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UP!] 밀양 송전탑 그 후 7년…“고통은 현재 진행형”
입력 2021.06.22 (19:37)
수정 2021.06.22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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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지난 2014년 이맘때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놓고 한전과 반대 측 주민들이 충돌했었는데요.
7년이 흐른 지금도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인근 마을 주민들의 고통,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움막을 에워싼 경찰이 칼로 천막을 찢고 철골 구조물을 잘라내 진입합니다.
쇠사슬을 두른 고령의 주민들은 오열하며 거세게 저항합니다.
["지금 바로 행정대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찰과 공무원 등 2,500여 명이 동원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현장.
반대 주민들의 거점인 움막은 11시간 만에 철거됐습니다.
그 후 7년.
밀양 곳곳에는 평균 100미터,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철탑 69기가 들어섰습니다.
철탑 인근 돼지 300여 마리를 키우던 양돈장입니다.
텅 빈 돼지우리에는 치우지 못한 돼지 폐사체와 오물, 먼지만 가득합니다.
지난 2013년 12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유한숙 씨의 양돈장입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그 어르신도 진짜로 데모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전부 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아무 보상도 없고..."]
유 씨의 죽음 뒤에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유 씨 가족과 한전은 2015년 양돈장 피해 보상을 위한 '감정 의뢰 협의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한전은 감정기관의 피해액 산정에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2018년 유 씨 가족은 한전을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소송 비용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유 씨의 부인과 아들은 지난 3월 지병으로 잇따라 숨졌습니다.
[이형찬/변호사 : "지난 소송에서 전부 패소하셨잖아요. 그 소송 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보통 부담을 하게 되는데, 그게 몇천만 원 되거든요. 2~3천 정도 되는데…."]
신고리 원전 3, 4호기를 창녕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기 위한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사업.
평온했던 마을은 2008년 공사가 시작되면서,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1월에는 고 이치우 씨가, 이듬해에는 고 유한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요한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김필선/밀양시 용회마을 주민 : "데모하자는 사람도 있고 반대도 있고 그렇다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거 안 되겠다 하더니 집 팔고 이사 가버렸어요."]
2014년 행정대집행 뒤 한전과 찬성 측 주민대표를 주축으로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졌습니다.
협의회는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에 보상금 185억 원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전체 보상금의 40%, 74억 원을 개별 가구 지급하기로 한 것!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개별 보상에 대대로 어울려 살던 마을 공동체는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은 주민과 이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생겼고 '돈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우리 마을의 아줌마들, 형님들 뭐 이런 사람들도 전부 다 나한테 말해 놓고는 결국은 다 거짓말이었어. 다 합의 본 상태에서 나한테 다 말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을의 형님들이 더 밉고 용서할 수 없고."]
2002년 고향으로 귀농해 남편과 아이 넷을 키우던 박은숙 씨.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째 송전탑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보상 대상 2,200여 가구 가운데 박 씨를 포함한 110여 가구는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돈을 앞세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한전의 사업 방식에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박은숙/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위원 : "사람이 돈이 있다 보니까 서로 싸우는 거예요. 왜 서로 왜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찬성파 반대파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거죠. 다른 동네는 어디 여행도 보내줬다던데 너희 때문에 우리는 여행도 못 갔다."]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송전탑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사찰 및 회유, 비인도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반대 대책위는 정부에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진상 조사의 핵심 내용에 '공동체 파괴'를 포함 시킬 것이냐를 두고 견해차가 컸습니다.
[김영자/밀양시 여수마을 주민 : "송전탑이 세워지고부터 마을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나눠져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하면 서로 말 안 하고. 마을 공동체라는 게 산산조각이 난 상황이거든요. 합의 본 사람들은 본 사람들끼리 이렇게 잘 다니고, 안 본 사람들은 안 본 사람들끼리 다니는 거예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고 햇수로 14년, 마을과 이웃이 삶의 전부였던 고령의 농촌 주민들에게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남긴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남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지난 2014년 이맘때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놓고 한전과 반대 측 주민들이 충돌했었는데요.
7년이 흐른 지금도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인근 마을 주민들의 고통,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움막을 에워싼 경찰이 칼로 천막을 찢고 철골 구조물을 잘라내 진입합니다.
쇠사슬을 두른 고령의 주민들은 오열하며 거세게 저항합니다.
["지금 바로 행정대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찰과 공무원 등 2,500여 명이 동원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현장.
반대 주민들의 거점인 움막은 11시간 만에 철거됐습니다.
그 후 7년.
밀양 곳곳에는 평균 100미터,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철탑 69기가 들어섰습니다.
철탑 인근 돼지 300여 마리를 키우던 양돈장입니다.
텅 빈 돼지우리에는 치우지 못한 돼지 폐사체와 오물, 먼지만 가득합니다.
지난 2013년 12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유한숙 씨의 양돈장입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그 어르신도 진짜로 데모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전부 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아무 보상도 없고..."]
유 씨의 죽음 뒤에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유 씨 가족과 한전은 2015년 양돈장 피해 보상을 위한 '감정 의뢰 협의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한전은 감정기관의 피해액 산정에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2018년 유 씨 가족은 한전을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소송 비용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유 씨의 부인과 아들은 지난 3월 지병으로 잇따라 숨졌습니다.
[이형찬/변호사 : "지난 소송에서 전부 패소하셨잖아요. 그 소송 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보통 부담을 하게 되는데, 그게 몇천만 원 되거든요. 2~3천 정도 되는데…."]
신고리 원전 3, 4호기를 창녕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기 위한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사업.
평온했던 마을은 2008년 공사가 시작되면서,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1월에는 고 이치우 씨가, 이듬해에는 고 유한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요한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김필선/밀양시 용회마을 주민 : "데모하자는 사람도 있고 반대도 있고 그렇다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거 안 되겠다 하더니 집 팔고 이사 가버렸어요."]
2014년 행정대집행 뒤 한전과 찬성 측 주민대표를 주축으로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졌습니다.
협의회는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에 보상금 185억 원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전체 보상금의 40%, 74억 원을 개별 가구 지급하기로 한 것!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개별 보상에 대대로 어울려 살던 마을 공동체는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은 주민과 이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생겼고 '돈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우리 마을의 아줌마들, 형님들 뭐 이런 사람들도 전부 다 나한테 말해 놓고는 결국은 다 거짓말이었어. 다 합의 본 상태에서 나한테 다 말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을의 형님들이 더 밉고 용서할 수 없고."]
2002년 고향으로 귀농해 남편과 아이 넷을 키우던 박은숙 씨.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째 송전탑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보상 대상 2,200여 가구 가운데 박 씨를 포함한 110여 가구는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돈을 앞세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한전의 사업 방식에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박은숙/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위원 : "사람이 돈이 있다 보니까 서로 싸우는 거예요. 왜 서로 왜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찬성파 반대파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거죠. 다른 동네는 어디 여행도 보내줬다던데 너희 때문에 우리는 여행도 못 갔다."]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송전탑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사찰 및 회유, 비인도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반대 대책위는 정부에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진상 조사의 핵심 내용에 '공동체 파괴'를 포함 시킬 것이냐를 두고 견해차가 컸습니다.
[김영자/밀양시 여수마을 주민 : "송전탑이 세워지고부터 마을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나눠져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하면 서로 말 안 하고. 마을 공동체라는 게 산산조각이 난 상황이거든요. 합의 본 사람들은 본 사람들끼리 이렇게 잘 다니고, 안 본 사람들은 안 본 사람들끼리 다니는 거예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고 햇수로 14년, 마을과 이웃이 삶의 전부였던 고령의 농촌 주민들에게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남긴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남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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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1-06-22 19:3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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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이맘때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놓고 한전과 반대 측 주민들이 충돌했었는데요.
7년이 흐른 지금도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인근 마을 주민들의 고통,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움막을 에워싼 경찰이 칼로 천막을 찢고 철골 구조물을 잘라내 진입합니다.
쇠사슬을 두른 고령의 주민들은 오열하며 거세게 저항합니다.
["지금 바로 행정대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찰과 공무원 등 2,500여 명이 동원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현장.
반대 주민들의 거점인 움막은 11시간 만에 철거됐습니다.
그 후 7년.
밀양 곳곳에는 평균 100미터,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철탑 69기가 들어섰습니다.
철탑 인근 돼지 300여 마리를 키우던 양돈장입니다.
텅 빈 돼지우리에는 치우지 못한 돼지 폐사체와 오물, 먼지만 가득합니다.
지난 2013년 12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유한숙 씨의 양돈장입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그 어르신도 진짜로 데모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전부 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아무 보상도 없고..."]
유 씨의 죽음 뒤에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유 씨 가족과 한전은 2015년 양돈장 피해 보상을 위한 '감정 의뢰 협의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한전은 감정기관의 피해액 산정에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2018년 유 씨 가족은 한전을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소송 비용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유 씨의 부인과 아들은 지난 3월 지병으로 잇따라 숨졌습니다.
[이형찬/변호사 : "지난 소송에서 전부 패소하셨잖아요. 그 소송 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보통 부담을 하게 되는데, 그게 몇천만 원 되거든요. 2~3천 정도 되는데…."]
신고리 원전 3, 4호기를 창녕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기 위한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사업.
평온했던 마을은 2008년 공사가 시작되면서,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1월에는 고 이치우 씨가, 이듬해에는 고 유한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요한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김필선/밀양시 용회마을 주민 : "데모하자는 사람도 있고 반대도 있고 그렇다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거 안 되겠다 하더니 집 팔고 이사 가버렸어요."]
2014년 행정대집행 뒤 한전과 찬성 측 주민대표를 주축으로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졌습니다.
협의회는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에 보상금 185억 원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전체 보상금의 40%, 74억 원을 개별 가구 지급하기로 한 것!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개별 보상에 대대로 어울려 살던 마을 공동체는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은 주민과 이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생겼고 '돈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우리 마을의 아줌마들, 형님들 뭐 이런 사람들도 전부 다 나한테 말해 놓고는 결국은 다 거짓말이었어. 다 합의 본 상태에서 나한테 다 말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을의 형님들이 더 밉고 용서할 수 없고."]
2002년 고향으로 귀농해 남편과 아이 넷을 키우던 박은숙 씨.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째 송전탑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보상 대상 2,200여 가구 가운데 박 씨를 포함한 110여 가구는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돈을 앞세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한전의 사업 방식에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박은숙/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위원 : "사람이 돈이 있다 보니까 서로 싸우는 거예요. 왜 서로 왜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찬성파 반대파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거죠. 다른 동네는 어디 여행도 보내줬다던데 너희 때문에 우리는 여행도 못 갔다."]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송전탑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사찰 및 회유, 비인도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반대 대책위는 정부에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진상 조사의 핵심 내용에 '공동체 파괴'를 포함 시킬 것이냐를 두고 견해차가 컸습니다.
[김영자/밀양시 여수마을 주민 : "송전탑이 세워지고부터 마을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나눠져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하면 서로 말 안 하고. 마을 공동체라는 게 산산조각이 난 상황이거든요. 합의 본 사람들은 본 사람들끼리 이렇게 잘 다니고, 안 본 사람들은 안 본 사람들끼리 다니는 거예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고 햇수로 14년, 마을과 이웃이 삶의 전부였던 고령의 농촌 주민들에게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남긴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남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지난 2014년 이맘때 밀양의 초고압 송전탑 건설을 놓고 한전과 반대 측 주민들이 충돌했었는데요.
7년이 흐른 지금도 주민들은 송전탑 건설 이전의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인근 마을 주민들의 고통, 경남 업그레이드가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움막을 에워싼 경찰이 칼로 천막을 찢고 철골 구조물을 잘라내 진입합니다.
쇠사슬을 두른 고령의 주민들은 오열하며 거세게 저항합니다.
["지금 바로 행정대집행을 시작하겠습니다."]
경찰과 공무원 등 2,500여 명이 동원된 밀양 송전탑 행정대집행 현장.
반대 주민들의 거점인 움막은 11시간 만에 철거됐습니다.
그 후 7년.
밀양 곳곳에는 평균 100미터, 아파트 40층 높이 송전철탑 69기가 들어섰습니다.
철탑 인근 돼지 300여 마리를 키우던 양돈장입니다.
텅 빈 돼지우리에는 치우지 못한 돼지 폐사체와 오물, 먼지만 가득합니다.
지난 2013년 12월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며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고 유한숙 씨의 양돈장입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그 어르신도 진짜로 데모 많이 하고 그랬는데 전부 다 그렇게 억울하게 죽어도 아무 보상도 없고..."]
유 씨의 죽음 뒤에도 가족들의 고통은 계속됐습니다.
유 씨 가족과 한전은 2015년 양돈장 피해 보상을 위한 '감정 의뢰 협의서'를 작성합니다.
하지만 한전은 감정기관의 피해액 산정에 객관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보상을 거부했습니다.
2018년 유 씨 가족은 한전을 상대로 '약정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고 소송 비용까지 떠안아야 했습니다.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던 유 씨의 부인과 아들은 지난 3월 지병으로 잇따라 숨졌습니다.
[이형찬/변호사 : "지난 소송에서 전부 패소하셨잖아요. 그 소송 비용을 패소한 측에서 보통 부담을 하게 되는데, 그게 몇천만 원 되거든요. 2~3천 정도 되는데…."]
신고리 원전 3, 4호기를 창녕 북경남 변전소로 보내기 위한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선로 사업.
평온했던 마을은 2008년 공사가 시작되면서, 충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2012년 1월에는 고 이치우 씨가, 이듬해에는 고 유한숙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동요한 마을 주민들은 하나 둘씩 고향을 떠났습니다.
[김필선/밀양시 용회마을 주민 : "데모하자는 사람도 있고 반대도 있고 그렇다 아닙니까? 그러니까 이거 안 되겠다 하더니 집 팔고 이사 가버렸어요."]
2014년 행정대집행 뒤 한전과 찬성 측 주민대표를 주축으로 '갈등 해소 특별지원협의회'가 꾸려졌습니다.
협의회는 송전탑이 지나는 마을에 보상금 185억 원 지급을 결정했습니다.
문제는 전체 보상금의 40%, 74억 원을 개별 가구 지급하기로 한 것!
송전탑 건설 과정에서 전례를 찾기 힘든 개별 보상에 대대로 어울려 살던 마을 공동체는 분열하기 시작했습니다.
보상금을 받은 주민과 이를 거부하는 주민들 사이에 앙금이 생겼고 '돈이 원수'라는 말까지 나돌았습니다.
[김영순/밀양시 고정마을 주민 : "우리 마을의 아줌마들, 형님들 뭐 이런 사람들도 전부 다 나한테 말해 놓고는 결국은 다 거짓말이었어. 다 합의 본 상태에서 나한테 다 말한 거야. 그래서 나는 그런 마을의 형님들이 더 밉고 용서할 수 없고."]
2002년 고향으로 귀농해 남편과 아이 넷을 키우던 박은숙 씨.
2012년부터 햇수로 10년째 송전탑 반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체 보상 대상 2,200여 가구 가운데 박 씨를 포함한 110여 가구는 여전히 보상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돈을 앞세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한전의 사업 방식에 수긍할 수가 없습니다.
[박은숙/밀양 송전탑 반대대책위 상임위원 : "사람이 돈이 있다 보니까 서로 싸우는 거예요. 왜 서로 왜 싸우는지 모르겠는데 우리는 찬성파 반대파 이렇게 갈라져서 서로 싸우는 거죠. 다른 동네는 어디 여행도 보내줬다던데 너희 때문에 우리는 여행도 못 갔다."]
지난 2019년 경찰청 인권침해 진상조사위는 송전탑 행정대집행 과정에서 반대 주민에 대한 인권침해와 사찰 및 회유, 비인도적 조치가 있었다는 사실을 공식 인정했습니다.
이를 근거로 반대 대책위는 정부에 진상조사단 구성을 요구했지만, 협상은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진상 조사의 핵심 내용에 '공동체 파괴'를 포함 시킬 것이냐를 두고 견해차가 컸습니다.
[김영자/밀양시 여수마을 주민 : "송전탑이 세워지고부터 마을에 찬성하는 사람, 반대하는 사람이 나눠져서 마을 분위기가 예전과 비교하면 서로 말 안 하고. 마을 공동체라는 게 산산조각이 난 상황이거든요. 합의 본 사람들은 본 사람들끼리 이렇게 잘 다니고, 안 본 사람들은 안 본 사람들끼리 다니는 거예요."]
밀양 송전탑 공사가 시작되고 햇수로 14년, 마을과 이웃이 삶의 전부였던 고령의 농촌 주민들에게 76만 5천 볼트 초고압 송전탑이 남긴 고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입니다.
경남업그레이드, 김소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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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기자 kantapi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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