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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K] 변산 ‘대항리 패총’…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조개무지 마을
입력 2021.07.05 (19:50) 수정 2021.07.05 (20:14) 뉴스7(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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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벌써 이렇게 많이 캤어요? (아, 조개가 많아서 많이 캤어.) (웃음) 그래요? 많기는 많네.”]

바닷물이 빠져나간 서해 변산 대항리 갯벌.

몇몇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바구니 가득 동죽이며 바지락, 맛 등 각종 패류를 잡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산란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바지락이 주로 많이 나오고, 동죽도 올봄에 캔 것이 한 7천만 원 가까이 캤습니다. 그래가지고 올봄에는 수입이 짭짤했습니다.”]

이 곳 조개는 유난히 조갯살이 풍부하고 향이 좋아 부근의 대항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조개잡이로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물때에 맞춰 서너 시간만 캐도 하루 일당벌이로는 충분하기에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지금도 갯벌에 나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순덕/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때부터 이걸로 캐서 생계를 많이 유지를 했지. 애들도 가르치고…. 그런데 우리도 늙어서 더는 못하겠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인해 씨가 말랐다는 백합이지만 현재는 종패를 뿌려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수확도 많아졌습니다.

새만금전시관에서 변산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변산 마실길 첫 번째 구간에 위치한 소박한 규모의 대항마을.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23가구가 얼기설기 놓여 바다와 마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는 해안이나 강변에 살던 선사시대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 굴 등의 껍데기가 쌓여 무덤처럼 이루어진 조개무덤 유적이 있습니다.

‘대항리 패총’이라고 이름 붙인 이 조개무덤을 통해, 8천여 년 전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최기열/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이장 : “대항리 패총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조개를 먹고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그런 자립니다.”]

1967년, 전북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이 패총의 크기는 사방 10m 내외로 두께는 60cm나 되는 방대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빗살무늬 토기 파편과 뗀석기 등도 함께 발견되면서 고고학적 자료로써 활용 가치가 있다고 여겨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된 조개무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잔디로 덮어 놓은데다, 만조 시에는 가까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놓은 상탭니다.

마을 곳곳에 버려진 조개껍데기 더미를 보면,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선사시대 때나 지금의 생활 방식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도 이 패총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지금까지도 이 동네 사람들은 조개를 위주로 해가지고 캐서 먹고, 버리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더러는 비탈진 자투리땅을 활용해 밭농사를 겸하고 있는 반농반어 형태의 전형적인 농민적 어업을 하고 있는 마을.

[윤경희/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풍족하지는 않았고 힘들 때도 있었고, 괜찮을 때도 있었고…. 사는 것이 어떤 때는, 농산물 해도 파 같은 것도 값이 없으면 갈아 엎어버려. 갈아 엎어버리면 그 해는 힘이 들고….”]

바닷바람에 맞부딪히며 살다 보니 힘든 날도, 고된 날도 많지만 마을 사람들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바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여기 이 해변가에는 오염이 안 되고, 경치가 좋고, 모래가 좋고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무척 주말 되면 많이 찾습니다.”]

바다와 갯벌을 벗삼아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지내왔던 저 먼 시대의 삶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곳.

조갯살처럼 넉넉한 사람들의 인심과 아름다운 서해안 경관이 어우러져 마을을 더욱 살 맛 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 [14K] 변산 ‘대항리 패총’…선사시대 때부터 이어져온 조개무지 마을
    • 입력 2021-07-05 19:50:22
    • 수정2021-07-05 20:14:32
    뉴스7(전주)
[“아, 벌써 이렇게 많이 캤어요? (아, 조개가 많아서 많이 캤어.) (웃음) 그래요? 많기는 많네.”]

바닷물이 빠져나간 서해 변산 대항리 갯벌.

몇몇 어르신들이 모여앉아 바구니 가득 동죽이며 바지락, 맛 등 각종 패류를 잡고 있습니다.

이제 곧 산란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면 작업을 중단해야 하기 때문에 어르신들의 손놀림이 분주합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바지락이 주로 많이 나오고, 동죽도 올봄에 캔 것이 한 7천만 원 가까이 캤습니다. 그래가지고 올봄에는 수입이 짭짤했습니다.”]

이 곳 조개는 유난히 조갯살이 풍부하고 향이 좋아 부근의 대항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조개잡이로 생계를 유지해왔습니다.

물때에 맞춰 서너 시간만 캐도 하루 일당벌이로는 충분하기에 몸을 움직일 수만 있으면 지금도 갯벌에 나오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이순덕/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옛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때부터 이걸로 캐서 생계를 많이 유지를 했지. 애들도 가르치고…. 그런데 우리도 늙어서 더는 못하겠네.”]

새만금 방조제 공사로 인해 씨가 말랐다는 백합이지만 현재는 종패를 뿌려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수확도 많아졌습니다.

새만금전시관에서 변산해수욕장까지 이어지는 변산 마실길 첫 번째 구간에 위치한 소박한 규모의 대항마을.

아름다운 해변을 따라 23가구가 얼기설기 놓여 바다와 마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고 있습니다.

마을 안쪽 깊숙한 곳에는 해안이나 강변에 살던 선사시대인들이 먹고 버린 조개, 굴 등의 껍데기가 쌓여 무덤처럼 이루어진 조개무덤 유적이 있습니다.

‘대항리 패총’이라고 이름 붙인 이 조개무덤을 통해, 8천여 년 전 이 지역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 방식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습니다.

[최기열/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이장 : “대항리 패총은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조개를 먹고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그런 자립니다.”]

1967년, 전북지역에서는 최초로 확인된 이 패총의 크기는 사방 10m 내외로 두께는 60cm나 되는 방대한 크기를 자랑합니다.

빗살무늬 토기 파편과 뗀석기 등도 함께 발견되면서 고고학적 자료로써 활용 가치가 있다고 여겨 1981년 전라북도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된 조개무지.

지금은 보존을 위해 잔디로 덮어 놓은데다, 만조 시에는 가까운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쌓아놓은 상탭니다.

마을 곳곳에 버려진 조개껍데기 더미를 보면, 까마득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선사시대 때나 지금의 생활 방식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 것도 이 패총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지금까지도 이 동네 사람들은 조개를 위주로 해가지고 캐서 먹고, 버리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더러는 비탈진 자투리땅을 활용해 밭농사를 겸하고 있는 반농반어 형태의 전형적인 농민적 어업을 하고 있는 마을.

[윤경희/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풍족하지는 않았고 힘들 때도 있었고, 괜찮을 때도 있었고…. 사는 것이 어떤 때는, 농산물 해도 파 같은 것도 값이 없으면 갈아 엎어버려. 갈아 엎어버리면 그 해는 힘이 들고….”]

바닷바람에 맞부딪히며 살다 보니 힘든 날도, 고된 날도 많지만 마을 사람들은 매일 봐도 질리지 않는다는 바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하한수/부안군 변산면 대항마을 : “여기 이 해변가에는 오염이 안 되고, 경치가 좋고, 모래가 좋고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무척 주말 되면 많이 찾습니다.”]

바다와 갯벌을 벗삼아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가 지내왔던 저 먼 시대의 삶의 방식이 지금까지 이어져온 곳.

조갯살처럼 넉넉한 사람들의 인심과 아름다운 서해안 경관이 어우러져 마을을 더욱 살 맛 나게 만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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