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 환자를 성폭행…알고도 신고 안 한 정신병원

입력 2021.08.1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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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환자 성폭행…"신고 없었다"

지난달 말 전북지역 한 정신병원에서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당 층에는 간호조무사 등 4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무자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 여성 환자 혼자 있는 병실에 남성 환자가 들어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10~15분 뒤쯤 상황을 알아챈 근무자들은 남성 환자를 끌어냈습니다. 또 다음 날 병원 상급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병원 측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여성 환자를 다른 병실로 옮겼을 뿐입니다.

남성 환자는 병원에 일주일 더 머물다가 다른 지역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해당 병원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이 같은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병원 측은 취재진에게 "성폭행 자체가 없었다. 고발하든가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시간 뒤 전화로 "환자가 환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고 번복하며 관련 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당시 근무자들에게 경위서를 받고 재발방지교육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병을 앓는 여성 환자가 저항하지 않는 듯 보였고 이후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인지 능력이 불분명한 환자에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병원 측이 임의로 판단한 겁니다.

■ 경찰·지자체, 조사 착수…"신고 안 한 부분 처벌 못 해"

보도 이후 경찰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병원 CCTV를 확보해 분석하고 당시 근무자들을 불러 상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도 해당 병원을 점검했습니다. 관련 법상 둬야 할 보안요원이 없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당장 처벌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료진 등이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 자체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자체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며 추가로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는 법의 허점이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시설 비리를 지적해온 평화주민사랑방 문태성 대표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는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는 만큼 병원 측에서 더 세심히 돌봤어야 한다"며 "관리 소홀과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병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아동학대처럼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료진이 알았을 때 꼭 신고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지자체도 관심 소홀…정춘숙 의원 "법 개정 준비"

특히 피해 여성 환자는 해당 정신병원에 '행정입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행정입원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지자체장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제도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여성 환자가 행정 입원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는 입원하고 열흘이 넘도록 여성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았습니다. 직접 통화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자체 관계자는 "전화로 병원 관계자에게 여성 환자가 잘 치료받고 있는지 여러 차례 물어봤으며, 입원 뒤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확인하라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윤명숙 교수는 "행정입원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지는 데다 정신병원 일부 입원 환자는 인지능력 등 여러 이유로 신고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책임이 없다는 지자체 답변은 '행정편의주의'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정춘숙 국회의원은 법 개정을 약속했습니다. 정 의원은 "법적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황을 파악한 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성폭력 등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신고하지 않아도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나아가 다른 정신병원에 대한 전수조사와 행정입원 환자를 책임질 추가 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함께보기]
1. 환자가 환자 성폭행했는데…관리 부실·숨기기 ‘급급’
2. 환자 간 성폭행…경찰·전라북도 조사 착수
3. 성폭행 알고도 신고 안 했는데…“처벌할 근거 없어”
4. 같은 일 막으려면…“책임 주체·신고 의무 법에 명시해야”
5. ‘정신병원 내 성폭력 사건’ 문제와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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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가 환자를 성폭행…알고도 신고 안 한 정신병원
    • 입력 2021-08-11 11:39:40
    취재K

■ 정신병원에서 환자가 환자 성폭행…"신고 없었다"

지난달 말 전북지역 한 정신병원에서 남성 환자가 여성 환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당시 해당 층에는 간호조무사 등 4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근무자들은 다른 일을 하느라 여성 환자 혼자 있는 병실에 남성 환자가 들어가는 것을 몰랐습니다.

10~15분 뒤쯤 상황을 알아챈 근무자들은 남성 환자를 끌어냈습니다. 또 다음 날 병원 상급자들에게 이 같은 내용을 알렸습니다. 그러나 병원 측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여성 환자를 다른 병실로 옮겼을 뿐입니다.

남성 환자는 병원에 일주일 더 머물다가 다른 지역 정신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해당 병원 측은 취재가 시작되자 이 같은 내용을 모두 부인했습니다. 병원 측은 취재진에게 "성폭행 자체가 없었다. 고발하든가 마음대로 하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2시간 뒤 전화로 "환자가 환자를 성폭행한 사건이 있었다."고 번복하며 관련 사실을 모두 인정했습니다. "당시 근무자들에게 경위서를 받고 재발방지교육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정신병을 앓는 여성 환자가 저항하지 않는 듯 보였고 이후에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인지 능력이 불분명한 환자에게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병원 측이 임의로 판단한 겁니다.

■ 경찰·지자체, 조사 착수…"신고 안 한 부분 처벌 못 해"

보도 이후 경찰이 조사에 나섰습니다. 병원 CCTV를 확보해 분석하고 당시 근무자들을 불러 상황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지자체도 해당 병원을 점검했습니다. 관련 법상 둬야 할 보안요원이 없다며 시정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사건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당장 처벌하지 못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료진 등이 신고해야 한다는 규정 자체가 없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지자체는 "경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며 추가로 위반한 사항이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시민단체는 법의 허점이 분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장애인시설 비리를 지적해온 평화주민사랑방 문태성 대표는 "정신병원 입원 환자는 인지 능력이 상대적으로 낮을 수 있는 만큼 병원 측에서 더 세심히 돌봤어야 한다"며 "관리 소홀과 사건 은폐 의혹에 대한 병원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아동학대처럼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의료진이 알았을 때 꼭 신고하도록 법으로 정해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지자체도 관심 소홀…정춘숙 의원 "법 개정 준비"

특히 피해 여성 환자는 해당 정신병원에 '행정입원'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행정입원은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위험이 있는 정신질환자를 지자체장이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제도입니다.

사건이 발생한 건 여성 환자가 행정 입원한 지 이틀 만이었습니다. 하지만 해당 지자체는 입원하고 열흘이 넘도록 여성 환자를 직접 만나지 않았습니다. 직접 통화하지도 않았습니다.

지자체 관계자는 "전화로 병원 관계자에게 여성 환자가 잘 치료받고 있는지 여러 차례 물어봤으며, 입원 뒤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확인하라는 규정은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전북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윤명숙 교수는 "행정입원이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이뤄지는 데다 정신병원 일부 입원 환자는 인지능력 등 여러 이유로 신고가 어려울 수 있는 만큼 책임이 없다는 지자체 답변은 '행정편의주의'로 볼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인 정춘숙 국회의원은 법 개정을 약속했습니다. 정 의원은 "법적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으며, 현황을 파악한 뒤 이와 관련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성폭력 등 정신병원 안에서 벌어진 사건을 신고하지 않아도 마땅히 처벌할 규정이 없는 현실을 바꾸겠다는 겁니다.

전문가와 시민단체는 나아가 다른 정신병원에 대한 전수조사와 행정입원 환자를 책임질 추가 인력도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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