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직 교사 창고에 대기시킨 명진고…인권위 “인격권 침해”

입력 2021.08.23 (14:4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학교 재단의 비리를 증언해 해임된 교사를, 복직 첫날 교무실이 아닌 일종의 창고에 대기하도록 한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피해 교사는 광주 명진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손규대 교사입니다. 손 교사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KBS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관련 보도] [KBS 뉴스] 복직 교사 자리는 교실도, 교무실도 아니었다 (2020.12.10)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68607

■ 복직 첫날 혼자 창고서 대기…"교사로서 심한 모멸감"

손 교사는 지난해 12월 9일, 7개월 만에 교단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 재단의 교사채용 비리를 증언한 뒤 해임됐다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쳐 복직한 날이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렸던 복직 첫날은 손 교사에게 '모욕적인 날'이 됐다고 합니다. 학교 측이 손 교사를 '교무실'이 아니라 체력단련실로 쓰던 '통합지원실'에 대기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손규대 교사가 대기했던 통합지원실.  손 교사는 학생용 책걸상에서 대기해야 했다.손규대 교사가 대기했던 통합지원실. 손 교사는 학생용 책걸상에서 대기해야 했다.

손 교사는 운동용 매트와 옷걸이, 가전제품이 보관된 공간의 구석에 있던 학생용 책상에 앉아 대기해야 했습니다. 인사를 온 학생들과 지나가던 일부 교사들이 손 교사의 이런 모습을 봤고, 손 교사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학교 안에는 통합지원실 공간 외에도 대기할 장소가 있었습니다. 교무실에는 남아 있는 교사 자리가 없었지만, 교사 책상이 갖춰진 정보화실 같은 공간도 있었습니다.

복직 첫날 명진고의 교장이 손 교사를 불러, 큰 목소리로 비난한 사실도 인권위 조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복직 당일 점심 시간에 손 교사가 창고에 대기하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게 이유였습니다.

교장은 손 교사에게 "사진 찍어서 보냈어?", "경솔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 나이가 몇 개야?", "자네가 영웅 되는 거야?" 같은 말을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학교 측은 그동안 "피해자의 복직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갑자기 출근해 근무 장소를 마련할 시간이 없었고, 교무실에 빈 교사자리가 없어서 다른 공간에서 대기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손 교사가 복직 첫날 대기한 공간은 근무하는 장소가 아니라, 서너 시간 정도 기다리게 한 장소일 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 인권위, 명진고 교장·행정실장에게 주의 조치

인권위는 이런 학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창고 대기'가 손 교사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명진고 행정실장이 손 교사를 창고에서 대기하도록 했고, 교장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적절한 조치를 바로잡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인권위는 학교 측이 손 교사에게 부적절한 조치를 한 이유는, 과거 손 씨가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판단했습니다.

손 교사는 재단 관계자가 채용을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 사실을 교육청 감사와 검찰 수사 때 진술했고, 이후 해임됐습니다.

인권위는 학교법인 도연학원 이사장에게 명진고 교장과 행정실장에 대해 주의 조치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다만 손 교사가 자율연수 장소로 학교 밖 도서관을 지정받은 것에 대해서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라며 기각했습니다.

■ "여전히 이어지는 괴롭힘…학생들 보면서 견뎌"

손 교사는 인권위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학교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미묘한 괴롭힘이 손 교사를 힘들게 했다는 겁니다.

올해 2월에는 학교 측이 '손 교사를 복직시킨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까지 냈다고 했습니다. 손 교사는 소송을 당했다는 압박감이 큰데다 소송 준비 비용도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손 교사는 학교 재단의 괴롭힘이 이어지고 있지만 학생들 때문에 견디고 있다며, 학교 재단과 계속 싸워나갈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복직 교사 창고에 대기시킨 명진고…인권위 “인격권 침해”
    • 입력 2021-08-23 14:40:20
    취재K

학교 재단의 비리를 증언해 해임된 교사를, 복직 첫날 교무실이 아닌 일종의 창고에 대기하도록 한 것은 '인격권 침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이 나왔습니다.

피해 교사는 광주 명진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손규대 교사입니다. 손 교사의 사연은 지난해 12월 KBS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관련 보도] [KBS 뉴스] 복직 교사 자리는 교실도, 교무실도 아니었다 (2020.12.10)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068607

■ 복직 첫날 혼자 창고서 대기…"교사로서 심한 모멸감"

손 교사는 지난해 12월 9일, 7개월 만에 교단으로 돌아왔습니다. 학교 재단의 교사채용 비리를 증언한 뒤 해임됐다가, 교원소청심사위원회를 거쳐 복직한 날이었습니다.

손꼽아 기다렸던 복직 첫날은 손 교사에게 '모욕적인 날'이 됐다고 합니다. 학교 측이 손 교사를 '교무실'이 아니라 체력단련실로 쓰던 '통합지원실'에 대기하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손규대 교사가 대기했던 통합지원실.  손 교사는 학생용 책걸상에서 대기해야 했다.
손 교사는 운동용 매트와 옷걸이, 가전제품이 보관된 공간의 구석에 있던 학생용 책상에 앉아 대기해야 했습니다. 인사를 온 학생들과 지나가던 일부 교사들이 손 교사의 이런 모습을 봤고, 손 교사는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학교 안에는 통합지원실 공간 외에도 대기할 장소가 있었습니다. 교무실에는 남아 있는 교사 자리가 없었지만, 교사 책상이 갖춰진 정보화실 같은 공간도 있었습니다.

복직 첫날 명진고의 교장이 손 교사를 불러, 큰 목소리로 비난한 사실도 인권위 조사를 통해 확인됐습니다. 복직 당일 점심 시간에 손 교사가 창고에 대기하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게 이유였습니다.

교장은 손 교사에게 "사진 찍어서 보냈어?", "경솔하지 말라고 했지?", "자네 나이가 몇 개야?", "자네가 영웅 되는 거야?" 같은 말을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학교 측은 그동안 "피해자의 복직을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피해자가 갑자기 출근해 근무 장소를 마련할 시간이 없었고, 교무실에 빈 교사자리가 없어서 다른 공간에서 대기하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또 손 교사가 복직 첫날 대기한 공간은 근무하는 장소가 아니라, 서너 시간 정도 기다리게 한 장소일 뿐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 인권위, 명진고 교장·행정실장에게 주의 조치

인권위는 이런 학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창고 대기'가 손 교사의 인격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명진고 행정실장이 손 교사를 창고에서 대기하도록 했고, 교장도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적절한 조치를 바로잡지 않았다고 봤습니다.


인권위는 학교 측이 손 교사에게 부적절한 조치를 한 이유는, 과거 손 씨가 학교법인 이사장에게 불리한 진술을 했기 때문이라고도 판단했습니다.

손 교사는 재단 관계자가 채용을 대가로 금품을 요구한 사실을 교육청 감사와 검찰 수사 때 진술했고, 이후 해임됐습니다.

인권위는 학교법인 도연학원 이사장에게 명진고 교장과 행정실장에 대해 주의 조치하고,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습니다.

다만 손 교사가 자율연수 장소로 학교 밖 도서관을 지정받은 것에 대해서는 '직업수행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라며 기각했습니다.

■ "여전히 이어지는 괴롭힘…학생들 보면서 견뎌"

손 교사는 인권위의 판단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학교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주변의 시선과 미묘한 괴롭힘이 손 교사를 힘들게 했다는 겁니다.

올해 2월에는 학교 측이 '손 교사를 복직시킨 교원소청심사위원회의 결정을 취소해달라'는 취지의 행정소송까지 냈다고 했습니다. 손 교사는 소송을 당했다는 압박감이 큰데다 소송 준비 비용도 걱정이라고 말했습니다.

손 교사는 학교 재단의 괴롭힘이 이어지고 있지만 학생들 때문에 견디고 있다며, 학교 재단과 계속 싸워나갈 생각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