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기금이 한국에 보낸 ‘경고장’…투자 리스크 ‘석탄’

입력 2021.08.05 (06:00) 수정 2021.08.05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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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가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는 단호했습니다.

박 이사가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에게 보낸 공식 서한은 부드러웠지만, 분명한 '경고'였습니다.

박유경 이사가 속한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은 네덜란드의 연기금 운용 전문기관으로, 연금자산의 규모가 850조 원인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입니다.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이 한국 기업들에 투자한 금액은 약 10조 원입니다. APG가 투자한 주요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LG화학, 삼성SDI, 네이버 등입니다.

박 이사는 왜 한국 정부에 경고성 서한을 보낸 걸까요?

박유경 APG 총괄이사의 공개 서한박유경 APG 총괄이사의 공개 서한

■ 조용한 경고장, 이유는?

바로 석탄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입니다. '민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문제와 투자자의 우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박 이사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이사의 경고, 이유는 이렇습니다. 신규 석탄발전소가 그간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해결 노력에 역행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로서 '투자 리스크 요인'이라고도 판단했습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자 온실가스를 많이 줄여야 하는 시기에 탄소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돌린다는 게 가당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2030년 이후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경제성이 떨어지는 '애물단지'가 될 거라고도 경고했습니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께 / 윤순진 민간위원장께

"2021년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아직도 신규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차마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기후위기 상황 속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한국경제에,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사업자뿐 아니라 다른 산업 주체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줄 겁니다. 한국계 글로벌 기업에 대규모 투자하고 있는 APG와 같은 기관에게 이는 큰 리스크 요인입니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석탄발전사업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강력하고 명확한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중략) 지금 이 사업에 대한 중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유경 배상

현재 우리나라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총 7곳입니다.

강원도에 삼척 화력발전소 1, 2호와 강릉 안인 화력발전소 1, 2호. 경남 고성 하이화력발전소 1, 2호와 충남 서천 신서천화력발전소 등입니다. 이중 신서천화력발전소는 최근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7곳이 모두 화력발전을 시작하면 한 해에 3,850만 톤의 탄소 배출이 예상됩니다.


■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글로벌 기관들의 공동 서한도 계획"

APG는 오래전부터 석탄발전 등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해 투자를 줄여오고 있었습니다. 석탄발전소에 투자하면 투자한 돈을 날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APG는 한국전력 주식을 2020년 4분기에 모두 팔았습니다. 한국전력이 베트남 등에 해외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세웠기 때문입니다.

[연관기사] [탄소중립]① “석탄은 말이 안 되는 투자”…해외 연기금에 물었더니 (2020.12.0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66841

공개 편지를 보고 박유경 이사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정부에 편지를 쓴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박유경 이사는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낸 건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민간 석탄화력발전의 인허가 등도 결국 정부가 정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탄소중립위원회의 업무라고 말했습니다.

박 이사는 "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계에 '(정부가) 그냥 넘어가는구나'라고 확실한 신호를 주게 된다."라고 염려했습니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하게 되면 한국에 투자하기 어려워지는 배경도 설명했습니다. APG는 2015년 대비 2025년까지 주식 등 투자자산의 탄소배출량을 40% 줄여야 한다는 내부 방침이 있습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2020년 12월 인터뷰 화면)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2020년 12월 인터뷰 화면)

박유경 /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신규 석탄발전을 하면 스코프 2(간접 온실가스 배출)가 줄어들지 않아요. 한국에 투자하면서 탄소 배출량을 생각해야 합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지역(국가)은 관련 주식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APG가 서한을 보냈지만, 잘 안되면 다른 글로벌 투자 기관과 공동으로 서한을 보낼 예정입니다. 석탄발전에 걱정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워낙 많아서 행동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공동 서한이) 넥스트 스텝입니다."



■ 탄소 중립, '선택'아닌 '필수'…우리의 선택은?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유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석탄화력발전 등 탄소 배출이 줄지 않으면 아예 투자에서 빼버리겠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의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구가 공개적으로 벌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입니다.

한국 정부는 2050년에 탄소 순 배출 제로인 '탄소 중립'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강화된 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적어도 올해 11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인데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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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08-05 06:00:16
    • 수정2021-08-05 06:29:24
    취재K

"한국 정부가 진지하고 무겁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는 단호했습니다.

박 이사가 김부겸 국무총리와 윤순진 탄소중립위원회 민간위원장에게 보낸 공식 서한은 부드러웠지만, 분명한 '경고'였습니다.

박유경 이사가 속한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은 네덜란드의 연기금 운용 전문기관으로, 연금자산의 규모가 850조 원인 세계 3대 연기금 운용사입니다.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이 한국 기업들에 투자한 금액은 약 10조 원입니다. APG가 투자한 주요 한국 기업은 삼성전자, SK 하이닉스, LG화학, 삼성SDI, 네이버 등입니다.

박 이사는 왜 한국 정부에 경고성 서한을 보낸 걸까요?

박유경 APG 총괄이사의 공개 서한
■ 조용한 경고장, 이유는?

바로 석탄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우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입니다. '민자 석탄화력발전소 건설문제와 투자자의 우려'라는 제목의 편지에서 박 이사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을 당장 그만둬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이사의 경고, 이유는 이렇습니다. 신규 석탄발전소가 그간 한국 정부의 기후위기 해결 노력에 역행한다는 것입니다. 투자자로서 '투자 리스크 요인'이라고도 판단했습니다.

기후위기를 해결하고자 온실가스를 많이 줄여야 하는 시기에 탄소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소를 새로 돌린다는 게 가당치 않다는 의미입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2030년 이후에는 석탄화력발전소가 경제성이 떨어지는 '애물단지'가 될 거라고도 경고했습니다.

편지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김부겸 국무총리께 / 윤순진 민간위원장께

"2021년에 석탄화력발전소가 아직도 신규로 들어서고 있다는 것은 차마 믿기 힘든 현실입니다."

"기후위기 상황 속에서 석탄화력발전소는 한국경제에, 나아가 인류의 미래에 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온실가스 배출은 사업자뿐 아니라 다른 산업 주체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을 줄 겁니다. 한국계 글로벌 기업에 대규모 투자하고 있는 APG와 같은 기관에게 이는 큰 리스크 요인입니다."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석탄발전사업의 함정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강력하고 명확한 정책적 방향성을 제시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중략) 지금 이 사업에 대한 중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박유경 배상

현재 우리나라 신규 석탄화력발전소는 총 7곳입니다.

강원도에 삼척 화력발전소 1, 2호와 강릉 안인 화력발전소 1, 2호. 경남 고성 하이화력발전소 1, 2호와 충남 서천 신서천화력발전소 등입니다. 이중 신서천화력발전소는 최근 가동을 시작했습니다.

7곳이 모두 화력발전을 시작하면 한 해에 3,850만 톤의 탄소 배출이 예상됩니다.


■ "이번에 그냥 넘어가면, 글로벌 기관들의 공동 서한도 계획"

APG는 오래전부터 석탄발전 등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해 투자를 줄여오고 있었습니다. 석탄발전소에 투자하면 투자한 돈을 날릴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APG는 한국전력 주식을 2020년 4분기에 모두 팔았습니다. 한국전력이 베트남 등에 해외 석탄화력발전소를 계속 세웠기 때문입니다.

[연관기사] [탄소중립]① “석탄은 말이 안 되는 투자”…해외 연기금에 물었더니 (2020.12.09)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66841

공개 편지를 보고 박유경 이사에게 직접 물어봤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정부에 편지를 쓴 이유와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박유경 이사는 정부에 공식 서한을 보낸 건 처음이라고 밝혔습니다. 민간 석탄화력발전의 인허가 등도 결국 정부가 정하기 때문에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게 탄소중립위원회의 업무라고 말했습니다.

박 이사는 " 탄소중립위원회에서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경제계에 '(정부가) 그냥 넘어가는구나'라고 확실한 신호를 주게 된다."라고 염려했습니다.

탄소 배출을 많이 하게 되면 한국에 투자하기 어려워지는 배경도 설명했습니다. APG는 2015년 대비 2025년까지 주식 등 투자자산의 탄소배출량을 40% 줄여야 한다는 내부 방침이 있습니다.

박유경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APG)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2020년 12월 인터뷰 화면)
박유경 / 네덜란드연금자산운용 아태지역 책임투자부 총괄이사

"신규 석탄발전을 하면 스코프 2(간접 온실가스 배출)가 줄어들지 않아요. 한국에 투자하면서 탄소 배출량을 생각해야 합니다."

"탄소 배출이 많은 지역(국가)은 관련 주식을 계속 가져가야 하는지 결정해야 합니다."

"이번에 APG가 서한을 보냈지만, 잘 안되면 다른 글로벌 투자 기관과 공동으로 서한을 보낼 예정입니다. 석탄발전에 걱정하는 글로벌 투자자들이 워낙 많아서 행동하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공동 서한이) 넥스트 스텝입니다."



■ 탄소 중립, '선택'아닌 '필수'…우리의 선택은?

탄소중립위원회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발표를 앞두고 있습니다. 여기서 석탄화력발전소의 유지 여부 등에 대해서도 방향을 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석탄화력발전 등 탄소 배출이 줄지 않으면 아예 투자에서 빼버리겠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의 흐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구가 공개적으로 벌어지는 것도 새로운 환경입니다.

한국 정부는 2050년에 탄소 순 배출 제로인 '탄소 중립'을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를 위한 강화된 온실가스감축목표(NDC)는 아직 발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적어도 올해 11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인데 글로벌 투자기관들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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