담 공무원을 둔 시군은 창원과 진주, 김해, 양산 등 4곳에 불과합니다.

전담 공무원이 2명인 곳은 2곳, 나머지 12개 시군은 전담 공무원이 한 명에 불과합니다.

[이영실/경남도의원 : "아동학대 사건으로 (현장에) 나가는 거잖아요. 그러면 폭행·협박 이런 것들이 존재해요. 그러면 그거에 대응하기 위해서 2인 1조로, 두 명이 꾸려서 나가야 한다 라고 얘기를 하고 있는데..."]

아동학대의 경우 최소 3년에서 5년 정도 일해야 사례 관리의 전문성이 쌓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업무와 열악한 인력 구성 탓에, 전문성은커녕 배정된 인원을 유지하기도 벅찹니다.

경남 2개 시군에서는 불과 8개월도 안 돼 전담 공무원이 3차례 바뀌는가 하면, 또 다른 시군에서는 공무원 2명이 같은 시기에 휴직을 신청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고육지책으로, 전담 공무원 대신 겸직을 배치하는 시군도 늘고 있습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 "보통 인사를 하면 보통은 희망 부서, 그저 그런 부서, 가기 싫은 부서 이런 식으로 있는데, 아동학대 쪽은 아무래도 가기 싫은 부서 쪽으로 인식되어 있는..."]

지난 2월 경남경찰청 안에 신설된 아동학대 특별수사팀입니다.

창녕 아동학대에 이어, 생후 16개월 여아가 학대로 숨진 이른바 '정인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전국 시도경찰청에 꾸려졌습니다.

24시간 출동 체계를 유지하면서 아동학대 사건을 직접 수사합니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112로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는 395건, 한 달 평균 100건인 셈인데, 팀장을 제외한 수사 인력은 8명입니다.

넘겨받는 사건 가운데 80%가 '가정 내 학대'인데 이 경우 가해자 분리와 재발 방지 조치까지 민감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진소희/경남경찰청 아동학대 특별수사팀 경장 : "(보육시설 아동학대는) 2개월 이상의 CCTV 영상을 압수해 분석하기 때문에 수사에 장시간이 소요되고 또 아동학대 치사사건과 같이 사회적 이슈가 집중되는 사건 발생 시에는 다수의 수사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아동학대 관련 대응 인력은 늘었지만, 현장에서는 업무 과중과 전문성 부족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큽니다.

학대 아동의 발견에서부터 사후관리까지, 대응 전반을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가 없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김광자/경상남도 아동보호정책담당 : "우선으로 전문성과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동학대 컨트롤 타워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도에 임기제 전문관 채용 절차를..."]

학대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려, 상처투성이 몸으로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 A양.

지난 1년 동안 몸과 마음에 남은 상처를 치유하면서 의상 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도 키워가고 있습니다.

위기에 놓인 모든 아이가 다시 꿈을 꿀 수 있도록, 더욱 촘촘하고 내실 있는 안전망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경남 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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