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사기공식]② ‘본인’과 ‘고객님’…당신을 속이는 첫 번째 단어

입력 2021.07.07 (08:00) 수정 2021.07.08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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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을 속이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KBS는 그들의 말을 분석했습니다.

먼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보이스피싱 지킴이'에 올라와 있는 대화 5백여 건을 수집했습니다. 수년 전에 올라온 3백여 건은 음성 파일만 존재해 직접 대화 내용을 글자로 옮겼는데요. 120만 자, 200자 원고지로 6천 매, 책 열 권 분량을 모두 들여다봤습니다. 이 가운데 취업 사기, 납치 사기, 그리고 중복 게시물 등 39개 파일은 분석 대상에서 최종 제외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유형은 이른바 "김민수 검사입니다"로 알려진 '기관사칭'과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은행 직원을 사칭하는 '대출사기'로 나눴습니다. 사기범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분류해낼 수 있었는데요.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겁박하는 식의 '기관사칭'은 '본인'이라는 단어를, 은행 직원인 것처럼 속이는 ‘대출사기’는 '고객님'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유형별로 그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피해자를 '본인'으로 지칭...감쪽 같은 검사 흉내로 '밀당'


검사나 경찰을 사칭하는 '기관사칭'으로 분류한 분석 대상 332개 대화 파일을 바탕으로 명사를 살펴봤습니다. 두 글자 이상 명사를 대상으로 했을 때 보이스피싱사기범들이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본인'이었습니다. 검찰 흉내를 내면서 대화 상대방인 피해자를 본인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측에서 본인에게 연락드린 전반적인 이유가요. 본인께서 대가성의 돈을 받고 이 두 통장을 판매하신 계좌양도 혐의의 가해자이신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본인도 모르게 명의를 도용을 당하고 본인 모르게 통장까지 개설당한 금융범죄 피해자신지."

다음으로 '통장'·'말씀'·'사건'·'계좌' 순으로 많이 사용됐습니다. 금융 용어가 연이어 등장한 것은 사기범들이 명의 도용 등을 수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화 통화 첫머리에서는 사기범도 예의를 갖춰 말합니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 명의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개설되어 범죄로 사용된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어서 '조사'·'피해자'·'명의'·'불법'·'진술' 등 특히 수사 용어들이 집중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점차 전문 용어를 써가며 피해자가 잘못을 저지른 양 분위기를 몰아가 불안해하도록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 동부지검 원민영 검사는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와 수사 용어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진짜로 믿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반인들이 수사기관의 처벌을 받는 경우를 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바로 겁을 먹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라는 대로 하게 되는 심리적인 요인을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친절하게 '고객님'..."대출‧처리‧심사‧가능해요"


대출사기형도 분석해봤는데요. 기관사칭에서 사용된 어휘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돈을 낮은 이자로 빌려준다는 대출사기 대화 파일 158개를 모두 확인해봤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두 글자 이상 명사는 '고객님'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그럼 얼마까지 가능하신데요?... 왜 무리라는 거죠? 제가 봤을 때는 고객님한테는 이득인데?”

이어 '대출'·'처리'·'진행'·'상환'·'자금' 등 사기범들이 많이 쓰는 표현만 보면 은행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피해자들에게 대출이 가능하다는 식의 '희망 고문'을 할 수 있는 단어들도 집중적으로 사용됐습니다. '확인'(11위)·'가능'(12위)·'심사'(19위) 등 피해자에게 대출이 될지 알아보겠다는 취지의 말을 할 때 해당 단어들이 쓰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금융기관 가운데서는 '농협'이 기관사칭(294번 언급, 18위)에 이어 대출 사기에서도 다른 은행에 비해 많이 언급됐습니다. 대출 사기에서는 76번 언급돼 46위를 차지했는데요. 농협은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지점이 널리 분포되어 있어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마찬가지로 고객 수가 많은 시중은행 가운데 하나인 국민은행도 대출 사기에서 49번 언급됐습니다.

한 글자인 '돈'은 대출 사기에서 59차례 나왔습니다. 순위권으로 따지면 70위권이었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를 속였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만 '현금을 찾아야 한다, 이체해야 한다'는 식으로 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결정적인 타이밍을 찾기 위해 돈 얘기를 늦추는 것입니다.

■기관사칭·대출사기 혼합형 보이스피싱도 늘고 있어

최근 들어서는 기관사칭과 대출사기의 혼합형도 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며 접근을 한 뒤, 대출 상담이 진행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라고 말하거나 규정을 위반해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생겼다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겁니다.


KBS가 만나본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처음에는 낮은 금리의 대출이 가능하다며 접근을 했지만, 중간에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생겼다며 불안감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조처해야 한다, 돈을 빼내서 안전한 곳에 보내야 한다'며 얼을 빼놓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결국 1억이 넘는 현금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줬다고 밝혔습니다. 대출받는 줄 알았던 피해자에게 갑자기 '법규 위반이다, 금감원에서 제재를 가할 것이다, 계좌가 정지될 것이다'며 연이어 겁을 주고 피해자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 뒤 돈을 빼내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조합해 말을 하기에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걸까요. 다음 기사에서는 사기범의 대화 맥락을 자세히 분석해 보도하겠습니다.

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cs_noV2xA

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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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의 사기공식]② ‘본인’과 ‘고객님’…당신을 속이는 첫 번째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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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1-07-08 08: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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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피해자들을 속이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해 KBS는 그들의 말을 분석했습니다.

먼저 지난 5월 말 기준으로, 금융감독원 홈페이지 '보이스피싱 지킴이'에 올라와 있는 대화 5백여 건을 수집했습니다. 수년 전에 올라온 3백여 건은 음성 파일만 존재해 직접 대화 내용을 글자로 옮겼는데요. 120만 자, 200자 원고지로 6천 매, 책 열 권 분량을 모두 들여다봤습니다. 이 가운데 취업 사기, 납치 사기, 그리고 중복 게시물 등 39개 파일은 분석 대상에서 최종 제외했습니다.

보이스피싱 유형은 이른바 "김민수 검사입니다"로 알려진 '기관사칭'과 저금리 대출을 미끼로 은행 직원을 사칭하는 '대출사기'로 나눴습니다. 사기범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분류해낼 수 있었는데요.


수사기관을 사칭해 피해자를 겁박하는 식의 '기관사칭'은 '본인'이라는 단어를, 은행 직원인 것처럼 속이는 ‘대출사기’는 '고객님'이라는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습니다. 유형별로 그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피해자를 '본인'으로 지칭...감쪽 같은 검사 흉내로 '밀당'


검사나 경찰을 사칭하는 '기관사칭'으로 분류한 분석 대상 332개 대화 파일을 바탕으로 명사를 살펴봤습니다. 두 글자 이상 명사를 대상으로 했을 때 보이스피싱사기범들이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본인'이었습니다. 검찰 흉내를 내면서 대화 상대방인 피해자를 본인으로 지칭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저희 측에서 본인에게 연락드린 전반적인 이유가요. 본인께서 대가성의 돈을 받고 이 두 통장을 판매하신 계좌양도 혐의의 가해자이신지, 그게 아니라면 본인본인도 모르게 명의를 도용을 당하고 본인 모르게 통장까지 개설당한 금융범죄 피해자신지."

다음으로 '통장'·'말씀'·'사건'·'계좌' 순으로 많이 사용됐습니다. 금융 용어가 연이어 등장한 것은 사기범들이 명의 도용 등을 수사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전화 통화 첫머리에서는 사기범도 예의를 갖춰 말합니다. 처음에는 친절하게 전화를 건 이유를 설명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본인 명의 통장이 대포 통장으로 개설되어 범죄로 사용된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이어서 '조사'·'피해자'·'명의'·'불법'·'진술' 등 특히 수사 용어들이 집중적으로 사용됐습니다. 점차 전문 용어를 써가며 피해자가 잘못을 저지른 양 분위기를 몰아가 불안해하도록 대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서울 동부지검 원민영 검사는 "상당히 전문적인 용어와 수사 용어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진짜로 믿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일반인들이 수사기관의 처벌을 받는 경우를 접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런 얘기를 듣는 순간 바로 겁을 먹고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하라는 대로 하게 되는 심리적인 요인을 많이 이용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친절하게 '고객님'..."대출‧처리‧심사‧가능해요"


대출사기형도 분석해봤는데요. 기관사칭에서 사용된 어휘와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돈을 낮은 이자로 빌려준다는 대출사기 대화 파일 158개를 모두 확인해봤습니다. 가장 많이 사용된 두 글자 이상 명사는 '고객님'이었습니다.

“자 그러면 고객님, 고객님께서는 그럼 얼마까지 가능하신데요?... 왜 무리라는 거죠? 제가 봤을 때는 고객님한테는 이득인데?”

이어 '대출'·'처리'·'진행'·'상환'·'자금' 등 사기범들이 많이 쓰는 표현만 보면 은행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피해자들에게 대출이 가능하다는 식의 '희망 고문'을 할 수 있는 단어들도 집중적으로 사용됐습니다. '확인'(11위)·'가능'(12위)·'심사'(19위) 등 피해자에게 대출이 될지 알아보겠다는 취지의 말을 할 때 해당 단어들이 쓰인 것으로 분석됩니다.

금융기관 가운데서는 '농협'이 기관사칭(294번 언급, 18위)에 이어 대출 사기에서도 다른 은행에 비해 많이 언급됐습니다. 대출 사기에서는 76번 언급돼 46위를 차지했는데요. 농협은 도시뿐만 아니라 지방 소도시까지 지점이 널리 분포되어 있어 다른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언급된 것으로 분석됩니다. 마찬가지로 고객 수가 많은 시중은행 가운데 하나인 국민은행도 대출 사기에서 49번 언급됐습니다.

한 글자인 '돈'은 대출 사기에서 59차례 나왔습니다. 순위권으로 따지면 70위권이었습니다. 사기범들은 피해자를 속였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만 '현금을 찾아야 한다, 이체해야 한다'는 식으로 돈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결정적인 타이밍을 찾기 위해 돈 얘기를 늦추는 것입니다.

■기관사칭·대출사기 혼합형 보이스피싱도 늘고 있어

최근 들어서는 기관사칭과 대출사기의 혼합형도 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줄 수 있다며 접근을 한 뒤, 대출 상담이 진행되는 척하다가 어느 순간 전자금융거래법 위반이라고 말하거나 규정을 위반해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생겼다며 불안감을 조성하는 겁니다.


KBS가 만나본 피해자는 "보이스피싱 사기범들이 처음에는 낮은 금리의 대출이 가능하다며 접근을 했지만, 중간에 갑자기 신용등급이 떨어지게 생겼다며 불안감을 키웠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용에 문제가 생겼다, 더 큰 문제가 생기기 전에 조처해야 한다, 돈을 빼내서 안전한 곳에 보내야 한다'며 얼을 빼놓는 것입니다.

피해자는 결국 1억이 넘는 현금을 보이스피싱 조직에 넘겨줬다고 밝혔습니다. 대출받는 줄 알았던 피해자에게 갑자기 '법규 위반이다, 금감원에서 제재를 가할 것이다, 계좌가 정지될 것이다'며 연이어 겁을 주고 피해자를 공황 상태에 빠뜨린 뒤 돈을 빼내는 유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단어들을 어떻게 조합해 말을 하기에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발생하는 걸까요. 다음 기사에서는 사기범의 대화 맥락을 자세히 분석해 보도하겠습니다.

이미지 클릭(일부 포털사이트 제한), 또는 링크 주소(https://news.kbs.co.kr/special/voicephishing/index.html)를 주소창에 입력하면, 인터랙티브 ‘사기범 대화 120만 자 분석, 그들의 사기공식’ 페이지로 이동합니다.
보이스피싱과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KBS 1TV 시사기획 창 <그들의 사기공식>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youtu.be/e-cs_noV2xA

데이터 수집·분석: 윤지희,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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